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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림에 있는 어느 해물뚝배기 전문점
제주도로 가족 여행을 왔을 때의 일입니다. 이른 아침에 도착한 우리 가족은 공항에서 차를 렌트하고 아침밥을 먹기 위해 여기저기 수소문하였습니다. 일전에 소개한 된장찌개 잘하는 집이 있지만, 여러 번 가서 질린 감도 없잖아 있었고 공항의 식당 음식은 약간 업그레이드 한 고속도로 휴게소 수준이라 썩 내키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새로운 음식점을 찾아 나서야 할 차례. 하지만 어머니를 모시고 간 여행이기에 음식점 찾느라 많은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습니다. 달리는 차 안에서 아내는 폭풍 검색을 했고 아침 메뉴를 해물뚝배기로 정해서 온 곳은 한림항 부근.
시간은 오전 10시. 비수기에다 이른 시간까지 겹쳐 무슨 유령의 마을을 보는 듯 거리는 한산합니다. 행인도 없으며 간판을 올리지 않은 집들이 대부분입니다. 그 와중에 한 식당이 있었는데 다행히 영업 중. 들어갔더니 아직 시간이 일러 한 팀의 손님도 없습니다. 이른 시간에 들이닥친 손님 네 명을 예상하지 못했는지 아주머니의 '어서 오세요.'라는 짧은 억양에는 웬지 모를 반가움이 느껴졌습니다.
그 짧은 순간의 찰나에 미묘한 감정이 느껴진다는 것도 신기할 터. 어쩌면 아침 식사가 되는 곳을 찾았다는 저의 반가움이었을는지도 모릅니다. 이왕이면 '맛집'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는 식당이었으면 좋으련만. 아침 식사로도 글감을 살릴 수 있으면 좋겠다는 뭐 그런 개인적인 희망 사항 아니 욕심이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폭풍 검색질을 한 아내의 '촉'을 믿어 보기로 했습니다. 참고로 아내는 '맛집'으로 검색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식당과 메뉴판을 둘러본 저는 켜 두었던 카메라를 꺼버렸습니다. 여기서는 특별한 이야깃거리도 맛에 대한 발견도 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본능적으로 들었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그 판단은 편견이었지만. ^^
4인 가족이 주문한 메뉴는 전복뚝배기 세 개와 간장게장정식 한 개입니다. 저런 정식류는 1인분을 시키기가 미안하고 식당에서도 2인 이상이어야 주문을 받는 곳이 많겠지요. 혹시나 해서 여쭤보니 1인분도 가능하다고 합니다. 전복뚝배기는 12,000원과 8,000원 두 가지가 있는데 전복이 3~4개 들어갔는지 1개 들어갔는지의 차이라고 합니다. 아침 식사라 우리는 모두 한 개 들어간 전복뚝배기를 주문했습니다.
한쪽에는 유명인사의 사인들이 있었는데 많지는 않았고 이렇게 몇 개만이 걸려 있습니다. 슈퍼스타나 연예인보다는 감독이나 작가, 앵커들의 사인이 눈에 띕니다. 이제 주문한 지 몇 분이 지나자 반찬이 깔립니다.
밑반찬이 깔렸을 때 가장 먼저 눈이 갔던 건, 그 고장의 특징이 있는 반찬입니다. 조금은 기대했는데 역시나 없습니다. 다음으로 눈이 갔던 건 반찬의 기본인 김치입니다.
우리가 외식에서 접하는 김치는 대부분 중국산으로 공장에서 찍어 단기간에 강제로 발효한 탓에 자연 발효로 인한 산미를 느끼기 어렵고 중국산
고춧가루의 진한 색과는 달리 텁텁하고 밋밋한 맛이 납니다. 제주도에도 중국산 고춧가루를 섞어 쓰는 집들이 꽤 있습니다. 그런데 이 집 김치는 모양에서 예사롭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딱히 원산지를 볼 것도 없어요. 김치를 담가 본 주부라면 쉽게 눈치 챌 것입니다.
사이사이 보이는 고추씨를 보니 직접 담았을 확률이 매우 높아 보입니다. 맛을 보니 제대로 익었습니다. 저희 작은 고모님이 김치를 정말 잘 담그시는데 거기서 느낀 아삭하고 시원한 맛이 여기서도 느껴집니다. 김치의 청량감은 단순히 온도만 낮아서 되는 건 아닐 터. 장모님이 담가주신 김장 김치를 김치냉장고에다 숙성해 먹는데 거기서 느낀 김치 맛을 이렇게 식당에서 먹어 본 적은 대단히 오랜만입니다.
확인 결과, 아주머니께서 김치는 직접 담그고 있다 합니다. 김치뿐 아니라 간장게장, 반찬 모두. 그리고 반찬에 들어가는 몇 가지 채소는 직접 재배한 것이며, 심지어 쌀도 직접 재배한 벼를 탈곡해 짓는다 합니다. 밥은 흑미밥. 이 집은 그 흔한 중국산 낙지 대신 국내산을 쓴다고 표기되어 있군요. 이쯤 되니 저는 꺼두었던 카메라를 슬그머니 켜고 말았습니다. 이제 다른 반찬들을 맛봅니다.
언뜻 보면 특색 없는 반찬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이 특징 없는 평범한 반찬에서 정성이 느껴지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그 근원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됩니다. 우리가 음식을 먹을 때 '맛있다.'고 느껴지는 것은 대체로 '간'이 잘 돼서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에 조미료가 들어가 주면 여러 가지 맛이 적절히 어우러져 적당한 맛의 깊이와 만족감을 주겠지요.
싱싱한 식재료에서 오는 고유의 맛은 사실 여러 양념과 조미료에 버무려져서 느끼기 어려울 겁니다. 그래서 누구도 이에 대해 눈치채기란 어렵지만, 누구도 맛있다고 느끼기는 건 쉬울 겁니다. 음식의 기본인 간에서 이러한 균형감을 가졌다면, 이어지는 메인 음식도 기대됩니다.
간장게장
만 원짜리 백반에 나오는 간장게장입니다. 양은 1인분이고요. 딱 한 마리가 들어갔습니다. 어머니 앞에 놓인 게장에서 한 조각을 맛봤습니다. 물게도 아니고 냉동 게도 아닌 생물 꽃게입니다. 살이 제법 들어찼고 알도 있는 암게입니다. 한정식집에서 파는 1인 3만 원 근처의 간장게장 정식에 나오는 것과도 크게 달라 보이지 않습니다.
만 원짜리 백반에 나오는 간장게장치고는 살집이 제법 실하네요. 이 정도 게라면 특등급은 아니어도 꽤 좋은 물건이라 보입니다. 맛은 급조한 게장 맛이 아닌 충분히 달여서 만든 간장 맛입니다. 여러 가지 향도 느껴집니다. 가장 강하게 느껴진 건 계피이고 한약 향도 조금 납니다. 이것도 주인아주머니가 직접 담그셨다고 해요.
전복뚝배기 8,000원
가격은 8천 원으로 제주도 해물뚝배기의 평균 물가에 못 미칩니다. 제주도 해물뚝배기 가격은 대체로 다섯 자리수인데 네자릿수 가격으로 만나보는 해물뚝배기가 반갑습니다. 그런데 구성은 좀 빈약합니다. 역시 물가와 해물의 구성은 비례하는가 봅니다.
전복은 아주 대짜는 아니지만, 적당히 사이즈가 되는 것으로 한 마리만 들어갔습니다. 그 외 바지락, 딱새우(표준명 가시발새우), 홍합 등이 들어갔으며 두부는 부들거리는 질감이 괜찮습니다. 국물도 급조한 게 아닌 제대로 우려 시원한 맛이 납니다. 대신 간은 여느 집보다 세지 않아요. 평소 짜게 드시는 분들에게는 싱겁다 느낄 수도 있습니다. 아침부터 거하게 먹을 게 아니므로 오히려 이런 해물뚝배기는 구성이 빈약해도 가격이 저렴하니까 가볍게 먹기에는 좋습니다. 12,000원짜리 전복뚝배기가 있으니 선택은 손님의 몫입니다.
영업시간 : 09:30 ~ 21:00 (매월 둘째주 수요일은 휴무)
네비주소 : 제주시 한림읍 한림리 932-6
주차 : 식당 앞에 3대 정도 가능하고 근처에도 댈 곳이 많음.
#. 식당에서 '음식이 입에 맞으세요?'라고 묻는다면
먹던 중 뒤에서 우리를 바라보는 시선이 자주 느껴졌습니다. 이른 시간부터 관광객으로 보이는 식구들이 소리도 안 내고 먹고 있으니 그도 그럴 것입니다. 그러던 중 아주머니께서 '음식은 입에 맞느냐?'고 물어 옵니다. 저는 지금까지 이 같은 질문을 받았을 때 만족하지 못했던 식당은 없었던 것 같아요.
식당에서 '음식이 입에 맞으세요?'라고 묻는 것은 '내가 만든 음식이 손님에게 어떻게 비칠까?'에 관해 늘 고민하고 염두에 두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로 자기 음식에 자부심이 강해서 보이는 현상으로 '내 음식을 손님이 맛있게 먹어주길 바란다'는 희망으로 장사하는 유형이기도 합니다.
일전에 나폴리 화덕 피자를 연구했다던 사장님도 자신의 레시피, 좋은 식재료 사용에 관해 자부심이 대단하였습니다. 그 분은 아무리 바빠도 손님의 식사 말미에 꼭 한 번은 물어보는 말이 있다고 해요.
"맛이 어떠셨습니까?"
이때 손님의 표정을 보면 굳이 대답을 안 해도 알 수 있다고 합니다. 맛이 좋았다면, 좋은 대로 만족이 되고 몇 가지 문제점이 나왔다면 겸허히 받아들여 보충해 나가는 것입니다. 캐나다 여행 중 방문했던 레스토랑들은 다들 자기네 음식에 대해 자긍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꼭 식사 말미에 와서는 "맛이 어떠셨습니까?"라고 물어보는 웨이터에 화답으로 손으로 오케이 사인을 하자 살며시 웃음 짓고 돌아서는 모습 등. 관광지 식당에서는 보기 어려운 풍경이기도 합니다.
여기서는 '국물이 아주 시원하고 깔끔합니다.'로 화답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아주머니의 'NO 조미료 찬양'과 직접 재배한 재료를 사용한다는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이렇게 조미료를 배제하고 '손 음식'을 만들어 파는 식당이 이런 변두리에 있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메스컴을 타고 전복뚝배기로 아주 유명해진 서귀포의 'ㅈㅈ식당'이 이 집의 반만이라도 닮았으면 하는 생각이 문득 드네요.
총평하자면, 음식이 화려하거나 특징이 잘 잡힌 곳은 아닙니다. 소박한 반찬에 이제는 특별할 것도 없는 해물뚝배기이지만, '탄탄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손맛과 정성이 느껴지는 곳이라 보입니다. 중간에 비닐장갑을 끼고 와 딱새우를 까주는 서비스를 해 줍니다. 제주도의 다른 해물뚝배기 집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풍경입니다.
저희만 그런 줄 알았는데 이 집에 대해 검색해 보니 손님들은 대체로 그러한 서비스를 받는 모양입니다. 하지만 이것도 한산하므로 가능한 서비스겠지요. 다른 메뉴는 먹어보질 못해 모르겠습니다. 저는 글 쓰기 전에 항상 해당 식당에 대한 다른 블로거의 글을 충분히 참조합니다.
맛집 블로거가 아닌 지극히 개인적으로 사용하는 블로거의 글입니다. 아내가 '맛집'으로 검색하지 않은 이유도 맛집 홍보글을 피하기 위함입니다.다른 메뉴는 모르겠고, 간단히 해물뚝배기로 식사할 거라면, 또 이른 시간에 공항에 도착해 아침 식사거리를 찾는다면. 중문, 오설록, 모슬포로 향할 때 한 번쯤 권해 볼만한 식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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