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민이고 있는 쇠고기 마블링의 실체(한우, 드라이에이징, 건초, 곡물 사료 마블링 비교) 


 

 

마블링이란 무엇인가? 질문 자체는 단순하지만, 여기에는 쇠고기를 둘러싼 여러 이익집단이 얽히고설킨 복잡한 문제가 있습니다. 일본과 더불어 우리나라는 쇠고기 등급을 '마블링의 양'으로 매기고 있습니다. 이에 국민의 인식도 그렇게 따라가고 있죠. 한국과 일본에서 쇠고기 마블링은 쇠고기 품질의 기준이 되었습니다. 마블링이 풍부한 쇠고기라야 맛이 좋고 가격도 높아 으뜸이라는 것입니다. 추석과 설 명절 때 선호하는 한우 선물세트에서 몇 등급짜리 쇠고기를 샀느냐는 그 사람의 성의를 가늠하는 데 매우 중요한 척도가 되기도 합니다. 마블링이 많아야 등급도 높고 가격 또한 높게 형성되니 그것을 선물하면 그만큼의 성의가 돋보이는 것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받아본 사람은 마치 서리가 내린 듯한 마블링에 감탄하며 이 고기가 주는 맛에 기대를 하게 합니다. 실제로 마블링은 시각적으로는 물론, 입맛까지 만족시켜주는 '품질 높은 쇠고기'란 인식과 함께합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우리가 알지 못했던 함정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과연 마블링이 많은 쇠고기가 맛도 좋고 품질도 좋을까요? 작년 이맘때 MBC에서 방영한 '육식의 반란, 마블링의 음모'편을 본 사람들은 지금부터 제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짐작할 것입니다.

 

 

1++ 등급의 꽃갈비살. 먹음직스러운가? 우리는 지금 고기가 아닌 비계덩어리를 보고 있다.

 

일본과 한국의 쇠고기는 마블링을 기준으로 한 등급제에 지배를 받습니다. 등급이 높아야 제값을 쳐주므로 농가에서는 어떻게든 높은 등급을 받기

위해 혈안이 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높은 등급을 받으려면 소를 어떻게 키워야 할까요?

좁은 우리에 가둬놓고 움직이지 못하게 한 다음(운동량이 많아지면 육질이 질기고 지방이 잘 끼지 않으므로), 곡물(옥수수) 사료를 강제로 먹이는 식의

강제적인 사육 방식을 선호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일부 농가에서는 소의 지방(마블링)을 불리기 위해 먹여선 안 될 썩은 빵과 동물성 배합 사료를

먹이기도 하죠. 

 

특히, 가장 많이 사용하는 옥수수는 모두 수입에 의존합니다. 옥수수는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곡식이 아닐뿐더러 우리의 식량 자급률을 낮추는

대표적인 곡식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한우의 품질을 결정하는 마블링 판정기준은 외국산 곡물(옥수수)을 많이 사들여야만 달성할 수 있는 정책입니다. 

결국, 옥수수를 생산하는 국가를 위한 정책입니다. 이러한 옥수수를 소에게 먹였을 때 발생하는 경제논리는 젖혀두고라도 당장 소에게 먹여서 문제가

되는 것은 소의 본능을 거스르고 지방(마블링)을 강제로 부풀려 살을 찌운 비만 소를 비싼 가격에 팔며 그것이 '소고기의 맛'으로 기준을 잡는 왜곡된

소비문화에 있습니다.

 

소는 예부터 풀을 뜯어 먹으며 자라온 동물입니다. 풀을 먹어야 할 소가 동물성 사료를 먹거나 혹은 곡물(밀, 옥수수)을 먹으면서 전에는 생기지 않았던 

지방이 근육 사이사이에 낀 것. 그것이 바로 마블링의 실체입니다. 쇠기름이 몸에 좋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입니다.

쇠고기 마블링 또한 쇠기름과 같은 성분입니다. 다만, 모양이 한 곳에 뭉치지 않고 꽃처럼 퍼져있어 기름이나 비계덩어리라고 느껴지지 않을 뿐, 근본은

똑같습니다.

 

사람들은 그러한 고기가 좋은 고기로 알고 선호합니다. 이상한 쇠고기 등급제에 국민이 세뇌받아 온 것입니다.

그 결과 우리가 먹는 쇠고기는 고기 본연의 맛보다는 기름 맛으로 먹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맛이 익숙해진 지 오래입니다.

우리가 육즙이라 착각하는 것도 실은 쇠기름(마블링)이 열에 녹아 미오글로빈과 수분과 함께 결합한 것입니다.

그것을 먹으며 '살살 녹는다.'란 표현을 씁니다. 느끼한 기름 맛이 당장에는 고소한 맛처럼 느껴지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한동안 먹다 보면 이내 질립니다. 쇠기름을 많이 먹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혀는 완벽하지 못해 처음에는 속일 수 있어도 시간이 지나면

뒤늦게야 그것이 느끼함이었음을 깨닫습니다. 하지만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포만감에 젖어든 상태이므로 때가 늦습니다.

뒤늦게 알아차린 느끼함도 포만감 앞에서는 정당화할 수 있게 됩니다.

 

마블링을 기준으로 등급을 매기는 현실에서 우리는 그렇게 쇠고기를 먹어왔습니다. 그러니 쇠고기가 가지고 있는 본질의 맛을 아는 이들은 드뭅니다. 

쇠고기가 가진 본질의 맛이 무엇인지를 한 번쯤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이 글을 쓰게 된 동기는 변화를 기대하기 어려운 쇠고기 등급제에서

소비자가 먼저 깨우치고 쇠고기 소비 패턴에 변화의 바람이 일었으면 하는 데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블링의 모양과 패턴을 보고 이 소가 어떤 사료를 먹었는지 대략 짐작하게 하는 것입니다.

아래의 사진들은 소먹이에 따른 마블링의 차이입니다.

 

 

한우(등급 미정) 등심

 

이 고기는 한우입니다. 원산지는 제주도입니다. 그러니 제주 한우라 봐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 고기는 쇠고기 등급제에서 높은 등급을 받기 위해 길러진 소가 아닙니다.

소 농가 주인이 식육식당까지 운영하고 있어 직접 기른 소를 자급자족으로 식당에 내다 팔고 있습니다.

자기가 기른 소를 도축하여 구이나 육회 등으로 파는 것이니 1++을 받기 위해 축사에 가두어 강제로 옥수수 사료를 먹일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여 이 소가 100% 풀과 여물을 먹여서 길러진 것은 아닙니다. 평소에는 방목하고 풀을 뜯게 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의 지방은 끼어야 하니

곡물 사료를 투입할 것입니다. 이때 곡물 사료와 건초와 배합까지는 알 수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높은 등급을 받기 위해 축사에 가두고 옥수수

사료로 살을 찌운 소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마블링의 형태를 보면 마치 모세혈관처럼 가느다랗고 섬세히 퍼져있습니다. 이런 마블링이 좋은 마블링입니다.

이와 비슷한 형태의 소를 생산해내는 농가가 몇 군데 있습니다. 대표적인 곳인 전북 완주 고산면에서 생산되는 '화식우'입니다.

화식우는 옛 전통방식 그대로 소 여물을 끓여서 먹이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러니 화식우의 마블링도 위의 형태와 비슷할 것입니다.

 

 

     한우 1++ 등급

 

      반면, 우리가 마트에서 사 먹는 1+ 이상의 쇠고기는 마블링 모양부터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위 사진은 한우 1++ 등심입니다. 보다시피 마블링의 형태와 완전히 다릅니다.

모세혈관처럼 섬세하게 퍼진 것이 아닌 지방의 줄기가 두껍고 뭉쳐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형태의 마블링은 축사에 가둬서 옥수수를 강제로 먹여 살을 찌운 소에서 나타납니다. 

이는 쇠고기 등급제가 만들어낸 결과물로 인위적으로 지방을 끼게 하여 상품성을 높인 것입니다. 등급제가 만든 노예 판이기도 하지요. 

 

이런 소를 한국에서는 1++ 최고 등급으로 매깁니다. 우리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쇠고기 소비량이 많고 또 관련 연구와 기술도 선진인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이런 고기를 쉽게 찾아볼 수 없습니다. 만약에 이런 고기가 그 나라의 마트에 진열되면 사람들은 '뭐 이렇게 생긴 쇠고기가 다 있나?'라

신기하게 쳐다볼지도 모릅니다. 그 정도로 생소한 모양, 생소한 등급 판정 기준이 우리나라에서는 적용되고 있는 현실입니다.

 

 

1++ 살치살

 

이 부위는 꽃등심의 한쪽에서만 나오는 살치살입니다. 보기에 먹음직스러운가요?

구워서 썰면 안에서 기름물이 줄줄 흘러내립니다. 실제로 맛을 보면 기름으로 입안 가득 흥건해집니다.

여기서 우리가 '육즙'이라고 착각하는 것은 옥수수로 찌운 '기름 녹은 물'일 것입니다. 

사실 진짜 육즙은 약간의 지방 + 충분한 미오글로빈 + 수분의 결합체이지만, 여기에서 육즙은 과다한 지방이 녹아서 생기는 것이겠지요.

 

 

※ 우리는 지금까지 쇠고기를 기름 맛으로 먹지는 않았는지 한 번쯤 생각해 봐야 한다.

육즙과 핏물은 다릅니다. 일부 어르신들은 육즙이 붉어 핏물로 오해하는데 핏물에는 피를 구성하는 '헤모글로빈과 철분'이 들어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육즙은 열에 녹은 단백질과 수분의 결합체입니다. 단백질에는 고기의 색소 성분인 미오글로빈이 다량 함유되어 있으며 지방도 조금 섞입니다.

그러니 헤모글로빈과는 그 궤를 달리합니다.

 

'따듯한 육즙이 입안 가득 퍼졌다.', '마치 과즙을 먹는 듯하다.' '맛이 고소하다.' 등으로 표현되고 있는 것은 육즙이 주는 고소함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위 고기에서 나오는 것은 육즙이기보다 '녹아버린 기름'에 가깝습니다. 기름이 주는 당장의 고소함에 우리는 맛있다고 착각하지만, 정작

이러한 쇠고기는 육향이 충분하지 않을뿐더러 쇠고기가 가지는 본질의 맛 또미미합니다.

 

쇠고기가 가지는 본질의 맛. 그것을 증폭시켜주는 수단이 바로 '숙성'입니다.

숙성을 통해 육향을 끌어올리고 육질은 부드럽게 만드는 기술. 그 이야기는 제 블로그에서 종종 다뤘던 소재였습니다. 

 

 

50일간 드라이에이징한 한우 2등급 채끝등심

 

위 사진은 건초와 섬유질 배합사료만을 먹인 소로 마블링은 보다시피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수십 일간 숙성했기 때문에 육향이 극에 달해 있습니다.  

그 육향이란 게 바로 쇠고기가 가지는 본연의 맛입니다. 우리가 맛을 봐야 할 포인트가 바로 여기에 있으며 지방이 녹은 기름 맛이 아닙니다.

적은 마블링, 낮은 등급이라도 숙성을 통해 맛을 끌어올리면, 1++ 한우를 능가합니다.

태생이 2등급이니 숙성 전까지는 가격이 저렴할 것입니다. 가격이 적은 고기는 기름기도 적어 먹어도 부담이 적습니다.

물론, 느낌함도 적습니다. 많이 먹으면 질리는 게 쇠고기지만, 이런 숙성육은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가 않습니다.

그러니 굳이 비싼 돈 들여 1++을 사 먹을 필요가 없습니다.

 

 

 

위 사진은 한우 2등급으로 보시다시피 마블링이 별로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맛은 1++을 능가합니다. 마블링에 의한 기름맛이 아닌 고기가 가지는 본연의 맛을 끌어 올렸기 때문입니다.

마블링에 의존하지 않은 고기 자체에서 나는 깊은 육향이 미각의 기준점이 되는 쇠고기 등급제가 필요해 보입니다. 

 

작년 이맘때는 '육식의 반란, 마블링의 음모'가 TV 전파를 탔습니다. (그로부터 한 달 뒤 한우협회가 제작한 느낌인 '마블링의 변명'도 전파를 탔지만)

여기에 몇몇 지각 있는 음식(맛) 칼럼니스트들이 객관적이면서 과학적인 풀이로 쇠고기 맛에 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쇠고기에 대한 왜곡된 지식과 소비문화가 조금씩 기틀을 잡아나갈 것으로 저는 기대합니다.

이 글도 그러한 궤도에 한발짝 다가가 많은 이들에게 바른 쇠고기 지식과 맛을 전파하였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50일간 드라이에이징한 한우 시식기를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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