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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고등어 학꽁치 낚시] 수북히 쌓은 포항식 고등어회
스산한 바람이 부는 지난 1월. 저는 겨울 학꽁치를 찾아 서울에서 포항까지 이른 새벽부터 달려왔습니다. 현장에 도착해보니 적당한 바람, 적당한 파도가 일고 있는 모습에서 갯바위는 낚시가 좀 되겠구나 싶은 예감이 들었습니다. 포항의 학꽁치 낚시 시즌은 11월 말경부터 시작해 3월까지 이어지지만, 갑작스러운 수온 하강이라든지 혹은 겨울 바다의 변덕스러운 기상 때문에 자주 자취를 감추거나 씨알이 잘아지는 현상이 유독 잦습니다.
현지꾼이야 그날 날씨 상황과 조황을 보고 발 빠르게 움직일 수 있지만, 타지 꾼이라면, 그야말로 '복불복' 낚시가 되겠지요. 한 마디로 '가는 날이 장날'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복불복 낚시는 저처럼 서울에서 원정낚시를 다니는 이들에게 행운이 될 수도 재앙이 될 수도 있습니다. 마치 주사위가 던져지듯 그날 조황이 결정되다 보니 그저 바다 속 상황이 좋기만을 바랄 수밖에 없겠지요. 사실 학꽁치란 어종은 생활낚시를 해온 이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주요 대상어지만, 돔 낚시를 즐기는 이들에게는 하찮은 잡어로 취급받기도 합니다. 그런데 제아무리 하찮은 잡어라 해도 상황이 받쳐주지 않으면 그조차도 구경하기 힘들더군요.
원래는 방파제 낚시도 염두에 뒀습니다만, 막상 현지에 도착하니 주 시즌임에도 방파제나 갯바위에서는 학꽁치가 잘 안 나온다고 합니다.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란 속담이 이럴 때 쓰이나 봅니다. 허허. 개똥과 비교당한 학꽁치 입장에서는 억울하겠지만, 맛에서는 전혀 밀리지 않음을 이번 기행에서 충분히 확인할 수 있었으니 앞으로 그 과정을 여과 없이 보여드리고자 합니다. 이름하여
"학꽁치를 찾아 떠난 포항의 맛 기행"
포항 구룡포
출항 전, 구평 포구
첫 번째 이야기는 포항에서 생활낚시로 알려진 고등어, 학꽁치 선상 낚시입니다. 이번 기행도 MBC 어영차바다야 취재진들과 함께하였으며 방영은 다음 주 중에 할 예정입니다. 방송 촬영이다 보니 확실한 조황을 위해 선상낚시를 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학꽁치도 선상낚시가 있다는 사실을 이때 알았죠.
이렇게 되면 포항에서 망상어 빼고 노리지 않은 선상낚시 대상 어종이 과연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 정도로 포항은 선상과 생활낚시에서 전국 최고의 메카가 아닌가 싶습니다.
10분간 배로 달려온 것은 뭍에서 1~2km 정도 떨어진 잔잔한 내만입니다. 바로 앞에는 양식장이 있는데 아무래도 조황이 부진할 때는 양식장 주변만 한 포인트도 없을 것입니다. 매일같이 뿌려지는 먹잇감(사료)이 풍부하다 보니 주변의 고기들이 많이 꼬일 수밖에 없겠지요.
이날 사용하게 될 밑밥
저와 취재진을 비롯해 몇 분의 손님을 태우고 낚시를 시작합니다. 대부분 손님은 카드채비로 고등어 낚시를 했으며 저는 선장님과 함께 학꽁치 낚시를 시작했습니다. 사진에서 녹색 파우더가 섞인 밑밥은 비중이 가벼운 학꽁치용 밑밥이고(아마 벵에돔용 파우더를 섞었겠죠?) 옆에 붉은색 파우더는 그보다 비중이 무거우니 중층의 고등어를 노리고 사용될 것입니다.
싱싱한 크릴
크릴이 참 싱싱합니다. 크릴 선도는 색으로 가늠할 수 있지요. 너무 희거나 붉지 않은 적당한 핑크색이 가장 싱싱하고 좋은 크릴입니다. 고등어를 노릴 땐 통째로 꿰고, 학꽁치를 노릴 때는 꼬리와 머리를 전부 뗀 몸통만 뀁니다. 이유는 학꽁치 바늘이 작아서 크릴도 바늘에 딱 맞도록 크기를 맞추는 것이며, 이렇게 해야 쉽게 떨어지지 않으면서 학꽁치가 한입에 쏙 먹을 수 있겠지요.
PM 2:00 고등어, 학꽁치 낚시 시작
입질은 어신찌를 보고 챈다.
학꽁치는 '이단찌 채비'를 많이 사용합니다. 자중이 나가는 일반 구멍찌를 매달고 목줄에는 소형 막대찌를 답니다. 여기서 구멍찌는 어신찌가 아닌 멀리 던지기 위한 던질찌로써 역할을 합니다. 그러니 부력은 크게 상관이 없지만, 이왕이면 B 정도 되는 저부력이 좋아요. 이유가 있습니다.
녀석의 활성도가 좋으면 어떤 부력이든지 상관없지만, 구멍찌가 너무 고부력이면 물고 달아나려는 순간, 구멍찌 잔존부력에 이물감을 느껴 뱉어냅니다. 그러므로 B 정도의 저부력 구멍찌를 사용해야 저활성의 학꽁치를 꼬드기는데 도움됩니다.
목줄에 부착된 어신찌는 B나 g2 정도의 소형 막대찌를 권장합니다. 학꽁치 입질 수심은 보통 30~50cm 사이로 설정하는 게 무난하고 만약, 입질이 없으면 2~3m까지 내려서 받기도 합니다.
갑자기 어신찌가 들어간 장면을 포착.
찌를 촬영 중인데 갑자기 어신찌가 쏙하고 들어갑니다. 이렇듯 확실한 어신을 보일 때는 타이밍 잴 것도 없이 챔질! 챔질은 손목 스냅을 이용해 가볍게 옆으로 쳐주는 것으로 충분해요. 위쪽으로 챔질은 금물. 잘못했다가는 채비가 공중으로 튀어 올라 심하게 엉킬 수 있습니다.
어신 유형은 그날 학꽁치의 경계심, 활성도에 따라 제각기 다르게 나타납니다. 이날은 주변으로 몰려든 학꽁치가 제법 많았지만, 입질은 약은 편이었습니다. 보통은 찌가 옆으로 눕거나 흐르다 마는 경우에도 챔질하는데 이날은 후킹이 잘되지 않고 번번이 벗겨지기 일쑵니다.
이는 크릴을 한번에 먹지 않고 물었다가 뱉거나 혹은 살짝 빨아먹을 때 생기는 현상인데 이럴 때는 좀 더 기다렸다가 찌가 수면 아래로 잠기는 것을 확인하고 채주는 것이 확실합니다.
이날 낚은 학꽁치는 매직급이 주종이었다.
학꽁치는 일반 꽁치와 달리 아래턱이 학 부리처럼 튀어나온 게 특징, 성어일수록 학 부리 끝은 주황색을 보입니다.
옆 사람도 학꽁치 낚시에 푹 빠졌다.
던졌다 하면 1타 1피. 이만하면 낚시할 맛 나겠죠? ^^ 담그기만 하면 물고 늘어지니 일단 방송용 그림을 만드는 데는 성공했는데 아쉬운 건 씨알입니다. 그래서 저는 씨알 선별을 위해 조금 더 멀리 던졌습니다. 더 멀리, 조금 더 깊게 하면 그 와중에서도 좋은 씨알로 골라 낚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발 앞에는 볼펜과 매직급이 무수히 많은 가운데 이들 학꽁치를 피해 20m 전방에서 몇 마리 낚아봤습니다만, 수심을 3m까지 내려도 큰 건 없었고 이날은 35cm 정도의 어설픈 형광등을 몇 마리 낚는 데 그쳤습니다.
학꽁치 씨알 선별을 위해 수심을 2m로 주니 엉뚱하게도 고등어가 물고 늘어져 찡한 손맛을 보기도 했습니다. 꿩대신닭이라지만, 이런 닭이라면 환영이죠. ^^
갓 잡힌 고등어 때깔 좀 보세요. 마트나 시장에서 접할 수 없는 극상의 선도를 자랑. 이제 이걸로 회를 치는데요. 선장님의 회 뜨는 실력이 장난이 아닙니다. 사실 생선 손질이야 그간 낚시하면서 익히 봐온 풍경이라 그리 새롭지는 않습니다만, 회를 써는 방식과 데코레이션에서는 많은 영감을 얻었습니다.
고등어부터 손질 시작
포 뜨고 갈비뼈 제거하고 껍질을 벗기는 과정이 전광석화 같았다.
이왕이면 고등어부터 손질에 들어갑니다. '치'짜로 끝나는 학꽁치도 선도가 빨리 가기는 마찬가지지만, 고등어만 할까 싶어요. 고등어는 살아서도 부패한다는 말이 있잖아요. 그만큼 성질이 급해 빨리 죽고 선도가 급격히 물러지는 생선이니 숨을 거두기 전에 서둘러 피를 빼고 손질에 들어갑니다. 즉석에서 썰어 먹는 학꽁치와 고등어의 맛이 기대되는 순간.
찌 들어간 지 한참이 되었나 보다.
선장님의 칼 솜씨를 구경 중 옆에서 찌 들어간다는 말에 낚싯대를 들춰보니
요런 고등어가 쉴새 없이 물어줍니다. 고등어 낚시는 딱히 기술이랄 것도 없습니다. 적당히 수심을 맞춰 던져놓기만 하면 지가 알아서 물어주니 이보다 쉬운 낚시가 있을까 싶어요. 아이와 여성이 즐기기에도 딱! 더욱이 이런 잔잔한 바다라면 멀미 걱정도 덜하니 그야말로 낚시할 맛 납니다. 포항에서 고등어 낚시 시즌은 연중 가능하지만, 절정은 가을이며 이때는 씨알도 굵어요.
참고로 우리 바다에서 낚이는 고등어는 고등어와 망치고등어(일명 점백이) 두 종류가 있습니다. 망치고등어는 배에 얼룩덜룩한 점이 많지만, 없는 것도 있습니다. 그럴 때 구분하는 포인트가 바로 '노랑 꼬리'입니다. 꼬리가 노르스름한 것은 (참)고등어만의 특징. 게다가 고등어가 죽고 나면 시간이 지날수록 색이 흐려져 선도를 가늠하는 척도가 되기도 합니다.
학꽁치 낚시를 한바탕 치르고 난 흔적
그 사이 고등어 손질이 마무리되고
학꽁치까지 손질을 마쳤습니다.
이렇게 키친타올로 둘둘 말면
키친타올이 수분을 흡수하면서 뽀송뽀송한 횟감이 마련됩니다.
그렇게 회를 쳤는데도 남을 만큼 자원은 충분해요. 요즘 우리 바다 어자원이 씨가 말랐네 말이 많지만, 학꽁치만큼은 여전히 자원력이 좋은 편입니다. 고등어는 일부 개념 없는 배들이 치어까지 싹쓸이하는 바람에 자원이 예전 같지 않으며 방어도 그렇습니다.
회유성 어종은 웬만큼 잡아서는 자원이 감소하지 않은데 얼마나 무분별하게 그물질했으면 한창 고등어가 잡혀야 할 시기에도 위판장이 썰렁할까 싶습니다. 낚시를 즐기는 사람으로서 마음이 편치 않네요.
회 뜨는 장면을 지켜보며 어자원을 걱정하는 제 입에는 침이 고이고 있습니다. 하여간 사람의 이중성이란 ^^;
아니 그런데 선장님이 고등어 회를 일식 스타일로 떠서 접시를 둘러버리는군요. 선상에서는 막 썰어 먹는 줄로만 알았는데 이렇게 정성스레 둘러치기를 해주시니 색달라 보입니다. 가운데는 깻잎과 양파를 수북이 담고
남은 고등어는 막 썰기를 해서 접시를 다 덮어버립니다.
고등어회 때깔 좀 보소 ^^
고등어회로 덮어버린 접시
양이 얼마나 되는지 가늠하기 위해 직접 들어봅니다. 이게 끝이 아니에요.
마늘 써는 동작이 예사롭지가 않습니다. 전직 주방장이었나요? 이 장면을 동영상으로 찍었어야 했는데 거짓말 조금 보태 쓰자면, 칼이 안 보일 정도였습니다. ㅎㅎ
이어서 학꽁치도 올리고
고등어, 학꽁치로 아주 탑을 쌓습니다.
잘게 썬 마늘과 고추로 꽃밭이 되었습니다. 이제 결정타만이 남았습니다.
"초고추장으로 마무으리~!"
"이것이 포항식 고등어와 학꽁치회"
이 장면에서 침 안 넘어가면 진정한 용자 ^^
지금까지는 제 블로그에서 격식 차린 생선회 위주로 보여드렸지요. 모름지기 고등어회는 양념간장이나 된장에 찍어 먹어야 그 맛이 배가된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생선회는 생고추냉이를 한점 올리고 간장에 찍어 먹어야 참맛을 느낀다고 하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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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 말 취소하렵니다. 격식은 무슨 얼어 죽을.. 여기서 와사비 간장 찾았다가는 와사비 갈아먹는 소리 하고 앉았네란 소리 듣을 만 하겠죠. 맛은 혀로만 느끼는 게 아닌 우리네 정서가 더해져 완성되는 기억의 산실. 그 기억 속의 맛은 이렇게 초고추장을 뿍뿍 뿌려 대충 휘젓고 격 없이 먹는 것도 포함이지 않겠습니까? ^^
그래도 완전히 초고추장으로 범벅되기 전에 한 조각 탈출시켜 맛을 봅니다.
김에도 싸 먹어보고
학꽁치는 아무것도 찍지 않고 씹어보니 겨울 학꽁치의 단맛이 느껴졌습니다. 고등어는 고소하기는 한데 씨알이 30cm 미만이다 보니 깊은 감칠맛보다는 초고추장 맛에 탱글탱글한 활어회 식감으로 먹습니다.
사실 생선회가 가지는 맛의 스팩(단맛, 고소한 맛, 감칠맛, 단단한 식감 등)으로만 본다면, 어린 고등어의 회 맛 자체는 밋밋한 편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맛있게 포장하는 기술은 전적으로 칼잡이의 실력과 센스에 달렸다고 봐야겠죠. 똑같은 회를 어떻게 써느냐, 무엇과 함께 곁들이느냐에 따라 받아들이는 기분과 맛은 180도 달라진다는 사실. 포항의 학꽁치와 고등어 낚시에서 새삼 깨닫고 갑니다.
#. 겨울 낚시는 운칠기삼이요, 복불복이다.
이날 마릿수를 거둔 것에는 제 실력보다도 운이 많이 따랐습니다. 왜냐하면, 하루 전에는 고등어와 학꽁치가 몇 마리 안 잡혔다고 해요. 수온이 낮았기 때문입니다. 이날은 전날보다 수온이 1~2도가량 올랐기 때문에 이렇게 고등어와 학꽁치가 미끼에 적극적으로 달려들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은 주의보라 배가 안 뜨거나 뜨더라도 조황이 보장 안 될 확률이 높았습니다.
만약에 촬영 날짜를 하루빨리 잡거나 혹은 하루 더 늦췄더라면 이날처럼 순조로운 촬영은 하기 힘들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된다면 재촬영을 하거나 빈약한 그림으로 방송을 타게 될 텐데요. 이렇듯 겨울 낚시는 물때보다도 그날 기상에 의해 좌우되는 만큼 '운'도 많이 따라줘야 합니다. 그러니 많이 낚았다고 우쭐해 할 필요가 없으며 적게 낚았다고 의기소침할 이유가 없습니다.
정말 이날처럼 '복불복 낚시'가 크게 다가온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그저 하늘과 바다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
이제 저는 포항의 맛과 정취를 느끼기 위해 죽도시장으로 향합니다. 다음 조행기를 읽으려면 여기를 클릭
취재 협조 : 구룡포 낚시 동인호(054-276-97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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