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연 장인과 함께 한 이강망 그물 체험과 보리숭어회

 

보리숭어의 주산지인 울돌목

4월 초, MBC 어영차 바다야의 '진도 간재미' 편의 녹화가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 세월호 사고가 터졌고 진도와 관련된 콘텐츠를 올리기가 무척 껄끄럽고 조심스러웠습니다.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이 아픔을 우리모두가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 지역 주민들은 하루빨리 정상화를 되찾고 일상으로의 복귀를 원하고 있을 것입니다. 
이에 저는 잠시 중단되었던 자연산 취재 일기를 블로그에 올리기로 하였습니다. 

간재미 취재에 앞서 저는 우리나라 해양 전투 역사에 길이 남을 울돌목 일대와 이순신 장군상을 둘러보았습니다. 
이어서 신기리에 있는 신호연 장인과 함께 연도 만들어 띄워도 보고 이강망 그물 체험을 하였죠. 이강망은 장구통처럼 생긴 통발 구조의 그물입니다.
일정 비용을 내면 이강망 한 구에 든 각종 생선을 살 수 있는 프로그램입니다. 그 현장을 보러 갑니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

대륙과 섬을 잇는 해협은 언제나 거센 조류가 있습니다. 좁은 통로에 많은 수량이 오가다 보니 물살이 빠를 수밖에 없는데요.
이순신 장군이 현저히 부족한 병력으로도 효율적인 전투를 할 수 있었던 건 이러한 지형적 특징이 있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다시 말해, 좁은 통로로 적군을 줄을 세워 수적 우위를 무력히 만든 전술적 승리였지요.
이런 유서 깊은 전투 현장이 지금은 보리 숭어로 유명한 산지가 되었습니다. 이날 저는 이강망 체험으로 갓 잡은 보리숭어 회를 맛보았습니다.


그 전에 들리게 된 곳은 신호연 장인으로 알려진 김판용씨 댁.


그의 신호연 작업실


밤이면 마을 앞에서 붕장어 낚시를 즐긴다고 하는 그의 작업실에는 때 묻은 낚싯대가 한 뭉치 꼽혀있었습니다.
낚시를 좋아하고 특히, 신호연의 맥을 잇는 우리나라의 몇 안 되는 인물로서 인간문화재 등록을 목표로 하고 계신 분입니다.
안주인께서는 연 만들기에 대해서는 그리 탐탁지 않게 생각한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돈이 되는 사업은 아니기에.
신호연 장인 김판용씨는 뭐든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으면 수익성과는 멀어지지 않겠느냐면서 입질의 추억님이 하고 계시는 낚시와 글쟁이는
수익성이 있느냐? 내 생각에는 그다지 없지 않겠느냐며 웃습니다. 그 말에 우리는 잠시나마 공감대가 형성되었는지 한동안 배시시 웃곤 했습니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고 뭐든지 과한 욕심을 부리면 모두 잃을 수도 있다는 것. 사는 건 그런 게 아니겠느냐며 자기만족으로 하는 일에는 그 자체가
보상이라 생각하고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음에 감사히 여기며 살고 계시는 김판용 씨.



그의 작업실에서 숱한 세월의 흔적이 묻어납니다. 
정교한 작업을 필요로 할 것 같은 신호연은 작업실 분위기로도 충분히 감지되었습니다.


그의 연은 취미로 만든 것치고는 정말 토속적이고 미적 감각이 뛰어난 작품이기도 했습니다.


신호연

임진왜란 때 적극적으로 활용했다던 신호연입니다.
각각의 연마다 수신호(암호)를 의미하는 문양과 색상이 새겨져 있는데요. 그 종류만도 54가지라고 합니다.
신호연의 역할은 전장에서 어떻게 공격할 것인지 그 방법을 세분화한 일종의 암호로 통신수단이 발달하지 못했던 당시에는 이 신호연을 바탕으로
명령이 내려졌다고 전해집니다. 예를 들어 백색은 서쪽을 공격하라는 의미로 사용됐고, 청색은 동쪽을 공격하라는 의미로 사용되는 등 색상과
기호에 따라 어디서 어떻게 공격할 것인지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왼쪽에 용 그림은 '우천시 비를 대비하라'는 뜻.

한 가지 특이한 사실은 이 많은 신호연 중에서 '후퇴'와 관련된 연은 없었다는 점.
말 그대로 '후퇴란 없다.'라는 우리 군의 용맹성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신호연 제작 과정을 지켜보았습니다. 연은 검은 실의 균형이 매우 중요한데요.
각각의 변을 잇는 저 실의 길이가 정확히 맞아들어가야 하늘에 띄워졌을 때 균형을 잡는다고 합니다.
어느 한쪽의 실이 길거나 짧으면 균형이 틀어져 활공이 어렵다고 하네요. 보기에는 단순해도 꽤 정교함을 요구하는 작업이었습니다.


지금까지 각 방송사에서 취재해 갔을 때마다 그것을 기념하는 연이 만들어졌는데요. 이번에는 저의 닉네임도 함께 넣어 봤습니다.
'입질의 추억'이란 글자는 제가 직접 섰는데 많이 어설프죠? 붓글씨는 고등학생 때 이후로 처음이라 참 어색하더군요. ^^;
붓글씨를 써 본 게 얼마 만인지. 입질의 추억이라는 다섯 글자를 써 나가며, 잠시나마 학창 시절을 떠올려 봅니다.


이어지는 방패연 날리기 시연. 마침 부둣가에는 연날리기 딱 좋을 만큼의 바람이 불고 있어 한결 수월하였습니다.
저도 오래간만에 저것을 잡아봤는데요. 좀 어색하기는 했지만, 적당한 바람에 훨훨 나는 연을 보니 어릴 적 한강 고수부지에서 연을 날렸던 시절이
어렴풋이 스쳐 지나갑니다. 감회가 새롭네요.


훨훨 날아오른 입질의 추억. ^^

이어지는 이강망 체험

저는 신호연 명인과 함께 이강망이 있는 양식장 근처로 진입하였습니다.
이곳 일대는 전복 양식장이 가득합니다. 전복을 기르기 위해 전복의 먹이가 되는 다시마도 따로 기르고 있었습니다.
빼곡히 늘어선 양식장 부표로 사실 이 일대 바다는 '비좁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습니다.
그 정도로 전복 양식장이 수두룩하였고 그 덕에 우리는 마트에서 전복을 저렴한 가격에 사 먹을 수 있게 되었죠.


이강망은 보시다시피 통발 구조처럼 생긴 그물로 길이 2m, 지름 60cm 정도의 크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정식 명칭은 '이각망'이라 하지만, 일반적으로 발음하기 편하기 이강망으로 불리곤 하지요.
밤새 걸어 둔 이강망에는 온갖 생선이 들어와 있었는데요. 어부에게 일정 비용을 주면 이강망 한 통에 든 생선을 사갈 수 있습니다. (대략 25만 원)
다만, 이곳에 설치된 여러 대의 이강망 중 고기가 가장 많이 든 것을 고를 수는 없습니다. 이강망을 건져 올리는 것도 일이다 보니 힘겹게 건져 올렸을
때 비로소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확인할 수 있었던 겁니다. 그러니 이강망마다 물고기 종류와 마릿수는 차이가 있을 수 있겠지요. 복불복입니다. ^^


이강망 체험 후, 활어 몇 마리를 구입했다.

당시 저는 녹화 때문에 많은 사진은 찍지 못했습니다. 글로 설명하자면, 여기서 건진 이강망 속에는 대략 15마리 정도가 들었는데 봄에 산란하러 들어온
감성돔부터 우럭, 간재미, 숭어, 가숭어, 넙치가 주종이었습니다.
촬영 뒷이야기입니다만, 제작진은 이 중에서 몇 마리를 구입해 즉석에서 회를 떠 먹기로 하였습니다.
60cm에 달하는 개우럭 1마리, 4짜 감성돔 1마리, 보리숭어로 알려진 숭어 1마리, 그리고 밀치로 알려진 가숭어 1마리 해서 8만 원에 구입했습니다.


신호연 장인인 김판용씨는 마을에서 작은 횟집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칼 솜씨를 구경했는데요. 속전속결. 정말 일말의 망설임 없이 전광석화 같은 칼질에 그 커다란 활어들이 조각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곧바로 채에 올려져 이렇게 나왔습니다. 회를 먹는데 이보다 훌륭한 구성은 없겠죠? ^^
얼마 전, 저의 페이스북에서 "소주를 앞에 두고 마음껏 먹지 못한 게 아쉽네요."라고 말했던 건 촬영 중이라서 그랬습니다.
회가 아무리 좋아도 알코올 녹화는 좀 그래서 눈요기만 했습니다.(실은 딱 한 잔만 했음을 이실직고해요. ^^)


왼쪽부터 감성돔, 보리숭어, 우럭

왼쪽에 연분홍빛이 나는 감성돔 회는 아래에 채반이 비칠 정도로 얇게 쳤는데요. 이유가 있습니다.
감성돔은 육질이 단단하고 활어 상태로 냈기 때문에 자칫 두껍게 썰면 질길 수 있거든요.
육이 단단하면, 얇게 저밀고 육이 부드러우면 두껍게 평썰기를 하여 식감의 균형을 맞추는 칼질이 일식에서는 매우 중요합니다.

한가운데 붉은 혈합육이 눈에 띄는 것은 보리숭어입니다. 막썰기를 하였지만, 그 차짐과 윤기는 고스란히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맨 오른쪽에 보이는 연갈색의 회는 6짜 우럭입니다. 흔히 5짜 이상 되는 크기를 개우럭이라 하고 6짜급 우럭은 돌돔 회 맛 못지 않은 귀물로
대접받는다고 하지만 이날은 셋 중에서 맛이 가장 떨어졌습니다.


자연산 6짜 우럭

자연산 우럭은 양식 우럭에서 보이는 검은 표피, 검은 실핏줄이 잘 나타나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혈합육은 연한 갈색을 갖고 있지요.


감성돔

마찬가지로 양식산 감성돔에서 보이는 검은 실핏줄이 4짜가 넘어가는 자연산 감성돔에는 잘 나타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반드시 그런 건 아니에요. 제가 감성돔 회를 여러 번 쳐봤지만, 4짜 이하에서는 자연산이라도 검은 실핏줄이 제법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떠 놓은 회만으로 양식과 자연산을 구분하는 것은 전문가가 아니면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먹는 과정에서 비워지는 접시를 보면, 각 어종의 회 맛을 짐작할 수 있다.

이날은 감성돔이 가장 먼저 사라졌습니다. 제가 느낀 맛의 순서는 감성돔 > 보리숭어 > 개우럭 순입니다.
감성돔은 산란이 임박했지만, 아직 지방 기가 남아 있어서 그런지 엷은 고소함이 느껴졌고 씹는 감촉은 두께가 적당해 차졌습니다.
쫄깃함으로 말하자면, 그래도 보리숭어를 빼놓을 수 없었습니다. 냉정히 말하자면, 맛은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대신 쫄깃한 식감만큼은 좋았습니다.
봄 우럭은 식감도 퍼석하고 살 맛도 밍밍해 다들 젓가락이 자주 가지는 않았습니다. 이유는 산란이 임박했기 때문입니다.
산란을 준비하는 시기를 넘어 이 녀석은 배가 볼록할 정도로 만삭이 되었기 때문에 살 속 지방감이 많이 뒤떨어진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는 어느 생선이든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이런 우럭은 알과 함께 매운탕이나 조림, 혹은 맑은탕(지리)로 했다면 아주 끝내줬을 겁니다.

이로써 간단히 이강망 체험을 하고 저는 간재미 산지로 유명한 청룡리 마을로 발길을 옮겼습니다.
이곳에서 아주 무뚝뚝하고 괴팍하기로 소문난(?) 선장님 배에 올라타 간재미 잡이에 나서 봅니다. 더불어 서해의 일미인 점농어 주낙까지. ^^
그 이야기는 다음 회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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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입질의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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