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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허무하게 만든 녀석, 그 이름 황줄깜정이
올해 들어 큰 손맛을 봤던 녀석 중 하나다. 원줄 1.5호에 목줄 1.7호를 쓰다보니 강제로 끌어올리기도 조심스럽다.
그렇게 턱뿌리로 들어가는 녀석을 어루고 달래서 끄집어 내니 수면에서 뭔가 번쩍번쩍한다.
벵에돔 4짜 중반을 예상했던 내 기대가 무참히 깨지는 순간이었다. 낚고보니 아 이건 벵에돔이 아니다. 황줄깜정이다.
순간 나도 모르게 탄식이 나왔고 위부터 아래까지 너덜너덜해진 목줄에 한숨까지 나왔다.
그래도 한번 미친척하고 회 한번 떠볼까 고민하다가 예전에 맛 보았던 지옥의 회맛이 기억나버려 관두고 말았다.
일행이 달라고해서 주긴 주었는데 그걸로 뭘 해먹어야 좋을지 선뜻 생각나지 않았다.
그런데 일행은 이 황줄깜정이로 어묵을 해 먹겠다고 한다. 오 그거 좋은 아이디어다.
참고로 황줄깜정이는 벵에돔의 조상격이다. 벵에돔, 긴꼬리벵에돔 모두 농어목 황줄깜정이과에 속하니 말이다.
하지만 조상치고는 하는 행태가 고상하지 못하다. 낚으면 냄새나는 똥을 질질 흘리며 고약한 악취를 풍기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
독가시치와 마찬가지로 초식을 병행하는지라 내장에서 고약한 향이 나며 그 향이 살에 배면 갯내의 원인이 된다.
예전에 이 녀석이 살아있을 때 피를 뽑고 썰어먹은 적이 있었는데 처음에는 무미, 무취한 맛으로 먹다가 스멀스멀 올라오는 피 맛이 비릿해 모두 버렸던
기억이 있었다. 맛도 없고 이용가치가 없는 황줄깜정이. 그러한 이유 때문에 모르긴 몰라도 저 바닷속에는 황줄깜정이가 지천에 널렸을 지도 모른다.
그런 황줄깜정이도 언젠가는 맛으로 대접받는 날이 올까? 어족자원이 줄어들고 있는 지금의 분위기로 봐서는 영 가능성 없는 이야기도 아닌 듯하다.
그 어떤 맛과 향을 가진 물고기라하더라도 인간은 그 재료에 걸맞는 조리법을 개발해 내어 꾸역꾸역 먹게 될테니까.
과거에 맛이 없어 천대 받았다던 어종들이 지금은 없어서 못 먹는 귀물이 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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