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 부리를 닮은 학꽁치의 독특한 주둥이 

학의 부리를 닮았다고 해서 불리는 ‘학꽁치’(= 학공치와 복수 표준명) 찬바람이 불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맛의 진객입니다. 그런데 학꽁치에는 99.9%의 기생률을 자랑하는 기생충이 아가미에 도사리고 있습니다. 이름하여 '학꽁치 아감벌레.' 


학꽁치 성체 

기생률 99.9%의 학꽁치는 대부분 아니 거의 아감벌레가 들어있다고 보아도 무방합니다. 이 기생충은 숙주인 학꽁치와 함께 성장하고 나이를 먹습니다. 때문에 숙주가 클수록 기생충도 큰데요. 얼마나 큰지 살펴볼까요?


학꽁치 아가미에 기생하는 '아감벌레(Irona Melanosticta)' 

학꽁치 기생충은 아가미를 삶의 터전으로 삼기 때문에 '아감벌레'라 부릅니다. 일본에서는 '사요리야도리무시(サヨリヤドリムシ)'라 부르죠. 학명이 'Irona Melanosticta'이기 때문에 이렇게 기생충을 보유한 학꽁치를 '이로나 증'에 걸렸다고 합니다. 어떤 질병에 걸린 것처럼 표현됐지만, 감염률이 생각했던 것보다 높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 녀석이 벌레가 아니고 기생충에 가까울까요?

학꽁치 아감벌레 전체 모습 

#. 암수 성별 조절하는 충격적인 번식 방법
아감벌레 유생은 어미 뱃속에서 부화해 6~7월경 바다로 방출됩니다. 이 유생은 2~3mm에 불과한 미물이기 때문에 조류에 휩쓸리지 않아야 하며, 빠른 정착 생활을 하기 위해 파도가 잔잔한 내해(內海)를 주로 떠다닙니다. 그러면서 느릿느릿 유영하는 물고기를 표적으로 삼죠. 바로 학꽁치 같은 생선 말입니다.

그렇게 바다를 부유하던 유생은 학꽁치 표면에 부착, 기생 생활을 시작하는데 처음에는 생식기와 정소가 발달하면서 수컷의 특징을 보입니다. 그러다가 일부 개체가 학꽁치 아가미로 들어가는데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먼저 들어간 놈이 암컷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때부터는 수컷의 생식기와 정소가 퇴화하고 대신 난소가 급속히 발달하게 됩니다. 먼저 사랑방을 차지한 암컷과 달리 학꽁치 표면에 붙어 있는 놈은 여전히 수컷으로 남으며 암컷과 짝짓기에 돌입합니다.  요약하자면, 학꽁치 아가미에 첫 번째로 들어가면 암컷으로 성전환, 뒤늦게 들어온 놈은 수컷이 됩니다.


임신 말기에 해당하는 학꽁치 아감벌레 

이 둘이 결실을 맺으면 이듬해 봄, 배가 불룩해진 암컷이 부화 때까지 알을 품습니다. 6~7월이면 새끼를 바다로 방사하겠지요? 이렇게 학꽁치 기생충은 자손을 번식합니다. 문제는 이렇게 짝짓기와 번식에 성공해도 숙주에서 나가려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유생 때 표적이 된 학꽁치는 주로 유영력이 떨어지는 어린 학꽁치입니다. 무임승차한 아감벌레는 그때부터 학꽁치 아가미에 단단히 고정한 채 일생을 보냅니다. 지금까지 알려진 학꽁치의 수명은 약 2년인데요. 그 사이 학꽁치는 몸길이 40cm에 달할 만큼 성장하고, 아감벌레도 상당히 커집니다.

아가미에 붙어 있기 때문에 학꽁치의 호흡을 방해하고, 체액과 혈액을 빨아먹으면서 영양 장애와 발달 장애를 일으킵니다. 이 지점에서 이 벌레가 단순한 벌레가 아닌 기생충이라 정의한 이유가 나옵니다. 기생충은 공생과 달리 숙주 몸에 붙어 일방적인 이득을 취하는 것. 다시 말해, 숙주 생명에는 위협이 되지 않으면서 긴 시간 동안 영양 공급을 꾸준히 받으며 성장하는 생물입니다.

숙주(학꽁치)가 죽자 그제야 뛰쳐나온 기생충 

이런 학꽁치 기생충의 끈질긴 동거는 숙주가 죽어야 비로소 멈추게 됩니다. 다시 건강한 숙주로 옮겨타서 생명을 유지하려는 본능에 아가미를 빠져나옵니다. 이 때문에 갓 잡은 학꽁치를 집으로 가져와 가족에게 보여주면, 다시는 학꽁치를 안 먹게 될지도 모릅니다.

어느 횟집에서 나온 아감벌레

#. 사람이 먹으면 어떻게 될까?
학꽁치 기생충에 대한 인체 감염 사례는 없습니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인체에 기생하지 못한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다만, 학꽁치의 대가리를 장식으로 사용하는 가게가 더러 있는데요. 화기애애한 술 자리에서 아감벌레가 기어 나오는 사태를 막으려면 대가리를 장식으로 쓸 때 아가미 속 아감벌레 여부를 확인해야 할 것입니다. 인체에 해는 없지만, 기생충이든 벌레든 그것이 식탁에서 발견되면 혐오감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죠. 

※ 글, 사진 : 김지민 어류 칼럼니스트                    
유튜브에서 ‘입질의추억tv’ 채널을 운영 중이다. 티스토리 및 네이버에서 블로그 ‘입질의 추억’을 운영하고 있으며, EBS1 <성난 물고기>, MBC <어영차바다야>를 비롯해 다수 방송에 출연했다. 2018년에는 한국 민속박물관이 주관한 한국의식주 생활사전을 집필했고 그의 단독 저서로는 <짜릿한 손맛, 낚시를 시작하다>, <우리 식탁 위의 수산물, 안전합니까?>, <꾼의 황금 레시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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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입질의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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