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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회 후기
지난주 토요일, 홍대에서 송년회를 열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이 모임의 주체자는 다름 아닌 저 입질의 추억이지요.
이왕이면 바른 먹거리를 선도하는 곳에서 진행해야 제 모임의 성격과 정체성에도 잘 어울릴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성주님이 운영하시는 홍대 얼쑤에서 진행했습니다. 제가 이곳을 선정한 이유는 단순히 이 집의 오너셰프가 제 블로그 독자라서가 아닌
바른 먹거리를 선도하는 식당이라 판단하였기 때문입니다. 날마다 변하는 홍대 바닥에서 살아남으려면 앞으로도 헤쳐나가야 할 난관이 많은 줄 압니다.
이제 오픈한 지 반년이 지났기 때문에 자리를 잡아나가는 과정으로 보입니다. 매일같이 전쟁을 치를 것이라 예상이 되는데요.
그 와중에도 맛있는 먹거리를 제공하려는 오녀셰프님의 의지가 대단함을 위 메뉴판에 보이고 있어 잠시 소개를 하고자 합니다.
형식은 '한식 주점'이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지만, 그 면면을 살피면 고급 다이닝 레스토랑의 형식을 띱니다.
메뉴는 매달 풀체인지를 하는 모양이군요. 주점에서 이렇게 운영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올 8월에도 이곳에서 모임을 가졌는데 그때 나오는 음식을 보고 저는 조금 걱정이 되었습니다.
식재료를 보니 이윤을 남기기보다 오히려 적자가 나는 건 아닐까 싶었지요. 그때 저는 "식재료의 질을 조금 낮추는 게 어떻겠냐"고 이야기하였는데
이번에 와서 보니 오히려 올렸더군요. 달걀은 청리토종닭의 것을 사용하고 특히, 한우가 전에는 분명 1+ 한우 육전이었는데 이번에는 1++로 업그레이드를
하면서 가격은 천 원을 더 붙인 것 같습니다.
물론, 1++ 한우라 하여 재료의 질이 좋다고는 볼 수 없겠지요. 마블링 정책에 반대하는 저로서는 더더욱 그렇고요.
또한, 지난번 1+ 육전과 비교했을 때 맛의 차이가 현격하게 나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소비자의 인식은 1++이 최상의 질로 알고 있으니 업소에서도 그런 정서를 고려한 것이겠죠.
나중에 오너셰프님과 다시 한 번 이야기하겠지만, 1++ 한우를 2등급으로 바꾸고 자체적으로 숙성하여 육전을 부치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을
해봐야겠습니다.
바로 어제 있었던 한정 메뉴 같은데 주점에서 프랑스식 디너 코스처럼 짠 게 눈에 띕니다.
아뮤즈 부쉬는 한입 크기의 에피타이저로 배가 고플 때 먹으면 감질나서 푸짐하게 한 상 차려 먹어야 하는 우리 민족의 정서와는 잘 안 맞는 부분이 있지만,
고급 레스토랑에서나 볼 수 있었던 아뮤즈 부쉬를 한식 주점에서 보는 것도 색다르네요. 그런데 옆에 술도 코스별로 나가나 봅니다?
하여간 좋은 음식과 좋은 술을 보니 다른 말은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사실 오픈 초기에는 똘똘 뭉친 열정으로 운영하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현실적인 벽에 부딪히다 보니 변질된 곳을 우리는 얼마나 많이 보아왔던가요.
물가 상승의 이유로 가격을 올리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식재료의 질을 내리거나 혹은 양이 줄거나 하면서 단골들에게 '변했다.', '초심을 잃었다.'
등의 소리를 듣기도 합니다. 일면 맞는 말이기도 합니다만, 근본적인 원인은 소비자에게도 조금의 책임은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좋은 식재료, 훌륭한 음식을 만들면 장사가 더 잘 돼야 하는 게 아니던가요? 그런데 우리 주변을 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질 낮은 재료에 조미료를 적당히 넣어 그럴싸하게 팔면, 오히려 손님들이 더 좋아하는 세상.
365일 문전성시인 소위 '맛집'을 분석해보면, 그 집의 음식 질과 무관하게 특별히 사업 수완이 좋아서인 경우가 더 많았고요.
특별히 싸고 푸짐하게 내거나 혹은 메뉴 하나 잘 개발해서 그것만 주구장창 팔거나. 것도 아니면, 돈 주고 방송 타서 유명해진 집이거나.
소비자 입맛은 조미료에 길들어 있으니 그 맛을 내지 못하면 망하는 세상. 뭔가 뒤바뀌어도 한참 뒤바뀐 세상입니다.
저도 한때는 횟집을 운영할 생각을 하였지만, 지금은 그 꿈을 접었습니다. 저 같은 사람이 장사하면 돈 못 번다는 생각을 수없이 해봤기에.
고로 우리나라에서 식당으로 돈 좀 벌려면, 재료는 적당히 쓰고 조미료 듬뿍 쓰고. 그래도 될까 말까 하니 어떻게 저 같은 사람이 손을 대겠습니까? ^^;
하여간 그런 험한 세상에서 얼쑤는 사람들에게 그 노력과 정성을 인정을 받아 탄탄대로로 뻗어 나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또 이런 곳이 본보기가 돼야 후발주자도 생겨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무튼, 사설이 길었는데 아래는 송년회 후기에 나온 음식들입니다.
코스는 제가 짰는데 인당 회비가 3만 원이다 보니(술값 포함) 양이 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구룡포 꽁치 과메기 무침
청어 과메기를 기대했지만, 손님 반응이 저조하다 하여 지금은 꽁치로만 낸답니다.
청어 과메기로 서울 사람 입맛을 사로잡기란 아직 무리인가 봅니다.
한우 1++ 육전
오겹된장구이와 참나물
동해산 물메기탕
알도 심심하지 않게 들어가 있으면서 시원하게 잘 끓였습니다.
저는 후포에서 소문난 물메기탕을 먹어봤는데 거기보다 훨씬 맛있었습니다. (거기는 흙내가 좀 나서)
사장님 서비스로 나온 황새기 구이
황새기의 표준명은 '황강달이'이며 민어과 어종입니다.
보통은 황석어라 불리며 젓갈로 담가 먹는 생선인데 구이로는 이날 처음 먹어봤습니다.
그런데 맛이 상당히 꼬시운 게 훌륭하더군요. 지금이야 웬만한 생선은 다 맛있지만, 황새기 구이가 이렇게 맛있을 줄 몰랐습니다.
이날 모임은 기존에 참석하셨던 독자님 반, 처음 오신 독자님 반으로 자리가 마련되었고 총 열 세 분이 와주셨습니다.
제 모임은 연령, 계층을 따지지 않기 때문에 정말 다양한 직업, 다양한 전문가들이 오시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분위기는 모임 때마다 늘 달랐습니다. 어떤 모임 때는 새벽까지 달리는 분위기가 형성되는 반면, 어떤 모임은 적당히 마시고 차 끊기기 전에
귀가하는 모범생 스타일의 분들이 많기도 하였는데 이번 송년회가 젊은 분들이 많이 왔음에도 불구하고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 모습에서 한해를 잊어버리고자 하는 '망년회'가 아닌 차분히 한해를 정리하는 '송년회'를 넘어 신년회 같다는 느낌도 들더군요.
아무래도 연말이고 가족들 눈칫밥도 있고 하니 다들 몸 사리셨나봅니다. 그래도 이날 3차까지는 갔습니다. 제 모임에서 3차는 기본입니다. ^^;
이날은 갑자기 일이 있어 불참하신 두 분을 제외하고 총 열한 분이 모임에 참석하였습니다.
꿈을찾는방랑자님, 유상훈님, 정윤식님, 수빈아빠님, apstudio님, ps2님, 제로님, 상원아빠님, 즐거워야인생이다님, 에코님, 엘라님.
이날 송년회에 참석해주신 모든 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추신
사진은 미처 찍지 못했지만, 상원아빠님, 엘라님, 에코님, 즐거워야인생이다님께서 찬조해 주신 대방어회도 정말 맛있었습니다.
그리고 제로님께서 주신 선물, 오늘 딸래미가 집에 오면 입혀 볼게요. 이 자리를 빌어 두 분께 특별히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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