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을 시작하며
이 글에서 말하는 다금바리는 제주도 방언으로 다금바리를 뜻하며 도감 상의 표준명은 ‘자바리’입니다.  본문 아래 보충 설명하겠지만, 어류 도감상에서 기술되고 있는 표준명 ‘다금바리’는 별도로 존재하기 때문에 제주 다금바리와는 구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는 다금바리, 언론사는 TV 방송에서 언급되는 다금바리는 모두 표준명 ‘자바리’를 뜻하고 있음을 미리 알립니다. 

 

※ 다금바리 1부를 못 보신 분은 아래 링크를 클릭하세요.

고급 생선회의 대명사 '다금바리'의 실체(1부) - 능성어와 차이 및 다금바리로 불리는 가짜들

 

 

1982년7월 7일 경향신문에 실린 다금바리는 표준명 자바리

#. 제주 다금바리 vs 표준명 다금바리
가짜 다금바리 사태를 겪고 나서도 여전히 풀리지 않은 의문점 하나. 다금바리의 실체가 더욱 묘연하게 보이는 원흉. 그것은 한국어류대도감에 기술된 혼란스러운 명칭입니다. 현재 국립수산과학원을 비롯해 한국어류대도감에는 표준명으로 다금바리와 자바리가 나란히 기술돼 있습니다. 

 

우리가 그토록 횟감의 황제라 칭송했던 것은 사실상 표준명 자바리로 제주도에서는 예부터 이 어종을 다금바리로 불러왔습니다. 1970년대에 제작된 다금바리 어탁의 주인공은 표준명으로 기술된 다금바리가 아닌, 자바리였다는 사실도 이를 뒷받침합니다. 

 

 

그보다 더 오래된 신문에도 다금바리란 명칭이 가끔 등장하는데 모두 지금의 표준명인 자바리였습니다. 오늘날 신문과 인터넷 기사, TV 방송 등 언론사에서 말하는 다금바리 또한 자바리를 말합니다. 

 

따라서 임금님 진상에 올려지기도 했다는 다금바리, 옛 제주인들이 부르던 다금바리는 모두 표준명 자바리이며, 이 글에서 기술된 다금바리 역시 자바리를 뜻합니다.

 

 

표준명 다금바리

그렇다면 도감에 기술된 표준명 다금바리는 무엇일까요? 결론부터 쓰자면, 이 어종은 분명 우리 바다에 서식하지만, 수심 100m 이하 암반층에 꽁꽁 숨어 살고 있어 실체 파악이 어려웠습니다. 

 

워낙 깊은 수심에 서식하다 보니 그물이나 통발에도 걸리지 않고, 그래서 개체수 및 자원량도 제대로 파악되지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일각에서는 과거에 흔했던 다금바리가 멸종 단계에 이른 것이라지만, 그것은 표준명 자바리에만 해당하며, 표준명 다금바리는 아열대성 어류로 서식지에 차이가 나는 것일 뿐, 개체 수 감소나 멸종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표준명 다금바리는 전 세계에서 극동 아시아 해역에만 서식하며 극히 일부 해역에서만 분포가 두드러진다

다시 말해, 표준명 다금바리는 과거 제주도에 흔했다가 남획으로 멸종된 것이 아닌 원래 분포지가 아열대 해역이었다는 점. 국내에서는 드물게나마 서식이 확인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합니다.

 

표준명 다금바리가 서식하는 곳은 제주도 남단을 비롯해 아열대성 기후를 보이는 일본 남단과 대만, 필리핀, 베트남의 깊은 수심대입니다. 따라서 한반도의 근해는 표준명 다금바리가 서식할 수 있는 ‘북방한계선’에 해당, 개체 수로 보나 크기(씨알)로 보나 본 서식지(아열대 해역)보다 적을 수밖에 없습니다. 

 

 

가끔 그물에 혼획되는 표준명 다금바리 치어들

제주 다금바리(표준명 자바리)가 수심 50m 이하의 얕은 암반에 서식한다면, 표준명 다금바리는 수심 100m 이하의 암반층에 서식하며, 제주 다금바리와 마찬가지로 이동을 거의 하지 않은 정착성 어류입니다. 이러한 서식 조건을 만족하기에는 한반도 주변 해역이 모래나 갯펄로 되어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수심이 100m 이상 깊어지면, 그 해역의 바닥층은 사니질(모래) 또는 갯펄로 구성될 때가 많습니다. 수심 100m 이상 깊으면서 암반이 발달한 곳이 드물다는 점인데요. 다금바리의 서식 조건을 만족하는 국내 해역은 동해 왕돌초 주변과 6광구, 대한 해협, 그리고 이어도를 비롯한 동중국해, 가거초 및 가거도 주변 해역을 꼽습니다. 

 

매우 제한적이기도 하지만, 수심이 깊고 물쌀이 세서 오징어 잡이를 제하곤 야간에 어로 행위가 드문 곳이란 점을 염두에 둬야 합니다. 표준명 다금바리는 철저한 야행성이므로 주간에 그물 작업은 물론, 낚시에도 쉽게 걸려들지 않습니다. 

 

일각에서는 표준명 다금바리를 멸종 위기 종으로 인식하지만, 실제로는 아열대성 어종이므로 우리나라 해역에서는 개체 수가 많지 않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표준명 자바리(제주 다금바리)회

#. 표준명 다금바리는 환상의 물고기다. 
일상 생활에서는 자바리를 다금바리로 부르고, 책에는 표준명 다금바리가 따로 있고. 그러다 보니 이 둘의 구분도 명확하지 않은 데다 다금바리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혼선을 야기하는 이 사태가 비단 국내에 국한된 것만은 아닙니다. 

 

일본 규슈는 지금도 자바리(쿠에, 쿠우)와 표준명 다금바리(아라)를 반대로 부르는 경향이 많은데요.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일본 또한 두 어종을 구분하지 못하거나, 혼용 표기한 경우가 많아 그것이 어탁에서 버젓이 나타납니다. 

 

한편, 관동지방에서는 표준명 다금바리(아라)와 자바리(쿠에, 쿠우)가 제대로 표기되는 편이며, 두 어종을 모두 ‘환상의 물고기’ 또는 ‘초고급어’로 칭송하는 경향이 두드러집니다. 같은 크기를 기준으로 가격은 kg당 5~8천엔, 코스 요리로 나올 경우 1인 8~13만엔 사이란 점도 비슷합니다. 

 

관동지방에서는 심해성 어류인 표준명 다금바리를 노리는 낚시가 성행하기도 합니다. 주요 시즌은 1~5월사이 입니다. 심해 대구 낚시와 비슷한 채비를 쓰지만, 노리는 수심은 150~250m 사이이며, 그것을 감안한 전동릴과 낚싯줄, 여기에 대구보다 좀 더 튼튼한 장비를 쓴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표준명 다금바리 회

국내에서도 표준명 다금바리가 가끔씩 잡혀 화제가 됐던 적이 있습니다. 수년 전 가거도 인근 해역에서  정치망에 걸린 몸길이 약 1m의 표준명 다금바리를 맛객으로 유명한 김용철 씨가 낙찰받아 자신의 가게인 ‘맛객 미식쇼’에서 선보인 적이 있으며, 동해 왕돌초 및 6광구에서는 주로 대구나 홍감펭, 눈볼대 따위를 노리는 심해 외줄낚시에서 몸길이 50~60cm에 달하는 표준명 다금바리가 더러 잡히기도 했습니다. 

 

 

톱날처럼 날카로운 가시가 특징인 표준명 다금바리의 아가미뚜껑

 

#. 표준명 다금바리의 불편한 사실
표준명 다금바리는 90년대까지만 해도 농어목 농어과에 속했지만, 어찌 된 연유로 일본에서는 바리과에 편입시켜버렸습니다. 

 

표준명 다금바리의 아가미 뚜껑에는 톱날처럼 날카로운 삼지창이 특징인데 이로 인해 영어권에서는  ‘Saw-edged Perch’로 불리며, ‘Perch’란 작명에서도 유추할 수 있듯 생김새가 농어와 흡사해 농어류의 연장선으로 보고 있었으며, 국내에서는 주로 ‘뻘농어’라 불렀습니다. 

 

하지만 이 어종의 학명에 ‘Niphon spinosus’ 로 기술된 점이 마음에 걸립니다. 앞서 농엇과였던 이 어종을 바리과로 편입시킨 것도 그렇고, 니뽄이란 학명이 붙은 것도 그렇고(물론, 일본 남부 해역에 많은 개체 수가 서식하니 그리 붙었다고도 볼 수 있지만, 일본 학자들의 노력으로 적잖은 어류의 학명에서 니뽄 또는 제패니스의 선점화가 이루어졌던 것으로 유추) 

 

 

한국 어류도감이 일제강점기 이후 작성되어진 지점에서 적잖은 어류 명칭이 일본의 명칭을 그대로 답습한다는 점도 그렇고. 조선시대부터 대대로 불러졌던 다금바리가 몇몇 어류 학자들의 착오 또는 우리가 알지 못한 어떤 이유로 인해 자바리라는 엉뚱한 명칭이 붙게 된 현실. 

 

그렇게 세월이 흘렀고 오늘날 표준명 다금바리의 학명에는 니뽄이란 이름의 생선이 단지 표준명으로 기술됐다는 이유로 진짜처럼 취급되고, 제주도 고유 다금바리인 자바리를 가짜 다금바리로 여기는 일부 시각은 고쳐져야 할 것입니다. 

 

더 나아가 향후 어류도감이 새롭게 편찬된다면, 이 부분을 개선해야 할 것이며, 다금바리와 자바리에서도 알 수 있었듯, 일상생활에서 흔히 쓰는 어류 명칭과 책에 기술된 어류 명칭의 괴리감을 줄여나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흉기흑점바리와 대왕바리의 교잡종으로 중국 양식이다

#. 짝퉁이 아닌 교잡종의 시대
지금은 제주 및 거문도 등 일부 도서 지역을 제하고 능성어를 다금바리로 판매하는 경우가 과거처럼 흔하지는 않습니다. 단속의 영향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소비자의 지각이 영향을 미쳤습니다. 여기에는 인터넷과 SNS로 공유되는 글과 칼럼도 한 몫했고요. 

 

심해성 어류인 표준명 다금바리는 어획량이 매우 적어 사람들에게 잊혀졌고, 자바리(제주 방언 다금바리)는 제주도에서 양식화에 성공해 1~3kg으로 키워낸 횟감을 판매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말레이시아에 서식되는 범바리(타이거그루퍼라 불리며 갈색둥근바리와 대왕바리의 교잡종)가 일부 유료 낚시터로 유입되고 있고, 중국 남부 지방에서 양식되고 있는 ‘흉기흑점바리’와 우량종인 ‘대왕바리(자이언트 그루퍼)’의 교잡종, 또는 '자바리'와 '대왕바리'의 교잡종인 '대왕자바리'까지 수산시장을 비롯해 유료 바다낚시터를 점령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호주를 비롯한 아열대 해역에 서식하는 감자바리(영명 포테이토 그루퍼)가 제주도 앞바다에서 잡혔다

최근에는 온난화 영향으로 열대 및 아열대 해역에 서식할 법한 바리과 어종이 제주도에서 잡히기도 비상한 관심을 모았습니다.(위 사진)

 

기존에는 없던 새로운 종이 시장에 풀리면서 이들 어종이 다금바리로 둔갑되거나 표기 의무화를 소홀히 하는지는 지켜봐야 하겠지만, 빠르게 변하는 바다 환경과 양식 기술의 발달에 이제는 수산업 관련 법령도 빠르게 쫓아가야 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 글 : 김지민 어류 칼럼니스트                    
유튜브에서 ‘입질의추억tv’ 채널을 운영 중이다. 티스토리 및 네이버에서 블로그 ‘입질의 추억’을 운영하고 있으며, 다수의 매체로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EBS1 <성난 물고기>, MBC <어영차바다야>를 비롯해 다수 방송에 출연했다. 저서로는 <짜릿한 손맛, 낚시를 시작하다>, <우리 식탁 위의 수산물, 안전합니까?>, <꾼의 황금레시피>가 있으며, 국립민속박물관의 <한국 의식주 생활사전> 집필에 참여했다. 

 

Posted by ★입질의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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