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조개는 우리나라 동, 서, 남, 제주도까지 고루 분포하며, 한때는 매우 흔했습니다. 정확한 이름은 몰라도 해안가 사람들이 즐겨 먹었던 맛있는 조개였죠. 그러나 지역마다 불리는 이름이 달라 서로 자기네 지역에서 나는 것이 맛있다고 자랑했으니 알고 보니 전부 같은 조개였더라..

 

맛은 새조개에 버금가는.. 아니 둘째라면 서러울 정도 좋은데, 한때 남획이 되었고 불운하게도 지금은 자취를 감추는 지역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너무 맛있어서 멸종되어버릴지도 모르는 조개. 바로 ‘개량조개’ 이야기입니다.

 

 

개량조개

#. 조개는 하나지만 이름은 대여섯 개
이 조개는 우리나라 삼면에 고루 분포합니다. 동, 서, 남해 할 것 없이 지역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는데 지역별 이름이 상이하니 조개에 대한 인식도 좀처럼 통일되지 않았고, 심지어 다른 조개로 알고 먹기 일쑤입니다. 이 글을 통해 명칭 정리가 된다면, 지금까지 제각기 불리던 조개들이 결국 같은 조개임을 알고 취급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개량조개

이 조개의 표준명은 개량조개입니다. 그런데 시장에서 개량조개라 불리는 일은 흔치 않으며 주로 지역 방언이 쓰입니다. 동해는 ‘명주조개’, 부산에는 낙동강 하류 명지동에서 많이 난다고 하여 ‘명지조개’, 또 갈매기 부리를 닮았다고 하여 ‘갈미조개’라 부르는데요. 일부 온라인 쇼핑몰에서는 새조개를 갈미조개란 이름으로 판매하고 있으니 이 부분은 혼동이 없어야 합니다.

 

 

갈매기부리 닮아서 갈미조개 살이 노래서 노랑조개라고도 불린다

서해안 일대에서는 살이 노랗다고 하여 ‘노랑조개’, 그리고 ‘밀조개’, ‘해방조개’라고도 불립니다. 여기서 해방조개란 일제 해방기 때 사회가 혼란스럽고 가난한 시기에 굶주린 삶들이 먹었던 조개라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요. 당시 서해안 일대 해안가에는 아무 데나 삽으로 퍼도 듬뿍 담길 만큼 많았을 것을 추정합니다.

이 외에도 사베백합, 무조개, 연평조개 등의 별칭을 갖고 있습니다. 일본에선 혀(실제론 다리살)를 내밀고 있는 모습이 바보 같다고 해서 바보를 뜻하는 ‘바카’와 조개를 의미하는 ‘가이’와 만나 ‘바카가이’라 부릅니다. 제철은 12~4월 사이이며, 우리나라 삼면에 모두 나지만 주요 산지라면 포항 영일만, 부산 명지동 일대 및 낙동강 하구, 그리고 서해 안면도 일대를 꼽습니다.

 

 

개량조개의 모습

#. 개량조개는 어떤 조개?
언뜻 보면 새조개와 비슷한데 속살은 새조개에서 나타나는 초콜릿색이 아닌 노란색을 띠며, 싱싱할수록 노란색이 진하게 나타난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개량조개 뒷모습

껍데기는 황갈색이며, 얇고 둥근 삼각형 모양입니다. 표면에는 여러 개의 띠가 방사상으로 퍼져 있는데 크게 자랄수록 이 무늬는 사라집니다. 원래는 새조개와 비슷한 크기를 자랑했으나 지금은 남획과 오염에 의한 서식지 파괴로 인해 개체 수가 감소 중이며, 크기 또한 작아지는 추세입니다.

서식 환경은 바다 또는 바다와 민물이 만나는 기수역의 모래 및 진흙이 섞인 바닥에 삽니다. 산란기는 5~6월이며 산란을 앞둔 겨울~봄에 가장 맛이 좋습니다.

 


#. 가격과 맛있게 먹는 법
올해(2021년)의 경우 주요 산지 중 하나인 낙동강 하구(부산 명지동 일대)에서는 생산량이 저조, 아니 거의 없다시피 해 명지동 일대 갈미조개(이 일대에서 부르는 개량조개의 방언) 식당들이 서해 및 서남해에서 생산된 개량조개를 가져다 쓰곤 했습니다.

 

그랬을 때 소비자가로는 1kg당 만원 선으로 같은 무게로 2.5~3만 원 정도에 판매되는 새조개보다는 여전히 저렴한 편입니다. 올해 생산되는 개량조개는 예년에 비해 씨알이 작아 상품성이 낮아졌고, 그만큼 가격도 올리기 힘든 것으로 추정됩니다.

 

 

살아있는 개량조개의 모습

보통은 해감이 된 상태로 오는데도 가끔 흙이 씹히곤 합니다. 다소 손은 가지만 내장 속 모래주머니를 제거하면 흙이 씹히는 현상을 최대한 방지할 수 있습니다. 직접 구매하든 택배로 받든 싱싱한 개량조개라면 반드시 살아있어야 합니다. 찬 바닷물에 담근 채 냉장고에 놓아두면 하루 정도는 충분히 살려둘 수 있으나 그 이후에는 한둘씩 죽어나가므로 가급적 당일 조리를 권합니다.

죽은 조개는 껍데기가 과도하게 벌어져 속살이 드러나 있고, 입을 살짝 벌리더라도 손으로 벌렸을 때 힘없이 열리면 죽은 것입니다. 냄새를 맡았을 때 별다른 냄새가 없다면 조리해도 되지만, 만약, 고약한 냄새가 난다면 버려야 합니다. 다른 조개도 마찬가지지만 개량조개도 한 마리의 썩은 조개가 음식을 망치게 되므로 씻는 과정에서 꼼꼼하게 걸러내야 합니다.

 

 

개량조개 찜

그렇다면 개량조개는 어떻게 먹어야 맛있을까요? 산지에서는 살아있는 개량조개를 그대로 살만 발라 회로 먹습니다. 싱싱한 개량조개는 샤브샤브로 먹고, 또 칼국수에 넣어 먹으면 바지락 칼국수는 명함도 못 내밀 정도로 진하고 감칠맛이 좋은 육수가 우러납니다. 하루는 군산에서 중국집을 운영한다던 독자분이 이런 사연을 주셨습니다.

“예전에 노랑조개라고 해서 짬뽕 육수로 썼는데, 새만금 방조제가 들어서면서 서식지 환경 파괴로 인해 더는 볼 수 없었다. 이후 노랑조개를 대신하여 바지락 국물을 썼는데 예전의 맛이 나지 않았고, 손님들도 예전의 그 맛을 그리워하더라.."

 

 

조개탕

그 정도로 개량조개의 국물은 시퍼렇게 우러나는 재첩과 비슷하면서도 좀 더 진하고 개운한 맛이 특징입니다. 가볍고 편리한 음식으로는 조개찜이, 부추나 쪽파를 썰어 뿌린 조개탕도 무난한데요. 뭐니 뭐니 해도 개량조개의 최대 하이라이트는 부산 명지동 일대에서 유행한 갈삼구이입니다.

 

 

부산 명지동의 갈삼구이

여기서 갈삼은 갈미조개와 삼겹살을 의미하는데요. 마치 장흥의 키조개 삼합처럼 부산 명지동에서도 나름대로 독자적인 방법으로 개량조개와 삼겹살을 동시에 먹는 형태로 발전한 것입니다.

 

 

솥뚜껑 불판을 이용한 갈삼구이

갈삼구이의 핵심은 주물 또는 세라믹으로 된 솥뚜껑 불판에 있습니다. 가운데가 움푹 들어간 솥뚜껑 팬의 가운데는 갈미조개로 낸 육수를 담고, 그 위에 콩나물 무침을 올립니다. 팬의 가장자리에는 삼겹살을 올리는데 금방 익는 대패 삼겹살도 좋습니다.

 

당히 버섯과 양파를 얹고, 콩나물 무침 위에 갈미조개를 얹어 먹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조개가 너무 많이 익지 않아야 한다는 것. 불판에 직접 닿으면 금방 익는데 그러면 질겨집니다. 콩나물무침 위에 올려 거의 스팀으로 익혀 먹는 것이 포인트!

 

 

아는 이들만 안다는 갈삼구이 쌈

그냥 먹어도 맛있지만 상추, 깻잎을 겹치고. 구운 김까지 겹친 다음, 잘 익은 삼겹살과 갈미조개, 마늘, 고추, 쌈장, 콩나물을 올려 싸 먹습니다. 이때 쌈에 겹친 구운 김은 갈미조개와 만나면서 꽤 독특하고도 조화로운 맛을 냅니다. 그렇게 먹다 보면 삼겹살이 익으면서 내어준 기름이 주물팬 가운데로 흘러 들어가면서 조개 육수와 콩나물에 고소한 지방 맛을 더해줍니다. 다 먹고 나서 팬에 밥까지 볶아 먹는다면 완벽한 마무리가 됩니다.

 

 

떡조개

#. 삽으로 퍼올릴 정도로 흔했던 개량조개, 어쩌다 귀해졌을까?
지금도 해마다 1~4월이면 개량조개를 잡기 위한 해루질이 빈번합니다. 특히, 충남과 안면도 일대 해수욕장에서는 해변에서 이것저것 캐기 위한 해루질러들이 많이 찾는데요. 주로 맛조개나 큰구슬우렁(서해골뱅이), 그 외 백합 등을 캐다가 우연히 얻어걸리는 것이 떡조개와 개량조개였습니다.

 

이들 조개는 해감이 원체 까다로워 버려지거나 환영받지 못했죠. 한편, 개량조개의 맛을 아는 소수인들이 시간을 들여 정성스레 해감하는데 그때마다 감탄사가 나올 맛이라 아는 이들만 알음알음 캐 먹는 그런 조개이기도 했습니다. 

업체에서 온라인 택배로 보낼 때는 1차 해감이 된 상태로 발송되지만, 이 1차 해감에서부터 기본 2~3일은 걸리니 이쯤이면 “해감이 안 되는 조개”란 오명이 붙기에 충분했던 것.

 

그래서 서해안 일대에 자생하는 떡조개와 개량조개는 해감이 어려워 외면받는 조개, 너무 흔해서 거뜰더 보지도 않는 조개란 인식이 생겼던 것으로 보입니다. 어떤 지역에서는(포항, 부산) 없어서 못 먹는데 또 어떤 지역에서는(서해안) 해감이 어려운 골칫덩어리란 인식으로 양분된 것도 흥미롭네요.
 
또 하나의 최대 산지라면 형산강이 만나는 포항 영일만 일대를 꼽습니다. 거센 풍랑이 일면 해안가로 떠밀려온 개량조개를 삽으로 퍼 올려도 끝이 없을 정도. 많이 생산될 때는 하루 5t씩 나면서 이 일대 식당들은 한때 개량조개가 주 소득원일 만큼 중요한 식재료였습니다.

 

그러다가 2000년에 들면서 형망 조업에 따른 남획으로 개체 수가 감소하더니 아예 자취를 감추었고, 2014년 경에 다시 나타난 이후 현재까지 조금씩 생산되고 있습니다.

또, 개량조개 산지로 유명한 부산 명지동 일대의 경우 작년부터 생산량이 급감해 올해(2021년)에는 거의 생산이 되지 않았고, 생산되더라도 상품성이 없는 작은 크기뿐이어서 이 일대 갈미조개(개량조개를 일컫는 부산 방언) 전문 식당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개량조개가 사라진 원인으로 낙동강 하굿둑, 녹산 하수관거 문제, 생산지 주변 개발 문제 등을 놓고 짐작을 하고 있지만 뾰족한 이유를 찾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사실 개량조개는 다른 조개에 비해 생육 조건이 까다롭고 예민한 편입니다. 작년 폭우로 인해 많은 물을 바다로 방출해야 했고, 그 바람에 낙동강 하구와 인근의 바닷물이 담수화 되면서 이 일대에 서식하는 바지락도 대량 폐사했음을 미루어 보았을 때 개량조개도 서식지 환경의 변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이에 부산시 수협은 올해 처음으로 개량조개 종패 10만미를 방류했는데요. 이대로만 자란다면 1년 만에 먹을만한 크기로 돌아올 것이 기대됩니다. 아무쪼록 개량조개의 개체수가 회복돼 많은 어민과 상인들에게 큰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고, 개량조개의 훌륭한 맛도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글, 사진 : 김지민 어류 칼럼니스트                   
유튜브에서 ‘입질의추억tv’ 채널을 운영 중이다. 티스토리 및 네이버에서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으며, tvN <유퀴즈 온 더 블록>, tvN <난리났네 난리났어>, EBS1 <성난 물고기>, MBC <어영차바다야>를 비롯해 다수 방송에 출연했다. 2018년에는 한국 민속박물관이 주관한 한국의식주 생활사전을 집필했고 그의 단독 저서로는 <짜릿한 손맛, 낚시를 시작하다>, <우리 식탁 위의 수산물, 안전합니까?>, <꾼의 황금 레시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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