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 전통의 평양냉면 명가, 우래옥


    이제 와서 우래옥의 냉면 이야기를 하자니 좀 새삼스럽습니다. 
    100명의 대중 앞에서 우래옥을 물으면 10명이 알까 말까 한 식당이지만(이것도 대단한 인지도죠), 평양냉면 마니아들에게 우래옥을 물으면
    십중팔구는 '한 번쯤 가 본' 만큼 평양냉면 명가임엔 틀림없습니다. 몇몇 유명한 평양냉면 가를 두고 4대 천황이니 5대 천황이니 하면서 서열을
    매기지만, 집집마다 스타일이 다르고 호불호가 갈리므로 우열을 논하는 게 모호합니다.
    갈수록 자극적인 냉면 맛에 길들여지고 있는 요즘, 평양냉면을 접하지 못했던 분들이 맛을 본다면 "육수가 밍밍하다.", "맹물에 만 것 같다.",
    혹은 "이런 냉면을 만 원씩 받는 이유를 모르겠다."라며 평가 절하하지만, 그것은 평소 저렴한 냉면 맛에 길든 우리의 입맛 탓이 아닐까?
    내게 익숙한 맛은 맛있는 음식이 될 수 있어도 훌륭한 음식이라고는 말할 수 없으니까요. 
    그나마 우래옥의 냉면 맛은 고기 맛이 진하게 우러나와 대중들, 그러니깐 평양냉면 맛에 길들이지 않은 분들이 맛봐도 부담 없는 육수 맛을 가지는
    편입니다. 본디 냉면이란 게 메밀로 빻아서 뽑아낸 면발도 면발이지만, 육수 맛이 그 집 냉면 맛의 전부일 정도로 우리가 냉면을 맛보고 평가할 때는
    육수를 빼고 논할 수 없으니까요. 오늘은 여름철 시원하면서 진한 쇠고기 육수 맛을 느낄 수 있는 냉면 명가로 떠나봅니다.


    Since 1946년이라고 적혀 있는 우래옥 본점.



    우래옥 실내

    우래옥의 냉면 가격은 11,000원. 같은 평양냉면 가인 장충동 평양면옥보다 천원 비싸고, 봉피양보다는 천원 싼 가격입니다.
    주문은 전통 평양냉면과 전통 평양 비빔면을 시켜봅니다.


    냉면 집에서 제일 먼저 시선이 가는 곳은 양념 통.
    기호에 맞게 다양한 양념을 첨가할 수 있도록 해 놨는데요. 주전자 모양의 사기 그릇이 정숙해 보이고 청결도가 좋습니다.


    주문을 넣자마자 나오는 건 면수.
    우래옥의 면발은 메밀 함량이 높기로 유명하지요. 주문할 때 플러스 천원을 추가하면 메밀 90% 이상이 함유된 순면으로 나옵니다.
    일반으로 주문을 넣으면 그보다는 메밀 함량이 떨어지는 면발이 삶아져 나올 텐데요. 거기서 나온 면수는 은은하니 입가심하기에 좋습니다.
    이런 면수는 그 향과 농도가 오전에 다르고 오후에 다를 수 있습니다. 장충동 평양면옥은 오전보다 오후 때 나온 면수가 더 구수하던데요.
    우래옥도 시간에 따른 차이가 있을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한우 불고기를 얹어 먹을 때 사용하는 황동판입니다. 


    숨이 덜 죽어 겉절이 느낌이 나는 아삭하고 순한 김치.


    우래옥의 전통 평양 비빔냉면 11,000원

    사기그릇에 담긴 비빔면 모양새가 정갈해 보이네요. 양념을 걷어보면 우래옥에서 늘 사용하던 백김치와 조물조물 무친 오이지, 그리고 채 썬 배가
    놓여 있고, 양지머리로 보이는 수육이 4점가량 들어갑니다. 배는 계절마다 맛이 달라 사계절 내내 들어가는지는 않는 걸로 압니다. 
    그리고 이 집 냉면의 꾸미로는 삶은 달걀을 넣지 않는 게 특징이라면 특징입니다.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개인적으로 최근에 먹었던 비빔냉면 중 단연 으뜸이었던 맛.
    양념이야 워낙 호불호가 갈리니 여기선 주관적인 해석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점. 양해해 주십시오.
    하기야 맛집 평이니 하는 것 자체가 죄다 주관적일 수밖에 없겠지요. ^^;
    일단 우래옥의 비빔 양념은 매콤함과 달콤함의 밸런스가 잘 맞는 편입니다. 어느 한 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너무 달거나 맵지도 않은, 맵기에서는
    초심자도 적응 가능한 정도고요. 단맛이 설탕의 저렴한 단맛이 아닌 과일이 들어간 단맛이어서 넘기는 뒷맛이 깔끔합니다.


    일단 눈으로 감상한 후 잘 비벼봅니다. 개인적으로 식초라던가 겨자는 잘 타지 않습니다.
    가위질은 당연히 안 해요. 메밀 함량이 높아 입술로 끊어도 뚝뚝 끊어지기 때문에 구태여 가위로 자를 필요는 없습니다.
    설사 가위로 잘라도 입안에서 겉도는 이질감이 있어 개인적으로 가위질은 금하는 편이랍니다.
    이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부드럽고 탄력 있는 면발을 자신이 원하는 양으로 충분히 흡입한 뒤 입으로 잘라 먹는 것과 이미 일정한 길이로
    잘려린 면발을 입에 넣었을 때 오는 감촉의 차이는 꽤 크게 다가옵니다. 
    면발이 가위에 깔끔히 잘려 길이가 일률적이면 충분히 씹어서 느낄 수 있는 감촉과 흥이 일찌감치 깨지기 마련인데, 요 부분은 공감하시는 분도 있을
    테고 잘 모르겠다는 분도 계실 겁니다. 어디까지나 개인차, 그러나 냉면 마니아들이 면발에 가위를 대지 않는 건 그것 말고 또 있습니다.

    평양냉면은 이북음식으로 원래 북에서 면발은 '수명'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댕강 자른 짧은 면발은 식사 시간을 부추깁니다. 오래 씹고 오래 먹어야 장수한다는 관념에 초를 치는 게 바로 면발에 가위질이죠.
    그러니 잘려나간 면발이 기분 좋을 리 없습니다. 미신이 아니고 엄연히 북에서 이어져 온 전통이 음식 문화에 깃들여져 있는 것.
    사실 그것이 현대 사회에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만, 적어도 손님에게 의사를 묻지 않고 제멋데로 가위질하는 냉면집은 직원의 소양 미달입니다.
    물론, 분식집 냉면 등에서 자주 쓰이는 감자전분 공장 면은 너무 질겨 가위를 댈 수밖에 없지만 말입니다.  


    우래옥 전통 평양냉면 11,000원

    역시 삶은 달걀이 빠져있는 꾸미입니다.
    조물조물 무친 오이와 백김치, 그 아래 수육에 채 썬 배가 올려졌습니다. 이를 젓가락으로 살살 걷어보면.


    양지머리살로 추정되는 수육이 네 점가량 놓였습니다. 이 집의 원산지 표기를 빌어 말하자면 사용된 쇠고기는 전부 한우입니다.
    육수 맛은 언뜻 보면 조미료 맛이 느껴질 정도로 강합니다. 육향이 진하므로 우리가 익히 알던 '엷은 육수의 밍밍함'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고기 향이 깊게 배어나는 육수는 여름도 여름이지만, 추운 겨울에도 종종 생각나게 합니다. 일단 육수가 밍밍하지 않아 전반적으로 묵직한 맛을 냅니다.
    여기에 오이라던가 백김치가 주는 아삭함은 청량감을 높이고 있습니다. 시원한 배는 어떻고요.
    그래서 평양냉면에 입맛을 붙이고자 한다면 평양면옥보다는 우래옥 쪽이 한결 낫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하지만 육수 온도에는 좀 더 신경 썼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네요.
    우리가 익히 접하는 보통의 냉면 육수는 이렇게 양지머리로 충분히 고아서 낸 전통 방식의 육수가 아닌 인공 감미료로 만든 페이스트나 짠육수를 물에
    희석해 쓰는데요. (이것도 여러 방식이 있다고 함) MSG로 맛을 내고 거기에 식초의 산미를 더해 살얼음으로 맛을 위장합니다.
    지나치게 낮은 육수 온도와 산미는 맛의 본질을 가리는 일등 공신입니다.
    이는 무한리필 참치가 해동이 덜 된 채 손님상에 내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을지면옥, 우래옥, 평래옥, 필동면옥, 평양면옥 등등 전통의 평양냉면가에서 얼음을 넣거나 슬러시 상태로 내지 않는 이유는 얼음이 녹아 육수가 희석되는
    걸 원치도 않지만, 무엇보다 육수 본연의 맛에 집중시키기 위함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육수 온도가 낮으면 메밀로 뽑은 면발도 구수한 향미도 느끼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냉면은 너무 높지도, 낮지도 않은 온도 유지가 중요합니다.
    이는 유럽에서 취급하는 맥주도 비슷한 개념일 겁니다. 

    혀가 얼얼할 정도의 차가움은 시원함으로 착각하게 하지만, 맛을 느끼는 감각 기관은 교란될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냉면을 원합니다. 첫맛에 시고 달콤하고 간간한 맛이 들어와야 하며, 알싸한 겨자 맛도 느껴져야 합니다.
    육수를 뭘로 만들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혀가 얼얼할 정도로 차가움, 가슴 속을 애리는 시원함, 톡 쏘는 겨자맛, 이것만 충족하면 되는 것입니다.
    좋은 식재료에서 우러나오는 깊은 맛보다는 직관이 뚜렷해야 어필되는 세상이니까요. 

    반대로 육수 온도가 너무 높은 것도 맛이 반감됩니다. 이때 먹은 냉면은 거짓말 조금 보태 미적지근한 상태.
    아무리 전통식 평양냉면이라 해도 냉면을 찾은 손님들은 더위를 피해 시원한 육수 한 사발을 기대하고 올 것입니다.
    살얼음 육수까진 아니더라도 찬 육수에 대한 손님의 기대에는 어느 정도 맞춰줄 필요가 있다는 것이지요. 
    아마 이 문제는 그날마다 다를지도 모르겠습니다.


    면발 이야기는 비빔면과 이하동문. ^^


    맨눈으로 보면 고명에 들어간 양념 고춧가루 외에도 다른 알갱이가 보이는데요. 까무잡한 알갱이가 후추가 아니라면(꾸미에는 후추 들어갈 일이 없음)
    조미료가 들어갔는지 아닌지가 궁금한 대목입니다. 양짓머리로 육수는 내도 좀 더 대중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알게 모르게 투여하는 조미료가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뭐 그러거나 말거나 제게는 별로 중요한 문제는 아닙니다. 그런 건 전통을 계승하는 명가들의 문제이며 맛에 대한 평가는 전적으로 손님들
    몫이겠지요.  



    우래옥 위치 : 본문 하단의 지도 참조
    네비주소 : 서울 중구 주교동 118-1
    주차 : 주차장 완비


    #. 만 원짜리 냉면에서 오는 그릇된 편견들, 냉면도 요리다
    우리나라에서 최고 비싼 파스타 가격이 약 25,000원.(그보다 더 비싼 곳이 있을 수도 있음) 반면, 냉면은 그것의 반절도 안 되는 12,000원 수준입니다.
    패밀리 레스토랑의 파스타 평균가가 15,000~16,000원이며 지금도 젊은이 어른들 할 것 없이 불티나게 팔립니다.
    그런데 냉면 값이 만 원이면 반발심을 갖는 분들이 계세요. 왜 그럴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파스타는 '요리'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지만, 냉면은 기껏 해봐야 분식집 메뉴로 밖에 생각 안 하기 때문이죠.
    좀 더 나아가 고깃집에서 선주후면으로 즐기는 MSG 냉면 정도에 우리의 인식은 멈춰있습니다. 특별히 냉면 명가를 찾지 않는 한, 주변에서 접할 수
    있는 냉면 수준이 그 정도일 것입니다. 그만큼 냉면은 서민적인 음식이요. 저렴하고 간편하게 끼니를 때울 수 있는 메뉴다 보니 값싼 음식으로 인식된 게
    무리는 아니지요. 그런데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원래의 냉면은 서민들이 즐길 수 없는 고급 음식이었습니다.

    만원 이상 받는 냉면 명가 집들은 기본이 양지머리와 꿩으로 육수를 만들며 꾸미에도 신경 씁니다. 평양냉면의 경우 면발의 70%가 메밀이라는 점도
    단가의 상승을 부추깁니다. 이는 15,000~20,000원짜리 파스타에 들어가는 재료 값과 맞먹으면 맞먹었지 절대 뒤떨어지지는 않을 겁니다.
    비록 지금은 전통의 계승을 말하면서도 변화하는 현대인의 입맛과 조리의 편의성과 타협하는 바람에 맛이 예전만 못하다는 평가가 있지만, 그래도 이런
    집들이 만들어 내는 냉면은 '요리에 가깝다'고 생각하는 게 무리일까요? 문제는 그 맛을 알아주는 이들도 적거니와 갈수록 자극적인 입맛에 길들어져
    이러한 냉면들이 '입맛에 맞지도 않은데 비싸기만 한 냉면'쯤으로 인식되고 있는 현실입니다. 그 탓을 어디로 돌려야 맞을까?
    아무리 좋은 재료로 냉면을 만든다 한들 대중의 입맛을 사로잡지 못한 전통 냉면가의 탓으로 돌려야 할까? 
    아니면 즉흥적이고 자극적인 음식 맛에 길든 우리의 입맛 탓으로 돌려야 할까?
    나날이 높아지는 고물가 속에 요식업계도 살아남기 위해선 가격을 올리지 못하는 대신 식재료 질의 하락은 피할 수 없을 테고, 그래서 나오는 누린내라
    든지 떨어지는 선도를 가리기 위해 더욱 자극적인 맛을 넣어 우리의 눈과 혀를 가리고 있는 세태를 꼬집어야 할까? 

    냉면을 하나의 요리로 보면 만원이라는 가격은 문제 되지 않습니다. 15,000~18,000원짜리 파스타는 아무렇지도 않게 사 먹으면서 우리의 냉면은 서양
    음식에 비해 너무 평가절하되는 것 같아 안타까운 것입니다.
    과연 한우 양지머리로 고은 육수로 만든 냉면을 11,000원 받는다 한들, 과하게 비싸다 할 수 있을까?
    쓰다보니 이 집 냉면을 찬양하는 듯한 느낌도 있는데 그건 아닙니다.
    제 아무리 전통의 평양 냉면가라 한들 맛의 변질이 오면 골수 단골손님 부터가 알아차리기 마련이에요. 유지만 잘하면야 문제될 게 없지만, 음식 맛과
    질의 하락은 곧 명성의 추락으로 이어질테니까요. 

    "공든 탑일수록 무너지는 것도 많다는 것"

    우래옥과 같은 오래된 명가는 직원 교육을 좀 더 철저히 해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저는 한 번의 메뉴 주문으로 특별히 불친절함을 느끼진 못했지만,
    '시크한 직원 태도'같은 이야기가 종종 들린다면 그건 문제가 있습니다. 음식점이 너무 유명하면 그 명성을 유지하기 위해 신경 써야 할 게 참으로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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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sted by ★입질의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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