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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에는 늘 기생충과 질병의 위협이 있었습니다. 의료 기술이 발달한 지금도 마찬가지인데요. 인류를 괴롭혔던 대표적인 기생충을 꼽으라면, 주로 돼지에 감염되는 유구조충, 소고기에 감염되는 무구조충, 민물고기에서 발견되는 디스토마, 그리고 뱀과 개구리에서 발견되는 스파르가눔, 그리고 아프리카의 기니아충까지 종류도 다양합니다.
물론, 이들 기생충은 국내 발병률이 낮으며 주로 후진국이나 개발 도상국에 빈번합니다. 조금 더 일반적인 종류를 꼽으라면, 회충, 요충, 십이지장충이 있는데 과거보다는 많이 줄었지만, 지금도 시골 농촌과 도심지 일부 지역에는 구충제를 복용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언급한 기생충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모두 사람의 인체에 침투해 장기간 기생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종에 따라선 숙주(사람)에 해를 끼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조용히 기생하는가 하면, 어떤 종은 심각한 후유증을 유발, 급기야 사망에 이르기까지 합니다.
앞서 열거한 기생충들이 사람 몸속에 장기간 기생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담수(민물)성을 가졌기 때문이며, 인체를 구성하는 물질 또한 담수로 이루어졌기에 가능했습니다.
한편, 해수성을 가진 기생충도 담수성 만큼 그 종류가 다양합니다. 주로 바닷물고기와 해양 생물에서 관찰되는데요. 해수성이니 사람 몸에 기생할 순 없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탈출을 시도해 치명적인 부작용을 낳는 존재가 있습니다.
대표적인 해수성 기생충으로 ‘고래회충(Anisakis)’를 꼽는데요. 고래회충은 열빙어(시샤모)가 서식하는 아이슬란드의 고위도부터 고등어가 서식하는 아열대 저위도까지 전 세계적으로 폭넓게 서식합니다.
해마다 여름이면 생선회를 잘못 먹었다가 배탈이 났고, 검사 결과 고래회충이 발견돼 내시경적 접근으로 제거해야 했다는 보도를 가끔 접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고래회충은 무엇이며, 어떻게 감염되고, 어떤 증상을 일으키며, 왜 사람에게 치명적일 수 있는지에 관해 살펴봅니다.
#. 인류의 역사보다 오래된 고래회충의 생활사
고래회충이란 말의 어원은 이 기생충의 생활사가 끝나는 종숙주인 ‘고래’에서 비롯됩니다. 고래 내장에서 성체로 자라며 그 길이는 자그마치 10cm 이상에 이릅니다. 하지만 성체를 본 사람은 매우 드뭅니다.
왜냐하면, 고래를 잡아 배를 가르고 내장을 뒤져야만 볼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이 고래회충은 수천 개의 알을 낳게 되며, 고래의 분변을 통해 바다로 배출합니다. 그렇게 한동안 바닷속을 부유하던 충란은 유충으로 부화 후 동물성 플랑크톤이나 작은 갑각류에 먹힘으로써 생활사가 시작됩니다.
이후 고래회충은 먹이사슬에 의해 2차 숙주(작은 물고기)에 먹히고, 이후 더 큰 물고기에게 먹히며, 최종적으로는 고래에 먹힘으로써 성체로 자라나게 됩니다. 이러한 생활사는 지난 수만 년 동안 무한 반복되었으며, 중간에 인류가 개입(어획 및 식용)함으로써 본래 해양 생물에서만 기생하던 고래회충은 이제까지 만나본 적 없는 새로운 환경(담수로 구성된 인체)에서 생을 마감하거나 부작용을 일으키게 됩니다.
#. 고래회충이 우리 몸에 들어오면 생기는 현상
앞서 설명했듯 고래회충은 인간의 몸에 기생할 수 없기 때문에 숙주로서 인지하지 못하고 탈출을 시도하게 됩니다. 위장에 산채로 들어간 고래회충은 본능적으로 위산을 피하기 위해 위벽에 달라붙습니다.
이 과정에서 일부 활력이 둔화된 개체는 위산에 녹아 소화되고, 일부 크고 활력 좋은 개체는 탈출을 위해 구멍을 내어 빠져나가려고 합니다. 그래서 자연산 회를 먹고 수시간 이내에 극심한 복통이 찾아오면 고래회충증을 의심하라는 이야기가 나온 것입니다.
고래회충증은 고래회충을 먹음으로써 생기는 부작용으로 복통과 고열, 오한, 설사 등이 있고, 심한 경우 위경련, 천공이 발생하며, 희박한 확률이지만 혈관을 타고 올라가 뇌로 침투하기도 합니다.
반면, 어류에서 수십 마리의 고래회충이 발견되어도 그 어류가 무사한 까닭은 숙주 관계이기 때문에 별다른 위해를 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로 소화되다 만 찌꺼기와 영양분이 몰리는 소화기와 항문, 난소에 장기간 기생하게 됩니다.
#. 고래회충은 생선 내장에만 주로 기생해
고래회충은 어류의 내장 특히, 항문과 난소 부근에 집중적으로 몰려 있습니다. 가끔 산 생선의 근육에 발견되는 경우도 있는데요. 이는 고래회충이 아닌 다른 종류로 밝혀졌습니다. 죽은 생선의 살에 고래회충이 발견되는 경우도 더러 있습니다.
이는 숙주가 죽고 난 후 수시간 동안 방치됐을 때 벌어지는 현상으로 내장에 기생하던 충이 근육으로 파고든 것입니다. 이를 전문용어로 고래회충의 ‘근육 이행률’이라고 하는데 이 부분은 아래쪽에 좀 더 자세히 기술하겠습니다.
고래회충은 어류에 따라 감염률에 차이가 있는데 이는 해당 어류의 식성 및 먹이 습식과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앞서 설명했듯 한 어류의 뱃속에 다량의 고래회충이 들었다는 것은 주로 고래회충의 감염 경로인 숙주를 먹잇감으로 삼는다는 뜻이며, 먹이사슬에 의한 전파를 의미합니다.
긍정적으로 보자면, 해당 어류의 먹이활동이 지극히 정상적이고 활발했음을 보여주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주로 육식과 잡식성에서 나타나는데요. 대표적으로 고등어, 갈치, 삼치, 붕장어, 쥐노래미, 조피볼락(우럭), 넙치(광어), 살오징어, 명태 등에서 흔히 발견됩니다.
다시 말해, 1차 중간 숙주인 갑각류를 먹이로 하는 어류라면 많든 적든 고래회충을 보유할 확률이 높고, 이는 우리 바다에서 잡히는 전체 어류 중 대부분을 차지하므로 사실상 인간의 노력으로 고래회충을 완벽하게 퇴치할 방법은 없다고 봐야 합니다.
#. 그럼에도 우리 식탁에 영향을 주지 않았던 이유는?
지금까지의 설명으로만 보면, 고래회충은 거의 모든 바닷물고기가 보유한 악독한 기생충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숙주인 생선에는 위해를 가하지 않으나, 사람 몸속에 들어가면 상당한 부작용이 따른다는 사실까지도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간 먹어왔던 생선에서 고래회충을 볼 수 없었던 이유, 여기에 매년 여름마다 생선회를 먹었어도 감염률이 현저히 낮았던 이유가 있습니다.
1) 선어(반찬감)
마트에 판매되는 생선은 대부분 위생적인 손질을 거친 것입니다. 특히, 고래회충이 몰려 있는 내장을 사전에 제거함으로써 고래회충이 식탁에서 발견될 확률을 획기적으로 떨어트립니다.
작년 가을, 마트에서 판매된 제주 은갈치에서 고래회충이 다량 발견됐던 것은 마트나 가공업체에서 내장을 제거하지 않고 포장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생물 갈치에는 여전히 살아있는 고래회충이 꿈틀거리며 기어 나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재래시장에서 판매되는 생물 갈치, 고등어도 판매 시 적절한 손질을 거칩니다. 간혹 손님 요구에 따라 배를 가르지 않은 생물을 그대로 판매지만, 아래쪽에 설명하게 될 ‘고래회충의 근육 이행률’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높지 않기 때문에 배를 가르지 않은 채 장시간 유통됐다 하더라도 살에서 발견될 확률은 그리 높지 않습니다. 하물며 판매 시 내장을 제거한 생선이라면, 식탁에서 발견될 확률이 매우 낮아지는 것입니다.
2) 횟감(활어회 및 숙성회)
우리가 소비하는 횟감의 90% 이상은 양식입니다. 양식 활어는 고래회충의 생활사와 무관한 ‘사료’를 먹고 자라므로 내장에 고래회충이 발견될 확률은 극히 낮습니다. 일부 해상 가두리에서 키워지는 우럭과 고등어의 경우 조류에 떠내려온 갑각류를 받아먹고 보유할 가능성이 희박하게나마 있을 순 있으나, 이 역시 손질 과정에서 제거되므로 우려할 만한 수준은 안 됩니다.
문제는 고래회충을 대부분 보유하고 있는 자연산 생선회입니다. 자연산은 많든 적은 고래회충을 보유하는데, 이 역시 활어 상태에서 손질하게 되면, 내장과 함께 제거되므로 문제가 없습니다. 숙성회는 이미 죽어버린 생선을 이용한 것이 아닌, 활어를 손질해 수 시간 저온에 보관한 것이므로 이 역시 고래회충에서 자유롭습니다.
다만, 일부 선어 횟감이 문제가 될 수 있는데 여기서도 따져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선어 횟감의 경우 산지에서 전처리(피와 내장을 제거해 신선한 횟감으로 만드는 과정)를 거친 것은 문제되지 않고, 일부 내장이 제거되지 않은 상태로 유통되는 어종(민어, 전어, 학공치, 숭어, 병어)은 고래회충 생활사와 동떨어진 환경(개펄에 서식) 또는 그런 플랑크톤을 먹고 자란 것이기 때문에 고래회충 감염에서 자유롭습니다.
또한 김과 파래 등 해조류를 위주로 먹는 일부 어종(예 : 벵에돔, 독가시치 등)에서는 고래회충 감염률이 제로에 가깝기에 문제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 고래회충에 감염되는 경우
그렇다면 해마다 여름이면 가끔씩 들리는 고래회충증 환자. 대체 어떻게 해서 감염되는 걸까요? 고래회충증에 걸리는 경우는 확률상 매우 까다로운 과정을 거친 지극히 운이 나쁜 사례라 볼 수 있습니다. 고래회충이 온전한 상태로 사람의 위장에 들어가려면 다음과 같은 확률을 뚫어야 합니다.
1) 자연산 횟감
우리가 주로 먹는 횟감 중 90%이상이 양식임을 감안한다면, 이미 여기서부터 확률이 적잖이 낮아집니다.
2) 적절치 못한 전처리
고래회충은 평소 내장에 기생하다가 숙주가 죽으면 수시간 내로 살로 파고드는 근육 이행률을 보입니다. 죽은 지 상당 시간 방치된 생선을 회 뜨거나, 혹은 낚시인이 낚시로 잡은 물고기를 전처리 없이 쿨러에 방치하다 집으로 가져와 회 떠먹은 경우인데요. 어느 쪽이든 일반 소비자가 위생관념이 정상인 횟집에서 맞이하는 상황은 아닙니다.
3) 비위생적인 손질
칼과 도마 하나로 전처리와 내장 손질, 포 뜨기와 회 썰기까지 모든 과정을 처리한다면, 간혹 고래회충이 칼과 도마를 통해 살에 옮겨 붙을 수도 있습니다. 비단 고래회충 때문이 아니더라도 여름에는 회를 먹고 식중독에 걸리는 사례가 빈번한 만큼 칼과 도마는 철저히 분업화해야 하는데 아직도 일부 재래시장과 좌판 등에는 위생관념과 동떨어진 방법을 고수하고 있어서 문제가 됩니다.
여름철 회를 먹고 고래회충증에 걸렸다는 소식을 모아 그 공통점을 추려보면 대부분 a) 자연산 생선회, b) 행락객이 몰리는 관광지, c) 위생관념 없는 일부 재래시장 및 좌판 이란 키워드로 종결됩니다.
이러한 확률을 뚫고도 고래회충에 감염되려면 아직 몇 단계가 더 남았는데요. 우선 회를 썰 때 고래회충이 절단되지 못한 경우, 그것이 손님상에서도 발견되지 못한 경우, 회를 씹을 때 함께 절단되지 못한 경우를 뚫게 되면 그 고래회충은 산 채로 위장에 들어가 문제를 일으킬 것이며, 극악한 확률이라도 일 년에 몇 건 정도 보고되는 것입니다.
※ 글 : 김지민 어류 칼럼니스트
유튜브에서 ‘입질의추억tv’ 채널을 운영 중이다. 티스토리 및 네이버에서 블로그 ‘입질의 추억’을 운영하고 있으며, EBS1 <성난 물고기>, MBC <어영차바다야>를 비롯해 다수 방송에 출연했다. 2018년에는 한국 민속박물관이 주관한 한국의식주 생활사전을 집필했고 그의 단독 저서로는 <짜릿한 손맛, 낚시를 시작하다>, <우리 식탁 위의 수산물, 안전합니까?>, <꾼의 황금 레시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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