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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서 스테이크를 검색해 보면, 육즙을 가두기 위해 등장하는 말들이 있습니다.
1) 겉면을 바싹 익히는 시어링
2) 센 불에 한 번만 뒤집기
육즙을 가두기 위해 필연적으로 따라야 하는 방법인 것처럼 설명한 글이 많이 보이며, 이를 지키지 않으면 육즙이 샌다고 설명하기까지 합니다. 즉, 겉면을 바싹 익히지 않거나 여러 번 뒤집으면 육즙이 바깥으로 새면서 퍽퍽한 고기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정말로 이런 방법이 육즙을 가두는 것과 상관있을까요? 지금까지 스테이크를 여러 번 구워 먹으면서 시어링 여부와 뒤집기 횟수에 따라 육즙의 보존 정도가 달라진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없었기에 저로선 충분히 의심해볼 만했습니다. 겉면을 바싹 익히는 시어링과 센 불에 한 번만 뒤집는 것이 그렇지 못한 것과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테스트를 통해 알아보았습니다.
테스트에 사용한 고기는 모두 1등급 한우 채끝 등심입니다. 하나는 스테이크를 굽는 일반적인 방법으로 구워봅니다. 달군 팬에 올리브유를 두르고 연기가 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고기를 투입. 센 불에 겉면을 바싹하게 지진 뒤 딱 한 번만 뒤집어 줍니다.
맛있어 보이죠? 구울 때 버터와 마늘을 곁들여 고기로 끼얹는 것도 여느 스테이크를 굽는 방법과 같습니다.
<사진 1> 레스팅 과정
이때는 가족의 식사를 준비하면서 테스트한 것이라 옆 팬에서 하나 더 구웠습니다. 적당히 익힌 스테이크는 5분간 휴지(레스팅) 과정을 거치는 게 좋습니다. 레스팅을 하지 않고 바로 썰면 육즙이 퍼질 시간이 없으므로 그대로 흘러나옵니다.
맛있는 즙이 다 빠지면 고기는 촉촉함과 맛을 동시에 잃겠지요. 이렇게 뜸을 들여야 모였던 육즙이 골고루 퍼지면서 육즙의 재분배가 이뤄집니다. 썰어도 육즙이 새어 나오지 않게 되는 것이죠.
앞서 설명했듯이 <사진 1>은 레스팅 과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도 육즙은 어느 정도 흘러나오게 마련이며, 이를 막을 방법은 별로 없습니다. 고든 램지, 제이미 올리버 등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타 셰프의 스테이크 레시피를 보아도 그것이 팬프라이드든 오븐이든 두꺼운 고기를 굽게 되면, 그 바닥에는 항상 육즙이 고여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그 육즙으로 소스를 만들어 뿌려 먹기도 하죠. 이 대목에서 우리는 의문점을 가져야 합니다. 이미 적잖은 사람들이 믿는 것과 같이 겉면을 바싹 익힌 시어링이 육즙을 차단해 준다면, 이렇게 고인 육즙은 뭐라고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마찬가지로 센 불에 한 번만 뒤집어야 육즙이 새어나오지 않는다면, 이 또한 그릇에 고인 육즙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가운데를 썰어봅니다. 익힘은 미디엄입니다. 휴지가 잘 됐기 때문에 썰어도 육즙이 흘러나오지 않습니다. 단 한 방울도 말이죠. 씹을 때라야 비로소 육즙의 촉촉함을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휴지(레스팅)하면 육즙이 일정 분량은 자연스럽게 빠져 이렇게 고인다고 말했는데요. 제이미 올리버는 여기에 올리브유 한 스푼을 섞어서
이렇게 흔들어 섞어줍니다. 그리고 이것을 스테이크 위에 뿌려 먹는 걸 소개했었죠.
다음 테스트로 넘어갑니다. 이번에는 센 불이 아닌 중간 불에 스테이크를 구워보겠습니다. 시어링도 하지 않습니다. 세지 않은 불에 천천히 익힐 것이며, 여러 번 자주 뒤집을 것입니다. 자 이렇게 하면, 육즙이 얼마나 흘러나오는지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익힘은 미디움으로 통일했기 때문에 미디움이 될 때까지 여러 번 뒤집어가면서 익힐 것입니다. 중간에 버터와 마늘을 넣어주는 과정도 똑같습니다. 보시다시피 시어링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속적인 열에 의해 가장자리만 진한 갈색으로 변했고, 중앙은 시어링이 제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육즙은 얼마나 빠졌을까요?
마찬가지로 5분간 휴지(레스팅)를 거치고 써니 육즙이 흘러나오지 않습니다. 조리할 때 다 흘러나와서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테스트 결과 육즙이 가둬지는 정도는 둘 다 비슷했습니다. 씹었을 때 느껴지는 육즙의 촉촉함도 비슷합니다.
※ 결론
- 육즙의 보존은 시어링을 하나 하지 않으나 별 차이가 없었다.
- 육즙의 보존은 한 번 뒤집으나 자주 뒤집으나 별 차이가 없었다.
- 어떤 방법을 쓰든 100% 육즙 차단은 불가능하다.
사람들은 겉면을 바싹하게 익히는 시어링이 육즙의 손실을 막아준다고 믿지만, 어차피 조리하면서 나와야 할 육즙은 휴지(레스팅)할 때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이는 시어링을 하지 않아도 마찬가지입니다. 시어링을 하지 않는다고 하여 스테이크를 구울 때 육즙이 막 흘러나오고 그러진 않는다는 이야깁니다.
또한, 센 불에 딱 한 번만 뒤집어야 육즙이 새어 나오지 않는다고 하는데요. 이것도 검증되지 않은 내용입니다. 고기를 여러 번 뒤집으면 육즙이 빠진다는 개념. 이는 고기가 물 먹은 스펀지도 아닌데 몇 번 뒤집었다고 그 정도 흔들림과 충격에 가두었던 육즙이 흘러나오는 것은 과학적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스테이크를 구울 때 시어링을 하는 이유는 맛과 향미, 식감을 돋우기 위함입니다. 시어링을 하면, 화학적 반응으로 색은 진한 갈색이 되면서 우리는 그 고기에서 아주 맛있는 냄새를 맡게 됩니다. 이것을 '마이야르 반응'이라 하는데 고기 표면의 수분감을 날려 건조하게 하면, 일단은 바싹하게 구워집니다. 이때 나는 풍부한 맛과 함께 겉은 바싹하고 속은 촉촉한 서로 다른 질감의 맛을 느끼게 하려는 것이 시어링의 본 목적인 거죠.
그러니 육즙을 차단하기 위해 시어링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그럴 수도 없고요. 이름 좀 난 유명 레스토랑이라면, 스테이크가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할 겁니다. 스테이크에 자존심을 걸기도 하죠. 저마다 스테이크를 굽는 방식도 다릅니다. 팬프라이드니 그릴드니 하는 조리 방식에서 오는 차이도 있지만, 시어링의 차이도 있습니다.
시어링을 아주 강하게(터프하게) 하는 곳이 있는가 하면, 시어링을 하는 둥 마는 둥 하는 곳도 있습니다. 시어링을 약하게 하면, 겉 질감이 부드러워 전체적으로 부드럽고 순한 스테이크가 되는데 이 또한 개성이고 스타일이라고 봐야 합니다. 그러므로 시어링은 스테이크에서 반드시 해야 할 만큼의 필수 요소는 아닙니다.
다만, 시어링을 강하게 한 스테이크를 선호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조리법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방향으로 기울기 마련이겠죠. 그만큼 얻을 수 있는 장점이 많으니 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시어링과 한 번만 뒤집는 것이 육즙을 차단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믿어왔을까요? 저는 이 또한 주입식 교육의 폐해라고 보고 있습니다. 어떤 현상이든 '왜?'라는 의심을 갖지 않는 것. 남들이 그렇게 말하니 그렇게 믿게 되는 것. 뭐 그런 게 아닌가 싶습니다.
무엇이든 아는 만큼, 맛도 보이다. 그래서 앞으로는 "센 불에 딱 한 번만 뒤집어야 육즙이 가둬집니다." 이런 말 하지 말자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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