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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고 숙소 체크 아웃에 앞서 회 뜨기에 들어갔습니다.
사실 이 날 게스트하우스는 주방 아주머니가 갑자기 그만두는 바람에 손님 받으랴, 픽업하랴 매우 분주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직접 회를 뜨기로 합니다. 마침 토요일이라 평일 날 찾았던 많은 낚시꾼이 마라도를 떠났고 잠시 후면 주말을 맞아 입도하는 꾼들이
들어오므로 그 사이 한산한 시간을 틈타 회와 함께 점심을 먹으며 마라도 일정을 마무리 지어볼까 합니다.
마라도 낚시여행 이틀 차, 아내가 낚은 긴꼬리벵에돔을 포함해 총 세 마리를 뜨기로 합니다.
가이드님이 기본적인 손질을 해주시고 저는 바통을 이어 주방에 들어갔습니다.
포를 떴는데 칼이 제 손에 잘 안 맞아 혈합육 일부가 깎였습니다. (핑계는 만만한 칼이 제격 ^^;)
껍질 벗기다가 저렇게 혈합육이 깎이면 아무래도 비주얼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이 회를 보고 '때깔 죽인다.'고 하는 건 순전히 붉은 혈합육 때문이니 말입니다. 생선은 혈합육과 껍질 사이에 엷은 막이 하나 더 있는데 그것까지
살려서 벗겨 내면 진정 회 치는 달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저는 그렇게 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고 기복이 심해요.
역시 칼 컨디션이 중요합니다. (또 칼 타령 ㅎㅎ)
그런데 회를 치다 보니 손바닥에 희한한 느낌이 듭니다.
사실 제가 회를 쳤던 대부분은 숙성된 횟감이었습니다. 낚시하기 바쁘다 보니 낚으면 집으로 가져와 회 뜨는 일이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현장에서 활어회를 떠본 경험은 생각보다 많지 않더군요. 이 벵에돔은 워낙 활력이 좋아 포를 뜨는데도 막 움직입니다.
거짓말이 아니에요. 저렇게 포를 떠 놨는데도 막 펄떡펄떡 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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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순전히 거짓말이고 ㅋ
위 사진처럼 손을 살짝 대고 칼을 넣다 보면 근육이 파르르 떨리고 꿀렁꿀렁하는 게 느껴질 정도예요. 아내에게 보여주었더니 기겁하고 돌아서는 아내.
뒤늦게 파르르님도 카메라를 들었지만, 그때는 근육의 파르르 함이 멈췄습니다. 어차피 사진으로 잡아낼 수도 없고.
주방 아주머니가 없자 게스트하우스 사장님이 끓여 준 만두국.
양이 어마어마하죠?
지금 숙소에 남아 있는 손님이 대략 열 분 정도. 거기에 맞춰 끓인 것 같습니다.
이렇게 사후경직도 안 된 활어를 뜰 때는 최대한 얇게 저미듯 떠야 질기지 않은데요.
칼이 안 들어서 그만 조지고 말았습니다. 거의 조사버린 수준 ^^; (칼 타령 좀 그만 ㅎㅎ)
살결에서 찰랑찰랑함이 느껴지시나요? 이건 쫄깃한 맛을 넘어 찰랑찰랑합니다.
입에 넣으면 부드럽고 말캉한 질감이 혀에 감기는데 씹으면 촘촘한 결에서 느껴지는 탄력까지. 그 탄력이 워낙 강해 씹는 맛이 극상입니다.
그런데 맛은 솔직히 제 기준에서 미달입니다. 왜냐하면, 별 맛이 느껴지지가 않아요. 씨알이 잘아서 그런 것도 있지만, 혹자는 생선회를 씹는 맛으로 먹고
그것이 우리나라 사람들이 선호하는 맛이지만, 이 벵에돔 회는 즉살 후 바로 쳐서 감칠맛은 잘 안 느껴지는 순도 높은 활어회입니다.
보통 횟집에서 활어회를 낼 때는 칼 등으로 대가리를 한 방 때려 기절시킨 후 몇 분 뒀다가 뜨기도 하는데요.
여기서는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고 바로 떴으니 사후경직이 일어날 틈이 없었던 겁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런 회가 싱싱하다며 좋아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싱싱한 회라기보다는 그냥 쫄깃한 생선회일 뿐이지요. 어쨌든 그렇다 하더라도 평소 맛보기 어려운(?) 벵에돔 회임에는 틀림없습니다.
테이블이 두 개라 옆 테이블과 나눠 먹었습니다.
보통 낚시 민박에서는 회가 저녁에 나오지만, 점심에도 회가 나오느냐며 손님들이 반기는 눈치.
이 벵에돔 회는 2박 3일 동안 우리 부부가 불황 속에서 건진 눈물 젖은 벵에돔이기도 했습니다.
말캉하게 씹히는 벵에돔 회. 탄력이 너무 좋아 오래 씹게 되니 그 속에서 나오는 미묘한 생선즙도 함께 맛보았습니다.
여기서 더 쫄깃했다간 턱 운동 하겠어요.
그렇게 눈물 젖은 벵에돔 회 맛을 보고 숙소를 나서나 눈부신 마라도 풍경이 반깁니다.
해상 날씨는 안 좋은데 하늘은 맑고 파라네요. 낚시는 쥐약이지만, 사진빨은 잘 받아 관광객들에게 아주 좋을 날씨입니다.
이날 예보는 북서풍이 아주 강하게 분다고 나와 있는데 보시다시피 포인트에는 대낮부터 벵에돔 낚시를 즐기려는 꾼들이 꽤 있습니다.
대한민국 국토최남단 기념비
이제 짐을 싣고 선착장으로 향합니다.
마라도에서 바라본 한라산이 눈부시게 아름답다.
산방산과 한라산이 동시에 보이고
무슨 말이 필요할까요. 이런 풍경을 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인 것 같습니다.
살레덕 선착장에서 바라본 제주 풍경
낚시는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은 바람이지만, 그 바람이 만들어낸 백파는 최고의 풍경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살레덕 선착장, 제주 마라도
멀리서 유람선이 뒤뚱거리며 오는 모습이 위태해 보이지만, 아직 끄떡없는 모양입니다.
바로 앞 파도가 부딪혀 튀어 오르는 곳은 마라도 최고의 명포인트인 살레덕입니다. 두 명이 함께 낚시하기에 적당하며 짧은 시간 안에 4짜 벵에돔을
마릿수로 낚을 수 있지만, 그만큼 위험이 따르는 곳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북풍이 몰아치는 날에는 낚시할 엄두가 안 나는 곳.
이날 우리 부부를 배웅해 주신 가이드님. 그리고 옆에는 가이드님이 기르는 골든리트리버.
아내가 키우고 싶어하는 1순위이기도 하지요. 2순위는 렉돌(고양이) ^^
사진은 공 던지기 직전.
던지면 곧바로 달려가 물어다 주는 똑똑한 견.
이렇게 마라도 낚시 여행은 일정이 마무리되었습니다. 높은 너울에 배 타고 건너갈 때는 바이킹을 기대했고 거기에 기겁한 일부 승객의 모습을
구경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시시하게 끝났습니다.
우리 부부는 파르르님과 함께 제주시 인근 횟집에서 방어회로 회포를 풀었습니다.
사실 마라도에서 제대로 된 긴꼬리벵에돔 회를 대접하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있었는데 오히려 방어회를 얻어먹게 된 것입니다.
얼마 전 회식 자리에서 맛보고 반해버렸다던 이 집 방어회는 정말 '방어회의 재발견'이라 해도 될만하였습니다.
맛있게 먹은 음식, 감동이 있는 풍경, 그리고 짜릿한 손맛을 공유하고자 하는 이들의 마음은 언제나
"옳아요."
천성이 좋은 사람은 자기가 격은 좋은 일을 남과 공유해 함께 느끼고 싶어 하는데 파르르님이 그중 한 사람입니다.
PM : 9시. 제주 공항
그리고 또 한 사람이 있습니다. 2박 3일간 우리 부부의 포인트를 보필해 주신 마라도 게스트하우스의 낚시 가이드님께도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하필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주방 아주머니가 그만둔 시점에 손님이 몰려 평소 안 하던 음식을 급히 만들어야 하는 등 아주 혼을 빼신 것 같은데요.
그 와중에 챙겨주시려고 노력하셨고 우리가 손맛을 못 보고 돌아오면 안타까워해 오히려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우리가 죄송했습니다.
마라도에서의 낚시 경험은 제게 있어 또 다른 자산이 되었으리라 생각해요.
비록 적잖은 수업료가 들었지만, 그것으로 한층 성숙해질 수 있다면 충분할 것입니다.
이제 우리 부부는 또 다른 곳을 향해 나아갑니다. 어디인지는 비밀. ^^ 다음 조행기를 보시려면 여기를 클릭!
#. 마라도 숙박과 낚시 문의
마라도 게스트하우스 064)792-7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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