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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트보다는 시장에서, 시장보다는 규모가 큰 수산시장과 포구에서 종종 볼 수 있었던 갑오징어. 일반 오징어에 익숙한 우리의 눈에는 ‘각’ 잡힌 오징어처럼 반듯했고, 몸통은 마치 방패처럼 견고해 보입니다. 눈알을 큰데 다리는 짧으면서 굵고. 무엇보다도 가격에서 차이가 납니다.
일반 오징어 2~3마리 살 돈으로 갑오징어 한 마리 살 수 있었으니.. 물론, 지금은 오징어가 금징어라 갑오징어와의 가격 차이를 많이 좁혔으니 사정이 변해도 많이 변했구나 싶습니다.
국내에는 오징어와 관련된 정보는 많아도 갑오징어 관련 정보는 많지 않은 편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갑오징어에 관한 흥미로운 사실을 알아봅니다.
#. 원 명칭은 참오징어다.
원래 두족류는 뼈가 없고 연체동물의 일종으로 알려졌지만, 갑오징어는 진화 과정에서 생긴 단단한 갑으로 인해 '갑오징어' 또는 '참갑오징어'라 불렀습니다.
국내에는 참갑오징어 한 종이 분포하지만, 대마도를 비롯해 일본 중부 이남으로 내려가면 그 지역에서 별미인 입술무늬갑오징어 등 몇 종류가 더 분포합니다.
이들 갑오징어과에 속한 두족류는 뼈라고 할 순 없지만, 석회질로 된 단단한 구조물(갑)이 등 쪽에 자리 잡으면서 독단적인 생물학적 분류로 자리 잡았습니다. 원래 명칭은 ‘참오징어’입니다. ‘참’이라면 분명 좋은 의미로 쓰였을 것이고, 확실히 일반 오징어(표준명 살오징어)보다 맛이 좋다고 평가되니, 참오징어란 작명은 충분히 납득됩니다. 작명 이야기가 나왔으니 북한 이야기를 잠시 짚어보겠습니다.
#. 북한에서 말하는 오징어는 낙지다?
우리가 생각하는 오징어는 <사진 1> 살오징어를 말합니다. 이 오징어로 국도 끓여먹고, 데쳐먹고, 튀겨먹고, 볶아먹는 오징어의 표본 격인데요.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이 오징어가 북한에서는 ‘낙지’로 불린단 사실입니다. 그리고 오늘의 주제인 갑오징어가 북한에서는 ‘오징어’라 불리고 있습니다.
사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1947년 조선어학회가 발간한 <조선말 큰사전>에는 오징어는 다리가 10개, 낙지는 8개라고 나와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알고 있는 대로입니다. 문화어는 1966년 이후 확립됐다는데요. 오징어와 낙지가 지칭하는 대상이 달라진 것은 바로 그 이후라고 추정된다고 합니다.
그 후 현재까지 반 백 년이 넘게 흘렸고 낙지와 오징어를 지칭하는 대상이 각각 오징어와 갑오징어로 굳어진 것으로 추정합니다.
#. 갑오징어의 암수 구별
갑오징어의 암수 구분은 단순히 패턴(무늬)으로 판별할 수 있습니다. 사진에는 두 가지 타입의 갑오징어가 있는데 잘 보면 줄무늬 타입과 점박이 타입이 있습니다. <사진 2>와 같이 얼룩말처럼 줄무늬가 도드라지면 수컷이고, 점박이 또는 구름무늬라면 암컷입니다.
이러한 무늬는 수중에서 또렷하며, 잡힌 후에도 물속에서는 또렷하게 보이지만, 물 밖에 꺼내지면 무늬가 흐려지므로 구별이 어렵습니다. 사실 암수에 따른 맛 차이가 크지 않아서 낚시인이 아닌 이상 암수를 구별해 가며 팔거나 먹을 일은 없습니다.
#. 갑오징어의 기이한 생태
갑오징어를 비롯해 오징어, 한치, 꼴뚜기, 낙지 같은 두족류는 단년생입니다. 즉, 수명이 1년 정도이며, 문어가 3~4년까지 사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심지어 남극해에 서식하는 몸길이 10m가 넘는 대왕오징어의 경우 언뜻 보면 수십 년을 살 것 같지만, 현재까지 알려진 최대 수명은 4~5년 정도로 추정됩니다.
이런 예외를 제하면 다리 8~10개 달린 두족류는 대부분 1년에서 길어야 2년까지 살며, 짝짓기와 산란을 마치면서 모두 죽게 됩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암컷을 차지하기 위한 수컷의 기이한 행동입니다. 보통은 무리 중에 힘에 세고 덩치가 큰 수컷이 암컷을 차지하며 짝짓기에 성공합니다.
그러나 경쟁자가 많아질 경우 수컷끼리 싸우면서 암컷을 차지하는데요. 개중에는 경쟁을 싫어하는 수컷 갑오징어도 있을 것입니다. 어떤 수컷은 인위적으로 무늬를 바꾸어 암컷 행세를 하기도 합니다. 좀 전에 언급했듯이 수컷은 얼룩말 같은 줄무늬 패턴을 보이고, 암컷은 구름무늬를 보이는데, 무늬와 패턴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갑오징어 특성상 일부러 암컷의 패턴을 흉내 내어 주변의 수컷을 꼬드깁니다.
그리곤 물어 죽이거나 내쫓아버리곤 하죠. 경쟁을 피하기 위해 변신술을 마다하지 않은 갑오징어의 지능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지는 대목입니다.
경쟁에서 이긴 수컷은 암컷과 교미에 들어가는데 서로 머리를 맞대고 부둥켜 앉는 형상으로 진행됩니다. 이때 수컷은 자신의 다리 중 하나(생식기)를 암컷의 몸으로 밀어 넣어 정자를 주입합니다. 낙지도 그렇지만 갑오징어도 여러 다리 중 하나가 생식기 역할을 합니다.
교미가 끝나도 수컷은 암컷이 안전하게 산란할 때까지 자리를 뜨지 않고 그 자리를 지킵니다. 만에 하나라도 다른 수컷이 침입해 암컷을 차지한다면, 자신의 정자와 섞일 수 있기 때문인데요. 이는 강한 유전 인자를 바탕으로 자신의 가문을 번식시키려는 본능으로 풀이됩니다.
#. 갑오징어 낚시
갑오징어는 여수 등 남해안 일대와 서해권에서 성행합니다. 주꾸미와 함께 낚기도 하며, 아예 갑오징어 전문 선상낚시가 있을 정도입니다. 주 시즌은 9~11월 사이이며, 시즌 후반으로 갈수로 씨알이 커지는 경향을 띱니다. 갑오징어 낚시로 유명한 곳은 여수와 통영, 삼천포 앞바다 일대이고, 서해권은 충남 보령, 서천, 군산권이 유명합니다. 주꾸미 낚시와 비슷한 원리지만 채비는 다릅니다.
갑오징어의 입질은 입으로 미끼를 무는 게 아니라, 다리를 살포시 얹는 것부터 시작됩니다. 이때 작은 반동이 초릿대에 전해져야 하므로 초릿대(끝번대)가 아주 연하고 낭창하게 구부러져야 합니다.
그러나 챔질을 할 때는 강하게 채야하므로 허리심은 강해야 합니다. 이러한 특성을 기반으로 한 갑오징어 전용대는 약은 입질도 간파하여 좋은 조과를 냅니다. 즉, 낚싯대의 선택부터 조과의 당락이 결정될 만큼 낚싯대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겁니다.
릴은 베이트 릴을 쓰며 PE 합사 1~1.5호 정도 감아 놓는 것이 알맞습니다.
미끼는 ‘에기’라 불리는 새우 모양의 인조 루어를 씁니다. 이 인조 루어는 수중에서 갑오징어가 새우를 사냥하는데서 착안한 것으로 다리를 얹을 때의 미세한 변화를 잘 감지해야 하며, 강하게 채야 낚싯바늘로 훑치게 되는 원리입니다.
갑오징어의 주 유영층은 거의 바닥층입니다. 그 때문에 채비는 추가 바닥에 닿을 때까지 내립니다. 수심은 보통 6~7m에서 깊게는 30m 이상도 노립니다. 쇠추가 바닥에 닿으면 릴을 1~3바퀴 정도 감고 그대로 멈춥니다. 그 상태에서 갑오징어의 입질을 기다리는 식입니다.
갑오징어는 사니질(모래)과 뻘에 사는 주꾸미와 달리 암반이 발달한 곳에 서식합니다. 때문에 밑걸림으로 인한 채비 손실이 상당하므로 사전에 갑오징어용 에기와 쇠추를 넉넉히 준비해 오길 권합니다. 주꾸미와는 서식 지형이 다르다 보니 포인트가 겹치진 않지만, 낚시를 하다 보면 두 종류가 동시에 잡히기도 합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보통은 한 종류만 노리는 것이 조과 향상에 도움이 됩니다.
#. 갑오징어의 제철과 맛
갑오징어는 1년에 두 차례 제철이 찾아옵니다. 4~6월(봄)과 9~11(가을)인데 봄에는 산란기를 맞이한 갑오징어라 씨알이 크다는 장점이 있고, 대신 회로 먹었을 때는 가을만 못하기에 저 개인적으로는 찜이나 볶음 등으로 활용하는 것을 권합니다.
가을에는 갑오징어 낚시 시즌이며, 시장 유통량은 봄보다 적습니다. 주로 낚시인들이 직접 낚아 먹는데 이때의 갑오징어는 씨알이 봄만큼 크진 않아도 살은 적당하게 씹히면서 단맛이 나기 때문에 회를 추천합니다.
갑오징어 회는 쫀득하면서 탄력 있는 식감이 장점이지만, 무엇보다도 단맛이 좋은 횟감입니다. 때문에 일반 오징어회처럼 초고추장 일변도보다는 간장과 와사비 조합이 꽤 잘 어울립니다.
#. 갑오징어의 신경 절단
무늬오징어도 그렇지만, 갑오징어를 횟감으로 장만할 때는 껍질은 물론, 살 양쪽에 붙어있는 얇고 투명한 막을 얼마나 잘 제거하느냐에 따라 그 맛이 좌우되며, 수시간 이상 공수해야 한다면 반드시 활어 상태로, 활어 공수가 어렵다면 항에서 이까시메(이케시메 x)라는 오징어 신경 즉살법으로 처리해야 신선하게 공수할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합니다.
위 사진은 갑오징어의 신경을 절단하는 모습입니다. 방법은 양 눈의 미간을 쪽집게로 절단하는데 이렇게 하면, 오징어의 감정을 드러내는 색소포의 기능이 마비되며, 사후 끈적한 액체가 나오는 것을 방지하고 살의 탄력을 일정 시간 유지할 수 있어 장거리 및 장시간 횟감 운송에 매우 유리합니다.
만약, 장거리 및 장시간 운송에서 신경 절단을 하지 않는다면, 오징어 특유의 끈적임과 살의 탄력 저하 및 전체적인 선도 저하로 맛과 식감 상당 부분을 잃을 수 있다는 점을 참고해 둡니다.
흔히 갑오징어는 무늬오징어와 자주 비교됩니다. 무늬오징어 역시 맛에서는 갑오징어에 뒤처지지 않기 때문인데, 굳이 차이를 말하자면, 회는 갑오징어가 으뜸이고, 튀김은 무늬오징어가 뛰어납니다. 그 외 숙회, 찜, 볶음 등은 두 어종 대동소이할 만큼 맛이 있으니 봄이 지나기 전에 갑오징어 한 마리 몰고 가시는 건 어떨까요?
가격은 그날 어획량에 따라 다르지만, 산지 가격을 기준으로 했을 때 활 갑오징어 1마리 당 15,000~20,000원가량 합니다.(지역에 따라 3만 원 이상 파는 곳도 있을 만큼 갑오징어의 가격은 지역별 상이하다는 점을 참고합니다.)
크기에 따라 가격이 상이하다는 점 참고하시고, 암수 상관없이 무늬가 또렷하고 얌전하게 유영하는 것을 고른다면 큰 실수가 없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볶음용을 원한다면 철사줄에 꿴 선어를 구매하는 것이 경제적입니다. 횟감이 아니라면 굳이 값비싼 활어를 구매할 이유가 없다는 점도 참고해 둡니다.
※ 글 : 김지민 어류 칼럼니스트
유튜브에서 ‘입질의추억tv’ 채널을 운영 중이다. 티스토리 및 네이버에서 블로그 ‘입질의 추억’을 운영하고 있으며, EBS1 <성난 물고기>, MBC <어영차바다야>를 비롯해 다수 방송에 출연했다. 2018년에는 한국 민속박물관이 주관한 한국의식주 생활사전을 집필했고 그의 단독 저서로는 <짜릿한 손맛, 낚시를 시작하다>, <우리 식탁 위의 수산물, 안전합니까?>, <꾼의 황금 레시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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