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여름 자연산 제철 생선회 총정리(下)


※ 본 글은 월간지 'Den'에 기고한 내용입니다. 조만간 잡지 편집본으로도 올릴 예정이지만, 그전에 원문을 먼저 올리겠습니다.
    이 글을 기획하게 된 계기는 봄과 여름에 먹을 만한 제철 생선회를 전국 각지의 '검증된 식당'에서 찾아드실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따라서 특정 업소에 대한 정보가 나갈 수 있습니다. 본 글의 취지는 검증된 식당에서 검증된 자연산 제철 생선회를 접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함이며 양식과 자연산의 구별법과 생선회의 특징을 알리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생선회도 알고 먹어야 더 맛있어"
"흔한 생선부터 귀한 자연산까지 총정리"


상편을 못 보신 분들은 봄 여름, 자연산 제철 생선회 모두 모여라(上) ← 여기를 클릭.
하편은 동해와 제주도를 위주로 하였습니다.




■ 동해(5~8월 제철 생선)

"참가자미, 용가자미, 오징어, 강도다리, 쥐노래미, 붕장어, 숭어, 도다리(문치가자미), 벵에돔, 볼락, 돌돔"




#. 참가자미(양식 안 함)
가자미 가문에는 두 개의 문벌귀족이 살고 있었다.
하나는 <참가자미>라 부르는 가문이 있었고 다른 하나는 <용가자미>라 불리는 가문이 있었다.
이 두 귀족은 서로가 <참>이라는 벼슬을 놓고 다퉜다. 이에 지역에 따라 패가 갈리기도 했다.

속초, 강릉, 삼척 등 강원도 지방에서는 <참가자미>를 노랑 가자미라 부르고, 울산, 포항, 경주 등 경상도 지방에서는 노래이라 부른다.
반면에 속초, 강릉, 삼척 등 강원도 지방에서는 <용가자미>를 어구가자미라 부르고, 울산, 경주 등 경상도 지방에서는 이를 참가자미라 부른다.
왜 그렇게 갈렸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모두 자기네 지방에서 많이 잡히는 가자미를 참가자미로 추대하다 보니 생긴 현상이 아닐까 싶다.
참가자미가 됐건 용가자미가 됐건 중요한 건 두 가자미가 해마다 봄, 가을이면 호황을 맞는다는 사실이다.

즉석에서 썰어 먹는 회는 물론, 회무침과 물회에서 참가자미는 일반적인 가자미보다도 위상이 높다. 
이유는 특유의 쫄깃함과 씹을 때 고소함이 광어와 다른 매력이 있기 때문. 
일 년 내내 먹을 수 있는 양식 광어와 달리 참가자미는 전량 자연산이라 각별하게 다가온다.
제철은 봄부터 여름에 이르며 주산지는 강원도 속초에서 부산에 이르는 동해 라인이 모두 해당 된다. 반면에 서해와 남해에서는 보기 어렵다.

 

 

<사진 1> 참가자미(노랑가자미는 틀린 표현)

<사진 2> 용가자미(혹은 어구가자미, 포항가자미로 불린다.)

앞서 말했지만, '참'을 놓고 다투게 된 두 가자미 세력은 서서히 승부가 판가름나기 시작했다. 
원래는 노란 띠가 선명한 참가자미가 원조 참가자미였지만, 물량 공세 때문인지 이제는 용가자미가 사실상 참가자미로 군림하게 되었다.
이는 경상도뿐 아니라 전국적인 현상이다. 이쯤 되면 표준명 개명에 대해서도 재고해 봐야 할지도 모른다.
다금바리와 자바리의 관계, 문치가자미와 도다리의 관계가 그러하듯이 용가자미도 참가자미로 군림하면서 주객이 전도되는 현상을 만든 것 같다.
참가자미 산지로 유명한 경주와 감포에 가면 더욱 실감할 수 있다. 이들 횟집 수조에는 모두 용가자미가 들었지만, 상인들은 용가자미가 뭔지 모른다.

어류도감을 비롯한 학술지에서는 배에 노란 띠가 난 가자미를 참가자미로 기술하고 있고(사진 1)
자색 띠가 난 가자미를 용가자미로 기술하고 있다는 점을 참고하자.(사진 2)

동해 묵호 시장에서는 노란 띠가 난 참가자미를 맛볼 수 있고, 경주와 감포에는 자색 띠가 난 용가자미를 사용하는 참가자미 전문 횟집이
많이 있다.





#. 오징어(양식 안 함)
우리가 먹는 오징어의 정확한 명칭은 '살오징어'이다. 살오징어는 울릉도를 비롯한 동해가 주산지였지만, 지금은 서해에서도 많이 잡히고 있다.
오징어는 대표적인 난류성 두족류로 따듯한 물을 좋아하기 때문에 여름부터 가을에 잘 잡힌다.
소비자가는 그때마다 다르지만, 조업량이 괜찮을 때 활오징어 가격은 5~6마리당 만 원씩 하기도 했다가도 찬바람이 불면 1마리당 만 원씩 하는 등
조업량에 따라 가격 변동이 심하다. 일 년 중 오징어 회를 저렴하고 맛있게 먹으려면 여름부터 초가을까지가 좋다.


즉석에서 오징어를 썰어주는 좌판, 울릉도

싱싱한 오징어는 위 사진에서 보듯 '초콜릿 색'을 띤다. 희거나 불투명하게 변한 것은 그보다 선도가 떨어졌다고 보면 된다.

오징어 회는 오징어 전문점부터 횟집에 이르기까지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여기서는 별도의 업소 정보를 제외했다.





#. 강도다리(양식 가능)
강도다리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도다리와는 조금 다르다.
서울, 수도권, 내륙지방 할 것 없이 바다와 떨어진 횟집에서 ‘봄도다리 세꼬시’를 팔고 있다면, 십중팔구 강도다리일 확률이 높다.
일반적으로 도다리는 양식이 안 되는 걸로 알려졌지만, 강도다리는 대량 양식이 가능해 주변 횟집에서 쉽게 맛볼 수 있게 되었다.
일각에서는 광어와 도다리의 교잡종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이 아니다. 강도다리라 이름 붙여진 것은 강 하구에 잘 서식하기 때문이며 동해에서 다량
서식하고 있다.

비록, 우리 주변에서 맛볼 수 있는 강도다리는 90% 이상이 양식이라 고유의 맛을 느끼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동해의 수산시장을 찾으면, 앞바다에서
잡힌 자연산 강도다리를 만날 수 있다. 분명, 유통은 되고 있는데 자연산 강도다리를 대놓고 파는 전문점이 많지 않아 이를 맛보려면 수산시장 상인의
말을 듣고 사야 할 형편일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자연산과 양식의 구분법을 간략히 정리해 두었다.


<사진 3> 강도다리의 유안측

<사진 4> 강도다리의 무안측

위 사진은 모두 양식 강도다리이다. 일반 광어나 도다리와 달리 지느러미에 알록달록한 범무늬가 있는 게 특징.
이를 자세히 살펴보면 검정과 회색 무늬로 된 개체가 있는가 하면, 어떤 것은 검정과 노란색 무늬로 된 개체가 있다. 
강도다리가 양식인지 자연산인지 알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뒤집어서 배를 보는 것.
자연산은 티끌 없이 희지만, 양식산은 흰 배에 부분적으로 검녹색의 이끼가 껴 있다는 점이 광어의 자연산과 양식산 구분과 비슷하다.
또한, 자연산 강도다리는 지느러미의 노란색이 양식산보다 훨씬 진하고 두드러진다. 진노랑에 검은색 범무늬면, 자연산일 확률이 높다.
자연산 강도다리는 개체에 따라 체형이 역삼각형 모양을 가진 것도 있으며 등에 난 딱딱한 피질 패턴이 제각각으로 나타나는 등 개체변이를 하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에는 강도다리의 개량 양식을 통해 '무흑화'에 성공했다고 한다. 자연산과 같이 배 전면이 흰색을 띠는 강도다리를 생산하게 되면서 자연산과
양식의 구분이 더 힘들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참고로 강도다리는 가자미과임에도 불구하고 두 눈의 몰린 방향이 광어와 같다.
필자가 평소 ‘좌광우도’를 맹신하지 말자고 말한 이유도 강도다리의 예외성 때문이다.

자연산 강도다리 문의
묵호항 금성수산(010-9880-4787)





■ 제주도(5~8월 제철 생선)
"농어, 붕장어, 한치, 무늬오징어, 벵에돔, 능성어, 강담돔, 돌돔, 전갱이, 자리돔, 벤자리, 붉바리, 부시리"



#. 붉바리(양식 가능)
예전에 썼던 ‘최고의 미어(味魚)’에 붉바리를 당당히 올려놓은 적이 있었다.
제주도에는 붉바리, 다금바리, 비바리(해녀)를 삼대 바리로 꼽는다 할 정도로 ‘바리’에 대한 애착이 강하고 거기에는 붉바리라는 최고급 어종이
든든히 지키고 있었다. 붉바리는 전 세계적으로 온대와 아열대 해역에서 서식하는 수많은 그루퍼(농어목 바리과)의 한 종류로 제주 다금바리와 자웅을
겨루는 최고급 횟감.


낚시로 잡힌 붉바리

포를 뜨고 남은 대가리와 뼈를 푹 끓이면 곰국에 버금갈 만한 맑은탕(지리)이 완성되는데 특히, 산모에게 좋다.
그 외 쓸개라든지 내장도 버릴 게 하나 없는 생선이다. 회는 살짝 해초 향이 감도는 청렴하고 깨끗한 맛을 가졌고 사각사각 씹히는 식감은 그 어떤 횟감도
따라오기 힘든 매력이 있다. 필자는 운이 좋아 낚시로 붉바리를 잡아 본 적이 있었다. 최근에는 치어 방류 사업으로 붉바리 개체 수가 많이 늘었다고 한다.
이에 어획량도 덩달아 늘었고 지금은 예약만 하면, 제주도 일대의 횟집에서 어렵지 않게 붉바리 회를 맛볼 수 있게 되었다.

자연산 붉바리, 다금바리, 돌돔 취급점
서귀포시 남경미락(064-794-0055)




#. 한치(양식 안 함)
한치도 오징어의 일종이다. 표준명은 '화살 오징어'이지만, 다리가 한 치밖에 안 될 정도로 짧아서 한치라는 친근한 이름이 붙었다.
여름밤 제주 바다의 수평선을 가득 메운 배들이 일제히 불을 밝혀 조업하는데 이중 다수가 한치 배이고 나머지는 갈치 배다.
맛은 오징어와 비슷하지만, 좀 더 부드럽고 담백한 맛이 특징. 한치는 갓 썬 회도 좋지만, 제주도에 오면 초피를 넣은 물회로 꼭 한 번 맛보시라.


한치는 다리가 한 치밖에 안 돼서 붙여진 이름이다.

활 한치 물회

제주도는 일 년 내내 한치 물회를 팔지만, 활 한치 물회는 여름과 초가을까지가 제철이므로 이 시기에 제주를 방문한다면, 꼭 한번 맛보는 게 어떨까?


한치 물회 문의
제주시 오래물 횟집(064-713-8250)
서귀포시 어진이네(064-732-7442)





#. 무늬오징어(양식 안 함)
무늬오징어? 아마도 처음 들어본 이들이 대부분일 것 같다. 표준명은 흰꼴뚜기(흰오징어)지만, 무늬오징어 혹은 미스이까 등으로 불린다.
오징어 종류 중 맛이 좋은 편에 속하지만, 유통이 잘 안 돼 낚시꾼들 사이에서만, 맛이 전해지는 귀한 횟감이다.


갓 낚은 무늬 오징어의 우아한 자태



무늬 오징어 먹물 조림



무늬오징어는 일반 오징어보다 크고 복잡한 무늬가 있으며 제주도를 비롯한 남해 일대에서만 서식하고 있다.
낚시꾼들은 새우를 닮은 인조미끼(에기)를 던지고 감고를 반복해 무늬오징어를 낚아채며 이것을 즉석에서 썰어 먹는 맛이 기가 막히다.
사실 무늬오징어를 취급하는 횟집은 찾기 어렵다. 일부 고급 호텔에서 선보이는 '흰꼴뚜기' 특선이 무늬오징어를 이용한 것이고 메뉴판에는 없는
무늬오징어 회를 부요리로 내는 횟집이 있어 사전에 확인 후 이용하면 될 것 같다.

선도가 좋은 건 회로 먹지만, 죽어버린 것은 튀김이 좋고 특히, 먹물 숙회는 무늬오징어로 해 먹을 수 있는 최고 별미이다.
제주도 동문시장에 가면, 횟감용 무늬오징어를 팔기도 하고 죽은 선어도 파는데 먹물과 내장을 빼지 않고 조려야 하는 숙회는 살아있는 게 좋다.
만약 죽은 걸 사게 된다면, 먹통은 그대로 두고 내장만 빼서 냄비에 넣은 뒤, 물 대신 소주를 자작하게 부어 수분이 날아갈 때까지 조리면 완성된다.


무늬오징어 회 문의
서귀포 부두회수산(064-763-0018)





#. 강담돔(양식 가능)
강담돔은 돌돔 사촌으로 무늬만 다를 뿐 생김새는 거의 비슷하다. '교련복', '깨돔'등 무늬 때문에 생긴 명칭이 재미있다. 
서울을 비롯한 지방에서는 '범돔'이란 이름으로 취급된다. 돌돔보다는 더 남쪽 바다에 서식하므로 남해 먼바다와 제주도, 그리고 일본 남부에서만 
잡히고 있으며 최대 전장은 무려 90cm까지 자라는 엄청난 녀석이다. 하지만 수산시장과 일식집에서 접할 수 있는 강담돔은 대부분 일본산 양식으로
40cm 크기라면, 상당히 크다고 볼 수 있다.

 

제주도 어느 횟집 수조의 강담돔

사실 자연산 강담돔은 전문 취급점이 많지 않아 맛보기가 꽤 까다로운 편이다.
어쩌다 한번 제주도 횟집에서 자연산이 들어와 팔리는 게 전부인데 그나마 확률은 여름과 가을이 높은 편이다.
강담돔은 맛과 가격, 형태까지 돌돔과 비슷해 미식가 사이에서는 항상 비교되고 최소 1.5kg 이상은 돼야 제맛을 느낄 수 있다는 건 돌돔과 비슷하다.

※ 한 가지 특이사항


일본 낚시꾼들은 강담돔보다 돌돔 회 맛을 높게 쳐주는 경향이 있다. 반면, 한국에서는 강담돔이 귀하다 보니 돌돔보다 각별히 여기는 경향이 있다.
맛도 강담돔이 좀 더 낫다는 의견이 많았다. 그 면면을 따져보면, 회 맛에 영향을 주는 수온이 상당 부분 반영되었다고 본다. 
제주도와 마라도는 강담돔의 서식 영역 중 가장 북쪽에 자리하는 동시에 수온은 가장 낮은 해역에 속한다.
그러다 보니 오키나와나 규슈에서 잡힌 강담돔보다는 마라도산 강담돔이 육질 면에서 더 낫다고 한다. 
이건 어디까지나 꾼들의 전언이므로 본인이 직접 먹어보고 나서 나중에 자세한 이야기를 이어나갈 계획이다.



#. 자리돔(양식 안 함)
제주도에서 자리돔은 빠질 수 없는 대표적인 특산물이다. 자리돔은 5~6월 서귀포 보목리에서 잡힌 것을 최고로 치는데 그 이유는 이 일대에서
잡히는 자리돔이 뼈가 연해 뼈째썰기(세꼬시)와 물회용으로 알맞기 때문이다. 제주 북쪽에서 잡히는 자리돔은 뼈가 억세 구이가 알맞다고 한다.
일단 자리돔의 용도는 뼈 회와 물회이므로 뼈가 연한 게 상품이다. 물회가 아니라면, 모둠회를 주문했을 때 부요리에 포함되어 나오기도 하므로 
자리돔 자체는 제주도 어느 횟집에서든 쉽게 맛볼 수 있다.


제주 명물 자리돔



자리물회



제주도에 가면 자리물회와 한치물회 중 고민하게 될 때가 많다. 그런데 자리 물회는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음식이다.
특유의 까슬까슬한 식감이 걸리적거려 좀처럼 입맛을 못 붙이는 이들도 많다. 더욱이 육지 사람이라면.

자리 물회의 경우 특별히 소문난 집은 있지만, 내 생각에는 난형난제다. 굳이 추천하자면, 보목리 일대의 물회 전문점을 권한다.
제주도 물회의 특징은 된장을 섞어 구수한 맛을 강조했고 특이하게도 초피(제피가루) 향을 첨가하기도 한다.
그래서 사전에 초피(제피가루)를 넣어 달라고 요청하면 제주도 특유의 향긋한 물회를 맛볼 수 있다.
주의할 점은 이 초피향이 사람마다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는 것.

자리물회는 제주도의 횟집이라면 맛볼 수 있으며 서귀포 보목리 일대가 특히 유명하다.





#. 벤자리(양식 가능)
벤자리라는 생선을 들어보았는가? 아마 십중팔구는 처음 듣는 생선이지 않을까 싶다.
벤자리는 농어목 하스돔과의 생선으로 전갱이보다는 짤뚱하고 돔보다는 긴 방추형 물고기이다.
이 어종을 회 떠보면, 매우 붉은 혈합육 사이사이로 지방이 껴 있고 근육색은 흰살생선의 특징을 갖고 있다.
다시 말하자면, 등푸른생선이 아님에도 잡으면 오래가지 못하고 금방 죽어버린다는 사실. 선도도 급격히 저하되는 편이다.
덩달아 살도 쉬이 물러지는 탓에 숙성회로는 어울리지 않고 활어회로 먹었을 때 벤자리의 참맛을 느낄 수 있다.


벤자리(농어목 하스돔과)

여름에 맛본 벤자리 회는 그 어떤 생선회보다 맛이 뛰어났다.

사실 벤자리는 낚시꾼 중에서도 극히 소수 사람만이 즐기는 특수 어종이었다.
경남 홍도, 여서도, 제주도 근해에서만 낚이는 탓에 귀한 건 기본이고 뭇가로 살려서 가져오는 것도 특별히 관리하지 않으면 어려웠다.
일단 살려놨다 해도 활어로 공수하는 건 매우 어렵다. 아니 불가능에 가깝다.
대신 살아 있을 때 즉석에서 썰어 먹으면, 다른 회는 성에 안 찰지도 모른다. 설령, 그것이 '돌돔'이라 할지라도. ^^ 
벤자리 중에서도 40cm를 넘기는 것을 ‘돗벤자리’라고 부르는데 이 정도 씨알은 돼야 특유의 배지근한 맛을 느낄 수 있다.
여름 벤자리는 지방이 풍부해 모든 부위가 도미 뱃살처럼 달콤하고 구수한 맛이 있다. 식감은 도미보다 부드러운 편이다.

필자에게 ‘지금까지 먹어 본 생선회 중 가장 맛있는 어종'을 꼽으라면 첫 번째가 돗벤자리이고 두 번째는 긴꼬리벵에돔과 돌돔이 자웅을 겨룰 것 같다.
문제는 벤자리 회를 맛볼 만한 횟집이 많지 않다는 데 있다. 주산지인 제주도에서도 6~8월에나 맛볼 수 있으니 언제든지 맛볼 수 있는 횟감은 아니다.
게다가 벤자리 회 맛은 ‘모’ 아니면 ‘도’ 다. 40cm급 이상 돗밴자리를 산채로 잡아야 제맛을 음미할 수 있다는 점. 
만약, 40cm를 못 넘으면 차라리 다른 횟감을 찾는 게 낫다.

최근에는 중국산 양식 벤자리가 인천 연안부두로 들어와 소량이나마 유통되고 있으며 일부는 유료 낚시터로 들어가는 것으로 확인됐다.
그 외 제주도나 남해에서 접하는 벤자리라면, 자연산으로 봐도 무리는 없겠다.

벤자리 회 문의
서귀포시 성산수산(064-782-7693)
서귀포시 바당동네(064-732-9255)





#. 벵에돔(양식 가능)
벵에돔은 감성돔과 더불어 낚시인에게 가장 사랑받는 대상어로 당찬 손맛과 차진 회 맛이 일품이다.
불과 20년 전만 해도 벵에돔은 흔하고 맛없다는 이유로 천대받았지만, 지금은 남해와 제주도 일대에서 제일가는 횟감으로 급부상했다.
이유는 벵에돔 낚시의 활성으로 많은 꾼이 동물성 밑밥을 바다에 뿌리는 바람에 벵에돔의 식성이 바뀌어 육질과 향미가 좋아졌다는 게 정설이다.
대신 꾼의 발길이 닿지 않은 먼 섬에는 벵에돔이 밑밥에 길들지 않았을 확률이 높고 약간 거슬리는 풀향이 날 수도 있다.
벵에돔은 남해와 동해, 울릉도, 그리고 제주도 전역에 다량 서식하고 있다.


긴꼬리벵에돔(위), 벵에돔(아래)

제주도 어느 횟집에서 맛본 벵에돔 회

제대로 된 회 맛을 보려면 적어도 1.5kg 이상, 길이 40cm가량 되는 벵에돔을 맛봐야 한다.
흔히 벵에돔은 양식이 안 된다고 알려졌지만, 지금은 일본 규슈와 시코쿠 지역에서 양식해 제주도로 수출하고 있다.
따라서 제주도 횟집에서 판매하는 자연산 벵에돔의 일부는 일본산 양식일 가능성이 있으니 원산지 표기를 신용하지는 말자.
특히, 겨울철 횟집 수조에 30cm 전후로 크기가 비슷비슷한 벵에돔이 대거 들어와 있다면 양식산을 의심해 보아야 한다.
벵에돔은 성장 속도가 매우 느리므로 40cm급이 넘어간다면, 자연산일 확률이 높으니 참고하고 자연산을 취급하는 믿을만한 횟집을 선택하는 게 좋다.


자연산 붉바리, 다금바리, 벵에돔 취급점
서귀포시 남경미락(064-794-0055)





#. 부시리(양식 안 함)
여름 부시리, 겨울 방어로 알려진 부시리는 상인들에게 ‘히라스’란 명칭으로 잘 알려졌다.
부시리와 방어는 생김새가 한 끗 차이지만, 종류는 엄연히 다르고 생활 영역도 다르다. 
그래서 방어가 맥을 못 추는 여름에는 부시리가 차진 회 맛을 선사하고 있다.
부시리는 전장 2m까지 자라는 대형 어류지만, 우리나라 근해로 들어오는 것은 1m 전후가 많다.
그런데 1m 전후라도 힘이 가히 폭발적이어서 낚시꾼들에게 당찬 손맛, 아니 몸맛을 선사해 준다. 그러다 보니 부시리에 붙은 별명이 재미있다.
‘바다의 폭군’, ‘바다의 어뢰’, ‘대포알’, ‘미사일’ 등 주로 엄청난 힘과 관련된 별명이 붙었다.


초겨울에 낚은 85cm급 부시리

부시리는 주상악골이 둥글다.

방어는 주상악골이 각졌다.

부시리도 크면 클수록 맛이 좋은 물고기다. 정말 큰 건 10kg을 우습게 넘기는데 이 정도는 돼야 등살과 뱃살은 물론, 한 마리당 몇 점 안 나오는 속살까지
두루두루 맛볼 수 있다. 등살은 담백해 된장이 어울리고 뱃살은 고소해 고추냉이와 간장이 잘 어울린다.
이때 속살은 참치 부위로 따졌을 때 ‘아카미(적신)’에 해당하며, 근육의 붉은 색소를 담당하는 미오글로빈이 많이 함유돼 있어 기름장과 된장이 어울린다.
과거에는 부시리든 방어든 크게 주목받지 못했는데 미디어와 인터넷의 영향으로 지금은 조금씩 알려지고 있다.

 

참고로 부시리를 싸고 저렴하게 맛보려면, 제주시 동문시장이나 서귀포 올레시장의 횟집을 찾는 방법을 추천한다.





■ 자연산 VS 양식산, 어떤 게 더 맛있을까?
우리는 언제나 자연산을 동경하고 있다.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없고 또 있더라도 대가를 치러야 먹을 수 있는 값비싼 음식이다.
자칭 미식가, 맛집 블로거, 여기에 생선회 마니아들까지. 자연산 생선회를 맛본 것으로 자랑거리이며 입담의 소재가 된다.
쉽게 맛볼 수 없어 더욱 환상을 품게 되는 자연산 회. 그래서 회를 잘 모르는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양식산보다 자연산이 무조건 맛있다는 그릇된
인식이 퍼져 있다. 이에 대한 내 생각은 '늘 그런 것은 아니다.'이다.


필자가 생각하는 ‘훌륭한 회 맛’의 최우선 조건은 ‘제철’에 있다.
제철은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하지만, 생선회에서 제철은 산란을 준비하면서 지방과 영양분을 한껏 품은 두툼한 살을 가진 횟감을 말한다.
그러니 제철에 자연산 생선회는 최상의 맛을 내지만, 제철이 아니면 그냥 양식산을 먹는 게 낫다는 말을 하고 싶다.

두 번째, 생선회는 크기가 커야 맛있다. 크기가 크면 지방 함량이 많아지고 살도 두터워지는데 이는 고소한 맛과 자친 식감의 근간이 된다.
살이 두툼해야 씹는 맛도 좋고 오래 씹었을 때 그 안에서 내주는 단맛, 고소한 맛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양식산은 사료 값과 전기세, 물세 등 유지비가 많이 들어가므로 크게 키워서 내면 타산이 안 맞는다.
또한, 천연의 환경이 아니기 때문에 크게 성장하는 데 한계가 있다. 만약, 무게가 3~4kg 이상의 자연산이라면, 양식산 활어로는 도저히 따라올 수 없는
맛을 내지만, 1~2kg짜리라면 양식이나 자연산이나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며 미미한 맛의 차이를 느낄 만한 <신의 혀>도 없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활어회

숙성회


마지막으로 컨디션과 즉살 여부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뛰어난 유전자를 가진 어종. 즉, 고급 어종으로 평가받는 횟감을 먹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횟감의 컨디션과 처리 과정이다.
예를 들어, 수조 환경에 적응한 양식어를 단칼에 찔러 회를 뜬 것과 스트레스를 가득 받은 자연산으로 회 뜬 게 있다면, 나는 전자 쪽을 택할 것이다.

회의 식감은 스트레스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데 숨만 간신히 붙은 자연산은 그 스트레스로 인해 식감이 푸석하다.

그러므로 자연산이라고 무조건 맛있는 것도 아니고, 양식산이라고 자연산보다 맛이 떨어지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생선회란 흑백 논리로 결정되는 게 아니며 다양한 변수가 서로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만들어내는 섬세한 요리다.

활어회와 숙성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어느 게 더 맛있다고 단정 지을 게 아닌 어종과 크기에 따라 맛의 차이를 낸다는 것.

일반적으로 소형 어종(우럭, 볼락, 노래미)은 활어회가 맛있고 대형 어종(대광어, 도미, 방어)등은 숙성해야 맛이 좋아지는 편이다. 
숙성회(선어회)라 해서 죽은 고기로 회를 뜨는 것은 절대 아니다. 산 고기를 즉살해서 바로 썰어내면 활어회가 되고, 산 고기를 즉살해서 포만 뜬 다음
냉장고에 4~6시간 숙성해서 내면 숙성회가 된다. 그리고 그것을 하루 이틀 더 숙성하면 선어회가 된다.
그러므로 활어회든 숙성회든 또 선어회든 산 고기를 즉살해서 포 뜨는 건 똑같다.



■ 싱싱한 활어 고르는 법

 

둘 중 어떤 게 좋은 활어일까?


만약에 수산시장을 찾아 직접 활어를 골라야 한다면 이 이야기가 유용할 수도 있겠다.
일반 소비자들은 펄떡이고 뛰는 생선이 더 싱싱하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그 반대다. 위 사진을 보면, 왼쪽은 연신 펄떡거리지만, 오른쪽은 얌전히 있다.
어느 것이 더 좋은 활어일까? 놀랍게도 답은 오른쪽이다. 좀 전에도 썼지만, 활어의 활력(싱싱함)은 컨디션에 있는데 수조 적응을 마친 활어는 저렇게
꺼냈을 때 생각보다 날뛰지 않는다.

이는 평소 낚시를 하면서 줄곧 느꼈던 점이다. 갓 낚은 도미나 감성돔은 숨만 거칠게 몰아쉴 뿐 날뛰지 않았다는 것.
상태 좋은 활어가 대게 그러한 반응을 보였다. 반면에 스트레스를 받은 활어는 꺼내보았을 때 연신 펄떡이는 걸 보았다. 
살아있으면 다 싱싱해 보이는 일반 소비자의 눈에는 당연히 움직임이 많은 활어를 선택할 것이다.

광어와 노래미는 바닥에 배를 대고 움직이지 않는 게 좋은 활어이며, 우럭과 참돔, 농어는 중층에서 정지한 듯 조용히 유영해야 좋은 활어다.
하지만 고등어나 방어, 전어 등 등푸른생선은 건졌을 때 혼을 뺄 정도로 날뛰는 게 싱싱한 활어다. 
활어를 고를 때 눈여겨봐야 할 것이 있다. 일단 상처가 없고 비늘이 온전히 붙어 있어야 한다. 
눈동자는 맑고 지느러미가 쩍 갈라졌거나 상처가 적은 것이 좋고 무엇보다도 살이 쪄서 두께가 좋은 게 상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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