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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로키 여행의 중심지 밴프. 그곳에서 특별하고도 기분좋았던 식사가 있었습니다. 9월의 캐나다는 오후 9시를 넘겨야 날이 어두워집니다. 설레임을 안고 들어온 캐나다 로키의 중심지인 밴프. 이곳은 동화책 속에서나 나올법한 예쁘고 아담한 도시예요.
이른 아침에 거리를 나서면 상쾌한 공기와 함께 새소리가 저를 반겼고 밤이 되자 이렇게 근사한 다이닝 룸이 우릴 반깁니다. 하루종일 걷고 찍고 돌아다니느라 체력을 소진한 우리부부. 아침과 점심은 대충 때우느라 식사다운 식사를 많이 못했어요. 오늘 만큼은 편안한 분위기에서 하루종일 혹사당한 다리를 손으로 두들기며 이곳에서 숨고르기를 하였습니다.
밴프 파크로지의 다이닝 룸, 테라스(Terrace)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깔끔하게 차려입은 아가씨가 우릴 반깁니다. 그녀가 정중히 허리를 숙이며 손으로 가리킨 곳은 은은한 조명을 받으며 깔끔하게 셋팅되어진 화이트 테이블. 자리에 앉자 클래시컬한 음악이 흘러나오는 분위기하며 은은한 조명까지, 왠지 아름다운 밤이 될 것만 같습니다. ^^
이런곳은 정장을 차려입은 신사의 모습으로 나와 의자를 빼주며 그녀에게 "앉으세요" 라며 손짓해야할 것 같은 분위기. 양손으로 스커트를 훔치며 다소곳이 앉은 그녀. 신사는 온화한 미소와 촉촉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오늘 나와주셔서 감사했습니다."라고 해야할 것 같습니다.
그런 설레임으로 멋진 식사와 함께 이제 막 사랑의 서막이 시작되려는 연인의 모습. 이 테이블을 보니 상상이 되려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
"우리 뭐 묵노~"
"동까스 정식 이런건 없나"
그렇게 메뉴판을 보고 고르는데만 10여분 ^^; 사실 알버타에서 유명한건 역시 스테이크인데 몇 번 먹다보니 질린 상태라 뭔가 색다른 걸 먹고는 싶은데 음식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겠고..그렇게 고민하는데 웨이트리스가 오더니 뭐라고 쏼라쏼라 합니다.
"말 좀 천천히 해주세요 ^^;"
결국 우리둘이 고민싸서 해석한 결과. "저희 셰프께서 특별히 준비한 요리가 있습니다. 괜찮으시다면 한번 드셔보실래요?" 라고 하는거 같아요. 뭔지는 모르지만 메뉴판엔 없는 특별한 것이라고 하니 일단은 고개를 끄떡끄떡..
포크와 나이프가 여러개면 바깥쪽꺼부터 먹는다는 사실을 아내에게서 배웠다. ^^;
식전 빵인 바게트는 평범했지만 블루베리로 만든 버터는 맛이 독특했다.
Soup of the Moment $10
손대면 딜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멘트와 함께 뜨거운 접시에 써빙된 독특한 색깔의 이것은 코스의 시작을 알리는 스프. 접시위에 새우튀김은 다소 쌩뚱맞은 느낌이지만 스프에 찍어 먹으니 별미. 시금치와 같은 녹색 채소류를 갈아 넣은 스프위에 크림을 얹어 부드러운 느낌이지만 간이 다소 쎕니다. 뜨거울때 후루룩 몇 수저 먹었는데 맛은 있지만 스프가 식으면서 간은 더 짜져서 반쯤 남겼습니다.
Venison Carpaccio $12
전체요리로 나온 카르파치오는 발사믹 식초 드레싱과 상큼한 생딸기를 얹은 샐러드가 함께 제공됐다.
카르파치오는 도미나 쇠고기를 얇게 저민 후 레몬즙과 치즈를 얹어서 먹는 이탈리아식 육회. 그런데 이 날 먹었던 카르파치오가 사슴고기였다는 사실을 지금 글을 쓰면서 알게 되었어요. 먹었을 땐 그냥 맛있는 쇠고기 정도로만 여겼었는데 사슴고기도 육회로 먹으니 맛이 상당히 깔끔합니다.
함께 곁들여진 버섯의 풍미도 좋았지만 특히 파르미지아노(이태리 북부 파르마 지방에서만 생산되는 치즈)의 풍부한 향이 카르파치오를 더 빛나게 해줬던 조연! 갠적으로 굉장히 흡족했던 에피타이져입니다. ^^
Trio of Atlantic Salmon $13
두번째 전체요리는 슬라이스 된 연어와 다져서 만든 연어까지 연어의 풍미를 한껏 느낄 수 있었던 모둠요리. 상큼한 소스도 좋았고 무엇보다 연어의 선도에 감탄. 굉장히 신선했다는 점과 소스와 궁합이 완벽했다는 점.
중간에 열매같이 생긴건 몰래 카메라에 쓰고 싶을 정도로 극악스런 맛. 먹자마자 표정이 일그러지지 않으면 용자. ^^; 매우 짜고 시큼하고 하여간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합니다. 전 아주 조금씩 씹어 먹었는데 나름 좋았어요.
딸기 셔벗
메인이 나오기 전 상큼한 셔벗으로 입안을 정리. 잘근잘근 씹히는 딸기와 민트의 청량감도는 향이 입안을 개운하게 해주는 동시에 럼이 들어가 있어 향이 좋습니다.
메인요리 Seafood Plate 가격 미정
셰프가 권하는 메인은 어떤걸까 기대를 했는데 나온건 캐나다 로키의 음식치곤 좀 의외였던 씨푸드 플래닛. 알버타주는 바다가 없는 내륙이여서 신선한 해산물이 귀합니다. 대부분 공수받은 해산물들은 거의 냉동일 수 밖에 없어요. 지금 요리에 쓰인 해산물도 생물은 아니라고 봅니다. 캐나다 로키에선 유명한 알버타 비프 스테이크를 먹는게 나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셰프가 자신있게 내놓은 것이기도 하고 마침 스테이크가 물려 있던지라 알버타에서 먹어보는 해산물 요리에 기대가 갔습니다. 아마도 셰프가 겨울 시즌을 맞이해 개발중인 메뉴를 우리에게 처음 권해보는 듯 한데 나올때부터 눈길을 끌었던 저 푸짐한 양. 앞 접시에다 차례대로 서브해줍니다.
메쉬 포테이토와 아스파라거스 등 곁들인 야채는 먹음직스럽게 구워져 나왔고 새우, 연어, 랍스터, 관자는 식재료 구성에 비해 특별한 테크닉을 발휘했다기 보다 재료 본연의 맛을 느낄수 있는 형태의 요리입니다. 매우 단순한 조리로 보이는데 양은 푸짐하지만 기대했던 디스플레이에선 다소 실망.
소스는 위에서 부터 허니머스터드, 홀란다이즈, 랍스터소스. 특히 홀란다이즈 소스가 고소하니 입맛에 잘 맞았지만 칼로리의 압박이 느껴지는 그런 맛이기도 합니다. ^^
두툼한 연어, 랍스터, 새우와 관자로 구성된 씨푸드 플래닛
저 두꺼운 연어 한조각. 셰프께서 자신있어 할만해요. 익힘이 퍼펙트합니다. 생선살 익힘 정도. 정말 어렵잖아요. 고기 구워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스테이크는 좀 덜 익어도 상관없는데 생선 스테이크가 덜 익으면 먹을때 정말 불쾌할 수 있고, 또 과하게 익히면 푸석해져서 매력이 떨어집니다. 그래서 중심부는 촉촉하면서 보드라운 육질을 가지도록 절묘한 조리 타이밍을 계산해야 하는데 이것도 생선 토막의 굵기마다 다르니 참 어렵습니다. 아무튼 연어는 정말 대만족!
랍스터는 치즈 그라탕처럼 해서 구웠는데 탱글탱글한 육질이 좋긴 하지만 치즈 때문에 랍스터 맛은 가렸어요. 치즈는 아예 올리지 않았으면 싶었고 아스파라거스는 너무 익혔습니다. 숨이 완전 죽어버린 흐믈흐믈한 상태.(젤 좋아하는 건데 ㅠㅠ) 그리고 연어는 식으니 약간의 비릿함과 흙냄새가 났는데 이건 제 탓도 있습니다. 원랜 막 조리되어 나올때 빨리 먹으면 맛이 좋은 연어였는데 사진 찍느라 시간을 허비해서 그런것도 있습니다.
관자는 정말 정말 정말~~~~~~ 아름다운 맛. 입에 넣으면 절로 눈이 감기는 그런 맛. 왠만하면 칭찬을 안할려고 했지만 관자와 연어는 엄지손가락 치켜 올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미묘한 굽기의 차이다 보니 이런건 셰프의 그날 컨디션에 따라 결과물은 판이하게 달라질 여지는 있습니다. 제가 갔을땐 관자가 퍼펙트 했지만 이 글 보고 찾아간 여러분들 앞엔 고무같은 관자가 나올수도 있고, 그건 아무도 모릅니다. ^^;
디저트론 카라멜 시럽을 얹은 푸딩 종류인데 정확한 명칭을 모릅니다. ㅠㅠ
설탕 공예가 인상적이였던 푸딩.
커피는 평범한 편. 함께 곁들여져 나온 쿠키는 차라리 없는게 나을 뻔 했고(배도 부른데 맛도 없는편) 수저로 표면을 깨트리니 아그작~ 소리가 나면서 그 안에 연두부같은 물컹한 푸딩이 들어 있습니다. 다소 과하게 달았지만 그래서 아메리카노와 궁합은 잘 맞았던 디저트로 기분좋게 마무리하였습니다.
지금쯤이면 수많은 스키, 보드광들이 밴프를 찾을텐데요. 겨울을 맞은 밴프는 지금쯤 눈덮인 새하얀 세상이 되어 있을겁니다. 이날 둘이서 먹은 음식값은 130불 정도. 캐나다 물가를 감안, 호텔 레스토랑의 다이닝 코스치곤 생각보다 비싼느낌은 아닙니다. 전체부터 후식까지 먹는데 3시간이 걸렸지만 이렇게 천천히 여유를 갖고 식사를 하니 여행의 피로도 쌱~ 풀리고 기분전환이 되었어요.
저에겐 다소 사치스러웠지만 자주 있는 식사도 아니였고 하루종일 제 수발 들어주느라(옆에서 촬영 거들어주는등..) 고생한 아내가 기분좋은 시간을 가졌으니 충분히 만족합니다. 서비스도 매우 훌륭한 편. 밴프를 방문할 예정이라면 이런 분위기에서의 식사, 한번쯤 참고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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