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글의 법칙, 그루퍼 조작 의혹에 관한 내 생각


오늘은 초 뒷북 좀 치겠습니다. ^^;
한 달 전에 페이스북에서 예고한 적이 있었지만, 제주도 관련 글을 쓰느라 여차저차 늦어졌습니다.
8월 말경에 방영된 '정글의 법칙'에서 낚시 조작 의혹으로 제작진들이 곤혹을 치렀을 겁니다.
그래서 인터넷이 한바탕 시끌시끌했지만, 저는 TV를 안 보는 관계로 그런 방송이 있었는지조차 몰랐다가 최근에 알게 되었습니다.
마침 블로그 독자님께서 '정글의 법칙이 그루퍼 조작 의혹을 받고 있는데 입질님은 여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고
진상을 알아보기 위해 해당 방영분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정글의 법칙에서 그루퍼를 낚은 것이 조작인지 아닌지는 제가 판단해드릴 수 있는 부분이 아닌 것 같습니다. 
다만, 낚시를 즐기는 사람으로서 적어도 화면상에 비친 장면만으로 해석해 본다면, '여러 가지 근거'로 해석이 가능할 수는 있겠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정글의 법칙, 그루퍼 조작 의혹에 관해 '낚시를 전문적으로 즐기는 처지'에서 제 소견을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자료 화면을 보면서 '조작이다. 아니다'는 글을 읽는 여러분이 판단해 주시고요. 또한, 글 말미에 적었듯이 이제 와서 조작이니 아니니 하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보다는 이러한 논란이 생겼을 때 대응하는 일부 시청자 입장에 대한 아쉬움을 지적하고자 합니다.



■ 동영상 정밀 판독으로 알아낸 사실
정글의 법칙의 그루퍼 조작 의혹에 대해 저는 두 가지로 근거해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먼저 '동영상 정밀 판독'으로 알아낸 사실입니다.  



#. 어신 전달이 생략된 상태에서 파이팅에 들어갔다.
위 장면은 문제의 그루퍼가 입질하기 직전으로 카메라는 이미 애초부터 병만씨와 로컬 낚시꾼을 함께 비추고 있었습니다.
이때 병만씨는 줄을 감아들이고 있었죠. 줄을 감던 병만씨는 고개를 뒤로 돌려 낚시꾼과 어떤 신호를 주고받는 장면이 포착됩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분명히 한두 마디의 대화가 오갔습니다.
실제로 무슨 대화가 오갔는지 모르지만, 자막에서는 '좀 부탁해요~!'로 대체하였습니다.


병만씨와 짧은 대화를 나눈 낚시꾼은 아무런 리액션 없이 곧바로 낚싯대를 세워 파이팅에 들어갑니다. ← 이 부분이 부자연스럽죠.


그러니깐 입질이 왔을 때 '신호(어신)'라던가 그 어떠한 리액션(표정의 변화)도 없이 아무렇지도 않게 낚싯대를 세워 힘겨루기하는 것입니다.
대게 물고기가 입질하면 어떤 형태로든지 '어신'이 전달됩니다.
낚싯줄(원줄)이 확 풀려나간다든지 혹은 낚싯대 끝 초릿대가 휘어진다든지 물고기가 잡아당기는 '힘'이 낚싯줄을 타고 전해지면, 들고 있는 장비에
변화가 생겨야 하는데 영상을 판독해 본 결과 전혀 그런 기미가 없었고 뜬금없이 힘겨루기에 들어갔다는 부분이 매우 부자연스럽습니다.
자이언트 그루퍼 정도의 입질이라면, 저렇게 쉽게(힘없이) 낚싯대를 세울 수 없다는 사실을 전문 낚시꾼들은 다들 알고 계실 겁니다. 

그리고 동영상이든 사진이든 낚시 촬영을 해 보신 분들은 알 겁니다. 입질 받는 순간을 포착해 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물고기가 입질하는 순간, 찌가 들어간다든지 줄이 풀려나간다든지 혹은 낚싯대가 갑자기 흔들리거나 구부러지는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서는
입질이 이어지기 수 분에서 수 시간 전부터 카메라 앵글을 맞춰놓고 찍고 있어야 합니다.
정글의 법칙에서는 정말 엄청나게 운이 좋아 그 장면을 처음부터 담을 수 있었습니다. 아주 우연히 말이죠.



#. 그루퍼를 낚았다고 하기에는 낚싯대 휨새의 각도가 부실했다.
화면에는 '엄청나게 휜 낚싯대'라 설명되어 있지만, 저것이 휘어졌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죠. ^^;
자이언트 그루퍼보다 훨씬 작고 날씬한 바라쿠타가 걸려들어도 저것보다는 더 많이 휘어집니다.
통상 낚싯대가 휘어지는 각도는 물고기 움직임에 따라 다릅니다만, 그루퍼 같은 '암초성'이라면 수중여(암초) 속으로 들어가거나 바닥으로 파고드는
액션이 낚싯대에 그대로 반영되므로 활처럼 휘게 되는 게 상식적인 모습일 겁니다.
휨새의 각도는 물고기와 거리가 있을 때 'L"자로 휘어지며, 물고기와의 거리가 가까우면 "U"자로 휘어집니다.
위의 사진은 어느 형태로든 휘어졌다고 보기가 어렵습니다.


위 그림은 우리나라에서 바다낚시 대상어종으로 인기가 있는 감성돔과 벵에돔의 예입니다.
둘 다 암초성 물고기지만, 파고드는 액션은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감성돔이 낚일 때는 낚싯대가 'L'자로 휘어지며, 벵에돔은 'U'자로 휘어질 때가 많아요.
그루퍼와 같은 대형 물고기가 걸려들면 어떠한 형태로든 심하게 휘어지는 게 정상입니다.



#. 낚싯줄을 잡아당긴다?
많은 분이 이 부분에 대해 지적을 했던 것으로 압니다. 여기서 잡힌 자이언트 그루퍼는 길이 1m에 육박, 무게는 10kg이 넘는다고 나와 있는데
제가 봤을 때도 1m까진 아니지만, 거기에 근접한 크기였고 저 정도면 10kg는 충분히 나갈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그루퍼가 너무 힘이 없어요. 10kg 정도의 그루퍼라면, 아무리 테크닉이 좋아도 힘겨루는 시간이 상당히 늘어나야 합니다.
게다가 줄이 저렇게 느슨하지도 않습니다. 만약 힘이 팔팔한 그루퍼가 물었는데 저렇게 손으로 줄을 잡으면 부상입을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잡힌 그루퍼는 처음부터 힘이 많이 빠져 있었습니다. 왜 힘이 빠져 있었는지는 설명할 수 있는 근거가 부족하므로 생략하겠습니다.
혹자는 이 대목에서 '조작이 아니냐'고 말하는데 그건 알아서 판단해야 할 몫으로 남았습니다.




영상에는 분명 그루퍼가 매달려 있었고 기진맥진한 상태로 올라옵니다.
그루퍼가 많이 늙어 힘이 없었던 탓일까요? 참고로 자이언트 그루퍼는 그루퍼 중에서도 대형종으로 다 자라면 2.5~3m까지 성장합니다.
그것을 생각해 볼 때 정글의 법칙에서 잡힌 그루퍼는 청소년기에 해당할 것입니다. 저 정도만 해도 힘이 무시무시합니다.
제주도에서 주로 낚이는 자바리(제주 다금바리)가 다 성장하면 저것과 비슷한 크기가 되는데요. 어지간한 중장비가 아니면 낚기가 무척 어렵고
힘겨루는 시간도 상당히 걸립니다. 만약에 저 그루퍼가 긴 시간 동안 한정된 장소에 갇혀 운반됐다면, 저 장면이 가능합니다.


사진은 제가 뉴칼레도니아에서 트롤링 낚시를 했을 때입니다. 사진 속 인물은 뉴칼레도니아의 베테랑 낚시꾼입니다.
저런 베테랑 낚시꾼도 고기를 낚으면 낚싯대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온 체중을 싣고, 무게 중심을 뒤쪽에 두며 힘겨루기합니다.
저 때 걸었던 물고기는 1m가 넘는 와후피쉬(꼬치삼치)로 가공할 만한 파워를 자랑합니다.
비록 그루퍼가 길이 면에서는 딸리지만, 체고가 넓고 힘이 세므로 1m짜리 와후피시에 견줄만한 파워를 갖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사진은 파이팅 벨트입니다. 저곳에 낚싯대를 꽂으면 '지렛대' 원리로 물고기와 힘겨루기를 할 수 있는 겁니다.
그 정도로 트롤링 낚시는 낚이는 물고기의 힘은 무시무시하다는 것입니다. 평소 트레이닝을 통해 근력을 길러야 하며 고도로 훈련된 자만이 이 같은
낚시를 즐길 수 있습니다.


저도 1m가 넘어가는 와후피쉬를 걸고 힘겨루기에 들어간 모습입니다.
평소 운동을 게을리 한 덕에 정말 젖먹던 힘까지 내었습니다. 그렇게 5분간의 사투 끝에 녀석을 끌어 올릴 수 있었습니다.
한 마리 잡고 나면 팔이 후들거리고 진이 다 빠져버립니다. 그러나 방송에서 그루퍼를 낚는 장면은 이해이 안 가는 장면이 많이 있었습니다.
지금부터는 더욱 확실한 근거로 설명하겠습니다.



■ 낚시를 즐기는 입장과 자연의 법칙으로 알아본 사실
트롤링 낚시를 즐기는 분이라면, 정글의 법칙에서 그루퍼를 낚은 일이 얼마나 현실과 동떨어졌다는 걸 눈치챘을 겁니다.
하지만 낚시와 물고기의 습성을 잘 모르는 일반 시청자들은 별문제 없이 해당 영상을 받아들였을 거라 봅니다.
지금부터 이야기하는 내용은 '자연의 법칙'을 근거로 한 것입니다.
조작이다 아니다는 여기서 말하지 않겠지만, 자료에서 시사하는 바가 클 것으로 생각합니다.



#. 그루퍼가 낚인 지역의 수심은 100m~1,400m의 심해로 현실과 거리가 있다.
트롤링 낚시는 수심이 얕은 산호 지대에서 이뤄지지 않습니다.
트롤링 낚시의 주 대상어종인 '개이빨 다랑어, 상어, 자이언트 트레발리, 바라쿠타, 와후피시' 등은 수심 100m가 넘어가는 깊은 바다에서 회유합니다.
이들 어종이 회유하는 수심 층은 주로 표층과 상층입니다. 트롤링 낚시에 사용하는 미누어(인조미끼)는 물에 잘 뜨는 플로팅 타입이 있고, 던지면 조금씩
가라앉는 싱킹 타입이 있습니다. 대상 어종에 따라 이러한 타입을 적절히 골라야 합니다.

그런데 그루퍼 종류는 '바닥층'에서 어슬렁거리며 사는 물고기입니다. 먹이를 사냥하기 위해 위로 올라올 때도 있지만, 그래 봐야 몇 미터밖에 안 됩니다.
가령, 50m 수심에 서식하는 그루퍼가 먹이 사냥을 위해 떠오른다 해도 10m 이상 떠오르는 일은 매우 드물다는 것입니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트롤링 낚시에 사용되는 인조미끼로는 바닥층 공략이 불가능합니다.
특히, 이렇게 수심이 깊은 곳에서는 더더욱 그러합니다. 왜 그런지 구체적으로 알아보겠습니다.


지도를 보면 가장 밝은 빛깔의 바다와 중간 빛깔의 바다, 그리고 제일 어두운 빛깔의 바다가 보일 겁니다.
가장 밝은 빛깔의 바다는 사질대(모래)로 되어 있습니다. 제주도에 가면 일부 바다색이 에메랄드빛으로 보이는데 이는 모래 지형이라 그렇습니다.
그다음으로 중간 밝기의 바다는 복잡한 무늬가 있습니다. 이는 암초와 산호가 많다는 증거입니다. 이 두 바다는 깊어 봐야 수심 30m 미만입니다.
그런데 낚싯배가 나와 있는 지역은 물 색깔이 어둡습니다. 바닥도 보이지 않은 심해입니다. 대게 트롤링 낚시는 이런 곳에서 이뤄집니다.


화면에 보셨듯 낚시하는 장소의 수심이 최소 100m에서 1,400m로 되어 있다고 합니다. 
영상대로 라면 그루퍼를 이런 곳에서 잡았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그루퍼는 농어목 바리과를 지칭하는 물고기입니다. 한국과 일본의 근해에도 이러한 그루퍼 종류가 많이 서식하고 있습니다.

능성어, 붉바리, 다금바리, 자바리, 도도바리, 흉기흑점바리, 갈색둥근바리, 점줄우럭 등등

이런 암초성 물고기는 최대 200m 이하의 수심에서는 서식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그곳은 대부분 모래나 뻘로 되어 있으며 햇빛이 닿지 않은 암흑이라 산호도, 수생식물도, 먹잇감도 부족합니다.



주로 바닥에 붙어 다니는 자이언트 그루퍼




방송에서도 그루퍼는 굴이나 바위틈에 숨어 산다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바리과' 어종은 영명으로는 '그루퍼과'에 속합니다. 그루퍼과 어종은 모두 암초성 물고기입니다.
몸을 숨길 수 있는 수중 굴이나 암초가 복잡하게 산재한 곳에 살며 주로 서식 영역은 수심 10~50m이며 최대 수심 100~200m를 넘지 않습니다.
그 이하로는 생물학적으로 서식이 매우 어렵습니다. 정글의 법칙에서는 이런 심해에서 그루퍼를 낚았습니다.
아시다시피 수심이 50m만 내려가도 일부 연산호를 제외한 대부분 산호들은 햇빛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서식하지 않습니다.
위 화면은 전부 50m 미만의 얕은 수심입니다. 그러므로 햇빛이 닿고 여러 다양한 수생식물들이 자생하는 겁니다.



#. 사용된 미끼는 표층성 어류를 공략할 때 쓰는 미노우(인조미끼)로 현실성이 떨어진다.
결정적인 단서는 미끼에 있습니다. 사용된 미끼는 표층을 회유하는 다랑어, GT, 바라쿠타를 낚기 위해 고안된 미노우입니다.
그런데 정글의 법칙에서 낚은 그루퍼는 이러한 미노우를 물고 올라왔습니다. 도저히 가능할 것 같지 않은 자연 현상을 가능하게 만든 것입니다. 


트롤링 낚시란? 물고기 모양으로 생긴 인조미끼를 바다에 던진 후 보트를 천천히 몰면 미끼가 살아서 헤엄치는 것처럼 보이는데요.
그 과정에서 표층을 회유하는 물고기들이 인조미끼를 먹이로 착각해 무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배를 몰아야 합니다.

#. 그루퍼를 낚았을 때 배는 달리고 있었다.
그루퍼가 낚이는 시점을 보면 분명 배가 달리고 있었습니다. 위 사진과 같이 인조미끼가 수면을 가르고 있는 상황입니다.
만약 배를 멈춘다 해도 저 미끼는 쉽사리 가라앉지 않습니다. 특히, 100m가 넘어가는 심해에서는 인조미끼를 아무리 깊이 내려도 수십m 이상 내릴 수
없을뿐더러 만약 내린다 하더라도 조류의 세기를 고려한다면 300호 정도(약 2kg)되는 쇠추를 달아야 가능할 것입니다.
하지만 납추를 달아서 인조미끼를 바닥까지 내리는 트롤링 낚시는 지구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내린다 해도 그루퍼가 서식하는 수중굴 앞에
정확히 내리는 건 어군탐지기가 있어도 불가능합니다. 결과적으로 바닥층에 서식하는 그루퍼가 표층용 미끼를 물고 올라왔다는 것은 '허구'일 가능성을
높였습니다.


미누어

#. 그루퍼가 미노우를 덮친 방향도 이상하다.
사진은 미노우 구조입니다. 물고기 모양의 동체에 앞뒤로 훅(바늘)이 달린 구조입니다.
미노우 종류에 따라 바늘의 위치가 다르지만, 대게 대가리나 가슴 쪽에 한 개 달려있고, 꼬리 쪽에도 달려있습니다.



그런데 그루퍼가 미노우를 덮친 방향을 보십시오. 그루퍼가 미노우를 정면에서 덮친 것입니다.
여기서 이해가 안 되면 다음 장면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루퍼가 정면에서 미누어를 삼키려다 걸린 건데요. 트롤링 해 보신 분들은 알 겁니다.
대부분 물고기들이 덮칠 때에는 헤엄치는 미노우를 뒤에서 쫓아 들어오면서 공격한다는 사실을.
물론, 앞에서도 공격할 수 있겠습니다만, 그러기 위해 저 미노우는 그루퍼가 은신하는 수중 굴까지 가라앉아 그루퍼 입 앞에 갖다 놓아야만 가능할
법한 이야기입니다. 그것도 그루퍼가 이를 먹이로 착각해 반응해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붙지만요.
미노우는 분명 물고기 모양으로 되어있지만, '액션'이 없으면 고기들이 반응하지 않습니다.
액션을 주기 위해 미노우를 던져놓고 배를 살살 모는 건데 어떻게 100m가 넘어가는 수심의 바닥까지 저 미노우를 가라앉혀 낚을 수 있겠습니까?
위에도 말했지만, 몇 그램 안 되는 미노우가 거친 물살을 뚫고 수심 100m 이상을 내려간다는 건 물리적 현상을 완전히 거스른 거라 할 수 있습니다.


정상적인 후킹

위 사진은 제가 뉴칼레도니아에서 트롤링 낚시를 했을 때입니다. 
물고기가 미노우를 덮친 방향을 유심히 보면 그루퍼가 물고 올라온 미노우와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을 겁니다. 
보통은 헤엄치는 미노우를 뒤에서 덮칩니다.

40m 깊이에서 물고기를 낚아도 부레는 부풀어 오른다.

#. 부레가 멀쩡하다.
수심 40~50m에서 잡힌 물고기는 수압 차를 견디지 못해 부레가 부풀어 오르며 눈알이 돌출되기도 합니다.
만약, 그루퍼를 낚았다 해도 수면까지 올리면 수압 차로 인해 신체적인 이상이 생기기 마련이겠죠. 
그루퍼와 같은 암초성 물고기는 언제나 바닥층에 있는 암초와 굴 등을 끼고 살아갑니다. 다시 말해 표층까지 올라오는 경우가 없다는 것. 
낚시를 진행한 해역은 최소 100m 이상의 심해입니다. 그루퍼가 잡히는 환경도 아니었고 설령 잡혔다 해도 올라오면서 아무런 수압차를 받지 않았다는 건
자연의 법칙을 무시한 거겠죠? ^^



■ 정글의 법칙, 조작 논란보다 더 중요한 사실
이상으로 그루퍼 조작 논란에 대해 낚시꾼의 눈으로 바라본 내용을 설명하였습니다. 낚시를 알고 고기의 습성을 알면 답이 보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 얘기를 드리고 싶어서 글을 쓴 것이 아닙니다.
저는 조작이다, 아니다를 떠나 이러한 논란을 바라보는 일부 시청자의 반응에 대해 한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인터넷을 달군 조작 의혹에는 아래와 같은 의견을 가진 네티즌이 상당수 있었습니다.

"조작이니 아니니 그게 뭐가 중요해. 재밌으면 된 거지. 제작진들이 멀리 나가 고생하는데 응원은 안 해줄망정. 싫으면 안 보면 되잖아"

일부 맞는 이야기지만, 이를 말하기 전에 우리가 한 가지 알아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언제부터 우리나라 시청자들이 방송 프로그램을 평가할 때 이 정도로 관대해졌나요? ^^
물론, 예능은 예능입니다. 예능은 시청률을 위해 어느 정도 연출이 필요할 것입니다. 설령, 그것이 조작이라고 해도 말입니다. 
그래서 시청자에게 감동을 주고 웃음까지 줄 수 있다면, 저는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려면 "리얼 버라이어티"라는 딱지를 떼야 맞을 것입니다. 정글의 법칙이 시청자로부터 호응받는 이유는 "리얼리티를 표방한
프로그램" 이며 그것이 정글의 법칙의 아이덴티티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출연진끼리 각본에 의해 웃고 떠들고 게임 좀 하다 마는 예능과 달리 주어진 환경을 헤쳐나가는 과정들이 여과 없이 보이기 때문에
그 도전에 박수를 보내는 게 아닐까요? 그런데 일부 시청자의 안이한 반응으로 여러 방송사가 시청률을 위한 조작과 연출을 일삼게 된다면, 
갈수록 혼탁해지는 도덕성은 누가 받아들여야 하겠습니까. 바로 시청자들이 될 것입니다. 어쩌면 진정한 리얼리티와 다큐는 볼 수 없게 될 지도 모릅니다.

만약, 제 낚시 조행기가 '조작'과 '연출' 의혹을 받게 된다면, 지금까지 제 조행기를 읽어주셨던 독자들은 어떻게 생각할까요?
이것도 "조작이든 아니든 재미만 있으면 됐지. 뭘 그렇게 따져" 라고 과연 말할 수 있을까요. 
제가 조행기를 조작하고 연출하려면 '입질의 추억'이라는 정체성을 떼 버리고, '낚시 소설가'로 나가야 할 것입니다.

"방송 프로그램은 시청자의 수준 높은 안목과 함께 발전해 나간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저는 식문화와 대입하여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 나라의 식문화가 발달하려면 까다로운 오너와 요리사가 필요하며, 그것을 만들어 나가는 주체는 바로 '소비자'입니다.
어느 나라든 문화의 발전은 '까다로운 소비자의 채찍질'이 있을 때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야 수요와 공급이 적절한 긴장감을 유지한 채 발전하겠죠.
정글의 법칙은 재미를 위해 어느 정도의 연출은 필요합니다. 
다만 그 선이 '진정성이 결여된'것이라면 리얼리티에서 오는 시청자의 공감과 감동 스토리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반대로 정글의 법칙이 단순한 예능 프로였다면, 그루퍼 조작에 대한 논란은 크게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좋은 컨텐츠란,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도 고개도 끄떡이게 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한 점에서 정글의 법칙은 개인적으로 흥미롭게 보았습니다. 그루퍼 부분만 빼면, 대부분 과정이 현실감 있었고 시작과 과정, 마무리까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보여주려고 노력한 프로그램임에는 분명해 보입니다. 

이제는 시청자들도 보는 안목이 많이 높아졌습니다. 이런 논란이 생길 때마다 방송 제작자들은 고심이 깊어질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논란이 헛된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보다 나은 방송을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매의 눈'으로 바라보는 
시청자의 높은 인식이 함께 더해져 발전하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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