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지귀도 낚시(2), 동갈치와 거북손, 해창 벵에돔 낚시


낚시에 집중하고 빠지다 보니 주변에서 난 자연의 산물들을 잘 살피지 못했다는 것을 새삼 느꼈던 제주도 지귀도 낚시.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한 거북손이 갯바위에 지천으로 널려있건만, 어째서 지금까지 눈길도 주지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수산물을 좋아하는 제가 방송에서 몇 번 소개한 거북손을 이제야 처음 맛본다니 뜻밖이죠?
제게 있어 거북손은 그저 갯바위에서 신발의 미끄럼을 막아주는 부착생물일 뿐일 정도로 무심코 지나쳤던 것입니다.
이날 갓 캐낸 거북손 맛을 보기 전까지는 말이죠. ^^ 그런 거북손에 대한 인식을 지귀도에서 확 깼습니다.
그 중독성 높은 맛이 실로 놀라웠던 것입니다.





시간은 어느덧 오후, 무언가를 낚고 파이팅 중인 김남규 부회장님


"여긴 동갈치 밭이네"

오전에 지귀도로 들어온 우리 일행은 아직 큰 소득을 올리지 못한 채 다양한 잡어들로나마 손맛을 보고 있었습니다.
동갈치, 황줄깜정이, 점다랑어, 아기 벵에돔, 독가시치 등등. 해는 중천을 넘어 반대편으로 기울기 시작했고 슬슬 배가 고파올 시점.
그런데 아까부터 낚시는 안 하시고 뒤에서 바지런히 준비만 하시는 서귀포 지구장님. 
갯바위를 둘러보며 작은 소라와 거북손을 따오시더니 그것을 삶고 라면을 끓이고 계셨던 것입니다. 
낚시하랴 촬영하랴 정신이 없던 제가 이제야 알아차렸습니다. 이날 지귀도에 들어오면서 애초부터 낚시할 계획이 없었던 것은 아닌가 하고.
서울에서 내려온 손님들을 위해 이렇게 자신을 희생하면서 뒤치다꺼거리를 자처하신 지구장님께 미안한 마음과 감사한 마음이 교차합니다.


눈에 보이지는 않아도 강력한 화력이 냄비를 달구고 있다.

맛있게 삶아지고 있는 거북손

갯바위에서 거북손과 라면, 소주 한 병이면 세상 부러울 게 없다.


"술이 달다. 달아~"


어떤 라면인지는 여기서 중요하지 않아요. 
정면에 보이는 푸른 바다와 한라산을 마주하며 먹는 라면 맛은 지귀도에서만 느낄 수 있는 매력 포인트. ^^ 


김치는 마트에서 사왔는데 하필 포기김치 ㅋㅋ
그래도 문제없어요. 날이 잘 선 칼로 쓱쓱 잘라주고.


다 삶아진 거북손

지귀도 뿐 아니라 남해와 제주도의 여러 섬에는 이런 거북손이 지천으로 널려있는데요. 
늘 낚시하면서 보아 온 부착 생물이지만, 한 번도 눈길을 주지 않았기에 그 맛이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거북손은 손으로 껍질을 까서 속살만 빼 먹는데요. 우리가 먹는 건 아래쪽(거북손을 닮은 부분)이 아닌 윗부분으로 손으로도 쉽게 벗길 수 있어요.
씨알 큰 거북손은 속살만 위로 길게 나 있답니다. 지귀도는 씨알 좋은 거북손이 많이 자생하지만, 대부분 남쪽 포인트에 있다고 해요.
이날은 너울성 파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서북쪽 포인트에 내렸습니다. 이쪽에 자생하는 거북손은 씨알이 잘다고 해요.

어쨌든 맛을 봅니다. 일단 겉보기에는 살이 야들야들해요. 입에 넣고 씹으면 잘근잘근 씹혀 쫄깃한 맛도 있습니다.
맛은 조개살 + 게살을 합쳐 놓은 듯하며 간은 바닷물로 적당히 되어 있어 약간 짭조름하면서 단맛도 느껴집니다.
처음 몇 번 까먹었을 때는 아무생각이 없었는데 나중에는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중독돼버렸어요.
소주 한 모금 홀짝에 거북손 몇 개 까먹으니 신선놀음이 따로 없습니다.
그 싱싱한 맛에 갯바위에서 나도 모르게 들어가는 과도한 음주는 경계해야 할지도. ^^
결국, 냄비 바닥이 다 드러나도록 까먹고 어떻게 하면 거북손을 잘 캘 수 있는지 조언까지 구하는 입질의 추억입니다. ㅎㅎ


0a(제로 알파)로 채비를 변경

다시 낚시를 이어 나갑니다. 아직 벵에돔이 입질할 시간은 멀었어요. 적어도 오후 3시는 지나야 합니다.
그래도 지귀도까지 왔으니 마냥 놀 수 없지요. 뭐라도 잡고자 채비를 변경해 봅니다.
기존 채비는 자중이 많이 나가는 제로찌였는데 이제 밀물이 들어오고 있어 적당한 자중의 제로 알파찌로 바꿨습니다.
찌 모델은 쯔리겐 아시아 LC로 제주꾼들이 많이 사용하는 모델 중 하나지요. 어느 정도 원투력을 필요로 하는 제주의 필드 상황에 잘 맞다고 생각합니다.
제로 알파라는 부력은 그냥 '제로'와 거의 비슷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다른 게 있다면 '여부력'이 일반 제로찌에 비해 약간 작을 뿐이에요.

다시 말해, 봉돌을 물리지 않고 운용하면 일반 제로찌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사용해 본 결과 g7~g6번 까지는 찌가 수면 아래로 잠기지 않습니다.
물론, 그 날의 염분 농도, 조류 상황, 공략 거리에 따라 결과가 다르긴 합니다만, 포말이나 와류가 없는 잔잔한 바다에서 20m 이상의 거리를 공략하게
된다면 이 찌는 잠기지 않고 제로찌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가 g5번 이상의 봉돌을 물리면 이 찌는 0c나 00찌 처럼 수면 아래로 잠겨 들면서 잠수
조법이 되겠지요. 그렇다고 한없이 들어가지는 않습니다. 일정 수심층까지만 들어가므로 더 깊은 심층을 공략하기 위해선 00찌로 바꾸거나 아니면 더 무거운
봉돌을 달아야 할 것입니다.

상황은 간조에서 초들물로 들어서며 조류가 살아날 줄 알았는데 계속 정체되어 있어요.
그 가운데 아내가 입질 받고 대를 세웁니다.

"왔다!"


27cm급 벵에돔

오호 그나마 먹을만한 벵에돔이 낚였군요. 조류 소통이 좋지 않으니 긴꼬리벵에돔은 안 나오고 일반 벵에돔이 올라옵니다.
발밑에는 안 보이던 잡어들이 다시 피어오르며 극성을 부리고요. 잡어 종류가 심상치 않아요. 평소 같으면 자리돔이 많이 보여야 할 텐데.
지귀도는 확실히 제주도에서도 남쪽에 있고 수온이 절정에 이르는 가을이라 아열대성 잡어가 도드라지게 눈에 띕니다.

노랑 자리돔, 범돔, 파랑돔, 그리고 영화 니모에서 나오는 나비고기까지 돌아다니네요. ㅎㅎ
이것들은 전부 관상용에 준하는 어종들이고 뉴칼레도니아와 필리핀에서 스노쿨링할 때 많이 보던 열대어도 가끔 돌아다니며
(돌돔 비슷하게 생겼는데 비늘이 굵고 제비 꼬리를 하고 있어요. 표준명을 아시는 분은 댓글 부탁합니다.) 미끼를 쪼사먹기 시작합니다.
이것들로 보아 제주도 주변 해역의 수온이 많이 오른 것 같습니다.


연신 동갈치를 낚는 부회장님.

아내도 후속타를 노려보지만 애꿎은 동갈치만 올라오고

벵에돔 후속타가 필요한 시점에서 줄창 낚이는 동갈치. (표준명 : 물동갈치)
갈치와는 아무 상관도 친척 관계도 아닌 이 어종은 씨알이 굵어 잔 손맛과 눈맛은 있지만, 제주꾼들은 맛없다고 버리는 고기예요.
그런데 이는 어디까지나 '상대적'이 아닐까 싶습니다. 맛있는 고기가 많이 나는 제주도여서 굳이 안 먹어도 되는 게 아닌가 싶어요.
먹어봐야 알겠지만 적절한 조리법이 따라준다면 이것도 먹을만한 고기일 지도 모릅니다. 
동갈치 종류는 새우와 같은 갑각류와 작은 물고기를 잡아먹는 육식성 어종입니다. 
육식성 어종치고 맛없는 물고기는 드물기에 다음에 잡히면 한 마리 챙겨 볼까 합니다. 모름지기 직접 먹어보지 않고서는 성에 차지 않아서. ^^


채비를 다시 제로찌로 바꿨다.

고기가 낚이지 않자 분노의 밑밥질이 시작되고

벵에돔을 제외한 모든 어종이 다 나오고 있는 상황

오후 네 시가 되자 해창을 보기 위한 꾼들이 추가로 들어온다.

조류 소통이 좋지 않아서 잦아지는 입질의 주인공은

바로 독가시치

사진은 아내 위주로 찍어 제 사진이 많지 않습니다. 사실 지귀도는 우리 부부가 낚시하기에는 까다로운 조건이에요.
낚시 자리가 수면과 별 차이가 없어 할 수 없이 카메라를 메고 해야합니다. 그러다 보니 카메라 맨 사람이 고기를 낚으면 그걸 찍기가 쉽지 않아요.
보통은 갯바위에 카메라를 올려놓고 낚시합니다만, 이렇게 물이 들어오면서 낚시 자리가 잠기는 곳은 그저 한 사람이 카메라를 매고 해야합니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파도가 있는 날 여치기 포인트에 들어가는 걸 꺼리는 편이에요.

카메라가 제게 있으니 아내가 저를 찍어줄 여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잡은 것 중 '특이사항'이 없는 것은 촬영 생략 ^^;
괜찮은 씨알의 대상어가 올라오거나, 혹은 이슈가 될 만한 어종이 올라오거나, 씨알 좋은 잡어가 올라오거나 할 때만 메고 있던 카메라를 아내에게 건네
주는데요. 이 과정도 갯바위 발판에 따라 까다롭기도 합니다. 아내는 채비를 회수하지 않은 상태에서 사진을 찍어야 하고요. 
그러다 촬영 중 갑자기 원줄이 풀려나가는 입질에 우왕좌왕하다 놓치는 경우도 있고 혹은 채비가 갯가로 붙어 엉키거나 밑걸리기도 합니다. 
지금이야 촬영 노하우가 있으니 그나마 낫지만, 보다 실감 나는 사진을 건지려면 이러한 희생은 감수해야 할 것입니다.  
마릿수는 늘 포기 상태 ^^; (나중에 돈 많이 벌면 전담 카메라 기사와 운전사를 데리고 다닐래요. 현실적으로 가능할지는 미지수지만 ㅎㅎ)

저는 중간에 아기 벵에돔 두어 마리에 독가시치 등을 낚았지만, 바로 방생하느라 찍은 사진은 없습니다.
재밌는 사실은 이날 이렇게 동갈치가 휘젓고 다님에도 저는 동갈치를 한 마리도 낚지 못했다는 겁니다. 대신 독가시치만 줄창 ㅎㅎ
이는 다른 사람의 채비보다 제가 좀 더 무거워서 생기는 현상 같기도 하고요.


제주도 낚시에서 최고조에 이르는 해창이 왔다.

이제 해가 기울면서 긴장해야 할 시간이 왔습니다. 제주꾼들이 소위 '해창'이라 말하는 순간이 온 것입니다.
해창은 해가 수평선에 걸리는 시점을 기준으로 앞 뒤 30분을 말합니다. 이때는 없던 입질도 살아나고 특히 씨알 굵은 벵에돔이 어슬렁거리며 채비를
물고 늘어지기에 낮에 사용하던 원줄과 목줄도 이때는 한 호수씩 올리고, 바늘도 조금 큰 걸 사용해야 합니다.
(참고로 '해창'이란 말은 일본의 한자어를 따온 잔재로 될 수 있으면 '해 질 녘'으로 표현하는 게 옳다는 주장도 있으니 참고하십시오.)
제주의 다른 포인트도 그렇지만, 특히 지귀도에서 낚시할 때는 철저히 발 앞을 노려야 하며 채비를 깊이 내리지 않도록 하는 게 조과에 도움이 됩니다.
제 경험상 해창에 끝썰물이나 간조가 겹치는 날에는 재미 본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아무리 해창이라도 물때가 맞아야겠죠?


밀물이 들어오면서 갯바위 일부가 물에 잠기니 시간이 가면 갈수록 낚시할 자리가 마땅치 않습니다.
입질이 들어와야 할 시간인데 찌는 미동이 없으니 애만 타고. 
자리가 협소해 낚시가 어려워지자 일찌감치 낚싯대를 접은 쯔리겐 FG 회원분들. 두 팔을 걷어 붙이며 아내의 손맛을 위해 돕습니다.
다시 한번 채비를 점검하고 공략 지점을 살피면서 레슨에 들어갔는데요.


안타깝게도 대물 긴꼬리의 입질을 받는 데는 실패하였습니다.
막판에 단 한 번의 입질을 받았는데 대를 세우자마자 터지고(이빨에 목줄이 나간 것으로 추정).
저 역시 낚싯대를 접기 직전, 와락하고 끌고 나가는 입질을 받고 대를 세웠지만, 가당찮은 파워를 느끼자마자 힘없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원줄 중간에 흠집이 난 건지 윗부분이 끊어지면서 제가 애지중지하던 찌만 잃어버렸습니다. 사전에 줄 점검을 소홀히 한 것도 지귀도에서 마지막
순간도 참으로 아쉽습니다.



이날 쯔리겐 FG 회원들이 지귀도 덤장에서 수거한 쓰레기들

수거한 쓰레기가 이렇게나 많습니다. 물이 들어오면 이 쓰레기들은 바다로 떠내려갈 수 있지만, 그 전에 수거할 수 있었습니다.
이날 확실한 손맛은 못 봤지만, 지귀도에서 모처럼 여유 있는 낚시를 즐길 수 있었어요. 중간에 귀한 거북손 맛도 보고 말이죠. ^^
이 날 여러모로 뒤에서 도와주신 쯔리겐 FG 회원님들. 특히, 온종일 낚시를 포기하면서 도와주셨던 서귀포 지구장님께 감사드립니다.
우리 부부는 제주도 여행 3일 차에 접어들며 난관에 부딪혔어요.
태풍의 간접 영향으로 원래 가기로 했던 관탈도는 물론, 제주도 어느 지역에서도 낚시가 어려울 정도로 바다 날씨가 악화하였습니다.
4일 차는 오후부터 좋아지긴 했지만, 다른 스케쥴로 낚시가 어렵게 됐으니 이번 제주도 낚시는 여기서 끝나는가 싶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날, 우리 부부는 비행기 타기 직전(?) 잠깐이라도 손맛을 보고자 형제섬에 들어가는 강행군을 했습니다.

이날은 마라도 관광이 예약되어 있었고 마치고 돌아오는 시간이 오후 3시 30분이었습니다.
렌터카를 몰고 사계항으로 밟던 중 다급히 선장님께 전화를 걸었습니다.

"지금 넙데기 들어갈 수 있어요?"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일단 해경에 신고하고 오세요."


순간 액셀을 밟고 있던 발에 힘이 들어갔습니다. 꺼져가는 불씨를 태우기 위해 속력을 내어 도착하니 오후 4시.
그런데 철수 시간은 오후 6시로 낚시를 많이 해야 한 시간 30분이 고작입니다. 그 시간을 위해 뱃삯을 주면서 들어가야 하니 고민이 될 법도 합니다.
하지만 왠지 확신이 있었습니다. 물때는 이제 막 초들물이 받치면서 해 질 녘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한 시간 동안 낚으면 얼마나 낚겠느냐만은, 이대로 서울로 올라가자니 너무 서운해서 말이죠.

"항공기 탑승 시간은 오후 9시 30분! 그런데 렌터카 반납 시간은 오후 8시"

철수하고 항에 도착하면 6시 30분. 만약 고기를 잡는다면 횟감으로 가져가기 위해 항에서 손질을 마쳐야 합니다. 
그 사이 아내는 트렁크 짐을 정리하고요. 이 작업을 30분 안에 끝내면 오후 7시. 사계항에서 공항까지 소요 시간은 약 50분.
렌터카 반납 장소를 찾아 들어가는 데 걸리는 시간도 있고 하니 정말 빡빡합니다.

007 작전을 방불케 했던 형제섬에서의 마지막 "한 시간",
긴박했던 출조이자, 제 낚시 인생 중 '최저 출조 시간'이라는 진기록을 세운 형제섬 넙데기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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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입질의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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