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명 학꽁치

 

서울, 수도권 사람들에겐 생소하지만 동해와 남해 지방에선 제법 익숙한 생선인 학꽁치. 일본에서는 '사요리(サヨリ)'라 부르며 초밥 재료로 각별히 여기는 맛있는 흰살생선이지요. 그러니 등푸른생선이면서 붉은살생선에 속하는 '꽁치'와는 전혀 다른 어종입니다.

 

아래턱이 학의 부리를 닮았다고 하여 '학공치'란 이름이 붙었지만, 지금은 일상생활에서의 발음을 인정해 '학꽁치'까지 복수 표준명이 되었습니다.

 

 

학꽁치 회

 

죽은 건 소금구이와 튀김으로 이용하지만, 잡힌 지 하루도 안 된 싱싱한 학꽁치는 반드시 회와 초밥으로 즐겨야 맛의 진가를 알 수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무미, 무색, 무취'에 가까운 생선회라며 평가절하기도 하지만, 겨울부터 봄 사이 제철 맞은 학꽁치의 회 맛은 아주 깔끔하고 담백하면서 미려한 단맛이 도는 고급스러운 횟감입니다. 소형 어종이라 조금만 숙성해도 감칠맛이 우러나와 초밥에 잘 어울리는 재료가 되곤 하지요.

 

 

이런 학꽁치에는 말 못 한 사연이 하나 있습니다. 다름 아닌, 기생충들에게 사랑방을 제공하며 자신의 몸을 희생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기생충이 들어있을 확률에 주목해 봅니다. 지금까지 학꽁치 낚시를 즐기고 취재하면서 얻은 결론 중 하나는 이 기생충이 100%에 가까운 확률로 들어있다는 사실입니다

 

특히, 사진처럼 일정 크기로 자란 성체 아가미에는 대부분 기생충이 들어있습니다. 그 기생충은 숙주와 함께 자라고 나이를 먹기 때문에 숙주가 클수록 기생충도 큽니다. 한번 살펴볼까요?

 

 

학꽁치 아가미에 기생하는 '아감벌레(Irona Melanosticta)'

 

학꽁치 기생충은 아가미를 삶의 터전으로 삼기 때문에 '아감벌레'라 부릅니다. 일본에서는 '사요리야도리무시(サヨリヤドリムシ)'라 부르죠. 

 

학명이 'Irona Melanosticta'이기 때문에 이렇게 기생충을 보유한 학꽁치를 '이로나 증'에 걸렸다고 합니다. 어떤 질병에 걸린 것처럼 표현됐지만, 감염률이 생각했던 것보다 높죠

 

 

그렇다면 왜 이 녀석이 벌레가 아니고 기생충인지 알아봅니다.

 

 

#. 암수 성별 조절하는 충격적인 번식 방법

아감벌레 유생은 어미 뱃속에서 부화해 6~7월경 바다로 방출됩니다. 이 유생은 2~3mm에 불과한 미물이기 때문에 조류에 휩쓸리지 않아야 하며, 빠른 정착 생활을 하기 위해 파도가 잔잔한 내해(內海)를 주로 떠다닙니다. 그러면서 느릿느릿 유영하는 물고기를 표적으로 삼죠. 바로 학꽁치 같은 생선 말입니다. 

 

그렇게 바다를 부유하던 유생은 학꽁치 표면에 부착, 기생 생활을 시작하는데 처음에는 생식기와 정소가 발달하면서 수컷의 특징을 보입니다. 그러다가 일부 개체가 학꽁치 아가미로 들어가는데 여기서 중요한 사실 하나!

 

먼저 들어간 놈이 암컷이 됩니다. 이때부터는 수컷의 생식기와 정소가 퇴화하고 대신 난소가 급속히 발달하게 되지요. 먼저 사랑방을 차지한 암컷과 달리 학꽁치 표면에 붙어 있는 놈은 여전히 수컷으로 남으며 암컷과 짝짓기에 돌입합니다.  

 

요약하자면, 학꽁치 아가미에 첫 번째로 들어가면 암컷으로 성전환, 뒤늦게 들어온 놈은 수컷이 됩니다.

 

 

임신 말기에 해당하는 학꽁치 아감벌레

 

이 둘이 결실을 맺으면 이듬해 봄, 배가 불룩해진 암컷이 부화 때까지 알을 품습니다. 6~7월이면 새끼를 바다로 방사하겠지요? 이렇게 학꽁치 기생충은 자손을 번식합니다.

 

문제는 이렇게 짝짓기와 번식에 성공해도 숙주에서 나가려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유생 때 표적이 된 학꽁치는 주로 유영력이 떨어지는 어린 학꽁치입니다. 무임승차한 아감벌레는 그때부터 학꽁치 아가미에 단단히 고정한 채 일생을 보냅니다. 지금까지 알려진 학꽁치의 수명은 약 2년인데요. 그 사이 학꽁치는 몸길이 40cm에 달할 만큼 성장하고, 아감벌레도 상당히 커집니다.

 

아가미에 붙어 있기 때문에 학꽁치의 호흡을 방해하고, 체액과 혈액을 빨아먹으면서 영양 장애와 발달 장애를 일으키게 되죠. 이 지점에서 이 벌레가 단순한 벌레가 아닌 기생충이라 정의한 이유가 나옵니다.

 

기생충은 공생과 달리 숙주 몸에 붙어 일방적인 이득을 취하는 것. 다시 말해, 숙주 생명에는 위협이 되지 않으면서 긴 시간 동안 영양 공급을 꾸준히 받으며 성장하는 생물입니다.

 

 

숙주(학꽁치)가 죽자 그제야 뛰쳐나온 기생충

 

이런 학꽁치 기생충의 끈질긴 동거는 숙주가 죽어야 비로소 멈추게 됩니다. 다시 건강한 숙주로 옮겨타서 생명을 유지하려는 본능에 아가미를 빠져나오는 거죠. 이 때문에 갓 잡은 학꽁치를 집으로 가져와 가족에게 보여주면, 다시는 학꽁치를 안 먹게 될지도 모릅니다.

 

 

#. 사람이 먹으면 어떻게 될까?

학꽁치 기생충에 대한 인체 감염 사례 없습니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인체에 기생하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아감벌레는 갑각류의 특징을 가진 해저 등각류라 그 맛이 새우와 비슷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일본의 모 유튜버는 학꽁치 아감벌레를 즉석에서 튀겨먹는 시연을 보였는데요.

 

먹고 나서 '우마이'라 외쳤다죠? 덩치가 큰 암컷은 새우 맛과 흡사했고, 덩치가 작은 수컷은 약간 냄새가 났다고 합니다. 저도 깡그리 모아다 튀겨볼까 생각도 봤지만, 아직은 그럴 만한 용기가 부족한가 봅니다. 이제 이 글의 결론을 맺겠습니다.

 

결론 : 학꽁치 기생충은 먹지 말고, 새우를 먹자. ㅎㅎ

 

※ 참고 자료

- 히로시마 대학원의 생물 과학과 기요논문 '瀬戸内海のウオノエ科魚類寄生虫(세토 내만의 등각류과 어류 기생충', 저자 山内 健生외 2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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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입질의 추억 ★입질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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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일루바타
    2018.10.22 14:05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튀겨보려고 했다구요?! .... 그런 자리는 저 부르지 말아주세요 ㅋㅋㅋㅋㅋㅋㅋ
  2. 송민호
    2018.10.22 16:21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항상 감사히 잘보고 있습니다. 생선에 대한 지식도 많이.배웠고요. 앞으로도 잘 보겠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유익하고 재미있는 칼럼들 많이 써주세요^^
  3. 애벌레
    2018.10.24 01:32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인간은 참 대단하죠... 저걸 먹을 생각을 하다니... 사실 해삼이나 개불은 누가 처음 먹기 시작했는지도 알고 싶어요.. 정말 외모만으로 따지면 혐오감이 들정도인데 먹을 시도를 한 인간이 새삼 대단하기만 합니다... 그런 용감한(?)시도로 지금 다들 그 맛을 알아버렸지만... 저도 음식 안 가리는 편인데 아감벌레는 자신 없습니다...
    • 2018.10.24 17:00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저도 궁금해요. 딱히 문헌을 찾아보기도 쉽지 않고, 그 시초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최초로 시식한 인간이 나올 텐데 말입니다. ㅎㅎ
  4. 2018.11.01 17:45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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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 오랫만에 댓글 달아봅니다.. 매번 들어와 공짜로 공부만 하고 갔었는데요...ㅎ
    매번 느끼는 사항 이지만 일본어도 잘 하시고 참 많은 것을 아십니다!!!

    저도 학공치에 대해선 누구 보다 많이 안다고 생각했었는데 참 많은 것을 배웁니다!^^*
    아감벌레를 학공미끼로 사용해본 적이 있는데 물지를 않더군요..ㅎㅎ
    학꽁치가 표준어가 된 사실도 오늘 첨 알았네요!
    매번 '학꽁치'가 자연스러운데 '학공치'라 쓸려니 매우 어색했거던요!
  5. 요한
    2018.11.05 21:1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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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끔 학꽁치회를 먹을 기회가되면 항상 행복했는데 직접 요리하지 않아서인 이유도 있었네여ㅎㅎ

    잘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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