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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어(民魚)' 제철이 다가옵니다. 해마다 이맘때면 산란을 위해 제주 먼 바다에서 신안으로 진출하는데요. 예전에는 연평도 앞바다까지 북상했고 엄청난 어획량을 거두면서 민어 파시가 열린 시절도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30~4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고, 지금은 지구 온난화와 남획에 예전만큼 많이 잡히지는 않습니다.
사실 민어가 대중에게 알려진 시점도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죠. 국민 총생산량이 오르면서 외식 문화와 먹방 열풍이 불기 시작할 무렵인 2000년 중반, 민어는 각종 TV 프로그램과 보도를 통해 알려지기 시작합니다. 그 전에는 아는 사람만 알음알음 찾아 먹던 남도의 별미였을 뿐, 지금처럼 예약 주문을 하고, 복날에 챙겨 먹어야 할 보양식까진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알아봅니다.
"여름 보양식의 대표 주자로 급부상한 민어의 모든 것”
#. 민어에 대해서
표준명 : 민어(농어목 민어과)
방언 : 불둥거리(완도), 홍치(법성포), 가리, 통치(어린 민어), 퉁치(고흥)
영명 : brown croaker
일명 : 니베(ニベ)
전장 : 1m
분포 : 한반도 서해, 남해, 제주, 동중국해, 남중국해
음식 : 회, 무침, 탕, 전, 구이, 튀김, 건어물
제철 : 여름(6~9월)
어류의 박식도 : ★★★
(★★★★★ : 알고 있으면 학자, ★★★★ : 알고 있으면 물고기 마니아, ★★★ : 제법 미식가, ★★ : 이것은 상식 ★ : 누구나 아는)
#. 특징과 생태
민어는 따듯한 난류를 따라 남북으로 이동하는 계절성 회유어다. 겨울에는 제주도 인근 해상에서 월동을 나고, 이듬해 봄~여름이면 남해와 서남해로 진출한다. 과거 60년도에는 연평도 앞바다까지 진출했으나 서식지 환경의 변화와 남획으로 인해 격포 앞바다까지 진출하는 것으로 알려졌고, 주산지는 전라남도 신안 앞바다와 군산, 고흥 일대이다. 새우, 게, 두족류 및 작은 어류를 먹고 성장하며 다 자라면 몸길이 110cm 이상, 무게 20kg에 이른다. 50~60cm 미만은 ‘통치’라 부르며 현재 33cm 이하는 포획 금지다.
#. 원 명칭은 ‘면어’였다.
민어는 농어목 민어과에 속한 어류로 ‘큰민어’, ‘홍민어’,. 다음으로 크게 성장하는 대형 ‘크로커(croaker)’의 한 종입니다. 같은 과 어류로는 법성포 굴비로 유명한 참조기를 비롯해 부세, 수조기, 황강달이(황석어)가 있는데 그만큼 우리 민족은 민어과 생선을 선호했음을 알 수 있지요.
그런데 민어의 원 명칭은 우리가 알던 민어가 아니었습니다. '민어'로 부르게 된 유래를 찾아보면 엉뚱하게도 발음의 편리성에 기인합니다. 한자어로는 백성 '민(民)'에 고기 '어(魚)'자를 쓰는데, 그러다 보니 마치 백성이나 서민이 흔히 접하는 물고기로 오인하기 쉬워요.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과거에는 흔하디 흔한 민어였다곤 하나, 그래도 선박과 어로기술이 발달하지 못한 과거에는 민어 개체 수와 상관없이 엄청나게 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처럼 운송 수단이 마땅치 않았을뿐더러 냉장 기술도 좋지 못했기에 내륙 사람들이 싱싱한 민어를 맛보기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려웠던 것이지요.
민어는 백성이 잡아도, 먹는 사람은 주로 임금을 비롯한 왕실 고위 관료들인 것. 이시진의 '본초강목(本草綱目)'을 살피면 민어라는 이름의 유래가 나오는데 주로 '석수어(石首魚)'와 '면어(鮸魚)'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석수어는 민어 대가리에 이석이 있기 때문이고, 우리가 눈여겨볼 것은 '면어(鮸魚)'입니다.
면어는 조기와 생선을 의미하는 면어(鮸魚)로 '면(鮸)'을 쉽게 부르기 위해 '민(民)'으로 바꿔 불렀고 그것이 오늘날까지 민어라 불리게 된 시초가 되었습니다. 임금은 이 특출한 민어 맛을 백성들과 함께 나누고자 '민어'라 불렀다는 설도 있지만, 알고 보면 백성과 상관없는 물고기였던 것입니다.
#. 민어로 둔갑되는 다양한 민어과 어류
특출 나게 맛있는 여름 횟감을 맛보기 쉽지 않은 소비자들에게는 민어만큼 반가운 존재도 없었을 것입니다. 매스컴에선 앞다투어 여름 횟감, 여름 별미, 여름 보양식이란 이름으로 민어를 소개하고, 최근 몇 년 간은 민어가 떠오르는 여름 보양식이 되었습니다.
때문에 초복의 풍경도 바뀌었는데 삼계탕 일색이던 초복 메뉴에 민어가 끼어들게 된 것. 그러다 보니 값비싼 민어를 이용해 차익을 노린 신종 둔갑도 기승을 부립니다. 민어로 둔갑되는 대표적인 어종으로 홍민어(점성어)와 큰민어, 꼬마민어가 그것입니다.
- 홍민어
점성어란 이름으로 알려진 홍민어는 현재 중국에서 양식으로 들어오며 대부분 회와 초밥으로 이용됩니다. 저렴하면서 가성비 높은 수율이 특징인 홍민어는 지역 수산시장은 물론, 횟집과 초밥집에 두루두루 이용되는데 가끔이지만, 일부 관광지에서 민어로 판매하려다 적발된 사례가 있는 만큼 일반 소비자는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점성어는 이름 그대로 꼬리에 난 점으로 쉽게 구별됩니다. 대가리는 민어보다 크고 둥글둥글합니다. 전반적인 몸 빛깔이 누렇기 때문에 살짝 붉은기가 도는 민어와 구별됩니다.
- 큰민어
최근 '중국산 양식 민어'란 이름으로 팔리는 이 어종은 우리가 아는 여름 보양식 민어와는 아무런 상관 없는 어종입니다. 야생에 서식하는 개체는 주로 아열대 해역인 일본 남부 지방에 서식하는데요. 다 자라면 1.8m에 육박할 만큼 대형 어류입니다. 큰 만큼 성장 속도가 빨라 일찌감치 양식어로 길러졌고, 한국의 민어 마케팅에 숟가락만 얹으려는 일부 비양심 상인에 의해 ‘양식 민어’로 판매되는 실정입니다.
kg당 가격이 3만 원을 넘어서는 민어와 달리, 큰민어 가격은 절반 수준. 민어 부위 중 별미로 손꼽히는 부레도 큰민어에서는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홍민어와 큰민어의 부레는 작고 쪼그라들어 볼품이 없을뿐더러 씹으면 껌처럼 질겨 식용하기 어렵죠.
- 꼬마민어
작년 여름과 올해 초, 모 대형마트가 ‘민어탕’ 재료로 이 어종을 판매했다가 시정조치를 받았던 문제의 제품입니다. 바로 인도네시아산 꼬마민어인데요. 문제가 됐던 것은 상대적으로 맛이 떨어지는 열대성 민어과 어류를 마치 여름 보양식인 민어인 것처럼 팔다 적발된 것입니다.
당시 제가 이 부분을 지적하였고, 기사화한 뒤로 해당 마트는 전량 수거 및 판매 중지한 사례가 있었습니다. 이와는 별개로 국내에는 민어가 양식 중인데요. 횟감용이 아닌 탕감으로 포장돼 마트에 한정품으로 판매됩니다.
따라서 수조에 팔팔하게 헤엄치는 민어는 대부분 홍민어나 큰민어입니다. 국산이자 자연산 민어는 대부분 선어 횟감으로 유통되며, 일부 활어로 유통되는 것이 있어도 부레가 부풀어 몸이 뒤집어진 상태임을 유념해야 합니다.
#. 민어와 낚시
해마다 7~9월 사이면 민어 낚시가 행해지는데 주로 고흥 나로도 앞바다를 비롯해 완도, 해남, 신안, 군산에서 행해집니다. 낚시 방법은 생미끼를 이용한 외수질로 주로 산 흰다리새우를 바늘에 꿰어 바닥에 내립니다. 이후 고패질하는 과정에서 입질을 받는데 낚시 방법 자체는 매우 단순합니다.
마릿수 낚시가 아닌 3~10kg급 민어 2~4마리를 노리며, 워낙 고급 어종으로 인식되다 보니 한 마리를 잡아도 만족도가 큰 편이죠. 최근에는 전남 일대 갯바위에서 원투낚시로 잡히곤 했습니다.
#. 민어의 식용
민어는 우리 국민이 선호하는 맛을 두루두루 갖춘 편입니다. 살은 부드러우며, 비린내가 적고 담백합니다. 최근에 들어서야 귀한 활어회로 맛볼 수 있었고, 이케시메나 신케지메처럼 일본에서 도입된 전처리로 유통 기한을 늘리기도 했으며, 이를 이용한 숙성회 전문점도 생겨났지만, 예전에는 그저 선어회로 먹었던 횟감이었습니다.
별미인 부레는 찐득한 식감과 고소한 지방 맛이 어우러지고, 회를 치고 난 자투리 살로 전을 부치는가 하면, 뼈는 훌륭한 탕감이 됩니다. 무엇보다도 민어 뼈는 푹 고았을 때 구수하면서 감칠맛이 좋은 국물이 우러나와 다른 생선 매운탕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습니다.
지금이야 쇼핑몰, 수산시장 등지에서 민어를 구매할 수 있지만, 그래도 산지에서 먹는 맛에 비할 수 있을까 싶습니다. 무더운 여름철, 목포와 신안 일대를 방문하게 된다면 낚시도 좋지만, 편하게 한상 차려 먹는 민어 코스를 그냥 지나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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