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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한가롭고 무료했던 어느 주말, 밥을 해 먹자니 귀찮고 그렇다고 라면을 끓여 먹자니 안이한 식습관이 걱정됩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은 피자 한 판! 참 생각해보니 어제도 외식을 했군요. 요즘 피자 한 판 값 무시 못 하죠. ^^; (그렇다고 만 얼마 밖에 안 하는 피자는 시킬 땐 좋다가도 막상 먹어보면 후회막심이고).
고민되는 한 끼 식사, 어떻게 하면 1) 돈 안 들고 2) 간단하면서, 3) 맛도 챙길 수 있을까? 그러나 이 세 가지를 만족할 만한 타협점을 찾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세 가지 중 한 가지는 포기해야 하는 현실. 결국은 2) 간단함을 포기하고 찾아 나섰는데 예전에 캐나다에서 맛보았던 '포크 밀라니즈(Pork Milanese)'가 생각납니다.
캐나다 재스퍼의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맛본 포크 밀라니즈(Pork Milanese)
당시 밀라니즈란 이름에 끌려 주문했는데 뜻밖에도 왕돈까스 비주얼로 나온 게 아니겠습니까? 맛도 우리네 돈까스처럼 익숙합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소스 없이 통후추와 레몬즙만 뿌려 먹는다는 것. 고기가 얇아서 왕돈까스 같았지만, 빵가루 조직이 고와서 거칠지 않고 부드럽게 씹힌다는 점도 특징입니다. 이탈리아에서는 이 음식을 '포크 밀라나제'로 부르는 듯한데요.
1세기 고대 로마의 최초 요리책에 이와 비슷한 음식이 소개된 적이 있었다고 전해지며, 17~18세기 무렵에는 오스트리아 비엔나와 독일로 전파되면서 '비너 슈니첼'과 '예거 슈니첼'로 발전했습니다. 슈니첼은 오스트리아의 전통음식이라 할 수 있지만, 엄밀히 말하면 고기를 얇게 펴 빵가루를 입히고 튀긴 이 음식의 기원이 이탈리아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있는가 하면, 아직도 정확한 기원이 불분명하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어쨌든 슈니첼은 19세기 중반에 들어서 오스트리아와 독일을 중심으로 헝가리와 스위스에 이르기까지 온 국민의 사랑을 받게 된 음식인데 이것이 프랑스로 건너오면서 '포크커틀릿'이 되었고, 이를 일본에서 독자적으로 발전시킨 것이 현재 우리가 즐겨 먹는 '돈가스(편의상 돈까스로 쓰겠습니다.)'가 된 것이 중론입니다.
구상을 마친 저는 정육점으로 달려갑니다. 돈까스를 만들 거라면서 돼지고기 등심 1kg을 주문하자 단돈 만 원이 나옵니다. (100g당 1,000원) 이걸 전부 슈니첼로 만들자 양이 어마어마해지더군요. 이유는 고기를 얇게 폈기 때문인데 그 과정과 만드는 조리법을 소개합니다.
#. 돈까스 원조, 슈니첼(Schnitzel) 재료
돼지고기 등심(원할 만큼), 밀가루, 달걀, 빵가루, 소금, 통후추, 튀김용 식용유
#. 부재료
감자, 아스파라거스, 껍질콩(그린빈), 마늘, 레몬. 그리고...맥주
- 부재료는 사이드로 곁들여 먹을 음식입니다. 마늘은 마늘 칩을 만들기 위해 얇게 편 썰기를 합니다.
- 아스파라거스와 껍질콩은 센 불에 볶아낼 겁니다. 완두콩(통조림)이나 영국식으로 베이크드빈을 곁들여도 상관없습니다.
- 감자는 칩스(프렌치 프라이)를 만들기 위해 적당한 두께로 썰어 놓습니다.
사실 슈니첼도 종류가 많습니다. 모든 슈니첼에 빵가루를 입히는 것은 아니지만, 가장 기본적인 슈니첼을 만들기 위해선 고운 빵가루가 필요합니다. 원래는 유럽에서 사용하는 고운 빵가루가 있는데 우리 주변에서는 구하기 어려워 여기서는 일반적으로 쓰이는 빵가루를 비닐에 담아 손으로 주물러가며 곱게 빻았습니다.
감자는 튀기기 전, 옅은 소금물에 한소끔 삶아다 놓습니다. 한번 삶아서 튀겨야 감자 겉 부분이 타지 않고 포슬포슬한 감자튀김이 되니까요. 삶은 감자는 체에 밭쳐 물기를 빼놓습니다.
정육점에서 돼지고기를 구입할 때는 돈까스를 만들 것이라고 말하고, 두께는 1.5cm로 펴달라고 하면 기계로 펴줍니다. (예전에 1cm로 했더니 너무 얇아서 1.5cm로 조정). 여기서부터가 중요한데요. 그렇게 가져온 돼지고기를 반으로 갈라서 위 사진처럼 펴주어야 합니다. 그랬을 때 두께는 약 0.7cm. 손바닥으로 고기를 살짝 대고 칼을 뉘여서 반으로 가르는 작업은 사실 웬만한 주부들이 하기에는 까다롭습니다.
그래서 저도 이 과정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정육점에서 고기를 주문할 때 처음부터 0.7cm로 펴달라고 하면 일을 덜 수 있지만, 그렇게 하면 고기 면적이 줄어서 결국에는 고깃조각 2~3개를 이어 붙여서 빵가루를 입혀야 하죠. 그렇게 할 수 있으면 그렇게 해도 좋습니다만, 저는 칼질을 선택했습니다. 그렇게 핀 고기를 밀대로 밀어서 좀 더 얇게 펴줍니다.
밀대로 민 고기의 적정 두께는 4~5mm. 사방으로 넓게 펴서 고기 면적을 넓히세요. 다 됐으면 소금, 후추로 밑간합니다. 고기 두께가 얇아서 밑간을 과하게 하면 짤 수 있다는 점에 주의.
이제 슈니첼을 만들 기본적인 준비는 다 끝났습니다. 나머지는 돈까스 만들 듯 하면 됩니다.
차례대로 밀가루와 달걀 물을 입힙니다. (부침 가루는 기본적으로 간이 되어 있으니, 이렇게 얇은 고기는 밀가루를 사용하세요.) 밀가루를 입힐 때는 고기 표면에 뭉치지 않도록 탁탁 털어줘야 튀길 때 바싹해집니다.
이어서 곱게 빻은 빵가루를 입힙니다. 빵가루 입힐 때는 손바닥으로 꾹꾹 눌러 앞뒤로 고루 묻게 하고, 역시 뭉침을 방지하기 위해 탁탁 털어줍니다.
다 만들자 단돈 만 원으로 만든 슈니첼 양이 상당히 불었습니다. 이 정도면 가성비 끝내주죠. 돼지고기 1kg을 작업했으니 어느새 시간이 ㄷㄷㄷ.. 한 번 만들기가 귀찮아서 그렇지, 이렇게 만들어 놓으면 꽤 든든할 겁니다. 맛을 보면, 이 과정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새삼 실감할 것 같고요.
이렇게 작업한 슈니첼 1kg은 어림짐작으로 7~8인분이 족히 됩니다. 다른 사이드와 곁들여 먹으니 가능한 양입니다. 일부는 반찬통에 넣어 냉동실로 직행합니다. 나중에 필요할 때마다 꺼내서 돈까스처럼 튀겨 먹으면 됩니다.
당장 먹을 것은 180도 기름에 튀깁니다. 이 음식을 조리할 때는 '고기가 얇다'는 점을 충분히 고려해야 합니다. 자칫 불이 세면 금방 탈 수 있으니까요. 처음 기름 온도는 180도. 빵가루를 살짝 뿌리면 '쨍'하면서 지글지글하게 타들어 가는데 그때가 적기입니다. 이때 너무 많은 양을 한꺼번에 넣고 튀기면 기름 온도가 낮아지면서 빵가루가 기름을 머금어 눅눅해지고, 바싹함도 떨어질 수 있으니 한 번에 많이 튀기지 않도록 합니다.
다른 튀김은 바삭함을 더하기 위해 두 번 튀기는데 슈니첼은 고기가 얇아 한 번만 튀겨도 됩니다. 중간에 불이 세다 싶으면 불 조절을 하고요. 불 조절을 하는 대신 고기를 좀 더 넣고 튀기는 것도 방법입니다.
고기가 익는 동안 아스파라거스와 껍질콩을 무쇠팬에 볶습니다. 한참 달군 무쇠팬에 연기가 날 즈음, 올리브유를 한 숟가락 넣고 곧바로 재료를 넣어 센 불에 빨리 볶습니다. 조금 익었다 싶을 때 소금, 후추로 간을 하고(소금은 충분히 뿌려야 간이 뱁니다.) 아스파라거스의 표면 일부가 검게 그을리기 시작하면 불을 끄고 그대로 놔둡니다.
슈니첼은 곱게 빻은 빵가루를 입혀 황금색으로 먹음직스럽게 튀긴 것을 제일로 칩니다. 갓 튀긴 조각은 키친타월에 올려둡니다.
돼지고기를 튀긴 기름에 감자를 넣고, 사진과 같이 망에 마늘을 담아 마늘 칩을 만듭니다. 돼지고기를 튀긴 기름에 감자를 튀기면, 그 맛이 더 좋아집니다. 한번 삶아낸 감자라 튀기는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습니다.
마늘 칩을 만들 때는 타지 않도록 반 박자 빨리 빼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미 갈색으로 되었을 때 빼면, 마늘 표면에 붙은 잔여 기름이 고온이라 결국에는 시커멓게 된다는 점에 유의하세요.
단돈 만원의 행복, 슈니첼 완성
각각 조리된 음식을 접시에 담아봅니다. 슈니첼은 소스를 찍어 먹는 대신, 통후추와 레몬즙을 뿌려 먹는 형태가 일반적입니다. 다만, 그 맛이 심심하게 느껴진다면, 우리 식성에는 돈까스 소스를 곁들이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통후추(요즘 마트에서는 그라인더를 포함한 통후추 제품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를 뿌리고 레몬 한 조각을 올려 마무리합니다.
황금색으로 튀겨 먹음직스러운 슈니첼, 이것이 오늘날 돈까스의 원조다
포슬포슬한 감자튀김이 곁들여지고
이것을 씹는 순간 '바사삭'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처음에는 표면에 묻은 레몬즙의 쨍한 시큼함이 느껴질 것입니다. 육즙이 느껴지는 고기 두께는 아니지만, 얇음에서 오는 심플한 맛은 있죠. 생선회든 고기든 두꺼워야 제맛이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지만, 뭐든 재료 특성에 맞춰야 그 맛도 살기 마련일 것입니다.
촉촉한 고기 육즙이 느껴지는 일본식 돈까스가 그립다가도 또 어떤 날에는 종잇짝처럼 얇은 옛날 돈까스가 당기는데 슈니첼은 얇은 돼지고기 튀김의 바삭하고 담백한 맛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음식이 아닌가 싶습니다. 여기에..
여기에 라거 타입의 시원한 맥주가 빠지면 섭섭하죠. ^^; 요즘처럼 치킨 대란이 염려되는 시점에서는 치맥 대신 '슈맥'도 생각해 봄 직합니다.
두툼하고 충분한 식감과는 완전히 배치되는 음식이지만, '얇음'에서 오는 맛의 미학이랄까. 바삭함과 담백함이 그리울 때면 저는 가끔 슈니첼을 해 먹곤 합니다. 지금은 냉동실에 슈니첼이 다 떨어졌네요. 한번 작업할 때 손이 많이 가서 그렇지, 일단 만들어 놓으면 평소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은 지인에게 반죽이 다 된 슈니첼을 선물하는 것만큼 정성스러운 일도 없을 것입니다.
슈니첼 하나 만들어 놓으니 안주감 마련에 반찬감에서도 든든하지만, 무엇보다도 딸들이 잘 먹으니 마음도 든든하고요. 이날 아내의 친구 딸을 잠시 봐주면서 슈니첼을 만들어 먹였는데 둘이서 어찌나 사이좋게 잘 먹던지. 이쯤이면 이런 말도 나올 법하겠죠. "슈니첼은 사랑입니다."라고. 조금 웃기게 들리겠지만, 잠깐이나마 이 음식으로 오스트리아에 다녀온 기분이 들었으려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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