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고기 숙성법] 3등급 한우를 24일간 숙성해보니


 

 

지금까지는 주로 1~2등급 한우와 육우로 숙성해왔지만, 이번에는 3등급 한우를 우연히 구해 숙성에 들어갔습니다.

몇 주 전, 제 블로그에는 3등급 한우로 숙성에 들어간다는 예고를 남겼는데 지금은 숙성이 완료돼 스테이크로 구워보았습니다.

사실 3등급 숙성은 이번이 처음이라 그 결과는 섣불리 예상하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숙성 효과는 2등급이든 3등급이든 똑같이 적용되는 것이며, 마블링의

정도와 상관없이 단백질이 분해되면서 육은 부드러워지고 육향은 깊어지게 하기 위함이니 3등급이라 한들 그 결과가 크게 달라지거나 실패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과연 3등급 한우로 얼마만큼의 맛을 낼 수 있었을까요? 이날 시식자는 MBC 경제매거진 PD님과 카메라 감독 겸 차장님이 하게 되었습니다.

원래는 가족과 함께 먹으려고 숙성한 고기였는데(가족들을 상대로 실험을 ^^) 때마침 방송국에서 '숙성 소고기'를 주제로 촬영 섭외가 들어오는 바람에 

적절한 시점에 고기를 개봉해 촬영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해당 방송분은 8월 29일(토) 오전 7시 30분에 시청할 수 있습니다.

 

 

3등급 한우 채끝등심

 

전표에는 3등급이라 표시되어 있습니다. 가격은 100g당 4,834원으로 요즘 고공행진을 거듭 중인 1등급, 1+, 1++과 비교해도 한참 저렴한 가격입니다.

하지만 불과 1년 전만 해도 3등급을 5천원 가까이 구입한다는 건 상상도 하지 못했죠. 그만큼 올해는 한우 값이 엄청나게 상승했습니다.

한우 값의 상승요인은 사육 두수의 축소와 관련 있습니다. 정부는 한우 농가를 줄이는데 양팔을 걷어붙였고 여기에 휴가철과 맞물리면서 수요는 증가하는데

공급은 줄어 가격이 오른 것. 현재 1등급 꽃등심 가격은 100g당 7,500원, 1+은 8,000원 선으로 이 가격은 추석 시즌에 접어들면서 더 오를 전망입니다.

그러니 조금이라도 저렴한 이때 미리 고기를 사다가 숙성을 해두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되겠습니다.

 

어쨌든 제가 구입한 3등급의 전표를 살피면 가공일이 7월 26일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도축은 가공일로부터 1~3일 이내에 들어갔기에 7월 26일부터 숙성 기간을 잡아도 오차 범위는 1~3일 차이밖에 나지 않습니다.

해당 정육점은 손님의 요구에 3등급 한우를 취급하고 있었습니다만, 이것이 자주 팔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들여오자마자 냉동했다는 게 흠입니다. 

제가 산 고기도 냉동육입니다. 원래 냉동육은 숙성의 대상이 되지 않지만, 이것은 가공한 지 하루 만에 냉동한 것이므로 숙성해도 될 것이라는 판단을

하였습니다. (만약, 구입하려는 소고기가 수일 전에 냉동한 것이라면 숙성 효과를 보기 어렵습니다. 숙성의 제 1 조건은 얼지 않은 생고기입니다.)   

 

 

3등급인 만큼 마블링이 거의 없습니다. 저는 이것을 김치냉장고 육류 숙성으로 맞춘 칸에 24일 동안 보관해두었습니다.

이 장에서는 제가 하는 소고기 숙성법에 관해 짤막하게 언급하고 넘어가겠습니다.

 

 

#. 가정에서 하는 최적의 소고기 숙성법

- 반드시 생고기를 사용한다.

- 앞뒤로 흡수지를 붙여 진공포장한다. (구입 시 정육점에 부탁하면 해줍니다.)

- 부위는 크게 상관없지만, 로스용이나 스테이크용에 적합한 등심, 안심, 채끝이 적당하다.

- 단위는 kg 단위를 권장한다. 가령, 600g 단위로도 숙성할 수 있지만, kg 이상의 덩어리에 비해 숙성을 오래 견디지 못하므로 숙성 기간도 조금씩 

   단축해야 한다. 다만, 그것이 가정에서는 제대로 된 숙성 효과를 보기 어려우므로 웻에이징 숙성은 가능한 1kg 이상 덩어리째로 보관할 것을 권장한다.

- 보관 온도는 0~1도이며 평소 자주 여닫지 않은 김치냉장고 서랍형 칸에 보관한다. (일반 냉장고는 권하지 않는다.)

- 숙성 기간은 도축 일로부터 20~25일이 적당하다.

 

 

3등급 채끝등심을 개봉하였습니다. 키친타월로 피를 닦아주고 조금이라도 표면에 냉기가 붙었을 때 단칼에 썰어냅니다.

이 시기를 넘기면 육이 물러져 똑바로 썰기가 어려워지죠. 그리고 처음 숙성육을 개봉할 때는 육이 공기와 차단된 상태이므로 검붉은 색을 띱니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차츰 선홍색을 띠는데요. 사람들은 선홍색이 원래의 고기 색으로 알고 있지만, 실은 그 반대입니다.

소 근육에는 미오글로빈이라는 색소 성분이 산소와 결합하지 않은 상태로 존재합니다.

다시 말해, 살아있는 소의 근육은 검붉은색을 띠고 있는데 이것이 도축되면서 산소와 결합하면 화학적 반응에 의해 선홍색으로 변합니다.

어느 쪽이든 신선한 고기의 조건에 해당하지만, 숙성을 하다 보면 표면에 갈변 현상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 갈변은 고기가 썩은 게 아니고 자연스러운 현상이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대신 갈변은 시간이 지나도 선홍색이 되지 않습니다.)

문제는 이렇게 재단했을 때 속에서부터 갈변이 생기는 경우가 있는데 어떠한 문제로 인하여 숙성이 제대로 되지 않은 것입니다.

고기 중심부에 갈변이 생기거나 혹은 겉면이 녹색을 띠거나 역한 냄새가 난다면 그 고기는 부패가 진행된 것이므로 숙성을 제대로 하려면 언급한 소고기

숙성법의 조건을 모두 만족해야 실패할 일이 없을 것입니다.

 

 

3등급의 육은 이렇게 생겼습니다. 우리가 평소 먹는 고기와는 모양새가 많이 다르죠.

소 근육이 가지는 순수한 지방만 듬성듬성 있을 뿐. 곡물(옥수수) 사료에 의해 강제로 부풀린 마블링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 정도로 기름기가 없는 소고기다 보니 사람들은 3등급이 매우 질길 것이라는 편견을 갖는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실제로 이 고기를 숙성하지 않고 구워 먹었다면 굉장히 질겼을 것입니다.

 

숙성은 질길 수 있는 근육을 이완시켜 아미노산의 분해를 돕고 육을 부드럽게 해줍니다.

더불어 소고기의 감칠맛 성분인 글루탐산, 이노신산, 올레인산 등을 활성화 해 소 근육이 갖는 본연의 맛을 상승시킵니다.

그것이 3등급이라 한들 다르게 적용될 리 없고요. 우리나라는 3등급이라는 모호한 숫자로 소의 등급을 매기고 있지만, 그래 봐야 지방 함유량은 미국의

초이스 등급과 비슷한 수준입니다. 즉, 숙성만 잘한다면 3등급이라도 맛이 달라진다는 것이지요.  

 

 

두께는 팬프라이드 스테이크에 알맞은 2~2.5cm로 잘랐습니다.

 

 

스테이크 굽는 방법은 기존에 쓴 글이 많으니 여기서는 생략하겠습니다.

 

 

집에서 고기를 굽는데도 보기보다 연기가 나지 않지요. 연기가 적게 나는 것은 지방이 적은 고기의 특징입니다.

우리가 밖에서 소고기를 사 먹을 때는 대부분 1+, 1++ 등급의 소고기를 구워 먹습니다. 호주산 와규도 지방이 많죠.

지방(마블링)이 많은 고기일수록 많은 연기를 발생시킵니다. 그래서 불판에 환기구를 가깝게 댈 수밖에 없지요.

물론, 3등급 소고기도 굽게 되면 연기가 발생하지만 1+과 1++ 등급의 소고기 만큼은 나지 않습니다. 

저등급 소고기를 숙성해서 구워 먹으면 이러한 이점이 있다는 것도 참고하세요.

 

 

3등급 한우로 구운 채끝 스테이크

 

처음에는 3덩어리였는데 한 덩어리는 MBC 경제 매거진의 스텝분들이 드셔서 남은 두 덩어리를 가족에게 대접하였습니다.

 

 

저의 스테이크는 으깬 마늘과 로즈마리를 자주 활용합니다.

 

 

썰어보았습니다. 굽는 시간이 약간 지체돼 미디움에서 미디움 웰던의 느낌이 되었는데요.

확실히 3등급이라서 그런지 전에 했던 1~2등급보다는 육의 탄력이 느껴지는 식감이었습니다.

결코 질기지 않으면서 씹는 감촉은 적당히 살아있는 상태. 이것이 3등급 숙성 한우의 특징이었습니다.

 

다만, 예전에 했던 숙성육과는 테스트 환경이 달랐습니다. 이번에 숙성한 3등급 한우는 도축 후 하루 만에 냉동한 육이고 이것을 그대로 진공포장해 숙성실에

넣어두다 보니 자연 해동에 시일이 걸렸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만약, 생고기라는 똑같은 출발 선상에서 숙성에 들어갔다면 육질이 좀 더 부드러웠을 것으로

확신합니다.

 

맛을 본 피디님은 "이런 스테이크 맛은 난생처음"이라는 평가를 해주셨습니다.

어떤 점이 다르냐고 여쭈니 일반 패밀리 레스토랑의 스테이크는 씹어도 씹어도 맛이 밍밍했는데 이 고기는 씹을 때 육즙이 짝하고 나오면서 부드럽게 

씹히는 식감이 있었고, 무엇보다도 맛이 고소해 계속해서 입맛이 당긴다고 평가를 남겨주었습니다. 실제로 가족과 함께 시식해 본 결과, 3등급이라 하기엔

고기가 많이 연해진 상태였고, 육향도 상당한 수준으로 올라와 있어 가격대 성능비로는 매우 흡족한 결과로 마무리 지었습니다.

 

 

#. 숙성에 대한 인식에 관하여

사실 가정에서 소고기를 숙성해 저등급 한우를 고등급 한우에 버금가는 맛으로 먹고자 하는 저의 열망은 그리 순탄치가 않았습니다.

고정관념보다 무서운 건 없다고 무엇보다도 정육점의 반응이 그런 저의 도전 의식을 불타게 만들었죠. 

 

"집에서 숙성한다고요? 에이 그건 힘들어요."

"아이고 의미 없습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3등급으로 숙성하겠다는 글에는 이런 댓글도 달렸습니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정육점을 운영하는 이들 중 연세 지긋한 옛날 분일수록 집에서 숙성해 먹는 것에 회의적인 관점을 갖는 경향이 있습니다.

제가 처음 소고기를 숙성해 먹겠다고 했을 때 저를 바라보는 냉담한 눈초리, 조롱의 말투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데요.

결과적으로 지금은 그들의 생각이 틀렸음을 증명하였습니다. 저는 위의 댓글러를 포함해 묻습니다.

집에서 숙성은 해보셨습니까? 저와 같은 방식으로 숙성해서 고기를 구워보신 적은 있나요? 없으면 말을 아끼시기 바랍니다.  

 

가정에서 숙성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옛말이죠. 지금은 성능 좋은 냉장고가 쏟아지는 세상입니다.

언제까지 숙성이 정육점의 고유 권한인 양 여기시렵니까. 숙성은 방법만 알아둔다면 특별한 기술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이 장에 언급한 '소고기 숙성법'의 요건을 만족시킨다면 어느 누구든 가정에서 숙성육을 즐길 수 있습니다.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국내의 쇠고기 등급제가 오로지 마블링에 치우쳐져 있어 소를 생산하는 농가와 소비자 모두 1+, 1++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잘못된 정책은 잘못된 음식문화를 낳습니다. 마블링에 의존하는 등급제로 인해 적잖은 소비자들이 2~3등급을 질이 떨어지는 소고기쯤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는데요. 우리나라의 쇠고기 등급은 마블링의 양으로 기준을 매길 뿐, 품질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지금은 마블링의 함량이 곧 고기 품질을 가늠하는 척도인 양 돼버렸습니다. 그 결과, 우리 국민은 소고기를 기름 맛으로 즐기게 되었죠.

 

저는 '맛이란 주관적이다.'라는 말을 그리 좋아하지 않습니다. 물론, 사람마다 느끼는 맛은 분명히 다릅니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식재료가 품고 있는 맛의 기준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그 음식의 맛을 어떻게 느껴야 한다는 맛의 포인트도 분명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좋은 음식은 그러한 맛에 한층 다가서는 것과 그 맛을 잘 느끼도록 해주는 데 있습니다.

 

소고기의 맛 포인트는 애초에 지방이 아닌 근육의 단백질 맛에 있습니다.

그 단백질 맛에는 자연계에 존재하는 여러 감칠맛 성분이 존재합니다. 그 성분이 높으면 우리는 육향이 진하다고 표현합니다.

소뿐만 아니라 이 세상 그 어떤 가축과 물고기도 숙성과 자연 분해로 인해 감칠맛을 높일 수 있습니다.

숙성과 발효는 인위적인 가공이 아니며, 숨겨진 맛을 자연적으로 끌어올리는 수단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곡된 등급제에 길들여 근육이 가지는 고유한 맛보다는 기름 맛으로 소고기 맛의 전부를 판단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소 가격을 부추기고 몸에 좋지 않은 쇠기름 함량을 높였으며, 결과적으로 낮은 품질의 소를 비싼 가격을 주고 먹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GMO(유전자를 변형한 농산물) 옥수수를 수입해야 하는 농가의 부담은 점점 가중되었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전가되면서 옥수수

생산국만 배 불리는 격이 돼버렸죠.

 

이 장에서는 굳이 3등급 한우를 구입해 숙성해 드시라는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지금 정육점에는 3등급은 고사하고 2등급도 구하기가 어렵습니다. (특별히 주문하면 가져다 놓기도 합니다만) 인터넷 쇼핑몰을 통해 구매할 수는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1등급만 하더라도 숙성하면 1++ 못지않은 맛을 냅니다.

100g당 만원 이상을 주고 지방을 강제로 찌운 1++ 소를 먹기보다는 맛과 경제적으로 훨씬 이득입니다.

 

저는 어려울 게 없습니다. 어차피 소고기는 특별한 날을 위주로 먹게 되지 않습니까. 기념일, 명절, 캠핑, 손님 접대 등등.

이런 날은 일찌감치 날짜가 정해지기 때문에 여기에 맞춰 소고기를 사서 숙성에 들어가면 그만입니다.

그렇게 숙성한 고기는 시간과 정성이 함께한 것이므로 먹는 이들도 평소 맛보던 소고기와 다른 '남다른 맛'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아래 링크는 그동안 제가 소고기를 숙성하면서 올린 후기들입니다.

숙성법부터 시작해 고기를 잘 굽는 방법과 스테이크에 이르기까지 소고기를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한 번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소고기 숙성 관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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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입질의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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