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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연어와 병어를 합쳐 놓은 모습이라면 어떤 모양인지 상상이 되겠습니까? 한번 잡히기 시작하면 상당한 물량이 시장에 들어왔다가도 어느 순간 감쪽같이 사라지는 신출귀몰한 생선. 아직은 인지도가 부족한 탓에 맛 좋고 저렴해서 아는 사람만 알음알음 사 먹는 연어병치에 관해 알아봅니다.
#. 3~5년마다 돌아오는 철새 같은 물고기
표준명 연어병치는 그 말이 어디서 유래되었는지 정확히 알기 어렵지만, 얼굴은 병어(병치)를, 몸통은 연어를 닮은 심해성 어류입니다. 농어목 샛돔과에 속하기에 병어와 연어와는 연관성이 없고, 손바닥 만한 샛돔과 달리 최대 1m까지 자라는 대형 어류입닏.
연어병치는 한반도를 비롯한 서부태평양, 동지나해, 일본에 서식하는데 계군(수천에서 수십만 마리가 회유하는 하나의 집단)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한반도로 회유하는 집단은 주로 제주도와 마라도 남단 해상에서 동해 북부까지 북상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다만, 아직까지는 연어병치가 다른 조업에서 부수어획 되는 정도이고, 상업적 가치가 뛰어나지 않기에 한번씩 잡힐 때 수십에서 수백마리가 떼지어 잡히며 일시적으로 유통됩니다. 연어병치가 출현하는 시기는 주로 늦가을부터 겨울 사이. 즉, 평소에도 이 시기만 오면 제주도와 동해 해상에서 연어병치가 잡히곤 하나 수십에서 수백 마리 이상인 집단이 한꺼번에 잡히는 경우는 3~5년 주기로 반복된다는 점이 특이합니다.
이는 아마도 반복되는 회유 사이클에 의한 것이겠지만, 매해 특정 시기마다 돌아오는 계절성 회유어와 달리 한두 해 이상 건너뛰며 돌아오는 불규칙적인 패턴에 대해선 그 이유가 여전히 묘연합니다.
연어병치는 선상낚시에서도 혼획 되곤 합니다. 제주도 남단 마라도 해상에서는 100m 이하 깊은 수심대에서 잡히는 편이라 심해성 어류란 생각이 들다가도, 강원도 앞바다에서는 비교적 얕은 수심대에서 잡히기에 연어병치의 서식 환경과 적서 수온 및 정확한 회유 경로에 대해선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습니다.
#. 연어병치의 다양한 이름과 독특한 생김새
표준명 연어병치는 독특한 생김새만큼 특별한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동해 먼바다 또는 독도 근해에서 잡힌다고 하여 ‘독도돔’이라 불리고, 잡히면 코구멍을 비롯해 대가리에서 많은 진액이 콧물처럼 흘러나와 ‘코풀래기’라고도 부릅니다.
무엇보다도 연어병치는 다른 생선과는 사뭇 다른 외형을 가지고 있는데요. 대가리 크기에 비해 눈이 너무 커서 언뜻 보면 영화에서 등장하는 외계인을 닮았습니다. 두 개의 비공(콧구멍)도 두드러지며, 이빨과 지느러미는 여타 물고기와 달리 곱고 부드러워서 손으로 만져도 다치지 않습니다. 턱에 잔 이빨이 발달했지만 그리 위협적이지 않아서 농어처럼 입에 손가락을 넣어 잡아도 되며, 등지느러미를 비롯한 각 지느러미는 가시가 없어 찔리지 않습니다.
발달이 덜 된 등과 배 지느러미와 달리 옆지느러미는 항문 근처까지 길게 발달했고, 꼬리지느러미도 제비 꼬리처럼 발달한 것으로 보아 세찬 해류를 타고 다니는 장거리 회유어의 면모를 가지고 있습니다.
몸 빛깔은 주로 청회색에서 자색을 띠며 뱃전에 올려지면 오래 살지 못하고 금방 죽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끝에 ‘치’자가 붙은 것은 아마도 이와 관련이 있을 거란 추측이 듭니다.
#. 연어병치는 얼마나 맛있는 물고기인가?
일본에서는 주로 3~5월경 알을 낳는 알려졌지만, 그보다 수온이 찬 국내에서는 조금 더 이를 것으로 예상합니다. 때문에 연어병치가 산란을 준비하며 체내 지방을 축적할 시기는 11~3월 사이로 예상, 사실상 주로 잡히는 시즌이 곧 제철이라 봐도 무방합니다.
연어란 말에서 알 수 있듯 연어병치도 몸에 상당한 지방을 품고 있는 흰살생선인데 이는 잡힌 시기와 지역 마다 상이 합니다. 주 산지인 강원도 고성군 및 양양에서는 kg당 6~8천원 정도로 저렴하게 거래되고 있으며, 서울, 수도권으로 유통되는 싱싱한 연어병치는 kg당 8천원에서 1만원 정도로 판매됩니다.
연어병치를 직접 낚은 낚시인들의 평가는 엇갈리기 일쑤입니다. 특히, 회 맛에 대한 호불호가 심한데 이유는 대부분 ‘살이 금방 물러져서’이거나 ‘맛이 밍밍하다.’ 또는 반대로 ‘과도한 지방기로 인해 느끼하다.’ 정도로 압축됩니다. 대체적으로 굽거나 조리거나 탕으로 먹었을 때 만족감이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는 점도 특징입니다.
활어회는 쫄깃하나 살에 수분감이 있어서 쉬이 무른 편이고, 뱃살은 어느 정도 숙성이 돼도 단단한 편입니다. 빨간 혈합육으로 보아 마치 숭어회를 닮았고, 중뱃살은 특이하게도 섬유질이나 결 등의 패턴이 보이지 않는 유백색의 흰살, 내장을 감싼 배받이살은 여타 돔 종류와 닮았습니다.
비늘이 얇아 쉽게 벗겨지며, 대가리는 비늘이 아예 없어 탕감으로 장만할 때 비늘치기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껍질이 얇고 질기지 않아 토치를 이용한 껍질구이회가 일미였고, 기본적으로 2~3kg 이상이어서 부위별 맛의 차이를 느끼기에도 좋은 생선입니다.
연어병치는 준심해성 어류로 수압과 세찬 해류를 받고 자라서인지 뼈 자체는 비교적 단단한 느낌이 들지 않았습니다. 뼈에서는 맑고 투명한 육수가 우러나며 쏨뱅이 매운탕처럼 기름 입자가 작고 촘촘해 구수하면서 얼큰한 맛보다는 개운하고 시원한 국물이 특징입니다. 일본에서는 그리 비싸지도 아주 값싸지도 않은 생선으로 싱싱할 땐 회로 즐기지만 대부분 조림, 구이, 그리고 맑은 육수를 즐기는 나베(전골요리)가 일품으로 알려졌습니다.
국내에선 이렇다할 전문 식당도, 꾸준히 취급하는 횟집도 없다 보니 조리법이 체계적으로 발달하진 않았는데요. 제주 및 동해안 일부 횟집에서 맛을 본 관광객 및 낚시인들의 평가를 바탕으로 본다면, 회는 그 자체의 특색이 있기보다는 여러 재료와 한데 어우러지는 맛에서 강점을 찾는 편이 좋아 보입니다.
이를 테면, 물회, 회무침, 그리고 잘 숙성된 것은 초밥용으로 어울릴 듯하며, 구웠을 땐 껍질이 바삭하게 익고 속살은 부드럽게 익어 육즙을 머금고 있으므로 스테이크 및 구이가 아주 담백하면서 고소한 맛을 냅니다. 연어병치는 알려지다시피 맑은탕(지리)도 좋지만, 칼칼한 양념을 더한 매운탕이 인상 깊습니다.
#. 마치며
연어병치는 그 이름도 모양도 생소하지만, 갈수록 잦아지는 출현에 시장가에 적잖이 이름을 올리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이것이 지구 온난화 및 고수온의 여파와 관련 있는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하겠지만, 해마다 변화하고 있는 한반도의 어장 지도, 그리고 연어병치의 잦은 출현이 우리 식탁의 미래에 어떤 변화를 줄 수 있을지 기대가 됩니다.
※ 글, 사진 : 김지민 어류 칼럼니스트
유튜브에서 ‘입질의추억tv’ 채널을 운영 중이다. 티스토리 및 네이버에서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으며, tvN <유퀴즈 온 더 블록>, tvN <난리났네 난리났어>, EBS1 <성난 물고기>, MBC <어영차바다야>, JTBC <백종원의 사계>를 비롯해 다수 방송에 출연했다. 2018년에는 한국 민속박물관이 주관한 한국의식주 생활사전을 집필했고 그의 단독 저서로는 <짜릿한 손맛, 낚시를 시작하다>, <우리 식탁 위의 수산물, 안전합니까?>, <꾼의 황금 레시피>, <수산물이 맛있어지는 순간>, <귀여워서 또 보게 되는 물고기 도감(감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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