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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대 보릿고개 시절을 겪었던 세대라면 조기(또는 굴비)와 얽힌 추억을 회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먹거리가 풍성하지 않았던 시절, 감자와 몇몇 곡식으로만 탄수화물을 공급받았기에 양질의 단백질이 절실했던, 지금에 와서 생각하기에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풍경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밥 한 숟가락에 조기 한 점, 아니 천장에 매달아 둔 조기를 바라보며 맛을 상상해야 했던 그때 그 시절. 어떻게 하면 조기를 좀 더 맛있게 먹을 수 있을지에 대한 옛 조상의 지혜와 얼이 담긴 생선이기에 어쩌면 국민 생선 고등어보다 더 강한 애착심이 깃든 존재였는지도 모릅니다.
지금도 조기는 한국인이 가장 선호하는 생선이자 신토불이로 남은 마지막 자존심입니다. 그런 조기가 최근 몇십 년 사이 남획으로 자원량이 줄고, 동시에 수입산 조기가 차례상에 올라야 하는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 이제는 사라지고 없는 조기 파시
해마다 오뉴월이면 조기로 뒤덮였던 황금어장 연평도. 연평도는 경기 북부 강화도에서 조금 떨어진 섬으로 해마다 봄이면 조기 파시로 유명했습니다. 60~70년대를 회상하는 연평도 주민은 말합니다.
“그때 조기가 엄청 났어요. 컸어요. 조기가 얼마나 좋았다고.. 옛말 있잖아요. 연평 바다 돈 실러 간다고“
백발이 허연 연평도 어민의 말은 가슴 한 구석을 찡하게 하기도 합니다.
“그때는 연평도 조기가 제일 좋댔잖아. 맛도 좋고.. 그 세월이 우리 죽기 전에 왔으면 그걸 보고 죽겠는데 틀렸어 이제.. 틀린 것 같아 이제.. ”
조기의 황금 어장은 해가 거듭될수록 남하해 그 개체수와 씨알이 주는 추세입니다. 조기로 유명한 연평도에 조기가 나지 않자 기댈 수 있었던 곳은 그보다 훨씬 남쪽인 전라남도 영광과 법성포. 특히 법성포는 조기와 굴비로 유명한 고장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법성포는 조기가 잘 잡히지 않아 상당량을 추자도산 조기로 말려야 할 상황. 이제 추자도와 제주도, 가거도는 한반도 해역에 남은 유일한 조기 어장입니다. 이 마저도 사라져 버린다면, 조기와 굴비의 맛은 우리의 추억 속에 남을 것이고, 역사의 기록에나 존재하는 희귀어가 되어버릴지도 모릅니다.
조기가 사라지고 있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요? 첫 번째 원인은 남획입니다. 두 번째는 점점 가속화되는 지구 온난화와 이에 따른 수온 및 해양 환경 변화를 꼽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조기란 표준명 참조기를 의미. 참조기의 산란철이 봄에 집중되는데 조업 역시 이 시기에 집중됨으로써 산란을 해야 할 조기 씨를 말라버린 것입니다.
지금이야 자원량을 조절하기 위한 금어기 및 금지 체장을 신설하고 있지만, 한창 조기가 남획되던 60~80년대에는 알배기 조기 어획을 금지하는 그 어떠한 규제도 없었다는 점이 우리에게는 뼈아픈 과오로 남게 되었습니다. 참조기는 따듯한 바다를 좋아하는 물고기입니다.
추운 겨울에는 따듯한 남쪽 바다(제주도 및 동중국해)로 내려가 월동을 나다가 이듬해 봄이면 서해로 북상해 산란합니다. 이때 올라온 족족 잡아버리니 산란에 참여하는 개체수가 적어졌고, 그 결과 조금씩 자원 수를 갉아먹게 되었습니다.
산란장을 기억하고 계절 회유를 하는 조기들이 계속해서 사라지니 제주도 > 추자도 > 영광 > 연평도 순으로 올라올 개체가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소 잃고 외양간을 고쳐보겠다지만, 몇 년 동안 조기 조업을 완전히 금지하지 않은 이상 예전의 자원량을 회복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입니다.
#. 조기도 다 같은 조기가 아니다?
우리가 말하는 조기는 대부분 ‘참조기’입니다. 30cm 이상인 상품을 보기가 어렵고, 설령 보더라도 백화점에서 수십, 수백 만원을 호가하기도 합니다. 유독 크기에 따른 가격 차이가 나는 이유는 첫 번째 성장속도가 느려 희소성이 있다는 점이고, 두 번째로는 크기가 클수록 맛이 깊고 살점도 풍부해 상품성이 높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씨알 큰 참조기는 귀합니다. 고작 1cm 차이라도 가격은 두 배씩 차이 날 수밖에 없는데, 이는 앞서 언급했듯이 남획에 따른 자원량과 씨알 감소가 주된 원인으로 꼽힙니다. 조기는 비슷하게 생긴 부세 뿐 아니라 다양한 어류가 포진해 있습니다. 조기는 농어목 민어과에 속한 여러 조기류를 의미, 가장 크게 성장하는 순으로는 나열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1) 황순어(약 2m 이상)
2) 큰민어(약 1.8m 이상)
3) 홍민어(약 1.5m 이상)
4) 민어(약 1.2m 이상)
5) 수조기(약 60cm 이상)
6) 부세(약 55cm 이상)
7) 보구치(약 50cm 이상)
8) 참조기(약 40cm 이상)
9) 황강달이(약 25cm 이상)
- 황순어
여기서 황순어는 100g 당 한화 300만 원이 넘는 고가이자 희귀 어류로 현재 중국에서는 보호종 2종에 속합니다. 국내에서는 채집된 보고가 없고, 주로 남중국해에 서식하는 탓에 중국에서 가끔 잡히면 마리 당 수억 원에 낙찰될 만큼 전설의 물고기로 취급됩니다.
- 큰민어
큰민어는 일본 규슈와 시코쿠 남부에 서식하는 대형 민어과 어류이며, 국내에서는 중국에서 양식한 큰민어를 수입해 ‘중국산 민어’ 또는 ‘양식 민어’란 이름으로 판매되고 있습니다.
- 홍민어
홍민어는 점성어란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졌는데, 멕시코만이 주산지인 종을 가져와 대량 양식한 것입니다. 중국에서 수입되며 한때 가짜 민어, 가짜 도미회로 둔갑시키려다 적발된 사례가 많았고, 2005년 경에는 일급 발암물질인 ‘말라카이트 그린’이 검출되면서 일시적으로 수입이 중단된 사례도 있었습니다. 대중적인 횟감 및 초밥으로 이용되며, 살점은 탄탄하나 촘촘히 박힌 힘줄 때문에 질긴 편입니다.
- 민어
민어는 대표적인 여름 보양식이나 목포, 신안을 대표하는 고급 어종으로 인식되어왔습니다. 민어의 경우 최근 몇 년 동안 매스컴을 타면서 수요가 늘어남에 따라 자원량이 부족한 상황입니다. 중국에서는 양식에 대한 정보가 없으며, 국내에서는 남해에서 양식에 성공해 여름에 한시적으로 판매되고 있습니다. 부레가 매우 크고 맛이 좋아 식용으로 이용되는 유일한 어류이며, 회는 물론, 찜, 탕, 생선전 등 다방면으로 활용됩니다.
- 수조기
수조기는 5월부터 여름 사이, 서해와 남해 서부(여수, 고흥)에 이르는 해역으로 계절 회유를 합니다. 따라서 이 시기 활어 및 생물로 접할 수 있는 비교적 큰 조기과 어류입니다. 수분이 많아 횟감보다는 찜, 건어물로 이용됩니다.
- 부세
부세는 참조기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크기가 좀 더 크며 제주도 및 동중국해에서 월동을 나다가 봄이면 서해로 진출합니다. 다만, 개체 수가 많지 않아 국내에서 잡힌 부세는 대부분 중국으로 수출하는 실정이며, 재래시장과 마트에서 판매되는 부세는 역으로 수입된 중국산 양식이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맛은 참조기보다 떨어지지만 크고 수율이 좋은 대다 100g당 가격이 참조기보다 저렴해 참조기 대용으로 선호됩니다.
- 보구치
보구치는 일명 백조기로 알려졌으며 시중에 판매되는 것은 전량 자연산입니다. 국내에서는 여름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조기과 어류로 늦봄부터 가을 사이 대형 마트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살이 부드러워 찌개 및 탕감, 찜 용으로 선호됩니다.
- 황강달이
황강달이는 황석어, 황새기로 알려진 어종으로 민어과에선 막내로 취급받을 만큼 그 크기가 작습니다. 평균 씨알이 15cm 정도면 황석어 젓갈로 이용되고, 그보다 큰 것은 구이로 이용됩니다.
#. 굴비도 다 같은 굴비가 아니다?
한국인이 가장 선호하는 생선 중 하나가 조기지만, 최종적으로 선호되는 가공 형태는 굴비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녹차 굴비, 법성포 굴비, 영광 굴비로 대변되는 이 굴비의 시초는 갓 조업한 참조기를 해풍에 말린 것으로, 마치 황태 말리듯 겨우내 얼었다 녹기를 반복합니다.
이 과정에서 수분은 날아가고 크기는 줄어들며, 표면은 쭈글쭈글해집니다. 굴비를 먹었을 때 느껴지는 진한 감칠맛 즉, 이노신산(IMP)은 그 양이 많아지고, 각종 아미노산은 응축되며, 수분이 빠짐으로써 육질은 단단해집니다. 이렇게 해서 완성된 굴비를 보리가 든 항아리에 묻어 숙성하게 되면, 보리가 잡내를 흡수하고 구수한 향이 배면서 그 유명한 ‘보리굴비’가 탄생하게 됩니다.
바짝 말린 보리굴비는 쌀뜰물에 불려 육질은 연하게 한 다음 푹 찝니다. 한소끔 찐 굴비 살을 북북 찢어 일부는 양념에 무치고, 일부는 녹차에 만 밥과 함께 먹으면 은은한 녹차 향과 구수한 굴비 맛이 일품인 녹차 굴비 정식이 됩니다.
2000년 초반만 해도 이러한 형태의 굴비는 맛과 전통방식을 다 잡았음에도 선호받지 못했습니다. 첫 번째로 2~4개월간 말려야 하는 긴 건조 기간이 생산성에 발목을 잡습니다.
두 번째로 굴비는 크기(길이)가 클수록 제값을 받는데 3개월간 말리면 크기가 상당히 줄어들 뿐 아니라 표면이 쭈글쭈글해지면서 볼품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보리굴비를 물에 불렸다 쪄야 하는 과정이 조리의 편리성을 추구하는 요즘 시대에 부합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법성포에서의 보리굴비 생산량은 일반 냉동 굴비와 비교했을 때 1:9일만큼 낮았습니다.
2012년 당시에는 보리굴비(왼쪽)이 일반 굴비(오른쪽) 보다 더 저렴했다 가격도 오히려 일반 굴비보다 저렴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2010년 전후만 하더라도 몸길이 20cm인 냉동 굴비 한 꿰미보다 보리굴비 한 꿰미가 약 30~40% 정도 저렴했을 정도니 보리굴비를 찾는 수요가 그만큼 적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은 불과 10년도 지나지 않아 완전히 역전돼 버립니다. 각종 매스컴에서 보리굴비의 맛과 효능이 전파를 타면서 수요가 점점 늘게 된 것입니다. 전통 방식을 꾸준히 계승하고 늘려나가자는 법성포 굴비보존협회의 의지도 한몫했습니다.
보리굴비와 일반 굴비의 차별화 전략이 어느 정도 통한 것입니다. 지금은 보리굴비를 찾는 수요가 많아짐에 따라 참조기로 말린 보리굴비는 없어서 못 구할 상황이 돼버렸고, 이를 대신하여 부세로 말린 보리굴비가 그 수요를 감당하는 추세입니다.
한편, 우리가 손쉽게 구매할 수 있는 굴비는 ‘일반 굴비’입니다. 보리굴비와 달리 장기간 건조를 필요하지 않으며, 소금에 절인 굴비를 짧은 시간 건조해 냉동 숙성한 것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보리굴비에 비해 외형의 손상이 적으며, 크기가 크게 줄지 않으면서 생산성이 높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다만, 아무래도 짧은 건조 시간 탓인지 보리굴비만큼 세월의 응축된 맛을 느끼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 물밀듯 밀려드는 수입산 조기
이토록 신토불이 어장이 줄게 되면, 그 수요를 감당해야 할 대체제가 나오기 마련인데 대표적인 어종인 긴가이석태(일명 침조기)입니다.
긴가이석태는 서아프리카(세네갈)에 서식하는 민어과 어류로 우리네 참조기와 외형이 가장 비슷하면서 크기는 크기 때문에 가성비가 좋은 조기 대체제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게다가 맛도 참조기에 비해 크게 떨어지지 않아 관혼상제에도 자주 올려지는 추세입니다.
신토불이인 참조기와 긴가이석태(침조기)는 언뜻 비슷하게 보이지만, 긴가이석태의 경우 뒷지느러미에는 단단하고 침처럼 생긴 가시가 발달되어 있습니다. 이 때문에 침조기란 이명이 붙었고, 실제로도 시장에서 사용되는 명칭입니다.
이 외에도 같은 서아프리카 출신인 영상가이석태가 있으며, 대서양(멕시코)이 원산지인 대서양 조기, 인도네시아산 꼬마민어 등이 있습니다. 이 중에서 영상가이석태와 대서양 조기를 시장에서는 ‘민어조기’라 불리지만, 실제로 민어와는 상관없고 단지 판매를 촉진하기 위한 상업적 명칭입니다.
꼬마민어는 모 대형마트에서 대량으로 소싱해 ‘여름 보양식 민어탕’이란 이름으로 판매하다 구설에 오른 적이 있는 열대성 어류입니다.
※ 글, 사진 : 김지민 어류 칼럼니스트
유튜브에서 ‘입질의추억tv’ 채널을 운영 중이다. 티스토리 및 네이버에서 블로그 ‘입질의 추억’을 운영하고 있으며, EBS1 <성난 물고기>, MBC <어영차바다야>를 비롯해 다수 방송에 출연했다. 2018년에는 한국 민속박물관이 주관한 한국의식주 생활사전을 집필했고 그의 단독 저서로는 <짜릿한 손맛, 낚시를 시작하다>, <우리 식탁 위의 수산물, 안전합니까?>, <꾼의 황금 레시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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