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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자 확인을 통해 부모와 자식 관계가 새롭게 밝혀지는, 아침 드라마 같은 상황이 바다에서도 종종 일어납니다. 맛도 다르고 모양도 달라서 지금까지 서로 다르게만 취급했던 두 식재료가 실제로는 같은 어종이었음이 밝혀진 사건. 그래서 오늘은 어부와 상인, 낚시 및 일식 분야에서도 역대급으로 뒤통수 칠 만한 기묘한 사연을 소개할까 합니다.
표준명 홍어(방언 : 간재미)
기존에 알던 인식을 살피면 이렇습니다.
"간재미도 홍어의 일종이나 가오리와는 다르다."
가끔 간재미를 두고 홍어냐 가오리냐는 논쟁이 있기도 하고, 한수 더 나아가 간재미가 홍어냐 아니냐는 논쟁도 있습니다. 심지어 어민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한데 대표적으로 “간재미는 홍어 새끼다”와 “간재미와 홍어는 서로 다른 어종이다’라는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 중입니다.
그런데 한 평생 어류 생태학을 연구하고 유전자를 분석해 종의 구분을 체계적으로 분류하는 학자들은 다른 의견을 내놓고 있습니다. 우선 서해와 남해에서 잡히는 간재미는 같은 종입니다. 서식 환경이 다르다 보니 채색과 무늬에 차이가 있을 뿐 유전적으로는 같은 종입니다.
여기서 간재미란 말은 이들 지역에서 불리는 방언입니다. 예전에는 홍어와 구분하기 위해 표준명 '상어가오리(Raja porosa)'로 명명하기도 하였습니다. 홍어와는 다르나 다 크면 몸길이 50~60cm밖에 안 되는 작은 홍어류로 취급했던 것입니다.
반면에 홍어는 1m 이상 아주 크게 자라며 몸에는 요소를 포함하기 때문에 삭히면 암모니아와 트리메틸아민으로 분해되면서 강렬하고도 톡 쏘는 맛을 선사하기로 유명합니다. 홍어 중 최고로 여기는 흑산도 홍어(표준명 참홍어)는 삭혀먹는 고급 홍어로 전국 식도락가들이 앞다투어 찾아 먹는 전남의 진미입니다.
여기까지가 어민과 상인, 미식가와 낚시인들이 알고 있는 상식일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간재미와 홍어 좀 안다는 사람들도 뒤통수 맞을 만한 내용일 것입니다.
간재미 산지로 유명한 진도 가사군도
간재미 잡이는 작은 활새우를 꿴 주낙을 이용한다
#. 간재미와 홍어는 같은 종이었다.
좀 전에 썼듯 간재미의 표준명은 '상어가오리'입니다. 그런데 이 상어가오리가 전남 일대에서 잡히는 '홍어'와 같은 종이라는 사실을 아는 이들은 드물 것입니다. 저는 3년 전, MBC <어영차바다야> 제작진과 함께 4월 무렵 진도로 간재미 취재를 간 적이 있었습니다. 취재를 마치고 칼럼을 쓰는데 이때 간재미와 홍어의 관계를 명확히 하기 위해 국내는 물론, 일본 학술지와 도감을 찾아 일일이 학명을 대질하고 표본을 동정하는 작업을 했습니다.
마침 그 무렵에 기사 하나가 눈에 들어왔는데 뜻밖에도 국내 자료였습니다. 이 자료를 바탕으로 공신력 있는 국내외 자료를 수집해 간재미와 홍어의 관계를 명확히 할 수 있었습니다. 이와 관련된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국립생물자원관은 2008~2010년 동안 국가 생물종 목록 구축 사업을 통해 우리나라에서 자연상태로 서식하는 자생생물 3만7천 여종의 목록을 완성했다고 밝혔다. 특히, 그 동안 같은 종이었지만 다른 이름으로 불렀던 홍어(Okamejei kenojei)와 상어가오리(Raja porosa), 간재미(Raja kenojei), 묵가오리(Raja fusca)등이 모두 동일한 동물로 확인됨에 따라 연구진은 분류학적 검토 후 이들 종을 정명(正名)인 ‘홍어(Okamejei kenojei)’로 정리했다.
‘국제동식물 명명규약'에 따르면 같은 종에 이름이 여러 개일 경우 가장 먼저 붙여진 이름이 정식명이 되고 그 뒤로 붙여진 이름은 정식명에 귀속되는 '이명(異名)'이 된다고 한다. 따라서 간재미의 정식명은 '홍어'이며, 상어가오리가 이명으로 따라붙게 된다.
한편, 홍어 중 최고급 횟감으로 취급되는 흑산도 홍어는 ‘참홍어’라는 별개의 종으로 등재되어 있다. 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 연구위원이자 어류학 박사인 황선도 박사의 글에 의하면 “얼마 전까지 홍어류에 대한 분류학적 체계가 이루어지지 않아 혼란스러웠다. 그러나 한 전문가의 노력으로 한때 살홍어, 눈가오리 등으로 분류되었던 흑산도 홍어가 이제는 ‘참홍어(Raja pulchra)’로 학회에 보고되었다. 그리고 군산을 비롯해 서해안에서 간재미(Raja kenojei)로 지금도 통용되는 놈은 홍어(Okamejei kenojei)로 제대로 자리매김해야 할 때이다.”라고 밝혔다."
현재 한국 어류도감 및 국립수산과학원의 수산생명자원정보센터에는 간재미나 상어가오리 같은 명칭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대신 홍어와 참홍어로만 분류되어 있습니다. 수산생명자원정보센터의 분류동정란에 홍어를 찾아보면 유사어에 간재미, 갱게미, 상어가오리란 말이 등장합니다.
학명은 ‘Okamejei kenojei’로 통합되었습니다. 국립생물자원관의 공식 사이트에는 홍어의 이명을 'Raja fusca Garman(상어가오리)' 즉, 간재미로 표기했습니다. 다만, 아직은 이러한 분류체계가 혼란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기존에 간재미로 부르던 것을 홍어로, 홍어로 부르던 것을 참홍어로 불러야 하니 낚시계와 어민 모두 익숙하지 않을 것입니다.
시장에 유통되는 생물 홍어(간재미)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홍어목 어류가 몇 종류 있는데 모두 한반도를 비롯해 일본, 중국 등 동아시아에 서식합니다. 대표적으로 참홍어, 홍어(간재미), 무늬홍어, 고려홍어 등이 있습니다. 그런데 홍어과 어류는 가자미과 어류만큼 생김새가 비슷비슷해 동정이 매우 어렵습니다. 여기에 간재미는 개체 변이가 있어서 서식처 환경에 따라 채색과 무늬가 조금씩 달라집니다.
우리가 주로 먹는 간재미는 몸길이 40~60m 사이인데 이것이 더욱 자라면 몸길이 1m 이상으로 성장하는 홍어가 됩니다. 그래서 간재미와 홍어를 나란히 놓고 비교하면 크기에서 오는 차이도 상당하지만 생김새와 분위기가 다르며, 무엇보다도 삭혔을 때 나오는 암모니아 향에도 차이가 있어 아예 다른 어종으로 인식한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혹자는 "홍어는 삭혀서 먹고, 간재미는 삭히지 않은 생물로 먹는다"며 그 이유를 암모니아 생성에 두었습니다. 즉, 홍어는 암모니아가 생성되는데 간재미는 생성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논리도 결국에는 '같은 종'으로 밝혀졌기 때문에 틀린 사실이 됩니다.
진도에서 맛본 간재미탕
제가 진도로 간재미 취재를 갔을 때 일입니다. 그때 싱싱한 간재미(잡은 지 수 시간 밖에 되지 않은 생물 선어)로 탕을 끓여 먹었는데 먹을 당시에는 느끼지 못했으나 다 먹었을 즈음 트림을 하면서 암모니아 향이 은은히 나는 것을 느꼈습니다. 재차 국물을 떠먹으면서 코로 내쉬자 은은히 느껴졌던 암모니아 향이 좀 더 선명히 다가왔습니다.
이로써 알게 된 것은 간재미도 요소가 있으며 삭히면 기존에 우리가 알던 홍어와 마찬가지로 암모니아 향이 난다는 것이었습니다. 요소와 암모니아 생성에서 양적인 차이가 있을 뿐, 간재미도 삭혔을 때 암모니아 향이 나오기는 마찬가지였던 것입니다.
※ 이 글을 요약하자면, 우리가 다르게 여겼던 홍어와 간재미는 사실 부모와 자식 관계로 밝혀졌습니다. 기존에 간재미로 부르던 것을 홍어로, 홍어로 부르던 것을 참홍어로 불러야 올바릅니다. 신안과 흑산도 일대에서 주로 잡히는 고급 홍어는 '표준명 참홍어'로 홍어와는 구분해야 합니다. 그래서 현재 우리바다 도감에는 홍어와 참홍어로만 구분되어 있으며, 간재미란 말은 홍어를 일컫는 방언으로 남게 됩니다.
왼쪽부터 가오리, 홍어(간재미), 참홍어
#. 가오리, 홍어(간재미), 참홍어의 구분
홍어과 어류를 구분할 때는 ‘코’ 라인을 보는 것이 가장 쉽습니다. 가오리의 코 라인은 굴곡 없이 밋밋합니다. 종류에 따라 돌출된 코가 거의 없으며, 종류에 따라 둥그런 반원을 그리기도 합니다. (사진 속 가오리는 노랑가오리)
반면, 홍어(간재미)는 역삼각형 라인을 그리면서 코가 돌출되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흑산도의 명물인 참홍어는 홍어(간재미) 코보다 더 많이 돌출되어서 뾰족하다는 인상을 줍니다. 가오리 중에서 어떤 종은 꼬리에 독침을 가지기도 하는데 사진의 노랑가오리가 그러합니다. 반면, 간재미를 비롯한 홍어과 어류에는 꼬리에 독침이 없으며 단단하고 날카로운 잔가시가 여럿 난 것이 특징입니다.
#. 마치며
지구온난화로 바닷속 환경이 변하면서 난류성 어류의 출현 빈도가 잦은 요즘입니다. 남획으로 절멸 위기에 놓인 종이 있는가 하면, 신종이 출현해 학회에 보고되기도 합니다. 여기에 교잡종까지 생기면서 이들 종을 가리기 위한 동정과 어류 분류학은 점점 고도화되고 있습니다. 바다가 빠르게 변화하고 이에 따른 연구가 진행됨에 따라 기존에 알던 인식을 뒤엎는 사례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우리도 변화하는 바닷속 환경을 감지하고 발 빠르게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 할 것입니다.
※ 본문 중 일부는 황선도 해양수산학 박사의 글과 국립생물자원관 및 국립수산과학원의 자료를 참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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