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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락도 아니요. 우럭도 아닌 이 녀석. 비늘은 철갑을 두른 듯하고, 살은 탱글탱글함의 절정, 은은하게 우러나오는 단맛, 그러나 오로지 자연산으로만 접할 수 있고 개체 수도 많지 않아 돈이 있어도 맛보기가 쉽지 않은 볼락계의 황태자.
그래서 개볼락 회를 맛본 사람들은 80% 이상 낚시꾼일 거라고 단언할 만큼 회소성이 있고, 정보는 턱 없이 부족합니다. 일반인은 물론, 낚시꾼들 조차도 생소한 이름인 개볼락. 오늘은 개볼락에 관한 흥미진진한 사실을 알아봅니다.
#. 개볼락을 둘러싼 방언들
개볼락은 우리나라 동, 서, 남해, 제주도까지 모든 해역에 고루 분포합니다. 이 중에서도 볼락 루어낚시가 활발한 남해안 일대와 동해 남부권에서는 개볼락을 ‘꺽저구’, ‘꺽더구’, 돌 틈에 산다고 하여 ‘돌볼락’, ‘돌우럭’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사실 동식물 이름에 붙은 ‘개’는 ‘거칠다.’, ‘질이 떨어진다.’ 등 썩 좋지 못한 의미를 내포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개볼락은 거칠거칠한 표피에 굵은 비늘로 덮여 있어서 다른 볼락류와 달리 투박한 인상을 줍니다. 또 다른 의미인 ‘질이 떨어진다.’는 개볼락의 품격 있는 회 맛으로 미루어 볼 때 괴리감이 느껴집니다.
개볼락과 비슷한 말로 ‘개우럭’이란 말이 있습니다. 여기서 개우럭은 특정 종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고, 50cm가 넘어가는 대형 조피볼락(우럭)을 일컫는 꾼들의 애칭이라 할 수 있습니다.
#. 개볼락은 숨어 있는 원석(原石)
개볼락은 백령도에서 국토최남단인 마라도에 이르기까지 널리 분포하고, 동, 서, 남해 할 것 없이 분포하고 있어 락피시(볼락류) 낚시를 즐기는 이들에게는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손님 고기입니다.
주로 방파제 테트라포드나 돌무더기 등 숨을 곳이 많은 곳에 은둔하는 정착성 어류로 사계절 내내 볼 수 있지만, 특히 가을부터 겨울을 거쳐 초봄에 이르기까지 두드러지게 출현합니다.
앞서 언급했듯 개볼락은 숨을 곳이 많고, 지형 지물이 복잡한 갯바위 가장자리, 석축 사이사이, 테트라포드 사이사이 구멍에 은둔하며 먹이활동을 하기 때문에 특별히 개볼락을 잡고자 하는 낚시인들은 먼 곳보다 발 앞에 채비를 내려 잡습니다.
주로 잡히는 크기는 몸길이 15~20cm 정도이며, 가거도 같은 먼 섬에서는 최대 40cm까지 낚이기도 합니다. 다만, 개볼락은 다른 양볼락과 어류 중에서도 개체 수가 많지 않고 단독 생활하는 경우가 많아 한번 낚시할 때 여러 마리가 잡힐 확률은 매우 낮습니다.
이 때문인지 개볼락의 맛과 가치를 알아보는 낚시꾼들이 드물며, 이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려는 그 어떠한 어획 행위(조업, 양식) 조차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아직은 숨어있는 원석(原石)이라 보아도 무방할 것입니다.
개볼락은 주로 볼락 루어 낚시와 감성돔 릴 찌낚시에서 손님 고기로 종종 등장합니다. 그때마다 개볼락은 감성돔의 인기에 밀려 냉동실로 직행하거나, 탕감으로 사용하곤 하니 이를 비유하자면, 탁월한 능력을 갖췄음에도 인지도가 낮아서 대중에게 인정받지 못한 무명의 톱스타 같다랄까요?
#. 이제껏 알려지지 않은 개볼락 종류
저는 어종에 대한 문의나 동정을 의뢰하는 메일을 종종 받습니다. 그럴 때마다 심심치 않게 문의되는 것이 ‘개볼락’입니다. 이름은 ‘개볼락’인데 기존에 알던 볼락과는 생김새가 다르고, 우럭은 더더욱 아니기에 문의가 들어오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문의는 뜻밖에도 낚시꾼들로부터 받는데요. 개볼락을 자주 낚아봤다는 꾼들도 가끔은 이게 정확히 무엇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는 겁니다. 왜 그럴까요?
저는 지난 십여 년 동안 전국을 돌아다니며 바다낚시를 즐겼습니다. 그러면서 여러 다양한 유형의 개볼락을 낚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드는 의문점. 단일종이라고 하기에는 제법 명확하게 나타나는 외형적 특징을 보면서 혹시 개볼락도 변종이 있는 것은 아닌지, 변종이 아닌 아예 유전형질이 다른 이종은 아닌지에 대한 의문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지금부터 거론되는 개볼락 사진은 모두 제 손에 잡힌 것이며, 총 4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참고
아래에 거론되는 4종류의 개볼락은 세부종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지 않았던 시절에 분류된 것으로 당시에는 국명이 없었습니다. 일본에서는 애초 4종류로 분류했다가 유전자 분석을 토대로 최종적으로는 2종으로 결론지었죠. 이 장에서는 부득이하게 가칭과 일본명을 혼용 표기하니 이점 양해 바랍니다.
1) 개볼락(무라소이)
가장 일반적인 형태이며, 우리나라에서는 이 종을 표준명 개볼락으로 정의합니다. 남해안 일대에선 꺽더구, 돌볼락 정도라 불리며 맛이 좋은 어종입니다. 저는 이 종을 경남 좌사리도와 전남 가거도에서 잡은 경험이 있습니다.
2) 별무늬개볼락(호시나시개볼락)
개볼락과 비슷하지만, 몸통에 굵은 줄무늬가 나타나며 이는 크면서 사라집니다. 뒷지느러미가 흰색을 띠는 개볼락과 달리 이 종은 몸통과 같은 색으로 나타나며, 별무늬란 이름처럼 각 지느러미에 촘촘한 반점이 산재해 있습니다. 저는 이 종을 제주 모슬포 방파제, 사계리 해안도로, 마라도, 대마도 등 비교적 난류가 받치는 곳에서 잡은 경험이 있습니다.
3) 황점개볼락(오우곤무라소이)
이름처럼 등지느러미 부근에 황점이 산재해 있어 쉽게 구별됩니다. 개볼락 타입 중 가장 화려한 채색을 뽐내며, 이름이 비슷한 ‘황점볼락’과 자주 오인되기도 합니다. 참고로 황점볼락은 동남부 해안가 일대에서 락피시 루어낚시로 즐기는 대상어 중 하나입니다. 저는 황점개볼락을 백령도의 어느 횟집 수족관에서 관찰하였으며, 여수 소안도를 비롯해 남해안 일대에서 잡아본 경험이 있습니다.
4) 빨간얼룩개볼락(아카부치무라소이)
황점개볼락과 비슷한 패턴의 무늬가 나타나며, 황점이 아닌 붉은 점으로 나타난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언뜻 보면 개볼락과 황점개볼락의 중간 정도의 특징을 보이는 듯하며, 저는 이 종을 충남 보령 용섬에서 잡아본 경험이 있습니다.
#. 개볼락의 재분류
국내에서는 개볼락을 단일종으로 기술하나, 일본에서는 오래전부터 개볼락에 관한 논쟁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대표적으로 위에 소개한 4종이 단지 서식지 환경에 따른 차이인지, 실제 유전자가 달라서 벌어진 일인지를 놓고 수년간 갑론을박이 있었던 것입니다.
2013년경, 학자들은 수년간 이어진 논쟁을 매듭짓고자 개볼락 4종에 대해 유전자 분석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이 DNA 분석 결과로 인해 ‘서식지 환경 차이다.’ Vs ‘종이 다르다.’의 첨예한 대립은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결과는 우리가 예상한 것과 사뭇 달랐습니다. 양측의 대립이 모두 맞았기 때문입니다.
정리하자면, 위에 열거한 1) 개볼락과 2) 별무늬개볼락은 동일 종으로 나타났으며, 이 둘의 차이는 환경적 차이로 결론이 났습니다.
마찬가지로 3) 황점개볼락과 4) 빨간얼룩개볼락이 동일 종으로 나타났으며, 이 둘의 차이 역시 환경적 차이로 결론이 났습니다.
국내 어류도감이나 지식백과에서는 여전히 ‘개볼락’ 한 종으로 표기되나, 2013년 이후 개볼락에 대한 분류가 재편성되면서 국립수산과학원에서는 국명 ‘개볼락(Sebastes pachycephalus)’과 ‘황점개볼락(Sebastes nudus)’ 2종으로 분류되었습니다. 이로써 개볼락에 대한 종의 논란은 일단락되었습니다.
#. 개볼락은 기품 있는 흰살생선회
개볼락을 주기적으로 다루는 횟집은 없기에 일반인이 개볼락을 맛보려면 지역 수산시장에서 우연히 혼획된 것을 발견하고 사는 수밖에 없습니다. 개볼락이 유통될 확률이 있는 곳은 제주 동문시장 및 서귀포 올레시장, 완도와 여수 및 통영, 거제도 일대 수산시장을 꼽을 수 있습니다.
한시적인 대다 낱마리로 드문드문 보이므로 처음부터 개볼락을 기대하기보다는 시장을 찾았을 때 얻어걸린다는 느낌으로 기대치를 줄여야 합니다. 만약, 개볼락을 발견했다면 회로 드시고, 남은 뼈는 탕으로 이용해 보시기 바랍니다.
개볼락 회는 살이 희고 투명하며 반질반질 윤기가 납니다. 보통은 활어회로 먹게 되는데 그랬을 때 맛은 써는 두께에 따라 다르고, 철에 따라 다릅니다. 개볼락은 이른 봄인 2~4월 사이 알을 배기 때문에 이 기간에 회는 질기고 맛이 없을 확률도 있습니다. 그러니 개볼락을 회로 드시겠다면 9~1월 사이를 노려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개볼락은 기존에 알려진 볼락이나 조피볼락(우럭)과 달리 살이 단단하고 매우 탱글탱글하기 때문에 얇게 써는 것이 포인트입니다. 이렇듯 살이 단단해 얇게 저미듯 썰어야 맛이 나는 횟감은 서양식 전체 요리인 카르파치오나 세비체에도 잘 어울립니다.
여건이 되어 2~3시간가량 숙성해 드시면 더욱 좋습니다. 숙성을 거치면 은은한 감칠맛과 단맛이 배어들기 때문입니다. 또한 개볼락은 대가리가 커서 수율이 좋지 못합니다. 대신 남은 뼈와 대가리는 매운탕으로 활용하기 좋습니다.
개볼락 구이는 볼락 못지않게 고소한 맛을 내며, 탄탄한 살집이 특징입니다. 잔가시가 적고, 가운데 척추뼈는 크고 굵은 편이어서 발라내기 좋습니다. 개볼락을 의도적으로 낚아보고 싶다면, 테트라포트 구멍 치기를 권합니다. 특히, 남해안 일대(거제도에서 진도에 이르기까지)와 동해 중부 이남이라면 가까운 갯바위 돌 틈 사이와 방파제에서도 그리 어렵지 않게 만나볼 수 있을 것입니다. 미끼는 크릴도 잘 듣지만 갯지렁이가 특효입니다.
마지막으로 개볼락도 기준치를 정해 어족 자원을 보호해야 할 필요성을 새삼 느끼고 있는 요즘입니다. 한 예로, 가끔씩 시장에 입하되는 개볼락은 크기가 너무 작아 무분별한 남획이 걱정됩니다. 아직은 개볼락에 대한 인지도가 낮고, 상업적 가치 또한 높지 않아 기준치가 마련되지 않았지만 향후에는 개볼락과 관련해 금어기와 금지 전장을 마련하는 등 관련부처가 자원 보호에 힘써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글, 사진 : 김지민 어류 칼럼니스트
유튜브에서 ‘입질의추억tv’ 채널을 운영 중이다. 티스토리 및 네이버에서 블로그 ‘입질의 추억’을 운영하고 있으며, EBS1 <성난 물고기>, MBC <어영차바다야>를 비롯해 다수 방송에 출연했다. 2018년에는 한국 민속박물관이 주관한 한국의식주 생활사전을 집필했고 그의 단독 저서로는 <짜릿한 손맛, 낚시를 시작하다>, <우리 식탁 위의 수산물, 안전합니까?>, <꾼의 황금 레시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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