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째썰기(세꼬시) 생선회 문화의 덫


 

 

어릴 때부터 해산물을 거리낌 없이 받아들인 제 식성에는 부산을 고향으로 둔 부모님 덕이 가장 컸습니다. 방학이면 어김없이 놀러 갔던 부산과 창원, 마산 일대에서 자연스레 그곳의 식문화를 접했습니다. 차례상에 올린 눈볼대(일명 빨간고기)의 담백함, 짚불에 구운 꼼장어 구이, 예전에 제 블로그에도 올린 추억의 대합 양념구이까지. 어릴 때라 음식에 대한 남다른 관심도 수산물에 관한 지식도 없었지만, 부모님 따라 수산시장에서 먹었던 회 한 접시와 멍게, 해삼의 맛은 어린 마음을 흔들어 놓기에 충분할 만큼 인상적이었습니다. 당시 수산시장 좌판과 횟집에 써 붙인 몇몇 메뉴는 일제의 잔재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뭐 지금도 크게 나아지지는 않고 있죠. 바로 봄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도다리 세꼬시'와 포장마차 단골 메뉴인 '아나고 세꼬시'가 그러합니다.

 

세꼬시는 뼈꼬시로도 불립니다. 생선을 모르는 혹자는 "세꼬시 주세요."란 말에 물고기 이름으로 착각하기도 하지만, 예부터 우리는 작은 물고기를 뼈째썰어 즐겨 먹었고 지금도 주당의 입맛을 돋우는 안주감으로 입지를 굳혔죠. 그런데 세꼬시란 말(발음)은 일본에서도 생소합니다. 일본 사전에는 ‘せごし(背越し)'로 표기돼 있는데 이를 발음하면 '세고시(Segosho)'가 됩니다. 여기서 일본 사람들은 '고(ご)'나 '조사로 쓰이는 가(が)'를 부를 때 'ㄱ'과 'ㅇ'의 중간 형태로 발음하기 때문에 '세고시'가 아닌 '세오시'에 좀 더 근접합니다. 이 말이 우리나라로 유입되면서, 경상도 특유의 된소리가 작용해 '세꼬시'가 된 것으로 추측합니다.

 

어쨌든 세꼬시는 생선 이름이 아닌, 회를 써는 방법의 하나로 포를 뜨지 않고 그대로 뼈째썰어 뼈의 고소함을 빌린 것입니다. 살밥이 꽉 찬 제철 생선을 포 떠서 썰어 먹으면 그 만큼 좋은 생선회가 없겠지만, 우리 주변에 나는 횟감은 어종에 따라 엄연히 제철이 다르기에 일 년 열두 달 내내 크고 통통한 횟감만 잡히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작은 생선은 작은 생선대로 뼈째썰어 특유의 꼬실꼬실한 식감과 뼈의 고소함을 살리는 형태로 발전하였던 것이지요. 대표적인 뼈째썰기 회를 꼽으라면 봄철에 어김없이 찾아오는 도다리가 있고, 지금은 인기가 다소 시들하지만, 한때 아나고라는 이름으로 유행한 붕장어가 있습니다. 그 외에 자리돔과 전어, 볼락, 간재미도 뼈째썰기 용으로는 빠질 수 없는 횟감입니다.

 

 

문치가자미(일명 도다리), 통영 중앙시장

 

뼈째썰기에 적당하려면 첫 번째로 뼈야 연해야 합니다. 그런데 생선 뼈가 연해질 시기는 주로 산란 직후입니다. 산란을 위해 얕은 바다로 들어왔을 때가 가장 연해질 시기이고, 알을 낳고 산후조리를 하다 깊은 바다로 빠지면 그때부터는 다시 뼈가 억세지므로 뼈째썰기로는 적당하지가 않습니다. 두 번째는 될 수 있으면, 어른 손바닥보다도 작은 어린 개체라야 하는데 여기서 뼈째썰기(세꼬시)는 회 문화의 덫에 빠지기 시작합니다. 전어같이 워낙에 개체 수가 풍부한 어종이라면, 야생의 번식력으로도 어느 정도의 남획은 상쇄되지만, 해당 어종의 어획이 '산란철'에 집중될 경우, 어린 치어의 남획과 함께 알배기의 씨를 말리기 때문에 흉어를 피할 수 없게 되며, 급기야 자원 고갈에 이르게 됩니다. 지금의 명태처럼 말이지요.

 

※참고

명태는 명란젓과 동태탕의 이리 때문에 산란철 남획이 많았고 특히, 노가리라 불리는 어린 명태의 자원을 심각하게 훼손했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 해역에는 자취를 완전히 감추게 된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현재 대도시권의 횟집이 주로 내 건 '봄도다리 세꼬시'의 주재료는 매우 다양합니다. 70% 이상은 양식산 강도다리이고, 나머지는 중국산 양식 돌가자미, 심지어 손바닥만 한 양식산 광어를 도다리 세꼬시로 사용하는 상술도 빚어지지만, 어쨌든 이들 횟감은 양식이고 언제든 공급이 가능하기 때문에 뼈째 썰어 먹는들 별문제는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진해와 창원, 부산 일대에는 자연산 문치가자미(일명 도다리)를 뼈째 썰어 먹는 수요가 오래전부터 꾸준히 있었습니다. 봄도다리가 쑥국으로 명성을 날리는 와중에도 회를 좋아하는 주당들은 자연산 도다리 세꼬시를 찾고 있기에 그 수요를 충당하고자 아직 산란 기능도 갖추지 못한 어린 도다리를 무분별하게 잡아다 내 팔고 있으며, 이에 대한 제재가 없는 실정입니다.  

 

현재 문치가자미(일명 도다리)의 수산 포획 금지 체장은 15cm로 마련돼 있지만, 실제로 항이나 어판장에서 기준 미달의 물고기를 잡았거나 규정 위반을 감시하는 인력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인력이 부족하다면, 포상금 제도를 위해 예산을 편성하고 신고제를 적극적으로 운영하면서 우리 연안의 불법 어로 행위를 조금은 방지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애초에 그럴 의지가 없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입니다.

 

속칭 세꼬시라 불리는 회 문화는 부족한 회 맛을 뼈의 고소함으로 메꾸는 지혜로운 처리 방식이지만, 결과적으로는 어린 치어의 남획을 부추김으로써 해마다 문치가자미의 어획량이 떨어지는 현상을 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봄이면 어김없이 우리 바다를 찾아와 쑥국과 횟감이 되는 문치가자미. 남해 일대에는 예부터 '도다리' 혹은 '참도다리'로 불렀습니다. 그러나 계속되는 남획으로 인해 문치가자미의 어획량은 해마다 곤두박질쳤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종묘를 방류함으로써 일단락되었지만, 종묘를 생산해 방류하는 데는 막대한 예산이 들기 때문에 이는 바다에 돈을 뿌려가며 인공호흡기를 달고 버티는 것에 불과합니다. 

 

근본적인 대책은 불법 어로행위의 감시를 강화하고 신고와 포상 제도를 마련해 어린 치어의 남획을 근절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도다리와 같은 자원이 걱정되는 일부 어종에 한해서는 세꼬시 회 문화를 지양하는 것도 방편이 될 수 있습니다. 법으로 규정한 15cm 미만의 어린 도다리는 잡지도 말고 팔지도 말아야 하며, 그것을 사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소비자가 먼저 인식해 '자연산' 도다리 세꼬시를 찾지 않는다면, 불법 위판도 줄어들 것이라고 봅니다.  

 

지금은 자원 보존을 위해 문치가자미(도다리)의 금어기를 실시 한 지 몇 년이 지난 시점입니다. 그런데 이 금어기도 실제 산란 시기와 맞지 않는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습니다. 남해산 문치가자미의 금어기는 12월부터 1월까지입니다. 하지만 2~3월에 잡힌 문치가자미 중 일부는 여전히 산란하지 못한 알배기가 포함돼 있습니다. 금어기가 금어기로서 제구실을 하고 있다면, 도다리 쑥국에 알이 나오지 말아야 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못한 것입니다. 또한, 동해산 문치가자미의 금어기는 남해보다 한 달가량 늦은 2월로 지정해 놓았으니 12~1월에 금어기를 맞은 남해 어선이 동해로 넘어와 잡이를 하고 내다 파는 경우도 부지기수입니다. 이 시기에 잡힌 동해산 문치가자미는 대부분 알배기라 금어기로 지정한 기간이 실제 산란 시기와 맞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뼈째썰기(세꼬시) 회와 알배기는 미식에서 참으로 매력적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뼈째썰기와 알배기를 먹는 식문화로 인해 해양 생물의 몇몇 어종은 멸종 위기에 처했습니다. 알을 주로 먹는 날치는 전 세계적으로 품귀현상을 빚고 있어 열빙어(시샤모) 알을 갑절 이상 섞지 않으면 유통이 어려울 정도입니다. 명란젓과 이리(곤이는 잘못된 말)를 내어놓아야 하는 명태는 진작에 사라졌고, 알배기 주꾸미 역시 해마다 봄이면 쌍끌이 어선으로 남획하고, 가을에는 수많은 낚싯배가 쓸어가고 있어 언젠가는 자원 감소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으며, 심지어 그 많던 자리돔도 제주도 관광 인구의 폭발적 증가와 매스컴 보도로 인해 해마다 어획량이 줄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뼈째썰기와 알배기가 실종된 식문화를 받아들이기란 매우 어려울 것입니다. 그래서 어족 자원의 관리가 필요한 일부 어종(자연산 도다리, 주꾸미 등)에 한해서는 소비자, 횟집 종사자, 상인이 합심해 뼈째썰기는 물론, 산란 철에 집중되는 소비를 줄여나갔으면 합니다. 더 나아가 다른 선진 수산국가가 그래 왔듯이 우리 나라도 어획량 규제를 합리적으로 설정하고, 감시를 강화해 후손에게 물려준 자원을 보호하는데 신경 써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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