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성 쇠고기의 참맛, 미디움 레어 스테이크 굽는법


지난주 쇠고기 숙성법 중 하나인 "웻에이징"에 관해 알아봤습니다. 
가정에서 누구나 손쉽게 할 수 있는 쇠고기 숙성법으로 저등급 한우를 1+ 이상으로 풍미를 끌어올리는 방법이었지요.
못 읽으신 분을 위해 관련 링크를 걸어두겠습니다. (관련글 : 쇠고기 숙성 방법과 기간(웻에이징과 드라이에이징 숙성에 관하여))

오늘은 지난번에 숙성했던 쇠고기를 좀 더 숙성하여 미디움 레어 스테이크를 만들어 봤습니다.
스테이크 굽기에 대한 '감'은 자주 구워보는 수밖에 없습니다만, 레시피가 가지는 장점이 어느 정도 '가이드 라인'을 제시해 준다는 점이에요.
문제는 각 가정의 오븐 성능입니다. 같은 온도로 맞추더라도 예열 정도에 따라 혹은 성능에 따라 굽기가 틀어질 수 있어 스테이크 굽는 법을
정확히 전달하기에는 애로사항이 있습니다. 거기까지 완벽한 가이드는 무리가 있지만, 대략 이러한 절차로 굽는다는 것을 알려드릴까 합니다.

그런데 왜 갑자기 스테이크를 굽고 난리냐고요?
요즘 제 관심 분야가 '저등급 쇠고기를 맛있게 먹는 방법'과 '스테이크 조리법'이랍니다. ^^;;
제 블로그에 자주 오시는 분들은 제 성향이 '먹거리에 대해 말하기를 좋아하는 블로거'로 알고 계실 거에요.
먹거리에 관해 이야기하려면 직접 음식을 만들어 봐야 합니다. 어떤 식재료가 사용되는지, 어떤 과정으로 만들는지 최소한의 지식은 있어야 할 겁니다.
예를 들어 갈비탕에 관해 비평하려면 최소한 갈비탕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아야 하며, 무엇보다도 직접 끓여봐야 합니다. 
생선회 분야도 마찬가지겠지요. 생선회의 선도, 종류, 처리 방법에 관해 이야기하려면 자기가 직접 생선을 잡아서 떠봐야 하며 그러한 과정을 수없이
되풀이했을 때 가능할 것입니다.  스테이크도 관심이 많아 예전부터 왕왕 구웠는데요. 
오늘 소개하는 스테이크는 특별한 스테이크가 아니라 그냥 제가 가끔 해 먹는 스테이크를 보여드리는 것이니 참고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쇠고기 숙성육을 꺼냈습니다. 한우 2등급 등심입니다.
숙성은 흡수지로 감싸 헤모글로빈(혈액)을 축냈고 곁은 랩으로 빡빡하게 감쌌습니다. 거기에 다시 신문지로(습도 조절 효과) 감싼 뒤 0도씨로 맞춘 
김치 냉장고에서 숙성했는데요. 우리가 고기를 살 때는 이미 정육점에서 일정 기간 숙성된 걸 사온 것이므로 그것까지 합하면 총 20일간 숙성된 겁니다.
총 2킬로짜리 덩어리를 구입해 60%는 일전에 꺼내서 먹었고요. 나머지 40%로 스테이크를 만들겠습니다.


랩을 풀자 흡수지(미트 페이퍼)가 피를 한껏 머금고 있습니다. 이것을 살살 풀면.


20일 숙성된 2등급 등심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가운데를 잘라 단면을 보겠습니다.


얼핏 보면 1등급 같지만, 지방의 조밀도를 잘 보면 1등급을 주기에 다소 모자란 느낌이 듭니다. 비육 상태도 그렇고요.
하지만 숙성을 통해 1등급에 지지 않은 육향을 품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우선 스테이크 굽기에 적당한 두께로 잘라줍니다. 스테이크에 적합한 두께는 성인 남자 기준으로 검지와 중지 손가락을 붙인 두께가 적당해요.
대략 3cm~3.5cm가량 될 거에요. 이 과정에서 불필요한 부분(기름기나 힘줄 등)은 제거하시고요.
제거한 지방 + 힘줄은 나중에 팬을 예열할 때 문질러서 코팅하는 데 사용합니다.


오일을 안 칠해도 됩니다만, 여기서는 올리브유를 칠해 봅니다.


시즈닝을 합니다. 스테이크 시즈닝 재료는 딱히 정해진 게 아니니 기호에 맞게 해 주세요.
저는 시즈닝을 위해 따로 재료를 사지 않고 그냥 집에 있는 재료를 활용하였습니다.
바질 + 오레가노 + 파슬리를 적당한 비율로 섞어서 고기 표면에 바르고요. 천일염과 통후추로 밑간하였습니다.
통후추는 그냥 가정용 시판 제품. ^^;


스테이크 굽기 전, 시즈닝이 완성되었습니다. 다음다음에 선보일 스테이크는 시즈닝 없이 굵은 천일염만으로 투박하게 조리해 보겠습니다.
이날은 잡다하게 허브를 섞어 발랐는데요. 시즈닝을 하기 전에 빠지면 안 되는 과정이 있습니다. 
스테이크 재료를 2~3시간가량 실온에 내버려 두는 겁니다. 이건 스테이크 굽기의 기본으로 스테이크 전문 셰프라면 다들 알고 있는 내용일 거예요.
왜 그래야 하는지는 다음 시간에 알릴 것을 약속하며(저도 레퍼토리를 좀 아껴야 쓸 거리를 확보하므로 ㅎㅎ)


스테이크 재료가 실온에서 숨 쉬는 동안 가니쉬를 곁들일 채소를 굽습니다.
원래 계획은 아스파라거스를 이용할 생각이었지만, 구할 수 없어 감자 + 컬리플라워 + 가지를 이용하였습니다.
방법은 그냥 웨지 감자 굽는 방법으로 올리브 오일 + 바질가루(혹은 파슬리 가루) + 약간의 소금을 쳐서 오븐에 구워내면 끝입니다.


스테이크를 팬에다 지지는데요. 스테이크 굽기에 적합한 팬은 사진에서 보는 저런 팬은 아닙니다.
사실 저런 팬에다 스테이크를 굽는 건 별로 좋지 않은 선택이에요. 하지만 스테이크 하나 굽자고 고가의 팬을 사기는 어려워 그냥 일반 팬에다 합니다.
가장 좋은 선택은 열전도가 좋은 무쇠 팬인데요. 무쇠 팬을 갖고 계신다면, 굳이 오븐을 사용하지 않고도 저만한 두께를 적당히 익힐 수 있습니다.

이제 팬에다 지지는 작업을 하는데요. 지지기 전에 팬 예열이 매우 중요합니다.
팬에 아무것도 두르지 않은 상태에서 연기가 살짝 날 정도로 달궈주는 게 핵심입니다. 이때, 고기를 손질하면서 생긴 쇠기름을 팬에다 골고루 문질러
팬 표면을 코팅을 해주는 게 팁입니다. 없으면 저염 버터를 아주 소량만 넣어 코팅해 주세요.
그런 다음 팬이 충분히 달궈지면 스테이크를 올려 그대로 둡니다. 이 상태에서 뒤집지 말고 가만 놔두는데 30초에서 1분 사이에 얼마나 익었는지
고기를 살짝 들어 확인해 주는 게 좋습니다. 팬이 충분히 달궈진 상태이므로 조그만 방심하면 고기 표면이 검게 탈 수 있으니 주의합니다.


고기를 살짝 들었을 때 진갈색으로 익었으면 딱 한 번만 뒤집어 줍니다.
고기 표면을 바짝 익히는 작업을 시어링(Searing)이라고 하는데요. 이것도 바싹한 질감이 되게끔 굽는 타입이 있고, 연한 브라운이 될 정도로만
굽는 타입이 있지만, 저는 전자를 택했습니다. 이렇게 하면 고기 표면은 크러스트한 식감을 주며 속살은 촉촉해져요.


이번에는 고기를 세워 옆 면을 익힙니다. 이 과정도 중요해요.
적당히 갈색으로 변하면 다시 반대쪽 옆 면을 익혀 주고요. 


이제 오븐으로 직행! 예열해 둔 오븐에 넣고 150도에서 8분간 익혀 줍니다.
그 이상 두면 3cm 두께의 스테이크는 미디움을 거쳐 미디움 웰던으로 가겠지요.


스테이크가 익는 동안 빵과 스프로 허기를 달래고요. (이날 좀 굶어서 ^^;)


스프도 만들어 먹었지만, 이날은 시간 관계상 사제품을 ^^;


적당히 만만한 와인 한 병이 준비되었습니다.


스테이크가 완성되었어요. 2킬로짜리 등심을 먹고 남은 자투리로 해서 조각이 왠지 볼품없어 보이네요.


숙성 쇠고기의 참맛, 미디움 레어 스테이크


스테이크는 개인당 두 조각씩 돌아갔습니다. 보기에는 작아 보이지만, 1인분으로 적당한 180g가량 될 거에요.
이제 중요한 굽기, 미디움 레어가 제대로 되었는지 확인해 보겠습니다.


이 정도면 미디움 레어가 되었다고 할 수 있을 거에요. 저 흥건한 육즙 보십시오. 육즙이 쭉하고 튀어나올 기세입니다.
요즘 레스토랑에서 유행처럼 번지는 '드라이에이징(건식 숙성) 스테이크'가 일부 미식가들에게 각광받고 있지만, 아직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웻에이징(습식 숙성) 스테이크가 익숙할 겁니다.
저 보드랍고 촉촉한 속살에 잔뜩 머금고 있는 육즙은 이러한 웻에이징 숙성의 특징을 잘 나타내주고 있고요. 
고기를 지그시 눌러 육즙이 뿜어져 나오는 장면을 초 접사 모드로 찍고 싶었으나 렌즈가 없어 못 한다는 게 아쉽습니다.


썰어서 맛을 봅니다. 소스는 블랙페퍼소스로 제가 심혈을 기울여서 만든 수작..
이 아니고 시간 관계상 시판되는 걸 샀습니다. ^^;;


이렇게 만든 스테이크는 표면이 크러스트 하면서 속살은 보드라운 이중성을 가져 씹는 치감과 풍부한 육향을 두루 만족하게 해 줍니다. 
한 조각을 입에 넣고 씹지 않은 상태에서 잠시 굴려봅니다.
바싹하게 익은 표면이 거친 짐승남 느낌을 준다면, 속살의 보드라움은 꽃미남 같은 느낌을 준다랄까요.
제일 먼저 전해지는 느낌은 크러스트한 껍질. 그 둔탁하면서 거친 질감이 '숙성되기 이전에 엄연한 고기였음'을 말해줍니다.
거기서 미약하게 느껴졌던 육향은 이를 살짝 깨물면서 본격적으로 터지고 말았습니다. 속살에 머금고 있던 과즙, 아니 육즙이 혀를 적시는데요. 
그 따듯한 육즙 맛에 어느새 저는 이 고기가 2등급 고기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습니다.


숙성 쇠고기의 참맛, 미디움 레어 스테이크

혹자는 저렇게 덜 익은 고기를 씹으면 질기거나 피 냄새가 나지 않느냐고 묻는데요.
만약 고기에서 핏물이 나오거나 핏기(철분)로 인한 비린내가 난다면 그것은 고기가 잘못되었거나 조리 방법에 문제가 있었을 겁니다.
속살이 빨갛게 보이는 이유는 헤모글로빈이 든 혈액이 아닌 '미오글로빈' 때문인데요. 안 익어서가 아니라 단지 '덜 익어서'보이는 색이니까요.


안 익은 건 바로 이것 ^^;
이건 '레어'가 아니라 그냥 생살인데요. 씹으면 질깁니다.


레어는 단 1%라도 열에 의해 익어야 하며 이 때문에 지방이 녹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나오는 즙은 핏물이 아닌 육즙, 다시 말해 고기의 수분기와 지방의 결합체이므로 '핏물이 보여야 진정한 레어다.'란 표현은 정확도가 떨어질 수
있습니다. 고기를 체에 밭쳐을 때 뚝뚝 떨어지는 게 핏물이라면, 육즙은 열을 가해야만 비로소 생기는 것이니까요.
그러니 염려 붙들어 매시고 미디움 레어를 즐기기 바래요. 단, 고기 질이 좋아야 한다는 거!

여기서 고기 질이 좋다는 이야기는 '높은 등급'이 아닌 적당한 지방에 적당히 숙성을 거친 고기'를 말합니다.
우리나라는 일본과 함께 지방(쇠기름)을 기준으로 등급 매기고 있는데요. 이는 단순히 '지방함유량이 많은 고기' 일 뿐, 질이 좋은 것과는 별개랍니다.
그런데 인식은 1++이 최고 좋은 고기라고 되어 있습니다.

얼마 전 2등급 쇠고기를 구하러 여러 정육점을 돌아다녔는데요. (2등급 구하기 은근 어렵네요.)
거기서 정육 주인이나 한우 식당 주인들이 하는 말이 있습니다.

"저희집은 1++ 특등급 한우만 취급하고 있습니다."
"저희집 고기는 전날에 잡은 싱싱한 고기만 사용하고 있습니다."


1++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정육점이 많은데요. 이게 다 마블링에 따라 쇠고기 등급을 매기는 이상한 시스템 때문이라고 봅니다.
쇠고기든 돼지고기든 모든 육고기는 적당히 숙성해야 맛이 오른다는 건 이미 식품 과학에서도 밝혀진 내용이에요. 
싱싱한 고기의 기준, 또는 싱싱한 횟감의 기준은 얼마나 빨리 잡았느냐(도살)에 있지 않다는 것을 이제는 많은 분이 인식하셨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쓰다 보니 잡담이 길어졌는데요. ^^;
사진을 보면 허여멀그레해 보이는 부분이 있습니다. 살 중간마다 끼어있는 지방질인데 열에 녹아 육즙으로 고이는 장면이에요.
혀를 대보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따듯한 온도를 갖고 있습니다. 



겉과 속의 질감 차이가 커서 씹는 치감과 촉촉함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미디움 레어 스테이크.
충분히 숙성했기 때문에 혀로 느껴지는 육향은 마치 조미료를 한껏 친 것 같이 진하게 올라옵니다.
이런 고기를 먹다가 일반고기를 먹게 되면 '싱거운' 느낌을 받을 거에요. 고기가 싱겁다면 숙성 기간이 덜 되서일 거에요.

사실 미디움 레어를 좋아하더라도 페밀리 레스토랑 같은 곳에서는 주문하기가 좀 망설여집니다. 이유는 굽기가 일정치 않고 맛의 기복도 심해서인데요.
가정에서 숙성 쇠고기를 이와 같은 조리법으로 굽는다면 최적의 미디엄 레어 상태를 만드는 게 그리 어렵지만은 않습니다. 
중요한 건 두께(3cm)와 팬의 예열, 그리고 굽는 방법, 오븐 온도와 시간을 준수하는 데 있습니다. (미니 오븐도 가능합니다.)
이렇게 하면 저렴한 가격으로 환상적인 스테이크 맛을 볼 수 있을 겁니다.
다음에는 한우가 아니라 '저렴한 육우 2등급'으로 미디움 웰던 스테이크를 만들어 볼게요. 
육우 2등급은 100g당 가격이 3,800원밖에 안 하지만, 풍미는 한우에 절대 뒤지지 않을 겁니다. 이 역시도 비결은 '숙성'에 있겠지요.
웰던 스테이크 하면 '퍽퍽할 것이다.' 부터 떠올리는데요. 적절한 온도와 기간으로 숙성하면 웰던도 달라질 수 있다는 걸 보여드리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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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입질의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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