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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는 대구목 대구과에 속한 경골어류입니다. 같은 대구목에 속한 어류로는 우리에게 친숙한 ‘명태’가 있는데 가끔 이 둘은 헷갈리기도 합니다. 보통은 대구 몸집이 명태보다 크므로 구별되지만, 비슷한 체구라면 입가에 수염이 있는지 여부로 대구임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한반도에서 대구를 식용한 꽤 오리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신석기시대 유적에서 대구 뼈가 다량 출토된 것으로 보아 적어도 수 천 년 전부터 어획 및 식용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후 1425년에 편찬된 ‘세종실록지리지’와 ‘조선왕조실록’, ‘신증동국여지승람’ 에서도 ‘대구어(大口魚)’란 말이 등장합니다.
대구란 말의 유래 또한 입이 큰 생선이라는 뜻에서 비롯되었는데 입이 큰 만큼 식성이 좋아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먹어 치웁니다.
저는 어린 시절 대구와 인연이 깊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어린 시절입니다. 해마다 방학이면 아빠 손잡고 부산으로 내려가 대구탕과 대구뽈찜을 먹었습니다. 그게 가능한 이유는 큰어머니께서 대구탕집을 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사직구장이 홈인 롯데 자이언츠 선수단들도 종종 이용했던 맛집일 만큼 유명했지만, 초등학생인 제가 먹기에는 대구탕과 대구뽈찜이란 음식이 입에 썩 맞지 않았습니다.
세월이 흘러 성인이 되고 나서야 서울에선 맛보기 힘든 계절 진미였음을 실감하였죠. 그런데 참 이상합니다. 서울에서도 대구탕은 어렵지 않게 맛볼 수 있는데 희한하게도 부산, 포항 등 동남해 지방에서 맛본 대구탕과는 적잖은 차이가 납니다. 어찌된 것일까요? 여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 토종 대구의 눈물, 과거 그리고 현재
대구는 태어난 곳을 다시 찾아오는 회귀어입니다. 남해에서 태어난 대구는 유어기를 보낸 뒤 한류를 타고 동해를 거쳐 북태평양인 오호츠크해와 알래스카 연안까지 진입합니다. 거기서 일생을 보낸 대구는 다시 산란기 때 태어난 곳으로 되돌아오는 습성이 명태와 닮았습니다.
다만, 어째서 자기가 태어난 곳을 기억하며, 정확히 그 곳을 그 먼 북태평양에서 찾아올 수 있는지는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습니다.
대구는 자신의 유어기 시절을 보낸 고향과도 같은 바다를 기억하고 찾아오며 이 과정에서 일부는 어획돼 우리 식탁에 오르고, 일부는 살아남아 산란에 참여합니다. 때문에 얼마나 많은 대구가 산란에 성공했는지가 향후 대구 자원을 판가름 짓게 됩니다.
대구 수명은 약 30년 정도로 추정되는데 성장 속도가 워낙 빨라서 3~4년이면 산란 기능을 갖춘 성어로 자랍니다. 지금도 수많은 연령의 대구가 한반도의 동해와 남해에서 태어났다가 알래스카 연안까지 거슬러 올라간 뒤 때가 되면 다시 남하하며 우리 식탁에 오릅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합니다.
한때 과다한 남획으로 개체 수가 급감한 대구는 해마다 조업량이 줄면서 대구 주산지인 경남 일대 어민들이 심각한 타격을 입었습니다. 남하하는 대구를 과도하게 남획한 것이 주원인입니다.
이로 인해 산란에 참여하는 대구 수가 현저히 줄었고, 이곳에서 태어나 회귀본능을 갖추고 긴 여정을 떠난 대구 개체 수도 동반 하락하면서 반복된 악순환을 가진 것입니다. 마치 명태가 보여준 사례를 대구가 답습하는 것이 아닌가 할 만큼 우려가 되는 일이었던 것입니다.
사실 대구탕은 전국 어디든 맛볼 수 있는 흔한 음식이지만, 산지에서 가까운 곳을 제하면 대부분 미국산이나 러시아산 냉동 대구를 쓰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다 보니 과거 생대구탕 맛을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적잖은 실망감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물론, 지금도 산지에서 잡혀 올라온 생대구가 서울, 수도권의 수산시장으로 입하되곤 하나 이것으로는 대구탕 수요를 감당하기 힘들고 단가도 맞추기 어렵기 때문에 수입산 대구를 쓸 수밖에 없고, 그 결과 국산 생물 대구의 최대 장점인 부드러운 살점과 시원한 국물 맛을 재현해 내기에는 한계를 가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더욱이 대구란 생선은 생물일 때와 냉동일 때의 맛 차이가 현격하게 드러납니다.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 번째로는 긴 유통경로(미국산, 러시아산), 두 번째로는 짧지 않은 냉동 기간, 세 번째는 대구 특유의 수분감 때문입니다. 대구는 살에 수분이 많은 생선입니다.
이 때문에 생물일 때는 한없이 부드럽고 포슬포슬하다가도 일단 냉동을 거치면, 조직감이 수분감에 의해 변화되면서 생물과 많은 차이를 내게 됩니다. 쉽게 말하자면, 살이 퍽퍽해지고 감칠맛도 감쇄합니다.
이런 이유로 대구는 유독 수입산과 국산의 차이, 냉동과 생물의 차이가 크게 날 수밖에 없고, 생물 유통이 용이한 동남부 해안 지방에서 맛본 대구탕 맛이 좋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진정한 대구탕을 맛보기 위해선 생물 대구의 거래가 활발한 속초, 포항, 거제 및 가덕도를 찾아가길 권합니다. (물론, 산지라고 해서 모든 식당이 국산 생물 대구를 취급하지는 않습니다. 비수기 또는 그밖의 다른 이유로 수입산 대구를 취급하기도 합니다.)
대구 자원량 감소에 심각성을 깨달은 관계 당국은 몇 년 전부터 대구 산란 철인 1월을 금어기로 지정,지속적인 치어 방류 사업으로 회귀율을 높였습니다. 그 결과 한반도의 동남부 해역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대구는 다시 북태평양을 횡단하다 내려오면서 그 자원량이 조금씩 회복 중에 있습니다.
한편 서해에도 대구가 잡히는데 지리적 환경 및 수온 영향으로 크게 자라지 못해 ‘왜대구’란 말이 붙기도 합니다. 보통의 대구라면 다 자랐을 때 몸길이가 1m를 상회하고 그 무게는 20kg에 육박합니다.
#. ‘곤이’의 오해
알려졌듯 산란 대구를 보호하기 위해 포획을 금지하는 기간은 1월 한 달입니다. 그 말은 즉, 1월을 전후하여 산란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모름지기 생선은 알이 차기 직전이 가장 맛있고, 알을 가득 배 산란에 임박하면 어종에 따라 맛이 있기도(알을 이용한 생선), 맛이 없기도(횟감용 생선) 합니다.
대구는 전자에 해당합니다. 특별히 대구를 횟감으로 쓰는 경우가 아니라면, 대게 탕과 찜으로 쓰는데 금어기 직전인 11~12월에 잡힌 대구를 최고로 알아주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이때도 암컷과 수컷에 따라 가격에 차이가 납니다. 대구는 전통적으로 수컷의 정소를 알아줍니다.
따라서 정소로 가득찬 대구야말로 최상의 품질로 여깁니다. 여기서 정소에 대한 오해가 있습니다. 대구 또는 동태찌개를 보면 구불구불하게 생긴 내장 기관을 볼 수 있는데 이를 흔히 ‘곤이’라고 하지만, 정확한 이름은 ‘이리’입니다.
원래 곤이의 ‘곤(鯤)’은 고기 ‘어(魚는)’자에 자손이란 뜻의 ‘곤(昆)’자가 합쳐진 말입니다. 사전적 의미는 물고기의 알 또는 새끼를 뜻합니다. 그러므로 곤이의 정확한 의미는 ‘알’이 돼야 합니다. 정리하자면.
암컷의 생식소 : 난소 = 곤이 = 알
수컷의 생식소 : 정소 = 이리 = 어백(魚白)
대구의 곤이는 대구탕에서 흔히 볼 수 있지만, 생태탕이나 동태찌개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크기와 맛 때문입니다. 분명 명태도 수컷의 배를 가르면 구불구불한 정소가 나오지만, 대구의 그것과 비교하면 볼품이 없을 만큼 가늘고 양도 적습니다.
때문에 적잖은 동태찌개 식당에서는 대구의 정소(이리)를 따로 사다 씁니다. 그만큼 대구의 이리는 탕과 찜은 물론, 선술집에 안주 용으로 판매되는 이리 구이용으로도 두루두루 활용되는데 특히, 생물 대구의 배에서 빼낸 이리는 그 질감과 신선도에서 수입산 냉동과 비교가 안 됩니다.
#. 대구의 이용
대구는 지방이 적고 비린내가 나지 않는 흰살생선입니다. 1776년 정조(正祖)가 편찬한『공선정례(貢膳定例)』에 의하면 각종 공선(貢膳) 진상품의 물품 및 진상 방법을 적은 책으로 건대구를 비롯해 대구어란해(알젓), 대구고지해(이리젓) 등이 포함돼 있습니다.
궁궐에 들어간 대구는 주로 왕과 왕비를 비롯한 왕실 사람들의 찬거리로 사용됐고, 호궤(犒饋)를 통해 군사들에게도 지급되었는데 주로 명태가 배급된 군졸과 달리 대구는 장교 이상에게만 지급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만큼 대구는 예부터 귀하고 맛이 좋으며 값비싼 생선임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오늘날 대구는 버릴 것이 없는 흰살생선으로 다양한 요리에 사용되고 있습니다. 커다란 머리에는 쫀득한 살점이 많아서 경상도를 중심으로 대구뽈찜 및 탕이 발달하였고, 곤이(알)는 대구알젓으로, 간에서 추출한 간유는 의약품을 만들 때 쓰이며, 수컷의 정소는 주로 탕에 사용된다. 비린내가 적은 흰살생선으로 모든 생선전의 어머니라 불릴 만큼 전이 일품이기도 하다.
가덕 대구가 유명한데 겨울 해풍에 말린 대구는 응축된 아미노산이 맛을 진하게 해 뽀얗고 구수한 국물을 얻을 수 있고, 살짝 말린 대구는 얇게 썰어 회로 먹기도 합니다. 내장은 쓸개를 제하고 싱싱할 때 데쳐 먹거나 탕감에 쓰는데 일부 낚시꾼들은 쓸개마저도 버리지 않고 술에 타서 먹기도 합니다.
대구 축제도 있습니다. 매해 12월 거제 외포항에서 열리며 이 기간에는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대구요리를 즐기고 구매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우리가 먹는 대구는 ‘퍼시픽 대구(Pacific cod)’란 종으로 북태평양에 서식하다가 한반도 또는 캐나다 서부 해안으로 회유하는 어류로 명칭이 비슷한 은대구와는 전혀 다른 생선입니다.
대구와 비슷한 어류로 유럽 대구라 불리는 ‘아틀란틱 대구(Atlantic Cod)’와 해덕이 있는데 대구 사촌일 뿐, 대구와 다른 종이며 주로 서양권에서 인기가 높은 흰살생선입니다.
※ 글 : 김지민 어류 칼럼니스트
유튜브에서 ‘입질의추억tv’ 채널을 운영 중이다. 티스토리 및 네이버에서 블로그 ‘입질의 추억’을 운영하고 있으며, EBS1 <성난 물고기>, MBC <어영차바다야>를 비롯해 다수 방송에 출연했다. 2018년에는 한국 민속박물관이 주관한 한국의식주 생활사전을 집필했고 그의 단독 저서로는 <짜릿한 손맛, 낚시를 시작하다>, <우리 식탁 위의 수산물, 안전합니까?>, <꾼의 황금 레시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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