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고기 숙성 방법과 기간(웻에이징과 드라이에이징 숙성에 관하여)


오늘은 꾼의 레시피 코너로 생선회가 아닌 쇠고기 숙성에 관해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생선회 숙성에 관해서는 지금까지 여러 차례 이야기했습니다만, 쇠고기도 생선회랑 똑같이 숙성해서 먹으면 연육 작용으로 고기가 부드럽고
육향이 진한 쇠고기를 즐길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가정에서는 선뜻 하기가 어렵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으세요.
자칫 고기가 상하면 어떡할까? 하는 걱정이 들기 때문인데요. 그런 걱정은 이 글로 가볍게 날리시고 앞으로는 가정에서도 쇠고기를 맛있게
숙성해 드시길 바라면서 이야기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



■ 쇠고기를 숙성하는 목적
본 숙성 과정을 설명하기에 앞서 숙성의 목적과 종류에 대해 간략하게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정육점, 마트에서 사 먹는 쇠고기도 '숙성된 고기'라는 사실을 고기 마니아라면 다들 아시리라 봅니다.
호주나 미국산 등 수입산 쇠고기는 유통 거리가 멀어 한국으로 날아오면서 어느 정도 숙성된 상태이고 한우와 육우는 도살한 지 일주일에서
열흘이 지나야 소비자에게 판매됩니다. 이렇게 숙성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육질을 부드럽게 하는 것과 풍미를 끌어올리는 데 있습니다.
생선이든 육고기든 도살하면 '사후경직'이 일어납니다. 다시 말해 근육이 딱딱하게 굳어 굉장히 질긴 상태가 되죠.
생선살은 육고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살이 무릅니다. 그래서 활어회처럼 사후경직 때 먹는 근육을 우리는 '쫄깃하다.'고 느끼는 것이고 
2~3일 숙성해서 먹으면 근육이 풀어져 쫄깃함은 덜하나 생선회의 풍미가 최고조에 이른다는 사실이 쇠고기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입니다.


#. 드라이에이징 숙성에 관하여
과거 냉장고가 없었던 시절에는 돼지고기나 쇠고기를 도살한 뒤 2~3일간 실온에 뒀다 먹었다고 합니다.
스테이크의 본고장인 미국도 그랬지요. 고기를 잡아 부위별로 나눈 뒤, 통풍이 잘되는 곳에다 거꾸로 매달아 놓는 '건식 숙성'을 했습니다.
이렇게 하면 겉은 육포처럼 말라 수분이 날아가지만, 아미노산의 농축된 향은 속으로 응축돼 진한 육향을 느낄 수 있게 됩니다.
이러한 숙성 과정을 "드라이에이징"이라고 합니다만, 그 과정은 상당히 까다롭습니다.
요새는 냉기 순환이 골고루 되는 '김치 냉장고'가 널리 보급돼 숙성이 쉬워졌지만, 드라이에이징은 그것만으로는 불충분합니다.
드라이에이징 숙성을 하려면 아래의 조건을 모두 만족시켜야 합니다.

- 1~2도 사이 온도에서 4~6주간의 숙성 기간을 거친다. 
- 진공 포장한 '웻에이징'과 달리 포장이 안 된 고기를 공기 중에 그대로 노출시켜야 한다.
- 70~85% 사이의 습도를 유지해야 한다.
- 통풍이 잘되는 장소에 두거나 혹은 인공적인 통풍 효과 내기 위해 선풍기를 틀기도 한다.


이렇게 숙성하면 겉은 말라 비틀어지고 때로는 곰팡이도 피지만, 드라이에이징은 이 부분을 도려내 속살만 구워먹으므로 로스율이 많이 생깁니다. 
그래서 시중에서 맛볼 수 있는 드라이에이징 스테이크는 가격이 일반 스테이크보다 두 배 가까이 비쌉니다.
드라이에이징은 가정에서 실현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가끔 인터넷을 검색하다 보면 드라이에이징으로 스테이크를 해 드셨다는 분들이 계신대요.
그것은 제대로 된 방법이 아닙니다. ^^;


#. 웻에이징 숙성에 관하여
우리가 마트와 정육점에서 사다 먹는 쇠고기는 전부 '웻에이징'입니다. 진공포장 술이 발달하면서 웻에이징 숙성법이 생겼는데요.
드라이에이징과 다른 점이 있다면, 진공 포장으로 공기의 노출을 전면 차단해 '수분 증발'을 막아 '촉촉한 상태'로 숙성한다는 것입니다. 
드라이에이징은 육즙이 적은 대신 육향이 최고조에 달해 맛과 풍미가 진하지만, 웻에이징은 육즙이 많고 촉촉해 부드러운 질감을 가집니다.
사실 한국인 입맛에는 여전히 '웻에이징' 숙성에 맞춰져 있습니다. 한우 자체가 미국과 달리 마블링을 중심으로 등급을 매기고 있으며 고기의 성질이 
부드럽고 육즙이 많은 것도 한몫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서양의 조리법에 적용했을 때 과연 적절한지는 먹는 이들의 판단이겠지만요.

최근 여기저기서 '드라이에이징' 공법으로 스테이크를 선보이는 레스토랑이 늘고 있습니다.
이들이 사용하는 고기는 대부분 '한우'로 고급화 전략을 펼치고 있지만, 이 한우가 드라이에이징 스테이크에 적합한지는 잘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드라이에이징도 진공 포장술이 발달하면서 보기 힘들었다가 근래에 미국 동부 지역을 중심으로 부활했다는데요.
이것이 한국으로 넘어와 최근 유행처럼 번지다 보니 마치 '드라이에이징 스테이크는 일반 스테이크보다 맛있고 고급이다.'라는 인식을 하신 분들이
계십니다. 그런데 그것은 잘못된 인식이죠. 드라이에이징이건 웻에이징이건 이는 취향의 차이일 뿐, 절대 우위가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 가정에서 쇠고기를 맛있게 숙성하는 방법

앞서 말했듯 드라이에이징 숙성은 가정에서 하기에 많은 난관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는 방법이 바로 '웻에이징' 숙성입니다.
마트, 정육점에서 구입한 쇠고기는 그 자체가 숙성 고기지만, 숙성기간이 7일에서 길게는 15일로 매우 짧은 편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구입해 추가로 숙성하는 것입니다. 만약 1++ 등급을 샀다면 추가 숙성 없이 그냥 드시는 게 낫습니다.
안 그래도 마블링(기름 덩어리)이 많아 고소하고 느끼할 텐데 이것을 좀 더 묵혀서 맛을 끌어올리는 건 저등급 숙성으로 맛을 끌어올리는 것에는
못 미치지 않나 싶습니다.

"이 글의 목적은 '낮은 등급의 고기를 숙성해 높은 등급 못지않은 맛을 내기 위함'에 있습니다."

우선 가정에서 웻에이징으로 숙성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1) 진공 포장된 고기를 그대로 구입해 가정에서 숙성한다.
2) 고기를 구입해 가정에서 포장한 후 숙성한다. (오늘의 핵심)



진공 포장된 쇠고기를 그대로 사서 김치 냉장고에 집어넣으면 된다.

먼저 첫 번째 방법입니다.
정육점에서 진공 포장된 고기를 통째로 구입합니다. 원하는 양으로 진공 포장되어 있으면 그대로 구입하시고요.
포장을 뜯어 고기를 잘라야 한다면 진공 포장을 해줄 수 있는지 묻고 만약 안 된다면 방법 2)로 넘어갑니다. (아래 설명)
구입할 때는 반드시 '얼마나 숙성된 고기인지'를 파악해야 합니다.

이렇게 진공 포장된 고기의 숙성 기간은 30~40일까지 보관 가능합니다.
정육점의 판매용 고기는 '법정 숙성 기간'이란 게 있는데 최대 60일 정도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60일 이상 숙성해도 지장은 없으나 보통은 그 안에 판매가 이뤄집니다.
어차피 숙성이란 게 '고기가 발효되는 과정'인데요. 우리는 그것을 적절한 시기에 통제해서 먹는 것이니깐요.
숙성 기간의 정답은 없으나 권장 기간을 말하라면 '진공 포장일 경우' 가정에서 30~40일까지는 무난할 것입니다.

사진은 국내산 육우 2등급으로 채끝 등심이에요. 무게는 약 1.7Kg인데 마침 진공 포장이 되어 있어 그대로 업어왔습니다.
현재 이 고기는 우리 집 김치 냉장고에서 17일가량 숙성 중이에요. 조만간 개봉할 예정에 있습니다.


한우 등심 2등급

두 번째 방법은 진공 포장으로 가져올 수 없을 때입니다. 보통은 이 경우가 가장 많을 거에요.
사진은 한우 등심으로 2등급짜리입니다. 한국과 일본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마블링(근내지방함유량)에 따라 등급을 매기고 있습니다.
1++, 1+, 1, 2, 3등급으로 나뉘는데 간혹 어떤 주부님은 이것을 '신선도를 가늠하는 기준'으로 잘못 알고 계시기도 합니다.
1++ 고기는 그 자체가 마블링과 기름기가 많아 맛이 매우 비옥합니다. 이 '비옥하다'를 고소함으로 느끼는 사람이 있고, 느끼함으로 느끼는 사람이
있는데요. 중요한 것은 1++ 고기는 지방함유량이 많아 많이 먹기에 부담스럽다는 사실입니다.

쇠기름이 몸에 안 좋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좋아하는 마블링이 쇠기름과 같은 성분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많지 않은 듯합니다.
만약 미국과 캐나다처럼 쇠고기를 많이 소비하는 나라에서 한국과 같이 1+ 이상의 고기를 먹어 왔다면 국민 건강에 중대한 영향을 끼쳤을 것입니다.

마블링으로 다져진 한국의 쇠고기 문화에서 '마블링이 안 좋다'고 얘기해 봐야 선뜻 공감되지 않는 이들이 수두룩할 것은 불 보듯 뻔해 보입니다.
그래도 마블링을 가지고 고기 질을 따지는 현 세태는 앞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이 장에서 마블링 이야기는 이쯤으로 마무리하고 다음으로 넘어가겠습니다.


한우 등심 2등급으로 무게는 2킬로입니다. 이것을 가정에서 '웻에이징'에 가까운 포장을 하겠습니다.


우선은 자투리 살을 잘라 냅니다. 등심 부위에 다른 부위가 딸려 온 것 같은데 이건 국거리로 사용했습니다. 


저는 추석 연휴를 앞두고 처가 식구들과 함께 먹을 고기를 준비 중이었습니다.
2킬로를 반으로 잘라 1.2킬로는 처가에 가져갈 용도로 쓰고 나머지 800g은 좀 더 숙성시켜 스테이크를 할 생각입니다.


아직도 우리나라는 2등급 쇠고기가 질적으로 떨어질 것이란 선입견이 있을 줄 압니다.
하지만 보시다시피 마블링도 적당히 있어 로스용으로 손색이 없습니다. 이걸 숙성하면 비록 태생은 2등급이나 1+에 견줄만한 맛이 될 겁니다.


핏기 제거를 위해 흡수지 위에 올립니다. 흡수지는 '미트 페이퍼'도 좋고 마트에서 파는 '웰빙 여과지(필터 페이퍼)'도 좋습니다.
단, 키친타올은 사용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흡수율도 높지 않을뿐더러 살에 들러붙어 나중에 뒤처리가 곤란해질 수 있거든요.


이렇게 단단히 싸맵니다.


고기에 흡수지를 잘 흡착시키며 돌돌 말아줍니다.


래핑 작업을 합니다. 비닐 랩을 이용해 단디 싸매줍니다.
저는 용도에 따라 이렇게 둘로 나눴습니다.


마지막으로 신문지를 말아 포장을 완성합니다. 이렇게 포장한 고기를 김치냉장고에서 숙성하는데요.
2~3도로 맞춰 놓으면 숙성 기간이 단축되므로 가정에서의 쇠고기 숙성 시 적정 온도는 0~1도를 권합니다. 
다만, 이렇게 포장한 것은 진공 포장이 아니므로 완벽한 웻에이징이라 볼 수는 없습니다. 
그나마 가정에서 쉽게 하는 방법으로 이 포장대로만 한다면 숙성기간을 30일까지 잡아도 됩니다.
정육점에서 이미 7~10일간 숙성된 고기를 우리가 사오는 것이므로 가정에서는 추가로 7~10일가량 숙성해다 드시는 게 적당합니다.


열흘 뒤, 웻에이징한 고기를 꺼내 보았다.

웻에이징이라고는 했지만 완벽하게 진공 포장한 것이 아니므로 세미 웻에이징 정도로 말하겠습니다.
중간마다 흡수지를 교체하면 더 좋겠지만, 저는 생략했습니다. 총 숙성 기간은 17일가량입니다.


이 사진으로 얼마 전 퀴즈로 냈습니다. 퀴즈의 문제는 "몇 등급으로 보이느냐"인데요.
제 블로그와 페이스북 통틀어 정답을 맞히신 분이 단 두 명뿐이었습니다. 대부분은 1, 1+, 1++로 답해주셨어요.


두께 2cm로 좀 두툼하게 썰어봅니다.


안쪽이 검붉은 색을 띠는 이유는 헤모글로빈이 외부 공기로부터 차단돼 색이 침착된 것인데요. 
이러한 색은 '정상'이며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선홍색으로 되찾습니다.


잘 보시면 왜 2등급인지 아시겠지요? 생각보다 마블링이 충분치 않고 섬세하게 퍼져있지도 않습니다.
게다가 한가운데 질길 것으로 예상하는 지방이 꽤 두껍게 있어 구울 때 제거해야 할 것이고요.
2등급 쇠고기로서 이 정도의 핸디캡을 가지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숙성해서 잘 구워드시면 1+ 못지않은 맛을 낸다는 기대를 하고 약간의 인내심만
가지면 누구나 할 수 있는 방법이 되겠습니다.
이날 시식단은 처가 식구들인데요. 선입견이 들어갈 것을 우려해 '쇠고기 등급'과 '숙성'여부에 대해서는 일체 말을 안 했습니다.


숯불에 구워봅니다.


로스용 쇠고기는 한 번만 뒤집습니다.
이렇게 구워서 잘라다 주니 대체로 흡족해하는 분위기입니다. 식구 중 한 분은 원 플러스냐고 묻습니다.
저는 웃으며 고개를 가로젓습니다. ^^


2차 들어갑니다. 옆에 떡심은 약한 불에 은근히 구워야 제맛 ^^


이번 녀석은 좀 더 바짝 구워봅니다. 타지 않을 정도로만.
숯불 화력이 일정치 않아 굽는 데 애를 먹기는 했습니다. 갑자기 화력이 강해지면


이렇게 돼버리는데요. 안쪽 살은 레어가 아니고 아예 안 익은 '생고기'라 할 수 있습니다.
레어를 '안 익은 고기'라 생각하는 분이 계실 텐데요. 단 1%라도 익어 단백질 분해가 생겨야 합니다. 안 익은 건 그냥 생고기죠. ^^


처가 식구들의 취향이 미디엄 웰던에서 완전 웰던이라 두께 감을 살린 미디엄은 포기했습니다.
그래서 좀 더 불판에 지져 핏기를 없앤 뒤 서빙하였습니다. 집에는 남은 한 덩어리가 있는데 조만간 이것으로 '미디엄 레어'를 선보이겠습니다.
그리고 지금 한창 숙성 중인 육우 2등급 채끝등심도 기대되는군요. ^^



칼에 붙은 살 조각에 개미들이 꼬입니다. 너나 내나 어차피 먹고살자고 하는 건데.
다 먹도록 내버려 뒀습니다. 개미들에게 저 살점은 체감 상 몇 킬로그램이나 될까요? ^^



■ 쇠고기를 숙성 방법(웻에이징)을 마치며
저는 기름기 많은 1++을 굳이 비싼 돈을 줘가면서 사다 먹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체면 문화가 팽배한 한국에서 1++은 접대용으로 또는 선물용으로 쓰이겠지만, 저는 우리 가족에게 몸에 안 좋은 쇠고기를 먹이고 싶지는 않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반박할 여지가 없습니다. (최근에 방영한 다큐멘터리 '마블링의 음모'를 보셨다면 더더욱)
대신 충분한 기름기와 육즙의 흥건함을 '미각의 가치'에 둔다면 1++을 드시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마다 미각의 가치는 틀린 게 아닌 '서로 다르다'이니까요.
이렇게 저등급 쇠고기로도 얼마든지 숙성과 처리 방법에 따라 1+ 못지않은 맛을 낼 수 있습니다.
숙성의 기본 목적은 '연육 작용'도 있지만, 저등급 쇠고기의 육향을 한층 끌어내어 높은 등급 못지 않은 맛을 내는 데 있습니다.
비록 1++에서 느낄 수 있는 흥건한 육즙(열에 녹은 지방과 수분이 결합한 것)은 덜하지만, 씹는 치감과 진한 맛은 단연 으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조만간 같은 쇠고기로 미디엄 레어 스테이크한 것과 지금 숙성 중인 육우 2등급으로 웻에이징 스테이크를 선보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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