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한 고깃국물은 으뜸이나 변해버린 평양 만두국, 장충동 평양면옥


따듯한 고깃국물이 당기는 겨울이면 생각나는 곳이 있습니다. 평양냉면의 명가로 알려진 장충동 평양면옥. 
순한듯하면서 진한 고깃국물과 면수의 은은함은 '복합 MSG(쇠고기맛 다시다)'가 지배하는 오늘날 요식업의 국물 요리에 그래도 '전통'을 주장하며
비슷하게나마 명맥을 유지하고 있기에 나름대로 마니아층이 찾게 되는 맛 포인트가 아닐까 싶습니다. 
입소문 듣고 찾아온 손님 중 일부는 이 집 특유의 밍밍함과 싱거움에 '이해하려고 애를 써도 이해할 수 없는 맛'이라며 혹평을 내리곤 하지만, 
그것은 복합 MSG 맛에 알게 모르게 길들여진 자신의 입맛을 탓하지 않는다면 영원히 깨우칠 수 없는 맛일는지도 모릅니다. 
장충동 평양면옥의 만두국은 착한(?) 고깃국물을 내세워 속이 꽉 찬 평양식 만두를 선보이는 곳입니다. 

그런데 지난 3년간 은근슬쩍 변한 게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런 점들이 매우 아쉽습니다.
이 집의 평양냉면은 예전에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관련글 : 이북음식의 대표주자, 장충동 평양면옥)
오늘은 만두국이라는 아주 평범한 음식만으로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 참고로 촬영은 9월에 했습니다. 당시 만두국을 두 그릇 주문했는데 맛을 본 시점이 3개월 가까이 되어 글을 쓸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엊그제 다시 방문해 만두국과 비빔냉면을 맛 본 것을 토대로 글을 쓰는 것이니 참고토록 하십시오. 

    또한, 개인적으로 '만둣국'이니 '북엇국'이라는 철자법에 반대합니다. 본문에서는 만두국으로 표기하겠습니다.



수십 년 동안 각종 매스컴에 보도된 훈장 아닌 훈장들

휴일 점심시간에 들린 장충동 평양면옥 본관

평양식 냉면집과 함흥도식 냉면집의 순위 

순위 매기는 거 좋아하는 현상은 냉면 명가에서도 이어집니다.
1위는 장충동 평양면옥이 차지했다고 나와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방식으로 조사해 통계를 내린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리서치의 신뢰도도 신뢰도지만, 꽤 오래전부터 가게에 내걸리고 있는 정보임에도 '종하하는 냉면집'이라는 사소한 부분에서 일단 신뢰가 꺾이는군요. 
제가 보기에는 그냥 재미로만 받아들이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차림표

간혹 평양냉면을 다녀간 분 중 "면 요리를 만 원 주고 먹으니 아깝다"는 얘기를 더러 듣습니다.
그분들이 만약 TGI나 아웃백과 같은 레스토랑에서 15,000원 이상을 내고 아무렇지도 않게 파스타를 시켜먹는다면 '이중 잣대'라 봅니다. 
음식점 입지 조건과 재료의 단가, 서비스 등은 생각하지 않고 무조건 '면 요리'에 색안경을 끼고 보는 이들이 뜻밖에 많은 것 같아 하는 말입니다.
원래 냉면은 전통 음식이었지만, 오늘날 수많은 분식점에 의해 그 이미지가 저평가된 탓도 무시 못 할 겁니다.

요즘 어지간한 곳은 중국산 재료 일색인데 이 집은 메밀을 제외한 모든 식재료를 국내산으로 사용한다는 점이 눈길을 끕니다. 
'면옥'이라는 이름을 단 업소에서 사용하는 김치의 경우 배추는 국내산인데 고춧가루는 중국산을 섞어 쓰는 업소도 종종 보아왔습니다. 
오늘날 국내산 고춧가루 단가가 중국산 고춧가루 단가의 3배가량 됩니다. 어지간한 업소에서는 국내산 고춧가루 사용이 쉽지 않은데요.
아무리 물가가 올라도 평양면옥과 우래옥은 전통의 명가답게 국내산 식재료를 고수하면서 이 부분에서만큼은 업계의 선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어
매우 긍정적으로 봅니다. 

사실 평양면옥, 우래옥은 정평 난 맛만큼이나 가격 비싸기로도 유명한 집인데 원산지마저 수입산을 쓰면 저 가격이 쉬이 납득 못하겠지요.
다만, 두 업소의 차이가 있다면 우래옥은 한우만을 취급하는 데 비해 평양면옥은 전량 국내산 육우라는 점입니다.
육우는 한우 단가의 절반에서 그 이하라고 보면 됩니다. 그렇게 따지니 이 집의 물가가 저렴하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이 집이 북새통인 이유는 이북음식을 그리워하는 실향민들과 평양식 냉면에 맛을 들인 젊은 층들이 꾸준히 유입되기 때문이라 봅니다.


면수

메밀면을 삶은 뜨끈한 면수가 나옵니다. 때는 점심으로 저녁만큼 구수하지는 않았지만, 따듯하고 은은한 향이 목넘김을 좋게 합니다.
길가다가 찬바람이 얼굴을 때릴 때면 이 면수가 생각나기도 하고요. 엊그제 방문했을 때 유난히 날이 추워 양손으로 저 컵을 꼭 잡고 있었는데 느낌이
참 좋습니다.


아삭하고 새콤한 무

김치

김치는 격조 있는 한정식집처럼 정갈하게 썰어져 나옵니다. 맛은 제대로 숙성해 아삭하고 시원함을 강조한 김치입니다.
어딘가 모르게 허전한 느낌(이는 양념이 강하지 않아서 오는)은 있지만, 일반 음식점에서는 내놓기가 망설여지는 국내산 고춧가루로 담은 김치고요.
찬을 담아내는 그릇에 조금만 더 신경 썼더라면, 사소한 반찬이지만, 음식점 이미지와 음식의 격조를 좀 더 높일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듭니다.


만두 양념장

평양 만두국 10,000


장충동 근방에서는 가히 최고라 할 만큼 이 집 만두국을 좋아합니다.
양지머리로 삶은 은은한 고깃국물에 평양식 손만두 다섯 개, 고명으로는 매콤하게 무쳐 결대로 찢은 수육을 올렸습니다.

비주얼은 순박한데 맛은 결코 순박하지 않습니다.
만두야 지금은 대중이 즐기는 서민음식이지만, 원래는 부자들만이 즐겼던 고급 음식이었다 합니다.
이 만두가 고급스러운 옷을 벗고 대중에게 다가선 것은 고작 50년 안팎의 일. 평양만두로 유명한 장충동, 필동 일대는 일제 식민지 시대에 일본인 주거
지역이었는데 평양이 공산화의 길로 접어들었을 시점, 이를 눈치 챈 평안도 부자들은 '적산가옥(일본강점기 때 일본이 남기고 간 일본식 가옥)'을 사들여
이곳에 뿌리를 내렸다고 합니다.
이후 월남한 이북사람들은 이 일대에 터전을 닦으며 고향에서 접했던 냉면과 만두를 만들어 먹게 된 게 시초가 되었습니다.
북한식 냉면을 뜻하는 '면옥'은 이때부터 많이 생겨났지요.

당시 평양만두는 평안도 부자들이 만들어 먹던 고급 음식이었습니다.
원래는 꿩 육수를 사용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꿩 육수로 만드는 집은 손에 꼽으며 대부분 쇠고기(양짓살 등)를 푹 고아서 우려낸 맑은 육수로 만두국에
내고 그것을 식히면 냉면 육수로 사용하니 이 맛을 모르고 추억도 없는 젊은 사람들에게는 그저 밍밍하고 싱거운 육수로만 각인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사실 고깃국물에 MSG가 아예 안 들어가는 건 아닙니다.
우래옥과 마찬가지로 이곳 평양면옥에도 육수에 소량의 '미원(글루탐산나트륨)'이 들어가는 줄 압니다. 
제 지인의 부모님은 이곳을 드나든 지 꽤 오래된 단골이었는데 그것을 목격한 이후로 발길을 끊었다고 합니다.
이는 MSG에 대한 거부반응이라기보다는 '이 집만은 MSG를 안 쓰겠지'라고 무한신뢰를 하던 곳에서의 배신감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것과 별개로 MSG에 관해서는 개인적으로 할 말이 아주 많습니다만, 여기서는 이야기의 본질을 흐리지 않기 위해 필요한 말만 하겠습니다.
만약 이러한 면옥에서 MSG(글루탐산 나트륨)을 사용하지 않고 순수 100% 양지머리만으로 육수를 우려야 한다면, 엄청난 고기양과 조리 시간을 축낼
것입니다. 물론 비용도 배 이상 들겠지요. 거기에 따른 부담은 고스란히 소비자의 몫으로 전가될 것입니다.
MSG(글루탐산나트륨)은 그러한 리스크를 획기적으로 줄여주는 역할을 합니다. 물에 잘 녹는 글루탐산나트륨은 끓는 육수에 용해되면서 아미노산 성분이
육수의 곳곳에 흡착되어 감칠맛을 더하게 됩니다. 단시간에 고아 맛이 덜한 육수 맛을 단 몇 스푼의 가루로 보완해 주는 것입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여전히 MSG의 유해성에 대해 일침을 놓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확실히 구분하고 경계해야 할 것은 MSG가 아닌 복합 MSG(쇠고기맛 다시다)에 있습니다.
MSG는 사탕수수를 발효해 만든 천연 물질로 다시마, 쇠고기 등 우리가 먹는 자연 물질에 있는 글루탐산과 분자구조가 100% 일치합니다.
그러므로 MSG를 가지고 유해성을 논하는 건 어불성설입니다. 사실 이 부분은 이미 이를 뒷받침하는 책과 연구 결과가 많이 있습니다.
저 역시 MSG의 유해성을 논하기 위해 이 부분에 대해 집중적으로 조사하였지만, 아직은 제 블로그에서 이야기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MSG 특히, 복합 MSG의 진짜 문제는 위해성 보다 다른데 있습니다. 문제이기보다는 집단적인 폐해를 낳는다고 봐야 할 겁니다.
여기서는 좋은 재료, 좋은 레시피로 끓인 만두국에 관한 이야기이므로 MSG에 관한 내용은 이쯤에서 마무리하겠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몇 가지 실험을 통해 이야기하겠습니다.
어쨌든 제가 드리고 싶은 말은 미원(글루탐산나트륨)이 들어간 국물이라 해서 거부할 이유는 하등 없다는 것입니다.


만 원짜리 만두국에는 만두 다섯 개가 들어 있다.

저는 이 장에서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장충동 평양면옥의 만두국이 걸어온 최근 3년간의 역사를 말입니다.
아래는 연도별 만두국 가격과 만두 개수 입니다.

- 2011년 : 9,000원 / 7개
- 2012년 : 10,000원 / 6개
- 2013년 : 10,000원 / 5개


제법 물가가 올랐죠? ^^ 단순히 가격만 올렸다면 모를까, 지난 3년 동안 은근슬쩍 만두 개수가 줄었습니다.
그렇다고 만두 크기가 커졌다거나 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제 기억과 알아본 자료를 뒤져 봐도 만두의 크기는 그때나 지금이나 큰 차이는 없는데
어쩌면 제가 느끼지 못할 만큼 만두 크기가 미묘하게 커진 대신 갯수를 줄였을는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현 물가를 고려하더라도 가격이 과한 편입니다.

비단 이 집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장충동 인근의 밥집이 대부분 그렇습니다.
서비스는 그나마 이 집이 나은 편인데 근방에 있는 식당(송원가든, 돈돈돈가스, 두부집, 찌개집, 함흥에 겨울냉면 등) 들은 하나같이 종업원의 시크함에
해마다 가격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습니다. 그것을 키운 건 전적으로 이들 업소를 꾸준히 이용해 준 고정 손님 때문이지만 (근방의 직장인과 교인
들이 주 고객임) 지금까지는 가격이 비싸고 서비스가 엉망이더라도 맛은 괜찮아 봐줄 만 했다면, 이제 몇몇 집들은 '막나가자는 게'이 보일 정도로 맛도
예전만 못한 징후가 보이고 있습니다.


손수 빚은 평양만두


같은 평양만두라 해도 속 재료에 있어 조금의 차이는 있지만, 기본은 돼지고기+두부+숙주입니다.
이 집은 물기를 잘 짠 숙주가 씹힘의 역할을 하고 담백한 맛의 역할은 두부가 맡고 있습니다. 
돼지고기가 들어가기는 했지만, 두부 함량이 더 높습니다. 돼지고기 잡내는 없어 맛이 깔끔하다는 게 특징입니다.

만두피도 적당한 두께에 쉽게 찢어지지 않으며 반대로 과한 탄력이 들어가지 않아 좋습니다.
가끔 속이 다 비칠 정도로 얇은 만두피에 집착하는 이들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은 그것 나름대로 어울리는 만두 종류가 있을 뿐, 모든 만두에 적용돼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만두피가 얇다고 해서 속이 꽉 차 보이는 건 아니니까요. 
만두피 역할은 단순히 속을 감싸주는 것만은 아닌, 입에 넣고 씹을 때 '만두피'로서 식감의 역할이 따로 있음을 생각한다면, 이 집의 만두피는 적당한
두께와 무르지 않은 차짐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부분은 앞으로 개선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씹던 중 '딱'하고 소리가 날 정도로 이가 아파왔는데 만두 속에서 돼지뼈가 나왔습니다. 어쩌다 재수가 없어 나온 거지만, 사실 민찌(돼지고기 간 것)에서
뼈가 섞여 들어가는 건 부지기수입니다. 혹시나 싶어 자주 가는 정육점에 물어봤더니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고 합니다.
어쩌다 가끔 섞여 들어가는 뼈 때문에 비교적 가격이 저렴한 민찌를 사용하지 않기도 어렵습니다.
그저 업소에서는 만두소를 만들 때 이런 게 들어갔는지 세심히 주의를 기울이는 수밖에 없을 겁니다.
이게 다른 집도 아니고 평양면옥이기 때문에 중요한 이유는 이곳을 찾는 대부분 손님이 50~60대, 혹은 그 이상도 있습니다.
이가 안 좋은 상태에서 저런 걸 잘못 씹었다가는 자칫 이빨이 나갈 수도 있으니 하는 말입니다.


비빔냉면 10,000원

위 사진은 엊그제 방문했다가 휴대폰으로 찍었습니다. 원래는 촬영 생각 없이 방문했는데 수육이 기가 막혀서 말입니다.
갈수록 수육의 퀄리티가 안 좋아지는 것이 기가 막혀서입니다. 
저런 뻣뻣한 수육이 뽑기가 잘못되어 들어갔을지도 모릅니다만, 그 맛과 질감은 2년 전 캐나다에서 사온 버팔로 육포 질감을 연상케 하였습니다.
안 그래도 비싼 냉면, 이왕 사용하는 육우 좀 더 좋은 등급이길 바랬던 건 무리였을까? 아니면 이날만 삶기가 잘못되어 그랬던 걸까?
진실은 알 수 없지만, 수육 퀄리티가 평양냉면의 명가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고 다른 경쟁 업소보다 확연히 떨어진다는 생각은 떨칠 수 없었습니다.



평양만두와 냉면의 명가, 장충동 평양면옥(찾아오는 길은 아래 지도 참조)
네비주소 : 서울시 중구 장충동 1가 26-14
주차 : 시설 완비(발렛비 2,000원)


하고 싶은 말은 위에 다 썼습니다. 비록 3년 동안 은근슬쩍 변화된 게 아쉽지만, 그래도 만두국의 은은한 고깃국물은 여전했습니다.
속이 꽉 찬 평양만두에 복합 MSG(쇠고기맛 다시다)가 아닌 그래도 고깃덩이로 고은 육수 맛이 그립다면 만족시켜줄 만한 만두국입니다.
몇 번째 방문해서 먹는 곳이지만, 다른 메뉴는 몰라도 만두국 하나 만큼은 늘 만족해하면서 먹고 있습니다.
다만 가격 측면에서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인 것 같아요. 맛을 보더라도 이 부분은 고려하시기 바랍니다.
평양식 냉면과 만두는 호불호가 갈리는 음식입니다. 취향에 안 맞으면 분식집 만두국보다 못할 수도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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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입질의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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