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 어류 이야기"

 

두 번째 이야기는 양미리와 까나리의 이상한 관계에 대해 알아봅니다.

 

 

끈에 엮은 양미리, 포항

 

겨울이면 시장터에 늘 보이는 이 생선, 혹시 아시나요? 우리는 보통 이 생선을 '양미리'로 알고 먹습니다. 동해가 주산지이며 해마다 겨울이면 산란하러 들어온 양미리가 그물코에 잘 걸립니다. 그 저렴하다는 꽁치보다도 더 저렴해 서민 반찬감으로는 최고죠.

 

 

건조 양미리

 

양미리는 서민들이 많이 찾는 생선이자 겨울철 별미입니다. 지금처럼 먹거리가 풍족한 시대에 태어난 사람들은 잘 모를 수도 있습니다만, 제 기억 속의 양미리 맛은 각별합니다. 어렸을 적 어머니가 해주신 양미리 조림은 무를 넣고 찌개처럼 끓여주셨는데 그 맛이 어찌나 잊히질 않은지.  

 

알도 가득 배서 알 꺼내 먹는 재미도 있고요. 간이 잘 밴 무에 짭쪼름한 양미리를 손에 들고 발라 먹습니다. 여기에 까나리 액젓으로 무친 배추 겉절이와 함께라면, 공깃밥 두 공기 쯤은 어렵지 않게 비울 수 있었던 효자 반찬이었죠. 

 

"그런데 우리가 먹는 양미리가 까나리와 같은 생선임을 아시나요?"

 

 

까나리 삶는 풍경, 백령도

 

#. 우리가 먹는 양미리는 사실 까나리다

살면서 가끔은 어렸을적 동창을 만나기도 합니다. 초등학교 때의 기억으로 만났던 친구가 다 늙어서 오니 어색한 건 둘째치고 외모가 매칭이 안 되더라는 겁니다. 겨울이면 즐겨먹는 양미리도 비슷한 처지는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하루는 백령도로 까나리 취재를 갔을 때입니다. 바닷가에는 까나리 삶는 냄새가 진동합니다. 해마다 4~7월이면 백령도는 액젓을 담그기 위해 까나리 조업을 합니다. 이때 잡힌 까나리는 몸길이 5cm를 넘지 않은 어린 개체들입니다. 맑은 액젓을 내기 위해서는 멸치처럼 작은 생선을 써야합니다. 이유는 내장 째 삶아다 발효시키는 것이라 생선이 크면 쓸개의 쓴맛이 맛과 풍미를 떨어트리기 때문입니다.

 

 

 

발효 중인 까나리 액젓

 

또한, 작은 생선을 써야 발효가 잘 되고 액젓을 걸러내는 효율도 높아집니다. 그래서 백령도의 까나리 조업은 액젓을 담그기 좋은 크기일 때 잡아다 액젓을 담급니다

 

 

표준명 까나리(강원도 방언 양미리)

 

8월이 넘어가면 까나리가 산란을 준비하면서 본격적으로 몸집을 불립니다. 서해에서 액젓에던 까나리가 겨울이면 몸집을 불려 동해로 이동하하는 것이죠. 그래서 겨울철 동해에서 잡힌 양미리는 까나리가 다 자란 성체입니다.

 

 

<사진 1> 표준명 양미리(사진 출처 :http://itaru-t.blogspot.kr/2016/07)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양미리(학명 : Hypoptychus dybowskii)'란 이름을 가진 생선이 따로 있다는 점입니다. '까나리(학명 : Ammodytes personatus)'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엄연히 학명과 분류가 다른 생선입니다.

 

우리가 양미리로 알고 먹는 까나리는 농어목 까나리과에 속하고, 진짜 양미리는 큰가시고기목 양미리과이므로 벌써 상위 분류에서 차이가 벌어지죠. <사진 1>은 도감에 기록된 표준명 양미리입니다. 보시다시피 화살표로 표시한 지느러미가 부채꼴 모양을 하고 있어 까나리와는 구별됩니다. 까나리는 등 전체와 배 뒤쪽이 모두 지느러미로 덮여 있죠.

 

결정적인 차이는 몸 길이입니다. 우리가 양미리로 알고 먹는 까나리는 성체가 30cm에 이릅니다. 양미리는 다 커야 10cm를 넘기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죠. 평균 7~8cm 수준으로 덩치가 매우 작은 소형 어류입니다.

 

 

몸길이 20cm가 훌쩍 넘는 까나리지만, 당시에도 신문에서는 양미리라 불렀다(1996년 10월 15일자 한겨레 신문에서)

 

차이가 이렇게 나는데도 동해에서는 예부터 까나리를 양미리로 부르는데요. 그렇다면 왜 동해 사람들은 까나리를 양미리로 부르게 된 걸까요? 이와 관련해선 정확히 알려진 사실이 없고, 저도 잘 모릅니다. 제가 알아낼 수 있었던 것은 이 양미리란 말이 북한(강원도)에서 넘어왔다는 설입니다.

 

까나리와 양미리 모두 찬물을 좋아하는 냉수성 어류입니다. 차이가 있다면, 까나리는 서해와 동해를 비롯해 알래스카와 극동아시아에만 서식하는 반면, 양미리는 전 세계 온대 및 냉대 해역에 고루 서식한다는 점입니다. 양미리는 까나리와 달리 동해에만 서식합니다. 개체 수가 적을 뿐더러 몸집도 작아 일찌감치 상업성을 잃은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따라서 북한을 비롯해 강원도 사람들이 예부터 잡아먹었다는 양미리는 지금과 같은 까나리 성체일 가능성이 큽니다. 옛 신문을 살펴도 이러한 사실을 알 수 있었는데요. 80~90년대 신문에 찍힌 양미리의 모습도 까나리 성체였고, 그보다 더 오래된 1959년도에는 아예 '양미리 떼', '양미리 조업'이란 말이 등장합니다. 이러한 사실로 보아 '양미리'란 말은 도감상에 명명된 진짜 양미리와는 별개로 꽤 오래전부터 쓰인 것으로 추정합니다.

 

도감에서의 명칭과 실생활에서 부르는 명칭이 서로 다르면, 결국에는 혼선이 빚어집니다. 까나리를 양미리로 부르는 것에는 상업적인 의도가 없지만, 강원도 지역은 꽤 오래전부터 구전에 구전으로 전해진 이름이라 쉽게 고쳐질 것 같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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