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 대문어 찌는 풍경, 포항 죽도시장

 

집안 대소사 및 반가의 제사상에는 빠지지 않는 문어. 그래서 문어의 주 소비 지역은 동해안 일대를 비롯해 안동과 영주 같은 제사 문화가 발달한 곳이 중심이었습니다. 물론, 전국적으로도 문어 소비량은 증가하고 있습니다. 맛을 아는 이들만 알음알음 찾아 먹던 문어가 지금은 맛과 효능이 알려지면서 그 수요가 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가 주로 먹는 문어 중 상당수는 수입산입니다. 대표적으로 중국, 필리핀, 모리타니(모리타니아) 산이 있습니다. 국산 문어는 해마다 어획량이 떨어지고 가격은 점점 치솟고 있습니다. 찾는 사람이야 많지만, 그 수요를 어획량이 따라잡기에는 이미 늦었습니다.

 

촉촉하게 씹히면서 단맛과 감칠맛이 어우러지는 동해산 문어. 어쩌면 우리는 이러한 맛을 볼 수 있는 날이 머지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우리 식탁에 문어와 주꾸미가 사라지는 이유, 무엇이 있을까요? 첫 번째 원인은 남획이지만, 문어와 주꾸미가 줄어들 수밖에 없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포항 죽도시장

 

이곳은 동해 대문어의 집결지 중 하나인 포항 죽도시장입니다. 새벽 일찍 찾았는데요. 보시다시피 밤사이 잡힌 문어가 한가득입니다.

 

 

문어 경매 현장

 

문어 경매 현장을 지켜보는데 뭔가 미심쩍은 장면이 보입니다. 당시 경매 중인 품목은 동해산 대문어 한 종입니다. 사진에 밝게 표시한 문어도 같은 종인데 크기는 낙지에 버금갈 만큼 작습니다. 이 작은 문어도 버젓이 경매되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입니다. 작은 문어의 어획과 유통이 왜 문제가 될까요? 

 

 

<사진 1> 표준명 문어, 동해가 주산지이다

 

#. 우리 문어가 사라지는 진짜 이유

동해 수협에 따르면, 동해에서 주로 잡히는 '문어(Octopus dofleini)' 종은 크기와 중량에 따라 아래와 같이 분류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 소문어 : 400g부터 2kg까지

- 중문어 : 2.1kg부터 15kg까지

- 대문어 : 15kg 초과부터

 

다시 말해, 400g 이하는 포획 금지입니다. 400g 이하를 보호함으로써 산란을 돕고 적정 개체 수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 수산자원관리법인데 실제로는 문어의 성장 크기를 고려하지 못한 법이며, 아무런 실효성을 거두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는 크기가 작은 여수 돌문어를 기준으로 잡았기 때문입니다.

 

 

<사진 2> 참문어(Octopus vulgaris), 우리나라 전 연안에 서식하며 특히, 여수와 제주도가 주산지이다

 

우리나라에는 크게 두 종류의 문어가 서식합니다.

 

"문어(Octopus dofleini) 참문어(Octopus vulgaris)"

 

동해가 주산지인 문어는 대문어 혹은 피문어라 불립니다. 수명은 3~4년이며 다 자라면 최소 20kg에서 최대 50kg까지 자라는 대형 종입니다. <사진 1>참고

 

 

반면에 여수 및 제주도가 산지인 참문어는 돌문어 혹은 왜문어로 불립니다. 수명은 3년 정도로 보고되며 다 자라면 3~5kg까지만 자라는 소형 종입니다. <사진 2>참고. 다시 말해, 둘의 차이는 50kg vs 5kg. 무려 10배나 차이 납니다. 두 문어의 성장 크기가 이렇게 차이가 나는데도 우리나라의 문어 포획 금지는 종류 불문하고 무조건 400g으로 통일. 

 

"자 이것으로 문어를 지켜냅시다."

 

하는 것이 현재 수산관리법의 현실입니다. 뭔가 일이 편리하지 않습니까? 그 결과 문어잡이 배들은 종류 불문하고 400g만 잡지 않으면 되지만, 현실은 라면용이다, 해물탕용이다 하여 버젓이 팔리는 것이 현주소입니다.

 

작은 문어는 따로 용도가 있으니 돈이 되고, 돈이 되니까 무분별하게 잡게 되는 것. 내가 안 잡아도 옆 배가 잡아가니 서로 경쟁적으로 잡게 되는 것.

 

 

동해 대문어의 성장 그래프

 

#. 문어 포획금지 '400g'의 덫

동해 대문어의 성장 그래프를 보면, 400g으로 제한한 수산 자원관리법이 얼마나 실효성이 없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래프는 동해 수산연구소 박정호 박사의 인터뷰를 참고하여 그렸습니다. 대문어의 수명은 3~4년으로 알려졌습니다. 먹이 습식 정도에 따라 어떤 개체는 30kg까지 성장하며, 어떤 개체는 50kg까지 성장하기도 합니다.

 

특이하게도 대문어는 생후 1년까지 별다른 성장을 보이지 않습니다. 무게 10g밖에 자라지 않다가 생후 2년 차면 1kg 내외가 됩니다. 대문어의 폭풍 성장은 이때부터 시작합니다. 생후 2년에서 3년 사이 자신의 무게를 10배 이상 늘리는데 알을 낳을 수 있는 번식력도 이때 생깁니다. 이 말은 즉, 2년차 문어를 잡지 말고 1년만 바다에 맡겨두면 엄청난 고소득원이 되어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수산연구소 박정호 박사의 말에 의하면 동해 대문어는 무게 10kg 이상은 돼야 알을 낳을 수 있는 어미가 된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문어의 산란은 한 평생 단 번만 이뤄집니다. 3년생은 돼야 딱 한 번 알을 낳으니 생체 순환기가 느립니다. 이러한 문어를 단지 400g만 넘어도 잡을 수 있도록 독려하고 있으니 대부분 문어가 알도 낳지 못한 채 잡히며, 해마다 문어 크기가 줄고 어획량도 떨어지는 원인이 됩니다.

 

이 상태라면 가까운 미래에는 명태처럼 절멸될 수도 있습니다. 동해 대문어의 맛을 후대에도 물려주려면 현재의 포획 금지 한계선을 2~3kg, 혹은 그 이상으로 늘리는 방안을 추진해야 합니다.

 

 

3~4월 대량으로 유통되는 알배기 주꾸미

 

#. 국산 주꾸미, 앞으로는 먹기가 쉽지 않을 듯

주꾸미도 문어와 같은 처지입니다. 예전에는 저렴한 값에 살 수 있었던 주꾸미가 지금은 1kg당 3만 원이 넘어가면서 소고기로 눈길을 돌리는 소비자가 늘고 있습니다. 이른바 수산물 외면 현상이 나타난 건데 그 이유는 가격도 가격이지만, 그 뒤에는 물불 안 가리는 남획과 불법 조업에 있습니다.

 

주꾸미는 문어와 달리 한해살이입니다. 1년만 살다 봄에 알 낳은 후 품다가 죽습니다. 그러면 태어난 유생이 자라 가을에는 성숙 개체가 되고 이때 낚시로 잡히며, 이듬해 봄에 다시 알을 낳고 죽습니다. 그래서 주꾸미는 생태 순환기가 빠른 생물입니다. 이렇듯 생태 순환기가 빠른 생물의 장점은 자원 회복력이 좋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자원회복력도 산란철 알배기를 보호했을 때라야 발휘됩니다. 주꾸미 한 마리가 낳는 알은 약 200~300개. 그러니 그해 번식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면, 고등어처럼 매년 크기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아예 씨가 말라버릴 수도 있습니다. 이에 해수부는 주꾸미 금어기를 5월 11일부터 8월 31일까지 신설했습니다.

 

하지만 이 금어기가 얼마나 실효성이 있는지는 여전히 의문입니다. 주꾸미의 산란은 4~5월에 이뤄지는데 조업은 한창 알배기가 잡히는 3~4월에 집중됩니다. 이는 충남도가 매년 개최하는 주꾸미 축제와 겹치는 기간이기도 합니다. 3~4월 알배기의 남획을 허용하는 꼴이 돼버린 것입니다.

 

 

산란철 알배기 주꾸미를 잡는 소라방

 

#. 쿼터제를 도입해야 하는 중대 이유

주꾸미는 소라 껍데기를 이용한 일명 '소라방'으로 잡아 들입니다. 이는 산란이 임박한 주꾸미가 조개껍데기를 찾아 들어가는 습성을 이용한 것인데요. 문제는 이런 정상적인 조업 방식으로 주꾸미를 잡는 것이 아닌, 불법 조업으로 씨를 말린다는 것입니다.

 

서해 천수만을 비롯해 주꾸미의 산란장이 되는 곳에는 어김없이 불법 형망과 안강망이 알배기를 대량 포획하고 있습니다. 어떤 어민은 하루 평균 20톤씩 잡힌다고 밝혔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지자체가 알고는 있어도 축제 흥행과 어민 소득의 보전이란 명목으로 눈감아주고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니 불법 조업의 단속이 제대로 이뤄질 리 없습니다. 그 사이 5월 11일부터 8월 31일까지 금어기 신설은 주꾸미 논란을 잠시나마 잠재울 수 있는 좋은 구실이 됩니다. 

 

어쩌면 금어기를 5월 11일에서 5월 1일로 앞당겨 조금이라도 알배기를 보호하는 것도 당장의 방책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금어기를 통해 어획 자체를 금지하는 것은 "나쁜 짓이니 하지 마라"고 다그치는 부적절한 육아와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금어기로 어획을 막으면 당장 어민의 생계가 위협받을 것이며, 국민에게도 주꾸미를 먹지 말라고 강요하는 꼴이 되니까요.

 

봄철에만 맛볼 수 있는 알배기 주꾸미를 완전히 차단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내버려 두면 남획이 우려됩니다. 이럴 때 가장 좋은 것은 우리나라 현실에 맞는 쿼터제를 도입하는 것입니다. 하루 조업량과 위판량을 적정 톤수로 제한한다면, 금어기로 인한 분쟁도 없을 것이며, 어민들 간에 경쟁적으로 잡으려고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적발한 공무원(혹은 해양경찰)은 적발한 건수만큼 성과제를 도입해 포상을 주고 계속해서 감시 행위를 독려합니다. 그러면서 모두가 적당히 잡고 적당히 소비하면서 미래까지 내려다볼 수 있는 자원량을 확보하는 겁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 정도까지는 어획량이 일정해짐에 따라 해마다 폭락과 폭등을 반복했던 수산물 가격도 안정을 되찾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말이 나올 때마다 핑곗거리로 등장하는 것이 감시 인력과 재정 문제입니다. 언뜻 보면 그럴싸한 핑계처럼 들리지만, 우리나라 국토보다 더 크고 광범위한 조업 구역에서의 단속도 무난히 이뤄지는 호주 및 캐나다의 사례를 보면, 이러한 핑계가 쿼터제 실시에 걸림돌이 될 수는 없다고 봅니다. 왜 그럴까요? 

 

감시인력이 부족해도 쿼터제가 그런대로 지켜지는 이유는 수산관리법을 위반했을 때 적용되는 벌금과 형량이 매우 엄격하기 때문입니다. 대부분 솜방망이 처벌로 끝나는 국내 사정과는 달리, 잘못 걸리면 파산에 이를 만큼 막대한 벌금을 매기는 겁니다. 그러니 일일이 감시하지 않아도 어느 날 불시 검문에 적발되면, 막대한 벌금과 벌점이 매겨질 수 있음을 어민들로 하여금 경각심을 심어주어야 합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수산관리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습니다. 법이 있음에도 무법천지가 된다는 것은 그만큼 처벌 수위가 약하다는 증거이며, 이로 인한 수산관리법의 본 취지가 무색해지는 것입니다. 이제는 어민들이 자발적으로 자원을 보존해 나가자는 인식을 가져야 합니다.

 

바다는 어민이나 특정 계층의 것이 아닙니다. 바다는 우리 모두의 공동 자산입니다. 자원 회복을 위해 이런저런 법을 만들고 잡음도 들리지만, 이 모든 것도 쿼터제만 안정적으로 자리 잡힌다면 해결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런 일을 추진하는 데 있어서 정부와 관련 부처 공무원들이 '일 할' 의지가 있느냐입니다. 수산물 소비량이 해마다 늘고 있지만, 우리 식탁에는 신토불이 대신 수입산이 점령한 지 오래입니다.

 

이대로 가면 가까운 미래에 신토불이를 아예 볼 수 없거나 혹은 있어도 가격이 너무 비싸서 사 먹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를지도 모릅니다. 당장 돈 욕심에 불법 조업과 남획이 오늘도 밤바다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지금부터라도 관련 부처가 힘 써주어 어민과 소비자 모두 웃는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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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입질의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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