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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의 충격" 강도다리 회
얼마 전에 먹었던 강도다리 회. 그 맛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충격' 이었습니다.
당시 강도다리를 먹으면서 받았던 맛의 느낌. 이것을 어떻게 전해야 객관적일 수 있을까? 고민에 고민을 해봤지만, 이렇다 할 해답을 구하지
못한 채 자판에 손을 올렸습니다. 입맛은 지극히 주관적이니 객관적일 수 없지 않나요? 라고 하기에 명백하게 느껴졌던 맛의 정체.
그 맛의 여운을 지우기 위해 설탕 발린 사탕까지 동원해야 했던 기억. 지금부터 강도다리 시식기를 올리겠습니다.
인천 연안부두 활어 시장
국내산 양식 강도다리
이날 횟집 사장님과 함께 활어를 구입한 다음 강도다리 한 마리를 공짜로 얻었습니다.
강도다리를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간략히 설명하겠습니다.
강도다리는 가자미목 가자미과에 속한 어류로 도다리의 일종입니다. 광어와 우럭 소비 일변도의 양식 산업에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 고안된 어종으로
동해, 제주도 등지에서 대량 양식되고 있는데요. 광어보다 육질이 좀 더 쫄깃해 차세대 양식 어종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자연산 도다리(문치가자미)의 경우 어획량이 일정치 않고 3~4월에는 대부분 쑥국용으로 소진되므로 횟감용으로는 강도다리가 많이 길러집니다.
해마다 봄이면 '봄도다리 세꼬시'라는 메뉴에 이 어종을 주로 사용하게 된 것도 대량 양식이 가능해서지요.
그래서 오늘날 횟집과 일식집에서 취급하는 '봄 도다리회'는 강도다리가 70% 이상 차지할 정도로 비율이 높습니다.
위 사진을 보면 강도다리는 두 눈이 왼쪽에 몰려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데요. '좌광우도' 법칙에서 광어와 같은 '좌광'입니다.
우리나라 연안에서 잡히는 20여 종의 가자미 중 유일하게 눈이 왼쪽에 몰려있는 종이지요.
일각에서는 강도다리를 광어 + 도다리의 교잡종으로 오해해 '광도다리'라 부르는데요. 강도다리는 천연 유전자로 교잡종이 아닙니다.
동해, 일본 북부, 사할린, 캘리포니아 해안에는 자연산 강도다리가 엄연히 서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오해가 생긴 까닭은 2008년에 시도되었던 광어 + 강도다리 교잡 성공이 영향을 미치지 않았나 싶습니다만, 정확한 진의는 저도 모릅니다.
당시 광어와 강도다리 교잡을 시도해 성공했다는 기사가 돌았으며 이들 어종을 양식화로 추진한다 하였으나 현재까지 아무런 이야기가 나오지 않은
것으로 보아 이들 교잡종이 양식에 실패했을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자연산 강도다리는 최대 전장 90cm까지 자라는 대형급 가자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시장에서 볼 수 있는 건 30~40cm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강도다리는 울산 등 동해 남부 지역의 기수역과 강 하구에 서식하고 있어 '강도다리'라는 말이 붙여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먼저 회를 뜨기 전에 대가리를 분리해 피부터 뺍니다. 이날 따라 유난히 색깔이 적나라하네요
먼저 무안측부터 포뜨기(오로시)를 합니다.
무안측(배부분) 전면이 하얗지 않고 등색의 일부가 침범한 것처럼 보이는 건 '흑화현상'으로 양식 강도다리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자연산 강도다리는 배에 흑화현상이 생기지 잘 않습니다. 하지만 작년에 자연산 강도다리와 흡사한 종묘를 생산하는데 성공해 앞으로는 자연산과
양식의 구분이 어려워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유안측(등)과 무안측(배)을 분리해 석 장 뜨기를 하였습니다.
사진을 보면 알집이 있는데요. 3~5월은 양식 강도다리도 산란철입니다. 봄 도다리쑥국 재료인 문치가자미보다 2~3달 늦습니다.
그러니 강도다리의 회 맛이 좋아지는 제철도 봄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바다 어류의 회 맛은 산란을 준비하며 살을 찌우는 시기가 제철이 되는데요. 이렇게 알이 차서 산란이 임박한 개체와 산란을 마친 개체는 어느 쪽이든
살밥이 제대로 차지 않았기에 엄밀히 말하면 제철 횟감이라 보기는 어렵습니다. 제 생각에 강도다리는 다른 도다리 종류와 마찬가지로 여름 이후에
맛이 기대되는 어종입니다.
유안측(등)도 오려냅니다.
등살(좌)과 뱃살(우)
도다리, 가자미, 광어 등 넓적한 생선은 등과 뱃살의 색상 차가 뚜렷하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유안측(등살)은 근육 색이 창백하고 칙칙하며 어둡지만, 무안측(뱃살)은 현미색을 띠면서 밝습니다.
그러한 차이를 알게 된다면, 썰었을 때도 이것이 등살인지 뱃살인지 알 수 있습니다.
작업하다 보니 도마에 피가 일부 묻어 있고 근육에도 조금 묻었는데요. 이는 그리 문제될 건 없습니다.
도마에는 늘 이물질이 묻어 있어 포를 뜨고 나면 껍질이 있는 쪽으로 대야 좋습니다. 근육에 묻어 버린 피는 키친타올 등으로 꾹꾹 찍어서 제거해주세요.
그마저 여의치 않으면 흐르는 수돗물에 재빨리 씻은 다음 면보로 물기를 제거합니다. 참고로 회를 물에 담가두는 건 안 좋습니다.
지느러미살이 붙어 있는 모습
껍질을 벗긴 모습입니다. 앞쪽에 어두운 건 등살이고 뒤에 두 개는 밝은데 뱃살(무안측)이 되겠습니다.
썰었더니 생각보다 많이 나와 일부는 포장했습니다.
일부는 횟집 사장님과 함께 맥주 한잔 하려고 뒀습니다.
이제 등살과 뱃살의 구분이 보이시나요? 왼쪽에 거뭇거뭇하고 칙칙한 색깔이 유안측(등살), 오른쪽에 희고 밝은 게 무안측(뱃살).
광어, 도다리 등 납작한 생선의 맛은 뱃살이 등살보다 맛있는 편입니다.
사진은 생고추냉이를 한 점 올려 간장에 찍었습니다만, 저는 그 전에 아무것도 찍지 않고 몇 점 맛보았습니다.
이제는 습관처럼 돼버렸는데요. 회를 맛볼 때 처음 2~3점은 아무것도 찍지 않고 죽이 될 때까지 씹어서 맛을 음미하였습니다.
강도다리도 그러한 과정으로 고유한 맛을 느낄 수 있었는데요. 그 결과는 조금 충격이었습니다.
예전에도 강도다리에서 비슷한 느낌을 받았는데 특히, 활어회로 먹을 때 그랬습니다.
다 씹고 넘기면 혓바닥이 떨떠름합니다. 꼭 떫은 감을 먹은 것과 거의 흡사했습니다.
재차 맛을 보았습니다만, 결과는 혀에 붙는 떫은맛만 늘어났을 뿐, 혓바닥에 붙어 좀처럼 떨어지질 않았습니다.
처음에 간장을 찍어 드시던 사장님도 제 이야기를 듣더니 그냥 맛보았고 미묘하지만, 떫은맛이 느껴졌다고 합니다.
사실 떫은맛은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양식 어류라면 조금씩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맛을 감지해 내기란 여간해서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평소에 먹는 생선회는 95% 이상 양식이므로 이미 이 맛에 적응돼 있습니다. 그래서 떫은맛을 느낀다는 게 좀처럼 이해되지 않고
쉬이 공감 가지도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자연산 회만 먹어오던 어부나 해안가 사람들이 양식 회를 접하면 그 맛을 느끼곤 합니다.
자연산 횟감에는 없는 '떫은맛'이 양식에는 있기 때문이지요. 그러니 제가 이 이야기를 하나마나 쉽게 공감도 가지 않을 것이고 특히, 강도다리를
수 없이 드셔 봤다는 이들에게는 더더욱 공감가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강도다리를 자주 먹지 않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이번이 두 번째인가 세 번째인가 싶은데요.
강도다리는 물론이고 평소에 양식 횟감을 먹을 기회가 적다 보니 어쩌다 가끔 먹는 양식 어류에서 미세히 나는 떫은맛을 느끼곤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맛본 강도다리 회는 덜 익은 감을 먹었을 때와 흡사할 만큼 떫은맛이 강해 이 맛의 출처가 무엇인지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감의 떫은맛은 류코데루페니딘-3-글루코사이드(Leucodelphenidin-3-glucoside)로 된 '탄닌(tannin)'이 담당한다고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강도다리에서 나는 떫은맛은 출처를 모르겠습니다.
혹자는 '얼마나 미각이 발달하면 떫은맛을 느끼느냐'고 비아냥거릴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미각의 예민함과는 크게 상관없다고 봅니다.
강도다리의 떫은맛은 평소에 접하지 못한 횟감에서 느껴지는 이질감일 뿐, 제가 특별히 미각이 뛰어나서 그런 맛을 감지한 것은 절대 아니니
이 부분은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평소 자연산을 위주로 드셔 왔다면, 누구든 이 맛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날 함께 시식한 사장님도 떫은맛을 느끼면서 이런 느낌은 처음 받는다고 하였는데요.
이러한 맛을 내는 근원이나 화학적인 성분에 대한 결론은 제가 아는 영역이 아니므로 뚜렷한 증거 없이 말하기에는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습니다.
또한, 강도다리라고 해서 모두 떫은맛을 가졌다고 결론을 맺는 것도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일 것입니다.
이날 인천 연안부두에서 가져온 샘플은 많고 많은 국내산 강도다리 중 하나였습니다.
사장님이 고른 한 마리가 재수가 없어 이상한 녀석일 가능성도 있으니까요.
진실은 알 수 없지만, 만약에 강도다리가 떫은맛을 가지고 있다 해도 일반 소비자들이 알아챌 방도 역시 없을 거라는 생각입니다.
이미 말했지만, 일반 소비자가 자연산만 먹어온 것도 아니고요. 결정적으로 소주에 초고추장에 쌈까지 듬뿍 싸서 먹는 생선회 문화가 자리 잡고 있어
만에 하나 불순한 맛이 있다 한들, 쉬이 알아차리기에는 먹는 방법에서 한계가 있으리라 봅니다.
시식을 마치고 집으로 귀가하는 40분 동안에도 이 떫은맛은 제 혓바닥에 붙어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이쯤 되자 떫은 감을 먹은 것과 비슷한 느낌이라는 게 명확해졌습니다. 마침 운전석 옆에는 사탕이 있었는데요.
네 개 정도 빨자 그제야 떫은맛이 혀에서 떨어져 나갔습니다.
하루 숙성한 강도다리
남은 건 집으로 가져왔습니다. 하루를 꼬박 숙성한 뒤 아내와 함께 먹었습니다. 그런데 웬걸요.
활어회로 먹었을 때의 그 떨떠름한 맛은 완전히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식감은 확실히 활어 때보다 물러져 있었으나 그때는 과하게 쫄깃하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오히려 지금이 먹기에는 적당했습니다.
맛도 감칠맛이 올라 고소하네요. 제가 평소 강도다리 회를 평가절하하는 쪽으로 글을 써왔다는 건 오래된 독자분들은 아실 겁니다.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하지 않았습니다만, 숙성한 강도다리 회는 상당히 맛있는 축에 속한다고 봅니다.
※ 결론 : 강도다리는 어느정도 숙성했을 때가 더 맛있었다.
제 입맛으로는 이렇게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날 횟집 사장님과 함께 새벽 시장을 돌면서 활어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뭔가를 바리바리 사주시더니 사양 말고 가져가라길래 일단 챙겨왔습니다만, 집으로 와서 펼쳐보니 이런 것들을 넣어주셨네요.
수조에 죽어가는 낙지가 한 마리가 있다고 말했는데 그것도 얼른 챙겨 주시고. ^^
덕분에 감사히 먹겠습니다만, 이것으로 무엇을 해 먹어야 할지 숙제를 남겨주셨습니다.
왼쪽부터 돌멍게, 전복, 낙지, 해삼, 멍게
얘네들을 어떻게 해 먹어야 맛있게 먹었다고 소문이 날까? 잠깐의 구상을 마친 뒤 요리를 시작하였습니다.
그 이야기는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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