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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수산물 톡톡'이라는 토크쇼 출연해 준비된 대본을 리딩하는데 '절대 만나지 말아야 할 음식 조합'을 접하면서 이런 생각을 하였습니다. 인터넷에서 흔히 볼 법만 음식 궁합에 관한 이야기인데, 과연 이런 내용이 어떠한 검증이나 근거로 설명되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던 것.
내용 중에는 구전으로 전해지는 옛 선조들의 지혜가 담겼지만 유통과 보관, 가공법이 발달한 현실과는 맞지 않은 부분도 있기에 과연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오해인지 팩트를 체크해 보기로 합니다.
※ 오늘 글은 어디까지나 '특정 수산물과 함께 먹으면 탈 나는 조합'에 한하여 설명하겠습니다.
1. 게와 감을 함께 먹으면 식중독을 일으킨다? → 어느 정도는 사실
송나라 때 '본초도경(本草圖經)'에는 "감을 게와 함께 먹으면 복통과 설사를 일으킨다."라고 했습니다. 실제로 경종은 게와 감을 먹고 숨을 거뒀는데 이때 먹은 음식이 게장과 생감이 부른 참극임이 밝혀지면서, 음식을 권유한 영조의 독살로 오해받기도 하였습니다. 게와 감의 불협화음은 중국 명나라 때 저술한 이시진의 '본초강목(本草綱目)'과 동의보감 탕액편에서도 그대로 나옵니다. 그 내용이 후세로 이어졌고 오늘날 인터넷에는 이렇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게는 식중독균의 번식이 비교적 쉬운 수산물로 감의 떫은맛 성분인 타닌과 만나면 식중독에 걸릴 위험이 높다."
게와 감을 먹으면 무조건 식중독에 걸린다는 뜻이 아닙니다. 만약, 게와 감을 먹었는데 설사나 복통을 앓았다면, 그것은 상한 게장이나 선도가 떨어진 날게를 먹었을 확률이 높습니다. 앞서 경종은 게와 감을 먹기 전 장 질환과 설사병을 앓았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게도 식중독균의 번식이 쉬운 '생(生)게'에 한해서입니다. 여름철 게와 감을 함께 먹지 말라는 말도 균의 번식이 쉬운 날게 즉, 간장게장이나 회를 말하며 이러한 음식이 타닌과 만나면 식중독에 걸릴 수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날감의 떫은맛 성분인 '타닌(Tannin)'이 그리 우려할 만한 수준이 아니라는 겁니다. 요즘 우리가 먹는 감은 대부분 탈삽건조를 거쳐 타닌 성분을 떨어트린 감입니다. 타닌이 붙어 있다면 감의 꼭지와 심지 부분이니 이 부분만 멀리하면 됩니다. 예를 들자면, 잘 익힌 대게와 잘 익은 감의 조합은 우리가 우려할 만큼의 부조화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만, 게와 감은 모두 찬 성질을 가졌으니 소화기 계통이 약한 사람이나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은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 감과 도토리도 함께 섭취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2. 조개와 옥수수를 같이 먹으면 배탈을 일으킨다? → 일부만 사실, 대체로 문제없다
조개는 게와 마찬가지로 부패균의 번식률이 높은 수산물입니다. 인터넷에는 소화가 잘 안 되는 옥수수가 부패균의 배출을 방해해 배탈을 일으킨다고 합니다. 게다가 산란철 조개는 독성물질을 가지고 있어 더욱 배출이 어렵다는 식으로 설명하는데 이는 사실과 다릅니다. 왜 그런지 하나하나 살펴봅니다.
조개와 옥수수를 같이 먹고 배탈을 일으키는 것은 애초에 부패균이 있는 조개를 먹었을 경우를 전제로 합니다. 여름철 조개는 신선도를 담보하기 어려우므로 대부분 익혀 먹습니다. 조개를 익히면 균은 사멸합니다. 그러니 조개를 익혀 먹으면 될 일입니다. 산란철 조개가 독성물질을 가진 것은 사실이나 더 정확히 말하자면, 유독성 플랑크톤을 먹이로 할 때 나타나는 마비성 패류독소입니다.
마비성 패류독소는 우리가 아는 상식과 달리 오히려 낮은 수온에서 주로 발생하기 때문에 수온이 18도 이상 오르는 여름철이면 대부분 사라집니다. 게다가 마비성 패류독소가 검출되면 검역 당국의 샘플 검사를 거쳐 시장 반입과 유통을 금지합니다. 시중에 유통 중인 조개는 대부분 '양식'으로 잔류 패류독소의 검역을 거친 것이니 안전합니다.
옥수수의 소화가 잘 안 되는 것은 옥수수 껍질에 분포한 섬유질 즉, 셀룰로스에 의한 것인데 이는 사람 체질에 따라 다르게 나타납니다. 그러니 옥수수의 소화가 걱정된다면 분식(갈아서)하거나, 적당히 으깨어 조리하면 됩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조개와 옥수수의 조합이 나쁘다는 사실을 (조개를 많이 섭취하는) 일본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는 점입니다. 시중에는 아예 대합조개와 옥수수로 조합한 컵스프(포카 삿포로 겁스프 옥수수 조개맛)가 절찬리(?) 판매 중입니다.
3. 미역과 파를 함께 먹으면 파가 미역의 칼슘 흡수를 방해한다? → 사실
미역은 칼슘이 풍부한 수산물 중 하나입니다. 파는 유황과 인 성분이 풍부합니다. 이 둘이 만나면 파의 유황과 인이 칼슘의 체내 흡수를 방해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또한, 미역과 같은 해조류에는 알긴산(alginic acid)이라는 성분이 많이 들었는데 이것이 미끈거리기 때문에 파의 진액과 만나 좋지 못한 느낌을 줍니다.
하지만 이런 영양학적 간섭보다 더욱 싫은 것은 미역과 파의 맛이 썩 어울리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 둘을 함께 먹어도 탈은 나지는 않으나 권장할 만한 조합은 아닙니다.
4. 멸치와 시금치도 체내 칼슘 흡수를 방해한다? → 일정 부분은 사실이지만 과하게 먹지만 않으면 된다.
멸치와 시금치는 모두 칼슘이 풍부하게 들어있는 식재료입니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도 좋은 영양소를 두루 갖추고 있습니다. 특히, 칼슘 섭취는 나이를 불문하고 적당히 공급돼야 하는데 멸치와 시금치를 함께 먹으면 몇 가지 문제가 생깁니다.
1) 칼슘 흡수 방해
시금치에 들어있는 수산(옥살산)은 멸치의 칼슘 흡수율을 방해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우리 식탁에 오르는 음식에는 비단 멸치만 칼슘이 많은 것이 아닙니다. 많든 적든 칼슘은 정말 다양한 음식 속에 들어있기 마련이라 그때마다 번번이 시금치를 뺄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그러니 적당히만 먹는다면 크게 문제 되지 않는다는 것이 중론입니다.
문제는 시금치에 포함된 '수산'입니다. 이 수산은 시금치를 생(生)으로 먹었을 때 문제를 일으킵니다. 그런데 우리는 시금치를 생으로 먹지 않습니다. 주로 삶거나 데칩니다. 시금치를 데치면 이 수산은 대부분 제거됩니다. 시금치 데친 물에는 수산이 다량 포함된 만큼 버리도록 합니다.
※ 생시금치를 이용한 샐러드는 많이 먹지 않도록 합니다. 마찬가지로 시금치 된장국을 통해 수산을 다량 섭취할 수 있으니 한번 삶아서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2) 결석 위험 증가
시금치에 들어있는 수산(옥살산)이 멸치의 칼슘과 결합하면 수산칼슘으로 바뀝니다. 이 둘을 자주 섭취하면 수산칼슘이 결정화되어 담낭석이나 요로결석을 일으킬 확률을 높입니다. 제가 요로결석과 신장결석을 모두 겪어봐서 이 문제에 민감합니다.(수술까지 했죠.) 결석을 앓게 되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과체중과 운동 부족, 수분 부족에 있지만, 여기에 더하여 수산과 칼슘이 많은 음식을 함께 먹으면 결석을 부추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역시 적당히 운동하고 물 많이 먹으면서 시금치를 섭취한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시금치를 드실 때는 반드시 삶아서 수산을 줄이고 드시기 바랍니다.
5. 문어와 고사리를 함께 먹으면 소화불량을 일으킨다? → 일정 부분은 사실이지만 과하게 먹지만 않으면 된다.
문어와 고사리는 모두 질기고 소화가 어려운 음식이라는 것이 그 이유인데 (이 내용을 오세득 셰프가 싫어합니다.) 예전에 오세득 셰프가 방송에서 제주 삼합이라는 주제로 돌문어와 고사리, 돼지고기 수육을 함께 낸 적이 있었습니다. 방송이니 당연히 반응은 좋았겠지만, 이후에도 문제가 된 적은 없었습니다. 더욱이 우리 음식에는 문어 고사리 볶음이라는 레시피도 있고.
한방에서는 고사리를 약용식물로 보기 때문에 이뇨 작용을 도우며 해열제 역할을 한다고 나와 있습니다. 성질이 차고 음기가 강해 많이 먹으면 정력에 좋지 않다는 속설도 있지만, 말 그대로 속설에 불과합니다. 고사리의 가장 큰 단점은 생고사리에 발암물질이 들었다는 점(익히면 사라지며 대부분 익혀 먹으니 문제없음)과 소화가 잘 안 된다는 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질긴 문어와 함께 먹으면 소화불량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도 어느 정도 타당성을 가집니다. 다만, 이 문제는 소화력이 약한 고령자나 소화기 계통이 약한 이들에게만 해당합니다. 평소 소화불량이 잦거나 소화력이 떨어진 분들은 문어와 고사리를 함께 섭취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6. 장어와 복숭아를 함께 먹으면 배탈이 난다? → 사실
장어와 복숭아는 모두 여름 음식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장어는 보양식으로 통용되는 민물장어 즉, 뱀장어를 말합니다. (주변에서 흔히 보는 풍천장어가 그런 것) 이 뱀장어는 지방 함유량이 많아 소장에서 분해가 일어나는데 이때 복숭아의 유기산이 소장에 자극을 주어 지방이 소화되기 위해 작게 유화되는 것을 방해합니다. 그 결과 지방의 분해를 더디게 하여 소화불량과 설사를 일으킨다는 점입니다. 비슷한 이유로 수분이 많은 수박도 장어와 좋은 궁합은 아닙니다.
장어를 많이 먹는 일본에서는 매실이나 매실 장아찌(우메보시)와 함께 먹었을 때 궁합이 좋지 못하다는 내용으로 갑론을박이 펼쳐지기도 하였습니다. 매실 장아찌가 식용 증진의 효과가 있기 때문에 (값이 비싼) 고급 장어의 과식을 부추긴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었고, 매실의 신맛이 장어의 선도를 눈가림하기 때문에 상한 장어를 먹고도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말까지 나돌았지만, 모두 낭설로 판명되었습니다.
왼쪽부터 우엉 바지락밥, 우엉 바지락 조림, 우엉 바지락탕(사진 출처 : https://erecipe.woman.excite.co.jp / https://cookpad.com/search)
7. 바지락과 우엉을 함께 먹으면 영양 손실을 초래한다? → 크게 상관없다
인터넷에는 바지락의 철분이 우엉의 섬유질 흡수를 방해한다고 하고, 또 다른 글에는 우엉의 섬유질이 바지락의 철분 흡수를 방해한다고 합니다. 어느 것이 맞는 말인지를 떠나 이 둘의 조합은 우엉과 바지락 소비가 많은 일본에서 꽤 오랫동안 합을 맞추었던 음식입니다. 철분의 함유는 비단 바지락뿐 아니라 거의 모든 조개류와 붉은 육류, 간 등에 다량 들어있습니다. 섬유질 또한 다양한 채소(콩류, 과일류, 채소류, 뿌리채소류, 해조류, 버섯류, 견과류, 곡물류 등등)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철분과 섬유질의 간섭을 걱정하기보다는 특정 음식을 과하게 섭취하지 않으면서 맛있고 영양소 높은 제철 음식을 적당히 즐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볼 수 있겠지요.
인터넷에는 검증되지 않은 음식 궁합과 설명이 혼재되어 있습니다. 어느 정도 맞는 말도 있지만, 일부 틀린 내용도 있고, 그리 우려할 만한 수준은 아닌데 이슈 몰이를 위해 부풀린 감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우리가 정말 조심해야 할 음식은 여름철 상한 음식, 위생 관념이 부족한 음식, 그리고 그것을 제 컨디션이 아닐 때 먹음으로써 생기는 부작용일 것입니다. 이 글 또한 중요한 것만 알아두시기 바라며 글을 마칩니다.
※ 참고 문헌 및 자료
본초강목(本草綱目), 식품의약안전처, 식품과학대사전, 한동하 한의사 칼럼
- 글, 사진 김지민 어류 칼럼니스트
티스토리 및 네이버에서 '입질의 추억'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EBS1 <성난물고기>, MBC <어영차바다야>에 출연 중이며, 쯔리겐과 엔에스의 필드 테스터, 낚시 및 어류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는 <짜릿한 손맛,낚시를 시작하다>, <우리 식탁 위의 수산물 안전합니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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