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고기 숙성법(40일간 숙성한 소고기)


얼마 전 신문에서는 마블링이 부족한 소고기에 지방을 주사한 '마블링 조작 소고기'를 가공해 판매한 사례를 보았습니다.
소비자가 마블링에 목을 매니 생긴 현상입니다. 마블링과 쇠기름은 같음에도 한우 협회는 소를 움직이지 못하게 가두고 옥수수 사료를 먹여
강제로 찌워 만든 마블링이 우리 몸에 좋다는 식으로 보도하기도 했지요.

한우 1++의 꽃등심을 보면 쇠기름(지방기)이 가득합니다. 살치살 같은 특수부위는 마블링이 눈꽃처럼 서려 있어 식욕을 자극하는데요.
그 비율이 살보다 많은 기름 덩어리입니다. 그것을 불에 구우면 녹아서 기름이 되는데 그것을 우리는 '육즙'으로 착각하고 먹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지방이 녹은 기름을 먹는 것이며 우리는 소고기를 기름 맛으로 먹는 풍토의 한가운데에 있을 뿐입니다.
마블링을 중시하는 소비문화에서 살아남으려면 마블링 가득한 소고기를 생산해 높은 등급을 받아야만 업자도 살 수 있습니다.
결국, 소고기에 지방을 주사해가며 가공 판매한 사건은 우리의 그릇된 소고기 식문화가 낳은 부끄러운 페혜입니다.

제가 소고기를 사다 먹는 방법은 그리 어려울 게 없었습니다. 굳이 비싼 돈을 주며 기름 덩어리 소고기를 즐기지 않아도 얼마든지 소고기 맛을
즐길 수 있으며 가정에서 먹을 때도 적당한 등급의 소고기를 사다가 숙성해 먹으면 되니 말입니다.
남들은 기름 맛으로 먹다가 조금 지겨워질 때쯤이면 '느끼하다.' 말하지만, 충분히 숙성한 소고기는 담백한 맛과 부드러운 식감, 여기에 진한 육향이
있어 맛있는 소고기를 양껏 즐길 수 있으니까요.

숙성은 고기의 육향을 끌어올리고 식감을 부드럽게 해주는 장점이 있습니다.
더 나아가 저등급 소고기의 풍미를 한층 끌어 올려 고등급 소고기 못지 않은 맛을 낸다는 점에 가장 큰 의미를 두고 있습니다.


18일가량 숙성한 육우 2등급 채끝 등심

우리가 소고기를 먹을 때는 크게 세 가지 육색을 접하게 됩니다. 그 첫 번째가 위 사진입니다.
위 소고기는 집에서 18일가량 숙성한 채끝 등심인데요. 일반적으로 고기가 가장 신선하다고 여기는 '선홍색'이 아닌 적갈색을 띠고 있습니다.
이 적갈색 소고기는 신선하지 않아서 저런 색을 띠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선홍색의 소고기보다 더 신선해서 저런 색을 띱니다.

보기에 따라서는 적갈색으로 보일 수도 있고 자색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이는 근육의 붉은 색소 성분인 미오글로빈(Myoglobin)이 공기와 접촉하지 않은 혐기성 상태에서 보이는 색이기도 합니다.
이 색깔은 도축 당시에 근육이 공기와 접촉하지 않은 상태로 '근육이 가지는 본래의 색깔'이기도 합니다.
이를 진공포장하면 공기(산소)가 차단돼 적갈색 내지는 자색을 띠게 됩니다. 고기 중에서는 가장 신선한 상태입니다.
이것을 꺼내 포장을 뜯고 몇 분간 놔두면 아래와 같은 상태가 됩니다.


25일가량 숙성한 육우 2등급 채끝 등심

바로 일반 소비자가 가장 신선하다고 여기는 선홍색 빛깔의 소고기가 됩니다.
미오글로빈이 산소를 만나 '옥시미오글로빈(Oxymyoglobin)'이 된 것인데요. 
여기서는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 없이, 공기와 차단된 근육이 공기(산소)와 만나 밝은 선홍색을 띠게 된 것으로 이 역시 신선한 고기라 할 수 있습니다.
이를 일각에서는 '고기가 제 색깔을 찾았다.'고 말하지만, 실제 그 반대가 되겠죠.
진짜 고기 색은 위의 적갈색이고 선홍색 고기는 산소를 만나 형성된 색이라 여기서 화학 반응까지 논할 필요는 없어 이쯤에서 설명을 마치겠습니다.

참고로 위 사진의 소고기 역시 육우 2등급 채끝 등심으로 집에서 25일가량 숙성했습니다.
맛은 18일 숙성이나 25일 숙성이나 크게 차이가 나지 않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정육점에서 바로 사다가 구워먹는 소고기보다는 훨씬 맛있다는 것.
정육점에서 파는 소고기도 도축 이후 진공 팩에 넣어 숙성한 것인데 그 기간이 5~7일로 좀 짧습니다.
이를 구입하여 추가로 숙성하는데요. 총 숙성 일이 25일로 만든 것이 위 사진의 소고기입니다.

앞서 소개한 두 가지 소고기는 모두 진공 포장한 상태를 그대로 가져와 김치 냉장고에서 추가 숙성하였습니다.
온도는 1도로 맞추고 평소에 잘 열지 않은 칸에다 보관하는 게 핵심입니다. 이러한 숙성방식을 '웻 에이징'이라고 합니다.
웻 에이징 숙성 방식은 특별한 숙성 방식이 아닌 그냥 정육점에서 진공 포장하여 숙성고에 넣어두는 것입니다.


40일가량 숙성한 육우 2등급 채끝 등심

앞서 자색 빛깔이 나는 소고기와 선홍색 소고기에 대해 알아봤습니다만, 숙성의 최종 단계는 '암적색'으로 끝납니다.
이 암적색 근육은 오랜 시간 공기에 노출됐거나 혹은 진공으로 포장하지 않은 고기를 너무 오랫동안 숙성했을 때 생기는 갈변 현상입니다.
혹자는 '고기가 썩은 게 아니냐'고 하지만, 이것은 고기가 썩은 게 아니고 그냥 갈변이 된 것.

근육 색을 담당하는 미오글로빈에 호기성 미생물이 발생하여 '메트미오글로빈(Metmyoglobin)'이 된 것으로 앞서 소개한 자색 소고기와 다른 점은
계속 둔다고 해도 선홍색으로 돌아가지는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는 숙성의 최종 단계로 먹어도 아무 문제는 없지만, 신선한 고기로 분류하기에는 일반적인 소비자의 인식에서는 무리가 있습니다.


40일간 숙성한 이것을 썰어보았습니다. 부위는 채끝 등심이고 육우 2등급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숙성 일이 아닌 숙성 방식인데요.
앞서 두 개의 소고기는 정육점에서 진공 포장한 덩어리를 그대로 가져와 김치 냉장고에 넣어두었습니다. 웻 에이징 숙성의 표본이기도 하지요.
하지만 위 고기는 순수 진공 상태가 아닌 공기와의 접촉 가능성을 조금은 열어둔 방식으로 하였습니다.

방법은 고기를 덩어리째 사다가 흡수지로 꽁꽁 싸맵니다. 흡수지는 미트 페이퍼나 웰빙 여과지를 써도 됩니다.
다음은 공기의 차단을 위해 비닐 랩으로 꽁꽁 싸줍니다. 마지막으로 신문지로 한 번 싸매준 후 1℃씨로 맞춘 김치냉장고에다 보관하면 됩니다.
정육점에서 이미 열흘 간 숙성한 고기를 구매했으므로 집에서는 추가로 30일을 더 숙성하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개봉하면 위 사진처럼 됩니다.

소고기를 구매할 때는 앞서 소개한 첫 번째와 두 번째 사진의 빛깔을 만나는 것이 가장 신선한 소고기일 것입니다.
세 번째 사진은 저처럼 실험적인 숙성을 하지 않은 이상 정육점에서는 접하기 어려울 것이고요.
그렇다면 숙성의 최적 일은 언제일까? 하는 문제가 남았습니다.
가정에서 숙성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으며 방식에 따라 최적화된 숙성일이 다릅니다.
참고로 모두 웻 에이징 방식입니다. (드라이 에이징은 가정에서 하기가 사실상 어렵습니다.)

1) 진공포장한 고기를 그대로 김치냉장고에 넣어두는 경우
2) 흡수지로 꽁꽁 싸매고 비닐 랩으로 또 한번 꽁꽁 싸매고 마무리로 신문지로 말아서 김치냉장고에 넣어두는 경우


1)번 방식은 정육점에서 소비자에게 고기를 내다 팔 때 법적으로 허용한 숙성 일이 최대 60일까지입니다.
여기서 숙성 일은 정육점에서 숙성한 날과 가정에서 숙성한 날짜를 모두 합친 것입니다.
가정에서 1)번 방식으로 숙성했을 때 가장 적당한 맛을 내는 기간은 총 숙성일 25일~30일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2)번 방식은 완전한 밀폐가 아니므로 숙성 기간이 짧아집니다. 총 숙성 일을 40일로 하면 위 사진처럼 갈변이 생깁니다.
구워서 먹으면 문제가 없고 다른 숙성 소고기와 마찬가지로 진한 풍미를 느낄 수 있지만, 효율은 좀 떨어집니다.
이때부터는 고기 속 수분기가 마르기 시작하므로 웻 에이징 숙성의 최대 장점인 '촉촉한 육즙'의 풍미를 즐기기 어렵습니다.
대신 육향이 진해지기는 하는데요. 굳이 저렇게까지 기다려가면서 먹기에는 25~30일 숙성한 쇠고기보다 맛의 경쟁력이 떨어집니다.

숙성의 정점은 갈변이 일어나기 전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2)번 방식으로 숙성하게 된다면 총 숙성일 15~20일까지가 알맞다고 봅니다.
인터넷에서 소고기를 숙성한다며 쓴 글 중에는 3일 숙성도 있는데요. 사실 3~5일 숙성은 안 하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숙성 효과가 미미합니다.
하려면 열흘 이상해야 효과가 나타납니다. 그 효과란 육향과 풍미는 증진되면서 식감이 부드러워지는 것을 말하겠지요.


가정에서 먹는 숙성 소고기의 참맛

웰던 스테이크

미디엄 레어 스테이크

미디엄 스테이크

앞으로는 소비자들의 인식에도 변화의 물결이 와야 한다고 봅니다. 이미 지각있는 미식가들은 마블링 고기를 지양하고 숙성 소고기를 먹고 있지만,
대중의 입맛과 선입견은 여전히 '마블링 소고기'에 머물러 있습니다.
소고기의 질적인 가치를 '쇠기름(마블링)'이 아닌 풍부한 육향에 두는 한우 등급제로 개선된다면 소비자들도 그에 맞춰 따라오지 않을까요?

소고기를 드실 때 마블링으로 치장한 쇠기름 맛이 아닌.
진한 풍미와 흥건한 육즙을 맛보는 방법. 그것은 숙성을 통해 이끌어내므로

"육우나 한우 2등급이면 충분합니다."


아래 소고기 숙성에 관한 더 자세한 글이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래요.

<<더보기>>
쇠고기 숙성 방법과 기간(웻에이징과 드라이에이징 숙성에 관하여)
숙성 쇠고기의 참맛, 미디움 레어 스테이크 굽는법
육우 채끝등심으로 스테이크만들기(미디움 웰던 스테이크)
그동안 몰랐던 스테이크에 대한 오해
[찹스테이크 소스의 정석] 찹스테이크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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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입질의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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