최악의 진기록을 세운 주제에 표정 보소

 

 

새벽 4시 30분, 충남 서천 홍원항

 

서울에서 상원아빠님과 합류해 밤새 달려온 곳은 충남 서천 홍원항. 무창포와 오천항과 더불어 서해 주꾸미, 갑오징어 낚시로 가장 핫한 곳입니다. 더불어 소싯적에 홀로 낚시하러 다니면서 제게 적잖은 깨달음과 배움의 장소가 된 곳이기도 합니다.

 

 

저는 주꾸미 낚시가 처음입니다. 예전에 갑오징어 낚시에서 우연히 거둔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주꾸미만 노리고 나간 것은 처음입니다. 그나저나 저 많은 인파 좀 보세요. 항 전체가 주꾸미 출조꾼으로 가득합니다.

 

 

하룻밤 사이 충남권에서 출항하는 배가 약 100여 대. 대략 100대라고 했을 때 승선 인원은 대략 2,000명. 1인 평균 150마리 조과로 계산하면, 하루에 잡히는 주꾸미만 30만 마리. 악천후를 제하고 한 달 평균 출항 횟수가 25회라고 가정한다면, 750만 마리. 곱하기 두 달 반을 계산하면, 1,875만 마리. 물론, 실제로는 이보다 많을 수도 있고 적을 수도 있습니다만, 한 해 동안 낚시로 잡히는 주꾸미 양을 대략 추산하니 이 정도 수치가 나옵니다.

 

어마어마한 양이네요. 그런데도 여기서 살아남은 주꾸미가 이듬해 봄, 소라방에서 알을 품다가 수십 톤씩 잡혀 우리 식탁에 올려지는 걸 보면, 한해살이 주꾸미의 번식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실감하게 됩니다. 과연 언제까지 이런 식으로 잡혀줄까요?

 

 

이날은 상원아빠님을 비롯해 상원아빠님의 지인분들과 함께합니다. 아직은 출항 전이라 기분이 설레지요. 더욱이 이날은 9월 1일. 주꾸미 금어기가 해제된 첫날 아니겠습니까? 지난 3개월 동안 무럭무럭 자란 주꾸미가 서해 갯벌 바닥에 수없이 깔려 있겠단 생각에 마음이 들뜬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포인트에 다다르자 여명이 틉니다. 이날 저는 컨디션이 좋지 못합니다. 몸을 일으켜야 하는데 철근처럼 무겁습니다.

 

 

오랜만에 보는 서해의 일출

 

주꾸미 낚시도 처음이고, 전문 장비 또한 갖추지 못한 저는 전천후 쭈갑대에 모든 것을 맡기고 시작해 봅니다. 

 

 

이날 주꾸미 채비도 처음 배웠습니다. 12호 봉돌에 주꾸미 전용 에기를 달았지요.

 

 

낚시가 시작되고 나서 한동안 입질이 없다가 상원아빠님 지인으로부터 첫 입질이 들어옵니다.

 

 

역시 주꾸미가 올라오네요. ^^

 

 

이어서 상원아빠님도 히트!

 

 

한입꺼리 밖에 안 되는 주꾸미지만, 이런 게 쌓이면 무시하지 못 할 만큼 효자 반찬감이 되겠지요.

 

 

이어서 제게도 한 마리 올라옵니다. 올려놓고 사진 찍는데 주꾸미는 도망가기 바쁘고..

 

 

이어서 상원아빠님이 한 마리 올리고..

 

 

지인분도 한 마리 올리고..

 

 

저도 한 마리 추가하고..

 

여기까지만 보면 "주꾸미가 제법 올라오네?"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시간당 한 마리씩 잡힌 것을 찍어서 연속적으로 보여준 겁니다. 저는 처음이니 100마리만 잡아가자 하였고, 저보다 경험 많은 상원아빠님은 예전에 150수까지 했기 때문에 오늘은 200마리만 잡자 하였는데 지금 상황으로 보면 반에 반 토막도 안 될 분위기입니다. 

 

개체 수도 적은 느낌이고, 활성도도 저조하고, 씨알은 거미 사이즈에 입질은 얼마나 약은지.. 주꾸미 낚시가 이렇게 어려웠나요?  

 

 

게다가 저는 몸살감기로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들었고, 평소 이 정도 파도에서는 거의 느끼지 않던 멀미까지 느끼면서 이중고를 겪어야 했습니다. 빈속이라 뭐라도 먹어야 하는데 때마침 상원아빠님 형수님이 바리바리 싸준 간식으로 요기하고요. (덕분에 너무 잘 먹었습니다.) 좀 쉴까 하는데 갑자기 옆에서 우당탕 소리가 납니다.

 

 

고개를 돌리니 에기에 웬 양태가 물고 옵니다.

 

 

주꾸미가 잡히지 않자 포인트 이동 시간만 늘었습니다. 몸이 성치 않으니 말도 제대로 못 하고 낚시도 못 하고 있습니다. 정신적으로 버티는 것도 한계점에 다다랐는데요. 집에서 나올 때 이미 몸이 심상치 않음을 느꼈는데 그렇다고 당일에 와서 취소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아픈 몸을 끌고 오긴 했는데 주꾸미 낚시도 시원찮고, 시간도 겨우 9시인데 마음은 반 포기 상태에 이릅니다. (제가 낚시하면서 이런 경우가 없어요. 왔으면 뭐라도 건질 생각에 악착같이 낚시하는 스타일인데 역시 사람은 몸이 멀쩡해야 합니다.)

 

결국, 아무도 없는 선실에 들어가 대짜로 뻗었습니다. 그리곤 두 시간이 지났습니다. 잠결이지만, 아무도 안 깨우길래 그때 직감했죠. 조황이 최악으로 가고 있음을.

 

 

표준명 자게

 

11시 30분쯤 일어나보니 일행이 이런 걸 잡아 놓았습니다. 제주도 부근에서나 서식하는 난류성 게인데 수온이 높으니 서해에도 출현하는군요.

 

 

선사에서 제공하는 식사를 받아듭니다만, 도무지 먹을 힘도 없고 입맛도 없습니다. 먹는 둥 마는 둥 하다 치우고..

 

 

저 앞에 주꾸미 낚싯배가 어마어마하게 깔렸습니다. 앞서 이 지역에 뜨는 배가 100여 척이라 했는데 개인 보팅까지 합하면 훨씬 넘겠는데요.

 

 

시간은 어느덧 오후 1시 30분. 저의 조과는 현재 2마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거 실화?) 제가 자는 동안 열심히 담갔던 분들도 10마리 조과.

 

한번은 다른 배가 와서 이렇게 마주 보며 낚시하는데, 누구 하나 주꾸미를 건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말 갑갑한 상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때 긴 침묵을 깨고 상원아빠님이 히트합니다.

 

 

오늘 이것만 두 마리째인데요. 대체 뭘까요? 올려놓고 관찰하는데 움직임이 없습니다. 처음에는 그런가보다 싶어 낚시하는데 혹시 몰라 다시 보니 모양이 짜리몽땅하게 변해 있습니다. 이거 뭔지 아시는 분은 댓글로 제보 부탁합니다. ^^ 

 

그나저나 지금은 선실이 꽉 찼습니다. 주꾸미가 얼마나 안 잡히면 승객 절반이 들어가 눕겠습니까. ㅠㅠ 제가 주꾸미 낚시는 처음이라 진짜 몰라서 묻는 건데 원래 이런 날도 있는가요? 

 

 

한숨 자고 일어나니 정신이 조금 돌아왔습니다. 조금은 맑아진 정신으로 낚시를 재개하는데 그런 저의 노력을 알아주려는지 연달아 2마리가 잡힙니다. 이로써 저의 주꾸미 조과는 현재 4마리를 기록 중입니다. (으아~ 방파제에서 잡아도 이것보단 많이 잡겠다는 ㅎㅎ)

 

 

아까부터 상원아빠님은 주꾸미가 아닌 다른 생명체만 낚아 올리는군요. ㅎㅎ

 

 

저는 오른쪽보다 왼쪽 별이 마음에 듭니다. 다음에 이 녀석을 또 잡으면 양옆에 다리만 자르고 삼각별로 만들어 말린 다음 제 자동차 보닛에 붙이고 다니겠습니다. ㅎㅎ

 

 

쌍걸이 한 입질의 추억

 

오후 2시, 뭔가 묵직하길래 반사적으로 챔질했더니 씨알 큰 주꾸미가 달렸는지 제법 묵직합니다. 올렸는데 쌍걸이. 운이 좋네요.

 

 

원래는 낚시 마치고 집에서 주꾸미 샤브샤브를 해 먹겠다는..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꿈도 야무지죠. 최소 20마리는 있어야 샤브샤브를 해 먹는데 지금 시간당 1.5마리 조과입니다. 뭔 수로 16마리를 잡을 수 있을까요? ㅎㅎ

 

시간은 오후 2시. 그런데 다들 선실로 들어가는 분위기입니다. 벌써 철수인가요? 에라 모르겠다~ 저도 포기하고 들어가 눕습니다. 그리고 배는 그 상태로 조기 철수했습니다. 원래는 4시 입항인데 3시 입항이라니.. (집에 빨리 갈 수 있게 되어 차라리 좋군요. ㅠㅠ)  

 

 

이날 제가 거둔 조과입니다. 종일 선상낚시에 주꾸미 여섯 마리. 어쩌면 우리나라 주꾸미 낚시 역사상 길이길이 남을 진기록은 아닌지 모르겠어요. 지난 출조에서 140~150마리 정도 잡은 상원아빠님은 이날 12마리를 기록, 주꾸미 전문인 지인은 16마리. 그 옆 분은 12마리. 그런데 배 중간쯤에서 낚시하던 분이 홀로 100수, 그 뒷사람이 80수를 했다고 합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을까요? 이야기를 들어보니 사용한 제품(에기)이 완전히 다르다는데요. 제가 직접 확인하진 않았습니다만, All 형광 제품을 써서 그나마 흙탕물에 대응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흐음~

 

 

충남 서천 홍원항

 

이날 주꾸미 조황은 충남권 전역을 비롯해 군산권까지 저조했다고 합니다. 그나마 경기권은 선방한 정도. 정확한 이유나 원인은 알 수 없지만, 가장 설득력 있는 원인으로 지목되는 것은 근래 유례가 없었던 폭염과 그로 인한 수온 상승. 그러니 시즌도 전반적으로 늦어지는 것이 아닌가 싶고요.

 

또 다른 원인은 최근 중부지방을 강타한 폭우로 인해 기록적인 강우량을 보였죠? 이로 인해 강과 하천에서 엄청난 담수와 토사물이 바다로 쏟아졌습니다. 분명 염분 농도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고요. 흙탕물이기 때문에 주꾸미의 시야 확보에도 어려움이 있었을 것입니다

 

 

눈물로 만든 주꾸미 파스타

 

지금까지 낚시하면서 꽝 친 적도 숱하게 많았지만, 이날 만큼 힘든 날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몸도 말을 듣지 않고, 멀미까지 났으니 배에 있는 내내 곤혹스러웠는데요. 입항하고 땅에 발을 대자 천국에 온 기분마저 들었습니다.

 

서울로 올라가면서 여러 가지 만감이 교차합니다. 사람이 살다 보면 여러 실패에 직면하는데요. 저의 경우 야심 차게 강행한 출조에서 보기 좋게 꽝을 칩니다. 그러면 결과적으로 시간 버리고, 돈 버리고, 몸 버리는데요. 이건 다른 낚시인들도 똑같이 겪는 것이니 여기까지는 그러려니 합니다.

 

그런데 단 하나, 견디기 힘든 것은 '건질 만한 콘텐츠도 없다.'란 사실입니다. 주꾸미 자료 확보에도 실패입니다. 향후 주꾸미 관련 글을 써나갈 때 제동이 걸릴 것이며, 매일 새로운 글, 새 주제로 콘텐츠를 짜내야 하는 저로서는 어마어마한 스트레스가 될 겁니다. 왜냐하면, 제게는 생계가 걸린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단순 취미로 즐기는 분들과 직업적으로 해야 하는 저와 다른 점이라면 다른 점일 겁니다.

 

생각해보니 출조비로 주꾸미를 사 먹었다면 어땠을까? (이럴 땐 일반인들이나 하는 발상을 저도 하게 된다는 ^^;) 주꾸미 여섯 마리 중 두 마리는 우리 딸 반찬으로 볶아주었는데요. 우리 딸은 정말 두족류를 좋아하나 봅니다. 어찌나 잘 집어 먹던지.. 그리고 남은 4마리는 이렇게 파스타를 했습니다. 그리곤 며칠 뒤 글을 쓰겠지요. 그걸로 끝입니다.

 

그러면 저는 남은 9월동안, 어디서 무얼 낚고, 찍고, 콘텐츠를 뽑아야 할지 고민하겠지요. 제가 택한 삶이지만, 때론 고달플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이라도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 건강이 최곱니다. ^^

 

- 홍원항 주꾸미 출조 문의

서해바다낚시 황제호(010-2811-10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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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입질의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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