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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4월이면 먼바다에서 들어온 보리숭어가 제철을 맞습니다. 흔히 보리숭어를 가성비 횟감으로 인식하는데요. 단순히 저렴한 것이 아닌, 봄에는 맛도 좋아서 미식가들의 호평을 받습니다. 특히, 영산강 하류에 잡히는 것을 으뜸으로 치며, 북한에서는 평양 대동강에서 많이 잡히는데 갖은양념으로 끓여낸 대동강 숭어국이 유명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평생 어부로 살아온 몇몇 이들은 ‘돈을 줘도 숭어는 안 먹는다.’고 합니다. 실제로 제가 백령도로 취재 갔을 때 그곳 어민들은 숭어에서 냄새가 나고 맛도 없어서 먹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남해안 쪽 일부 섬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아도 상황은 비슷했습니다.
이러한 사실로 보았을 때 숭어는 산지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고 맛에 대한 인식의 차이도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혹자는 숭어의 기름 냄새, 뻘냄새가 식욕을 떨어트린다고 합니다. ‘여름 숭어는 개도 안 먹는다.’는 속담도 있는데 이는 숭어가 계절에 따라 맛의 차이가 크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저는 서해에서 잡히는 오뉴월 숭어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이 있습니다. 낚시로 잡은 숭어를 회로 먹었는데 좋지 못한 향이 거슬렸고, 심지어 신발도 튀기면 맛있다는 튀김 조차도 맛이 없었던 기억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에겐 살이 달고 쫄깃쫄깃한 숭어, 또 누군가에겐 돈을 줘도 안 먹을 하급 생선. 과연 숭어의 진실은 무엇일까요?
#. 송어와 숭어의 차이
일단 숭어를 말하기 전에 한끗 차이로 헷갈리는 숭어와 송어를 간단히 짚어봅니다. 생선회를 좋아하는 분들이야 ‘그게 헷갈릴 만한 차이야?’라며 의아해할 수 있지만, 우리 주변에는 먹기 위해 사는 사람과 살기 위해 먹는 사람으로 나뉘듯, 숭어와 송어의 차이를 아는 사람이 있고, 모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먼저 ‘송어’는 강이나 하천 등 민물에서 태어나는 연어과 어류입니다. 특이하게도 송어는 자라면서 바다로 나갈지 강이나 계류에 남을지를 결정하게 되는데요. 민물에 남는 개체는 ‘산천어’가 되고, 바다로 나가는 송어는 ‘바다송어(체리연어, 시마연어)’가 됩니다.
해마다 겨울이면 열리는 화천산천어축제는 외래종인 무지개송어를 양식해 풀어놓는데요. 이 무지개송어 역시 민물에 남는 무지개송어가 있는가 하면, 일부 개체는 바다로 진출하는데 이를 ‘스틸헤드’라 부릅니다.
한편, 오늘의 주제인 숭어는 바닷물고기로 예부터 우리 조상의 식탁에 자주 오르내리던 물고기입니다. 숭어는 강이나 하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습성이 있습니다.
4월인 현재 한강 하구를 비롯한 안양천에는 수백 마리의 가숭어가 떼지어 다니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관찰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가 때가 되면 바다로 나가며, 우리가 식용하는 숭어는 주로 바다에서 잡힌 것들입니다.
#. 이름도 다양한 숭어, 실제론 종의 차이
시장에 가면 지역마다 숭어를 둘러싼 다양한 별칭을 들을 수 있습니다. 가숭어, 참숭어, 개숭어, 감숭어, 보리숭어, 밀치, 모찌, 언구 등등. 때문에 저는 이러한 명칭을 표준명에 대입해 정리할 필요를 느꼈습니다.
우선 우리나라는 물론, 중국과 일본 해역에는 크게 세 종류로 1) 숭어, 2) 가숭어, 3) 등줄숭어가 서식합니다. 여기서 3)번인 등줄숭어는 매우 드물 뿐 아니라 시장에 거의 입하되지 않기 때문에 제외하겠습니다.
#. 참숭어는 정확히 어떤 숭어인가?
숭어에 얽힌 오해를 풀려면 고문헌을 살펴봐야 합니다. 우리 조상을 비롯해 그때 그 시절의 어류 전문가가 숭어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는지를 알면, 오늘날 어부들이 인식하는 숭어와 비교해 어디서 어떻게 왜곡되었는지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약전 선생의 <현산어보>에는 숭어를 이렇게 기술하고 있습니다.
"치어(淄魚)가 큰 것은 대여섯 자이고 몸은 둥글고 검다.(그래서 검은빛 '치'자로 물고기 이름을 지은 것으로 추정) 눈은 작으면서 노랗고, 머리는 납작하고, 배는 희다. 맛은 달고 진하며 어족 중 제일이다. 3~4월 산란하므로 그때 그물로 잡는 것이 많다." 정약전의 <현산어보> 中에서
정약전 선생은 주로 서해와 서남해를 무대로 어류를 관찰하고 기록하는 학자입니다. 서남해는 가숭어의 서식지와 일치합니다. 눈이 작으면서 노랗다는 부분도 가숭어 임을 뒷받침 합니다. 오늘날 '참숭어'라 불리는 가숭어는 조선시대 때부터 맛이 달고 진한 고급 어종으로 인식된 것으로 풀이됩니다.
따라서 가숭어는 꽤 오래전부터 '참숭어'라 불렸을 확률이 높습니다. 이를 뒷받침하는 고문서가 서유구의 <전어지>에도 등장합니다.
"바다에서 나는 것은 참숭어와 가숭어 두 종류가 있다. 참숭어는 강에서 나는 것과 차이가 없지만, 색이 약간 칙칙하다. 가숭어는 색이 검고 눈 또한 검다." 서유구의 <전어지> 中에서
그런데 서유구는 눈이 검은 숭어(오늘날 표준명 숭어)를 가숭어 즉, 참숭어보다 맛이 못한 가짜 숭어란 이름표를 달면서 눈이 노란 참숭어의 격을 올리는 듯합니다. 문제는 서유구가 주장한 내용이 오늘날 어류도감에서 명시된 표준명과 완전히 상반돼 혼선을 부른 것입니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지역에 따라 잡히는 숭어 종류가 다른 것도 혼란을 가중했습니다.
표준명 숭어는 동해와 남해에 주로 어획됩니다. 그래서 이 지역 어민과 낚시인들은 눈이 검은 숭어를 참숭어라 부르는 경향이 있습니다. 한편, 가숭어는 서해와 서남해에 집중적으로 분포한 탓에 이 지역 어민들은 가숭어를 참숭어라 불렀습니다. 서로 자기 지역에서 많이 나는 숭어를 참숭어로 부른 것입니다. 그러나 참숭어란 명칭은 오늘날 어류도감에서 언급되지 않고 있습니다.
#. 방언과 문헌명의 충돌
지금은 숭어를 이렇게 부르고 있습니다.
1) 표준명 숭어 : 보리숭어(전남), 개숭어, 감숭어, 참숭어(동해 및 남해) 등으로 불림.
2) 표준명 가숭어 : 참숭어(대체로 전국), 밀치(경남), 언구 등으로 불림.
그런데 서유구의 전어지는 지금 부르는 명칭과 정 반대로 기술돼 있습니다.
1) 표준명 숭어를 서유구는 가숭어라 표현.
2) 표준명 가숭어를 서유구는 참숭어라 표현.
어찌 된 일인지 일제강점기 시대를 지나고 만들어진 어류도감에는 문헌명과 반대로 가면서 논쟁을 낳았습니다.
1) 고문헌에서 가숭어로 묘사한 것을 어류도감에서는 숭어로 명명.
2) 고문헌에서 참숭어로 묘사한 것을 어류도감에서는 가숭어로 명명.
누구 탓을 해야 할까요?
#. 우리가 몰랐던 보리숭어의 비밀
해마다 4~5월이면 진도 울돌목을 지나는 보리숭어가 언급됩니다. 보리숭어는 보리싹을 틔우는 4~5월에 잡히는 표준명 숭어를 말합니다.
눈이 크고 검으며, 날렵한 제비 꼬리가 인상적인 이 녀석은 해마다 봄이면 진도를 비롯해 우리 연안으로 들어옵니다. 그러면서 빠지지 않은 말이 '보리숭어의 산란'입니다.
즉, 먼바다에서 들어온 숭어가 3~5월에 강 하구로 산란하기 위해 들어오니 이때 잡힌 보리숭어가 가장 맛이 좋다.라는 글이 계속해서 인용되면서 봄에 잡히는 보리숭어는 산란기에 접어든 숭어라 맛이 좋다는 인식이 생겼고, 그 알로 임금님 수라상에 진상했다는 어란까지 만든다는 잘못된 내용이 전파된 것입니다. 하지만 봄에 잡히는 보리숭어에는 알이 없습니다.
<표1>에서 보다시피 숭어는 10~12월경에 산란하는데 그 산란장의 정확한 위치도 학계에서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고 다만, 쿠로시오 난류가 미치는 외양(일본 남부 및 타이완, 동중국해의 공해상) 어딘가로만 추정할 뿐입니다. 거기서 산란을 마친 숭어가 연안으로 들어와 봄에 잡힌 것이 보리숭어입니다.
그렇다면 3~4월 영산강 하류의 숭어 알이 좋다는 말은 무엇일까요? 정확히 말하자면, 3~5월 강 하구에서 알을 낳는 것은 표준명 가숭어입니다. 월동을 보낸 가숭어는 알을 낳기 위해 강 하구로 몰려듭니다.
지금은 댐으로 물길이 막혀 가숭어가 들어오지 못하지만, 한때 가숭어의 산란지로 유명했던 전남 영암에서는 4~5월 배가 불룩해진 가숭어를 잡아다 어란을 만들고, 남은 몸덩이는 양옆으로 펼쳐 말린 다음 쪄먹곤 했습니다.
※ 그러므로 봄에 잡히는 보리숭어가 산란철로 맛이 좋다거나 혹은 어란으로 엮는 기사는 복사 붙이기로 양성되었을 확률이 있으며, 사실이 아닙니다.
#. 최고의 진미는 숭어 어란
국내 생산되는 숭어 어란은 대부분 4~5월경에 산란하러 들어온 가숭어의 알입니다. 지리적으로 한반도는 쿠로시오 해류가 직접 미치는 외양(외해)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숭어보다는 가숭어가 알을 낳고 자라는데 더욱 적합한 환경입니다.
해마다 3~5월이면 눈이 노란 가숭어가 무거운 몸을 이끌고 연안 가까이 들어옵니다. 가숭어는 자기 몸집의 1/5에 해당하는 양을 알로 찌웁니다. 알이 크고 비대해 같은 시기 상대적으로 몸집이 작고 알도 없는 숭어와는 취급이 다릅니다.
그런데 어란 문화가 발달한 일본과 대만, 지중해(그리스) 국가에서는 모두 표준명 숭어 알로 어란을 만듭니다. 10월이면 알을 채운 숭어가 산란을 위해 나가는데 이때 잡힌 숭어로 만든 어란을 최고로 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지리적인 특징도 한몫합니다.
일본과 대만은 외양과 맞닿아 있습니다. 가숭어가 거의 없으며, 대부분 숭어가 잡힙니다. 그만큼 숭어가 전 세계적으로 폭넓게 서식한다는 것입니다. 눈이 검은 숭어는 전 세계 온대뿐 아니라 열대 해역에도 서식합니다.
중동,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지중해, 심지어 열대 지방에도 서식하는 것이 숭어입니다. 반면에 가숭어는 전 세계에서 서식지가 매우 한정돼 있습니다. 한국의 서해와 서남해, 중국 남부 등 극동아시아 해역에만 서식합니다. 이러한 차이가 나라별 어란의 차이를 만듭니다.
#. 숭어는 겨울부터 봄이 제철, 가숭어는 겨울이 제철
눈이 검은 숭어는 늦가을부터 봄 사이 가장 맛이 좋습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조류가 빠르기로 유명한 진도 대교 아래 울돌목에서 잡히는 3~5월 숭어는 강렬한 물쌀을 거슬러 올라오기에 특유의 힘찬 생명력과 쫄깃하면서 차진 식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잘근잘근 씹히는 살의 탄력, 그 속에서 새어 나오는 단맛은 3~5월 보리숭어의 백미라 할 수 있습니다.
반면, 눈이 노란 가숭어는 3~5월 산란기를 앞두고 겨울 한 철에만 맛이 오르기 때문에 봄으로 갈수록 인기가 없습니다. 다만, 맛으로만 치면 겨울 가숭어의 맛을 넘어설 수 없을 만큼 또렷한 차이를 보입니다. 따라서 겨울 가숭어는 양식이라도 기름인 구수한 지방 맛이 일품이고, 겨울~봄 사이 숭어는 기름짐보다는 쫄깃한 탄력과 은은한 단맛이 특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숭어든 가숭어든 여름에는 기름기가 빠지고 살도 덜 찼기 때문에 맛이 떨어집니다. 그래서 옛 속담에는 ‘여름 숭어는 개도 안 먹는다는 속담’이 나온 것으로 보입니다.
#. 보리숭어는 100% 자연산
눈이 노란 가숭어는 대표적인 양식 횟감이기도 합니다. 겨울이면 수족관을 가득 채운 눈이 노란 숭어를 보았을 것입니다. 가끔 80cm가 넘어가는 자연산도 들어오지만, 몸길이 30~50cm로 고만고만하다면 대부분 양식입니다.
반면 눈이 검은 숭어는 양식을 하지 않습니다. 외양 어딘가에 산란 기점을 두는데 아직은 숭어의 산란이 베일에 쌓여 있습니다. 때문에 치어나 종묘 생산도 까다로울 것입니다. 맛에서도 가숭어보다 한 수 아래로 인식된 탓에 상업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했을지도 모릅니다.
무엇보다도 세찬 조류를 타고 다니는 회유성이자 외양성 숭어이므로 좁은 우리에 가두고 키우기가 까다로울 것입니다. 이 숭어는 가을에 알을 뱁니다. 알을 배면 산란을 위해 먼바다로 떠납니다. 겨울에 지방 눈꺼풀이 발달해 검은 눈이 흰 눈자위처럼 보일 때가 바로 이때입니다.
산란 전 숭어회는 맛이 달달합니다. 겨울 수온을 버텨야 하니 육질은 감성돔 못지않습니다. 4~5월에 올라오는 숭어(보리숭어)는 산란을 마치고 들어오는 숭어로 외양에서 거센 물살을 거슬러 올라온 탓에 육질이 탄탄하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보리숭어가 유명해진 것은 이 시기 대량으로 잡히고 육질이 탄탄하기 때문입니다.
육질은 탄탄하나 뜻밖에도 숙성회로는 썩 어울리지 않습니다. 살이 금방 물러지므로 특수한 전처리(신케지메)가 아닌 이상, 활어회로 드시길 권합니다. 또한, 숭어는 종류를 떠나 국이나 탕거리로는 불호가 많습니다. 서식지와 먹잇감에 따라 특유의 향이 있는데 이 향은 익었을 때 나오는 것이므로 보통은 가열 조리보다 회와 초밥으로 권하는 이유입니다.
※ 글 : 김지민 어류 칼럼니스트
유튜브에서 ‘입질의추억tv’ 채널을 운영 중이다. 티스토리 및 네이버에서 블로그 ‘입질의 추억’을 운영하고 있으며, EBS1 <성난 물고기>, MBC <어영차바다야>를 비롯해 다수 방송에 출연했다. 2018년에는 한국 민속박물관이 주관한 한국의식주 생활사전을 집필했고 그의 단독 저서로는 <짜릿한 손맛, 낚시를 시작하다>, <우리 식탁 위의 수산물, 안전합니까?>, <꾼의 황금 레시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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