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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들어가기에 앞서 저는 냉면을 그렇게 좋아하는 사람도 아니고(특히 평양냉면은 더더욱 ^^)
이북음식에 대한 향수가 있는 세대도 아니며 전문가는 더더욱 아니라는 방패막이를 스스로 쳐놓고
시작해 보겠습니다. ^^; 평양냉면에 대해 심오한 고찰을 원하셨다면 번짓수가 잘못 됐을지도 모르
지만 궁금하지 않습니까?^^ 평양냉면에 대해 개인적인 입맛이란 이유로 편견이 없잖아 있었던 것도
사실이고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던 사람의 시식기라는 점에서 말입니다.
3대째 내려온다는 평양냉면의 본가, 장충동 평양면옥
평양면옥은 실로 오랜만에 찾았습니다. 제가 이 집을 처음 찾았던 적이 한 5년쯤 됐으니깐 세월이 많이 흘렀네요.
이제는 정통을 앞세운 집들의 특징으로 자리잡은 듯한 풍경이랄까요.
오래된 외관과 함께 각종 매스컴의 출연도 빼놓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간 참 많이도 출연했네요. 갠적으로 방송출연한 집들 이렇게 간판 내세운걸 달갑게 생각하진 않지만 뭐 어쩌겠습니까.
이것도 세월의 흔적이라고 한다면 흔적이겠지요.
이 날은 평양면옥을 20년씩이나 다녔다는 지인들과 함께 찾았습니다.
저도 일요일 점심시간이면 늘 이곳을 지나치기에 백발이 허연 어르신들이 쫄쫄쫄 줄을 서가면서 먹는 진풍경을 봐왔었는데
오늘은 어째 분위기가 썰렁합니다. 얼마전만 해도 이 정도까진 아니였는데 저기 보이는 것은 메밀 제분소인가요.
그 앞에 놓여진 통들이 무려 9개씩이나 덩그라니 쉬고 있다는 것도 좀 처럼 보지못한 광경인데 말입니다.
점심시간치곤 그리 이른편도 아닌데 테이블이 곧 잘 비어 있습니다. 옆쪽에 방들은 아예 자리가 널럴하구요.
뭐 최근에 평양냉면가들의 지각변동이 있었는지 어땠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수년간 이곳을 지나쳤던 제 눈에는 확실히 예전보다 손님이
줄어든 듯한 느낌입니다. 아무래도 세월이 흐르면서 이북의 향수를 그리워하는 세대들은 점차 줄어들겠고 그 자리를 대신해 이북음식에 대한
기억조차 없는 젊은 세대들이 메꿔나가겠죠. 그러다 보면 변해가는 사람들의 입맛에 맞춰나가야 할지도 모르구요.
결국 전통을 앞세운 맛이 세월의 무게에 못견뎌 변질될 수도 있을 것이란 염려가 들 법도 하겠지요.
이미 변했다고 느껴지는 평양냉면가들도 있다고 하니..
이 집의 냉면가격을 보니 그간 물가가 많이 올랐긴 올랐나 봅니다.
2006년 당시엔 7천원 했던 것이 2008년엔 8천원 하더니 9천원을 거쳐 현재는 한그릇에 만원을 받네요.
냉면 한그릇에 만원이라...사실 이 부분에 대해 선뜻 납득이 가질 않는다는 분들도 꽤 계실듯 합니다.
이 집과 쌍벽이라는 우래옥은 무려 만이천원이나 하는데 거기에 비해 이천원이나 싸지 않습니까? ^^;
예전만 해도 냉면 한그릇을 만원주고 먹는다는 것에 심한 거부감을 가졌던 나.
오늘은 그런 맘을 잠시 접어두고 즐기는데만 주력해 보겠습니다.
시키자마자 반찬이 깔리는건 5년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합니다.
평양냉면집에 가면 꼭 나와주는 면수.
함흥냉면집에서 내어주는 뜨겁고 진한 육수맛에 길들여졌다면 이 면수는 굉장히 닝닝구리하게 다가올 것 같습니다.
저 또한 그랬으니깐요. 그냥 숭늉을 마신다는 생각으로 입가심하기엔 괜찮습니다.
면수는 같은 집이라도 그날 면을 삶은 정도에 따라 그 탁도라던가 맛이 달라지는 걸로 알고 있어요.
면수란 게 면을 삶아서 내는 물인데 면을 많이 삶을수록 메밀의 향이 구수해지겠지요. 그러니 점심때 보단 저녁때가 더 진하겠구요.
이 날 먹었던 면수는 메밀향이 그윽하다고 할 정도의 느낌은 사실 못받았습니다.
아직은 시간상 많은 양의 면을 삶지 않아서 그럴수도 있겠다란 생각이 듭니다.
이북식 만두국 10,000원, 장충동 평양면옥
은은하면서 구수한 고기육수에 양념으로 조물조물 무친 고깃살이 고명으로 얹혀져 나왔습니다.
총 다섯개의 평양식 만두가 들어갔구요. 굳이 가격으로 따지자면 개당 2천원? ^^;
그렇게 계산은 안되겠죠. 수시간동안 고은 육수가 들어갔으니 그게 반절은 먹고 들어갔을겁니다.
평양냉면 육수가 그렇듯 만두국에 들어가는 육수또한 흡사 맹물을 연상시킬 정도로 맑디 맑습니다.
행여나 싱겁지 않을까 하는 걱정은 한술 떠본 후 기우였음을 알았어요. 적당히 간이 되어 있었고 은은하지만 엷지않은 국물맛이 만족스럽습니다.
평양식 만두는 두부 만두라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두부가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한데요.
일전에 맛봤을 땐 숙주의 비중이 지나치게 높은대다 어딘가 모르게 꼴아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는데 지금 맛 본 만두는 두부양이 많았고
대신 돼지고기의 존재감은 그만큼 줄어들었지만 마르지 않은 촉촉함과 꽉찬 느낌에 흡족하였습니다.
평양비빔면 10,000원, 장충동 평양면옥
소량의 육수를 붓고 양념과 고명을 얹혀서 나온 비빔면으로 함흥식과는 또 다른 느낌을 줍니다.
고명은 물냉면과 동일하게 쇠고기 편육 2점에 돼지고기가 2점이 들어갔어요.
메밀로 만들어진 평양냉면의 면빨
양념맛은 기대에 못미쳤습니다. 아내도 저와 비슷하게 느꼈는데요.
어쩌면 분식집 쫄면의 양념이 더 낫겠다란 생각이 들 정도로 먹는 내내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하였습니다.
원래 양념이란게 그 자체가 강하고 개성이 있다 보니 개인적인 호불호가 갈릴 수 있겠지요.
어쩌면 이 집의 양념맛을 탓할 게 아니라 새콤달콤한 맛에 길들여진 우리의 입맛을 탓해야 할지도 모르지만요.
어쨌든 비빔면에서 평양식 양념의 심오한 맛을 느끼기엔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평양냉면 10,000원, 장충동 평양면옥
평양냉면의 특징인 굵은 면빨, 멀건 육수, 싱겁고 닝닝한 맛.
동네 분식집 냉면이나 함흥냉면에 익숙했던 입맛으로는 도저히 이해불가인 맛으로 다가올지도 모릅니다.
각종 인공첨가제에 시고 쏘는 강한 육수맛에 길들여져 있으니 이런 멀건 육수는 아무래도 적응하기가 쉽지 않겠죠. 저도 아직까진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 날 평양냉면은 5년전에 맛봤던 그 닝닝구리한 느낌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저와 아내는 물론 20년간 이 집을 들락거렸던 일행들도 비슷하게 느꼈다는데..
어느것이 맞는진 몰라도 이번에 나온 육수는 간이 충분히 되어져 나온듯한 느낌이였어요.
예전에 맛봤을땐 너무 닝닝했거든요. 염도조절이 들쑥날쑥했던 탓인지 아니면 육수의 컨디션이 매일 달랐던 탓인지는 모르지만 말입니다.
간이 되어 있으니 예전에 느꼈던 그 닝닝구리함 대신 은은한 육수맛을 느끼는데 좀 더 집중할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그때는 간의 세기도 낮았고(거의 못느낄 정도의) 육수의 온도 또한 낮아서 여러모로 좋지 못한 느낌이였는데 이 날 맛 본 평양냉면은 생각보단
이질감이 덜 했다랄까요.
이러한 점들이 전통의 맛을 기억하는 세대들에겐 실망감으로 다가올 수도 있겠죠.
또 저 같이 평양냉면에 익숙치 않은 분들이 먹기엔 생각보단 입에 맞는듯한 느낌일 수도 있고.
어쩌면 변화하는 현대인의 입맛에 맞춰 개량된 평양냉면 육수일까요? 오랜만에 찾은 저로선 쉽게 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편육은 쇠고기가 두점, 돼지고기가 두점이 들어갔고 오이와 무, 삶은 달걀등이 올려졌습니다.
저는 달걀 노른자가 국물에 퍼지는걸 무척 싫어하다보니 사진찍은 후 미리 빼놨는데, 냉면 먹을 때 노른자부터 먹어줘야 메밀에 의한 위장을
보호해 준다는 유언비어(?) 따위는 별로 믿고 있지 않습니다. ^^;
저는 냉면을 다 먹고 난 뒤 달걀을 먹어요. 이건 어디까지나 개인의 취향차이일 뿐 ^^
"가위로 잘라드릴까요?"
내어올때 가위로 자르겠냐는 직원분의 말을 단칼에 거절한 지인..
20년간 평양냉면 마니아를 자처했는데 그게 어디가겠어요? 면에다 가위질을 한다는 건 결코 있을 수 없다고 말하지요.^^
이미 끊어진 면을 입으로 받아들일 때의 질감은 한창 신나게 영화를 보던 중 광고로 끊어버리는 맥빠지는 기분이랄까.
물론 개인적인 느낌의 차이겠지만 함흥은 몰라도 평양냉면은 굳이 가위로 자르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적당히 이빨로 끊어 먹을 수 있는 과하지 않은 쫄깃거림과 입술로도 쉽사리 끊어지지 않는 탄력의 균형짐이랄까..
일전에 맛봤던 황해도식 냉면(관련글 : 황해도식 냉면의 진수, 백령도 냉면을 맛보다)은 입술로도 끊어먹을 수 있었기에 비교가 되는 부분입니다.
평양면옥은 메밀 100%의 순면이 아니고 일전에 먹었던 황해도식 냉면도 메밀 80%에 밀가루 20% 여서(안주인님에게 직접 물어서 확인했음)
비율로만 따지면 큰 차이가 없을거라고 보지만 면빨의 찰기는 전혀 다른 느낌입니다.
원래는 발렛비를 2천원 받았다가 최근엔 주차타워를 건설하면서 오히려 천원으로 내린것 같아요.
음식값도 비싼데 발렛비까지 받는다고 불쾌해 하시는 분들이 좀 계십니다. 저도 예전엔 그런 생각을 했구요.
하지만 지금은 그런 맘을 버렸습니다. 강남에서 발렛비 받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며 같은 눈높이로 바라보니 맘이 조금은 편안해지더이다. ㅡ.ㅡ;;
사실 이 부분은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느낌들이 분분할 것입니다.
마치며..
평양냉면은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음식입니다. 이 맛에 중독되어 평양냉면 마니아를 자처하시는 분도 있을 것이고,
이 맛에 익숙치 않은 분들은 이게 왜 만원이나 하는지 이해못하시는 분들도 계시리라 봅니다.
특히 처음 평양냉면을 접하시는 분들이 평양냉면에 대해 혹평하는 경우를 많이 봤습니다.
저도 과거엔 그랬지요.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좀 바뀌었습니다.
적어도 그 음식에 대해 혹평하려 한다면 세번 이상은 먹어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특히나 독보적인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는 음식이라면 더욱 신중할 필요가 있으니 말입니다.
여기엔 옛 고향의 맛을 느껴보려는 백발 노인 분들도 계시지만 마니아를 자처하는 젊은 세대들도 상당히 많습니다.
점심시간이 되면 테이블이 남아나지 않을 정도로 사람들이 찾는 음식, 그속에는 그들만이 느끼는 특별한 메리트가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저 역시 신중해졌다고 봐야겠죠. 음식의 상태, 서비스, 청결도를 지적하는 거라면 몰라도 단지 내 입맛에 안맞다는 이유로 특정지역의 음식을
지적하는 것은 비난 보단 투정에 가까울테니깐요.
만원짜리 냉면을 바라보는 일부의 시선도 곱지 않습니다.
"어떻게 냉면을 만원씩나 주고 먹어?"
그러나 이것은 편견일 수도 있겠죠.
우리는 레스토랑에서 만오천원짜리 스파게티를 비싸다고 생각하지 않고 주문합니다.
스파게티에 들어간 재료나 인건비, 부가가치등을 높게 평가해서일까요?
아니면 "원래 이정도 가격은 주고 먹어야 하는 음식이니깐" 라는 생각에서 일까요?
반면에 수십년간 이어져 온 전통 냉면은 두시간 반동안 사태와 양짓머리를 넣고 끓여낸 육수라 하더라도 만원이면 비싸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만오천원짜리 스파게티를 시켜먹는덴 별로 인색하지 않죠.
어쩌면 우리들은 처음부터 서양음식에 대해 호의적인 태도를 갖고 있는건지도 모릅니다.
저는 평양냉면의 맛을 여전히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예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땐 정말 별로라고 생각했던 이 음식이 이제는 "한번 정도는 더 먹어볼만하다" 라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글쎄요. 어쩌면 이것이 중독의 첫 단계일까요? 아니면 말그대로 한번만 더 먹어보고 그만두게 될까요?
아직은 제 자신도 알 수 없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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