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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은 또 다른 괴담을 만들고 부풀려져 많은 폐해를 낳은 뒤 사라집니다. 괴담의 성장 원동력은 정부의 정책 혼선과 국민의 불신입니다.
한때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 누출로 원산지 관계없이 전 국민의 수산물 기피 현상을 낳았던 이른바 '방사능 괴담'.
이제는 사라졌나 싶습니다. 부산 수산시장 상인들은 '8~9월에 대폭 떨어진 매출량이 12월에 들어 거의 회복했다.'고 합니다.
12월에 들어 일반 소비자가 사들이는 수산물 소비량이 후쿠시마 원전 폭발 이전의 수준으로 거의 회복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후쿠시마 방사능 문제는 한 해 두 해로 끝날 문제가 아닙니다. 지금 이 시각에도 저장 탱크에서 오염수가 새나가고 있습니다.
후쿠시마 현을 비롯한 주변 8개 현에 한하여 전면 수산물 금지도 아직은 유효합니다.
저는 지난가을, 국내산 수산물과 고등어의 방사능 오염 확률에 관해 몇 차례 글을 썼습니다.
더불어 지금 우리에게 직면한 방사능 오염 문제가 어느 수준으로 심각한 건지를 알아보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방사능 괴담'에 동요한 극단적 성향을 가진 이들이 반박하기도 하였으나 객관적인 내용 앞에 잠재웠습니다.
그렇게 세상 망할 것 같이 괴담에 동요해 일부 품목은 사재기해가며 극성부렸던 이들.
"지금도 생선을 먹고 있지 말아야 합니다."
극성을 부린 만큼 책임도 따라야 할 텐데 현실은 어떻습니까? 언제 그랬냐는 듯 방사능에 대한 이야기는 쏙 들어가버렸습니다. 지금은 어떠냐고요?
저는 일주일에 한 번 재래시장과 마트를 돌며 수산물 시세와 동향을 살피는 편입니다.
엊그제 한 대형 마트에서는 '굴비 할인 판매'에 수십 미터씩 줄을 서며 구입하려는 주부들을 봤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그건 굴비가 아니라 냉동 조기였지만 말입니다.
어쨌든 이제는 방사능 공포에서 완전히 해방되었나 싶을 정도로 수산물 코너는 활기를 되찾았습니다.
그리고 요즘, 고등어 어획량이 줄어 수입산 고등어가 대다수 물량을 차지한 가운데 국산 고등어의 몸값이 고공행진을 달리고 있습니다.
한때 방사능 걱정에 '줘도 안 먹는 고등어'가 이제는 '금등어'가 된 것입니다.
한 대형마트에서 떨이로 파는 고등어들
위 사진은 제가 주로 찾는 대형마트에서 저렴하게 내놓은 고등어들입니다. 휴대폰으로 찍어 화질이 썩 좋지는 못하니 양해 바랍니다.
지금 보시는 이 고등어들은 생물이라 적혀있지 않았으며 단지 '국내산'이라고만 표기되어 있었습니다.
가격은 바로 옆 수산물 코너의 생물 고등어와 자반 고등어보다 저렴했습니다.
생물과 자반 고등어는 한 손(두 마리)에 大짜가 5천 원선. 中짜는 4천 원 선. (언제든 변동 가능)
위 고등어는 세 마리 오천 원에 팔고 있습니다. 그런데 위 고등어를 보고 석연치 않은 점을 발견하였습니다.
제 글을 열심히 탐독했다면, 눈치챘을지도 모릅니다. 위 사진에는 총 세 종류의 고등어가 함께 뒤섞여 있었습니다.
이것이 국산 고등어라면, 한 곳에 두 계군의 고등어는 있을 수 없다.
# 1~ 2번
국산 고등어입니다. 시장에서는 국산 고등어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참고등어'라고 부르지만, 정식명은 '고등어'입니다.
외형적 특징은 체고가 넓지만, 등에 푸른기가 덜하며 무늬도 흐릿합니다. 일부에서는 줄무늬가 선명한 게 국산 고등어로 알고 있지만, 잘못된 내용입니다.
국산 고등어의 무늬가 흐리고 탁한 이유는 조업 방식과 유통 구조에 있습니다.
고등어 조업 구역은 동서 남해 모두 해당하지만, 국내 고등어 조업량의 80% 이상은 제주도 인근 해역에서 잡힙니다.
우리나라는 노르웨이와 달리 본선과 망선으로 구성된 여섯 척이 한 선단을 이뤄 장기 조업을 나갑니다.
여기서 잡은 고등어는 중간에 망선이 부산으로 실어나르는데 이 과정이 아직은 선진 조업 기술에 못 미칩니다.
노르웨이의 조업배를 예로 들면, 잡힌 고등어를 항으로 운반할 때 0~1도로 냉각한 해수에 보관합니다.
0~1도에 담긴 고등어는 가사상태에 빠지며 항에서 선별 작업을 거칠 때까지 선도 유지가 됩니다. 반면, 국산 고등어는 그러한 과정이 없으며 항에 도착
하면 어판장에다 깔아놓고 실온 상태에서 경매를 거치며, 선별된 고등어가 소비자에게 전달되기까지는 약 50시간이 걸립니다.
당연히 줄무늬가 흐릿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갓 잡은 고등어는 국내산이라도 무늬가 선명합니다.
#. 3~4번
일본산 고등어로 추정됩니다. 일본산 고등어의 외형적 특징은 체고가 날렵하며 등에 푸른기가 선명하고 무늬도 선명합니다.
이날 여기서 본 고등어들은 길이를 떠나 체고가 날렵한 것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고등어 등에 있는 '벌레 무늬'의 굵기는 국내산이 얇고 조밀한데 일본산은 굵습니다. 참고로 일본산과 국산 고등어는 유전학상 '같은 종'입니다.
다만, 계군(系群, 생활권역)이 달라서 오는 형태학적 차이로 국산 고등어는 쿠로시오(쓰시마) 계군의 회유 반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반면에 일본산 고등어는 태평양 계군에 속하며 활동 반경은 일본 시코쿠에서 출발해 혼슈의 동쪽 바다인 이즈반도, 도쿄만, 후쿠시마를 거쳐 훗카이도를
거쳐 다시 남하하는 식입니다. 서로 활동 반경이 달라 혼획되는 일은 드문 편. 우리나라로 수입되는 일본산 고등어는 잡고 나서 냉동한 것으로 등이 푸르고
선명히 남게 됩니다. 이런 냉동한 물량은 부산 감천항으로 들어오며 '부산 공동어시장'에서 경매를 치릅니다.
참고로 부산 감천항은 일본산 수산물의 96%를 받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5번
5번 고등어는 망치고등어(일명 점고등어)입니다. 망치고등어는 위에 설명한 고등어와는 유전학적으로도 다른 '이종'입니다.
망치고등어는 검은 점들이 배에 흩뿌려진 것으로 참고등어와 구별하지만, 간혹 점이 없는 개체도 있으며 선도가 저하된 고등어도 점이 희미해 구별을
어렵게 합니다. 하지만 가슴지느러미에서 측선으로 이어진 몸통에 횡렬로 난 점들은 사라지지 않으므로 참고등어와 구별할 수 있는 유일한 단서가 됩니다.
신문 기사 중 상당수가 '망치고등어를 일본산 고등어'라고 규정해서 작성한 것은 고등어에 관한 이해가 없기 때문입니다.
망치고등어는 국산 일본산 할 것 없이 수온 높은 가을과 초겨울에 고등어와 함께 혼획되어 섞여 들어옵니다.
그러니 국적을 따지는 건 오류가 있습니다.
중요한 요점은 3~4번 고등어가 1~2번 고등어와 함께 섞여 있다는 것입니다. 이들 고등어는 한 배에서 잡힐 확률이 매우 드뭅니다.
만에 하나, 같은 계군의 고등어라 해도 무늬가 다르고 선명도가 다른 것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잡힌 시점과 유통 시간, 보관 환경 등이 서로 다르다."
라고 밖에는 설명이 안 됩니다. (자세한 내용은 관련글 참조 : 고등어 방사능의 진실, 정말 안전할까? 국내산과 일본산 고등어 구별법)
마트는 원산지를 믿고 거래할 수밖에 없지만, 이전에 유통한 사범들이 원산지를 조작해 버리면 알 방법이 없다는 데 심각성이 있습니다.
해마다 줄고 있는 고등어 어획량을 메꾸기 위해 수입산 고등어는 매년 늘고 있다.
일본산 냉동 고등어를 해동해 국산 고등어로 둔갑할 수 있는 정황은 이미 여러 차례에 걸쳐 포착된 적이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일본과 중국산 고등어를 국산 간고등어로 포장해 유통했다 적발되면서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이들 사범은 교묘하게 일본, 중국, 국산 고등어를 각각 6:2:2 비율로 섞어 가공 처리한 뒤 농협을 비롯한 전국의 마트와 재래시장에 팔아왔던 것입니다.
지금도 일본산 냉동 고등어 물량이 모두 소진되지 못한 채 어딘가에 남아 있을 것으로 봅니다.
지금은 일본산 고등어 수입량이 많이 줄었지만, 올 9월까지만 해도 그 수입량이 엄청났습니다.
조사한 바로는 지난해 국내로 들어온 수입산 고등어는 일본산과 노르웨이산이 대부분이었고, 올해는 노르웨이산과 중국산이 두드러졌습니다.
그 밖에 러시아, 포르투갈, 아이슬란드, 캐나다, 네덜란드, 에콰도르 등에서도 수입 고등어가 들어왔지만, 한시적이며 적은 물량입니다.
중요한 것은 2011년 후쿠시마 원전이 폭발할 당시 11톤에 그쳤던 일본 수산물 수입량이 2012년에 들면서 1,844톤으로 무려 167배가 늘었으며, 2013년
8월까지는 총 8,000여 톤이 한국으로 수입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대표적인 어종은 대구, 명태, 은어, 붕어, 송어, 홍어, 농어, 민어(차례상에 올리는 민어와는 종이 다름), 도다리, 그리고 고등어였습니다.
아래는 제가 조사한 일본산 고등어 수입 현황입니다. (출처 : (주)유니언포씨)
- 2013년 4월 : 2,050톤
- 2013년 5월 : 1,267톤
- 2013년 7월 : 864톤
- 2013년 8월 : 685톤
- 2013년 9월 : 821톤
- 2013년 10월 : 37톤
방사능 괴담으로 혼선을 빚고 국민과 정부의 소통에 문제가 생겼던 지난 9월을 기점으로 일본산 고등어 수입량은 대폭 줄었습니다만, 문제는 9월까지
들어왔던 냉동 고등어 물량이 현재 다 팔려나갔느냐는 겁니다. 제 생각은 여전히 물량이 남아 있고 지금도 재래시장, 마트 곳곳에서 이러한 물량이 소진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시장 상인들은 '지금 일본산 생선 팔면 아무도 안 사!'라며 국산 생선의 결백을 외치지만, 공급자가 원산지를 세탁하면 판매자가
알 길이 사실상 없습니다. 적당히 섞어버리면 어지간한 전문가가 아닌 한 이를 알아차리기가 매우 어려운 것입니다.
일본산 고등어가 우리의 건강을 위협하지는 않을까? 는 다른 문제가 되겠고요.
■ 마치며
우리나라 수산물 원산지 정책이 빈 껍데기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정부와 주무부처가 '한식의 세계화'라는 거창한 명목으로 931억을 낭비하면서 정작 국내의 수산물 원산지 정책에는 '인력과 예산이 없다'는 핑계로 수수
방관해 왔기 때문입니다. 지금 그나마 9개 품목으로 원산지 의무 표기 영역을 넓혔지만, 국민이 자주 먹는 수산물이 이뿐이던가요?
방송 보도의 여파로 잠시 주춤했던 틸라피아(역돔)는 얼마 전 대만 무역대표부의 홍보 활동에 힘입어 오히려 수입량이 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냉동 수산물에 대한 원산지 표기 의무는 여전히 마련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 사이 국민들은 계속해서 틸라피아를 도미로 알고 먹게 될 것입니다.
전부터 누누이 강조했지만, 원산지 허위 표시와 표기 불이행에 대해 강력한 처벌과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었다면 오늘날 같은 불신은 없었을 겁니다.
판매자 특히 대형마트는 일본산 고등어가 '국산으로 둔갑'되어 들어오지 않도록 철저히 감독해야 합니다.
(농협 하나로 마트는 농협이라는 특성상 수입산 수산물을 취급하지 말아야 하는데 여전히 시정이 안 되고 있습니다.)
일본산 고등어를 취급하는 이들은 냉동 고등어를 '일본산'으로 표기해 팔던가, 팔 자신이 없으면 폐기처분 하던가 조처를 해야 할 것입니다.
후쿠시마 방사능 괴담은 괴담일 뿐입니다. 하지만 오염수 누출은 아직도 진행 중입니다. 아무쪼록 국민들이 안심하고 수산물을 소비할 수 있도록 정부와
관련부처에서는 일본산 수산물 잔량을 파악하고 어떻게 유통되는지 신경 써 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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