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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프집에 가면 맛볼 수 있는 노가리와 한치. ‘한치’는 의외로 익숙한 말인 동시에 어색한 말이기도 합니다. 다름 아닌 ‘치’ 자가 붙기 때문에 생선 이름으로 오해하기도 합니다. 한편, 한치 맛을 아는 이들은 ‘오징어보다 한수 위’ 라며 한껏 치켜세웁니다.
오징어보다는 연하면서 고소한 맛이 두드러지기 때문인데요. 그렇다면 미식가들이 말하는 한치와 호프집에서 나오는 반건조 한치는 같은 것일까요? 오늘은 오징어와 한치의 차이는 물론, 우리가 먹는 한치란 정확히 어떤 것을 말하는지 알아봅니다.
#. 우리가 먹는 ‘오징어’는 정확히 어떤 종일까?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먹는 두족류는 크게 오징어, 문어, 주꾸미, 낙지, 그리고 오늘의 주제인 한치가 있습니다. 언뜻 보면 5종류인 것 같지만, 실제로는 수없이 다양한 종들을 뭉뚱그려 말한 것입니다. 여기서 주꾸미와 낙지는 단일종(동해에 서식하는 일명 돌낙지는 제외)이고, 문어는 동해의 피문어와 남해의 참문어(돌문어) 등 크게 2종류로 분류됩니다.
나머지는 오징어 아니면 한치로 통하는데 이는 시장과 마트에서 판매되는 전표에 나타나며, 심지어 진미채 같은 가공 식품의 성분 표기에서도 확인됩니다. 하지만 좀 더 깊게 들어가면 우리가 먹는 오징어와 한치는 공식 명칭이 아니며, 단지 부르기 쉽고 편리를 위한 상업적 명칭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한치란 오징어의 한 종류를 의미합니다. 여기서 오징어는 단지 ‘오적어(烏賊魚)’에서 비롯된 말로 표준명은 ‘살오징어(Todarodes pacificus)’입니다.
한국인이 가장 선호하는 수산물인 살오징어는 울릉도 오징어, 속초 오징어, 주문진 오징어 등 다양한 지역명이 붙습니다. 이 오징어는 서해에서도 곧잘 잡히다가 어떤 해에는 풍어를 기록하기도 했는데 이 역시 살오징어가 되겠습니다.
어린 살오징어를 경남에서는 ‘화살촉오징어’라 부르고, ‘총알오징어’란 이름으로도 유통되지만 크기만 작을 뿐 이 모든 것은 표준명 살오징어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 ‘한치’는 정확히 어떤 종일까?
한치는 오징어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다리가 한치 밖에 안 된다.’고 하여 붙은 다리가 짧은 오징어 종류입니다. 표준명은 ‘창꼴뚜기(창오징어, Loligo edulis)’로 주산지는 제주도였으나 최근에는 진해를 비롯해 거제, 부산 등 경남 앞바다에도 제법 많은 어군이 형성됩니다.
생물학적 분류로 보면 살오징어는 살오징어 목 빨강오징어과에 속하고, 한치라 불리는 창꼴뚜기는 살오징어목 꼴뚜기과에 속합니다. 꼴두기과에 속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생물학적 분류로 보았을 때이고, 사회적 통념에서 꼴뚜기란 매우 작은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창꼴뚜기란 말보다는 창오징어로 표기하며, 시장에선 ‘한치’란 이름으로 취급됩니다.(이하 창꼴뚜기는 창오징어, 화살꼴뚜기는 화살오징어로 표기)
#. 오징어와 한치의 차이
오징어와 한치는 종류가 다른 만큼 형태적으로도 차이가 납니다. 살오징어는 역삼각형에 가까운 날개지느러미(통상 귀 부분으로 칭하는 부위)로 창오징어보다 작습니다. 반면, 창오징어의 날개 지느러미는 마름모꼴에 가까우며 채색은 매우 밝습니다.
어획 직후 변화되는 빛깔에도 차이가 납니다. 두족류의 채색은 감정을 표현하는 색소포에 의해 변화됩니다. 살오징어와 창오징어 모두 물속에서는 반투명한 상태지만 살오징어는 검붉은색이고 창오징어는 흰색에 가까운 엷은 살구색을 띱니다. 살오징어는 어획 직후 색소포의 변화 및 흥분으로 짙은 초콜릿색이 되는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색소포가 줄어들며 하얗게 변합니다.
반면, 창오징어는 어획 직후 색소포가 걷히며 흰색이 되는데 이는 죽은 지 얼마 안 된 최상의 선도이므로 반투명한 상태라 보아도 무리는 없습니다. 이는 살오징어처럼 일정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나타나는 흰색의 피부와는 구분됩니다.
살오징어는 수온 20도 전후의 비교적 낮은 영역대에서 활동이 활발하며, 창오징어는 그보다 높은 22~23도의 영역대를 선호합니다. 즉, 살오징어가 한류와 난류와 만나는 조경 수역에 어장이 형성된다면, 창오징어는 22도 이상인 난류를 따라 회유하는 특성이 있습니다.
#. 오징어 vs 한치의 맛 차이
식감은 살오징어의 탄성이 높고 쉽게 질겨지므로 신선도에 따라 식감의 차이가 크게 나는 편이고, 창오징어는 시종일관 부드럽고 야들야들하게 씹힌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맛은 오징어가 특유의 감칠맛(선도에 따라 꼬릿한 향이 나기도 함)이 진해 마니아들로부터 사랑받고, 한치는 감칠맛과 오징어 특유의 향이 약하지만, 씹으면 씹을수록 은은하게 단맛이 난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두 오징어 모두 건조했을 때는 감칠맛이 상승하나 오징어는 말린 정도에 따라 적당히 씹히는 식감에서 매우 딱딱하기까지 한 반면, 한치는 건조해도 딱딱해지지 않아 아이들이 먹기에 좋습니다.
한치와 오징어는 내장에서도 차이가 납니다. 오징어의 간을 누런창이라 하는데 살아있을 때 통찜으로 즐기면 간의 녹진함과 먹물의 고소한 맛이 느껴집니다. 한치는 내장 자체도 비린내가 심하지 않으며 고소하고 깔끔한 맛이 특징으로 오히려 내장째 통찜을 즐기는 오징어 마니아들에게는 한치보다 오징어를 추켜세웁니다.
요약하자면, 오징어는 특유의 감칠맛과 강렬하게 씹히는 식감, 녹진한 내장 맛이 장점이고, 한치는 녹진한 내장 맛을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대신 부드러운 식감, 은은한 단맛, 비린내가 적은 담백함이 강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한치는 통찜보다는 살의 부드러운 식감을 즐기는 형태로 요리가 발전했습니다. 이를 테면, 한치 숙회, 한치 튀김, 한치 삼겹살 두루치기, 한칫국 등입니다.
오징어와 한치는 신선할 때 냉동 보관했을 때 최소 반년 이상 횟감용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특히, 한치는 장기간 냉동 보관을 해도 맛과 식감의 손실이 비교적 적은 편입니다. 작년에 잡아 냉동한 한치를 물회 재료로 쓸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다음 편에는 한치라 불리는 오징어류 중 최강의 맛을 자랑하는 화살오징어에 관해 알아봅니다.
※ 글, 사진 : 김지민 어류 칼럼니스트
유튜브에서 ‘입질의추억tv’ 채널을 운영 중이다. 티스토리 및 네이버에서 블로그 ‘입질의 추억’을 운영하고 있으며, EBS1 <성난 물고기>, MBC <어영차바다야>를 비롯해 다수 방송에 출연했다. 2018년에는 한국 민속박물관이 주관한 한국의식주 생활사전을 집필했고 그의 단독 저서로는 <짜릿한 손맛, 낚시를 시작하다>, <우리 식탁 위의 수산물, 안전합니까?>, <꾼의 황금 레시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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