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부터 우리 국민은 숭어를 즐겨 먹었습니다. 조선 시대에는 숭어를 고급 어종으로써 귀하게 취급했습니다. 그만큼 친숙한 생선이기도 해 여러 고문서에 단골손님으로 등장합니다. 그런데 한반도 연안에 서식하는 숭어는 한 종류가 아닙니다. 맛도 생김새도 비슷한 숭어가 2종류나 되니 이를 둘러싼 논쟁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봄 숭어 철을 맞아 논쟁을 종식할 만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 저의 어류 명칭은 현재 한국 어류대도감에 기술된 표준명을 따르고 있습니다.

 

 

<사진 1> 표준명 숭어

 

사진은 숭어입니다. 우리가 아는 숭어 중 절반은 이 녀석입니다. 꼬리를 보면 '<' 형태로 깊게 패 날렵한 제비 꼬리를 연상시킵니다. 실제로 이 녀석은 수백 킬로미터 혹은 그 이상 거리를 누비고 다니는 회유성 어류입니다. 거센 물살을 타고 다니길 좋아해 보시다시피 꼬리가 날렵합니다.

 

 

<사진 2> 표준명 숭어의 눈

 

숭어의 눈을 보면, 눈동자가 크고 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까만 홍채 주변으로 링 모양의 각막이 보입니다. 이 각막은 옅은 노란색을 보이기도 하고, 흰색을 보이기도 하며, 겨울에는 지방 눈꺼풀이 발달해 눈을 뒤덮습니다. 지방 눈꺼풀이 발달한 숭어는 시력이 매우 나빠져 낚시에는 잘 걸려들지 않으나, 그물에는 잘 걸려듭니다.

 

 

<사진 3> 표준명 가숭어

 

숭어 말고도 또 다른 종류의 숭어가 우리 바다에 서식합니다. 바로 가숭어입니다. 가숭어는 시장과 횟집에서 흔히 '밀치'나 '참숭어'란 이름으로 만나볼 수 있는 횟감입니다. 꼬리를 보면, 숭어와 달리 깊게 패지 않았습니다. 날렵한 인상보다는 밋밋한 느낌을 줍니다. 숭어와 달리 넓은 대양을 회유하지 않으며, 가까운 연안과 기수역(바다와 강이 만나는 지역)에 주로 서식합니다. 

 

천성이 게을러서 그런지 거센 물살을 타고 다니기보다는 물이 탁하고 잔잔한 바다에서 느긋하게 헤엄치기를 좋아합니다. 하지만 기척을 알아내는 데는 선수입니다. 물이 조금만 맑으면 녀석들은 경계심을 품고 도망갑니다. 

 

 

<사진 4> 가숭어의 눈

 

가숭어 눈은 작은 편입니다. 검은 홍채 주변으로 황금색이 도드라지니 눈만 봐도 숭어와 가숭어를 구분할 수 있습니다. 자 여기까지는 초등학생도 구분할 수 있는 숭어와 가숭어의 차이였습니다.

 

 

<사진5> 숭어회

 

<사진 5>는 표준명 숭어회입니다. 숭어회는 표면(혈합육)이 매우 붉고 어떨 때는 핏빛이 날만큼 검붉습니다. 계절과 서식지역에 따라 푸른빛이 나는 껍질 막이 붙어 나오기도 합니다. <사진 5>에서 알 수 있듯이 제철(겨울부터 봄)에 맛이 든 숭어는 근육 색이 오히려 누렇습니다. 누렇다는 것은 단맛이 들었다는 증거이며, 흰색에 가까운 근육 색은 맛보다 식감이 좋습니다.

 

 

<사진 6> 가숭어회

 

<사진 6>은 표준명 가숭어회입니다. 숭어와 색감과 분위기 면에서 좀 다릅니다. 표면(혈합육)은 참돔과 비슷한 선홍색을 띠는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제철에 맛이 든 가숭어의 지방질입니다. 맛이 든 가숭어는 선홍색 혈합육에 그보다 옅고 허여멀그레한 지방이 끼어있습니다. 이렇게 지방이 낀 회가 맛이 좋습니다. 여기까지는 숭어와 가숭어의 차이였습니다. 지금부터는 조금 더 깊게 들어가 보겠습니다.

 

 

#. 혼란만 주는 국내 숭어 자료

앞서 살펴보았듯 우리 연안에는 표준명 숭어와 가숭어, 이렇게 두 종류가 서식합니다. 이 둘은 생김새와 맛이 미묘하게 다릅니다. 산란 철이 다르다 보니 제철도 다르며, 습성과 생태도 완전히 다릅니다. 반드시 구분해야 하는 어류임에도 불구하고 국내 수많은 숭어 관련 자료를 보면, 이 둘의 특징이 한데 뒤섞여 있어 보는 사람에게 혼란을 줍니다. 

 

심지어 공신력을 바탕으로 정확한 정보를 전달해야 할 네이버 지식백과, 국립수산과학원, 두산백과, 여기에 해양 생물 전문가마저도 숭어 자료에 가숭어 사진을 올린다거나, 숭어와 가숭어 특징을 혼용으로 표기해 혼란을 가중합니다. 더욱이 문제는 이런 내용이 방송과 뉴스, 기사 등으로 쉼 없이 인용되면서 잘못된 내용이 재생산된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저는 숭어와 가숭어의 특징을 정리할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이에 일식과 횟집 종사자는 물론, 시장 상인, 어부, 낚시인, 여기에 미식가와 일반 소비자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숭어를 제대로 이해하고, 더 나아가 숭어에 얽힌 논쟁이 종식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글을 쓰겠습니다. 아래는 숭어와 가숭어의 특징을 정리한 것인데 사실은 아래 도표가 오늘 내용의 전부라 할 만큼 핵심을 담고 있습니다.

 

 

<표1> 표준명 숭어와 가숭어의  차이(저작권자 입질의 추억)

 

#. 참숭어는 지금의 가숭어를 말한다

숭어에 얽힌 오해를 풀려면 고문헌을 살펴봐야 합니다. 우리 조상을 비롯해 그때 그 시절의 어류 전문가가 숭어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는지를 알면, 오늘날 어부들이 인식하는 숭어와 비교해 어디서 어떻게 왜곡되었는지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약전 선생의 <현산어보>에는 숭어를 이렇게 기술하고 있습니다.

 

"치어(淄魚)가 큰 것은 대여섯 자이고 몸은 둥글고 검다.(그래서 검은빛 '치'자로 물고기 이름을 지은 것으로 추정) 눈은 작으면서 노랗고, 머리는 납작하고, 배는 희다. 맛은 달고 진하며 어족 중 제일이다. 3~4월 산란하므로 그때 그물로 잡는 것이 많다." 정약전의 <현산어보> 中에서

 

정약전 선생은 주로 서해와 서남해를 무대로 어류를 관찰하고 기록하는 학자입니다. 서남해는 가숭어의 서식지와 일치합니다. 눈이 작으면서 노랗다는 부분도 가숭어임을 뒷바침해 줍니다. 오늘날 '참숭어'라 불리는 가숭어는 조선시대 때부터 맛이 달고 진한 고급 어종으로 인식된 것으로 풀이됩니다. 따라서 가숭어는 꽤 오래전부터 '참숭어'라 불렸을 확률이 높습니다. 이를 뒷받침하는 고문서가 서유구의 <전어지>에도 등장합니다.

 

"바다에서 나는 것은 참숭어와 가숭어 두 종류가 있다. 참숭어는 강에서 나는 것과 차이가 없지만, 색이 약간 칙칙하다. 가숭어는 색이 검고 눈 또한 검다." 서유구의 <전어지> 中에서

 

여기에 서유구는 눈이 검은 숭어(오늘날 표준명 숭어)를 가숭어 즉, 참숭어보다 맛이 못한 가짜 숭어란 취지의 명칭을 달면서 눈이 노란 숭어를 참숭어라 칭했는데 이것이 오늘날 어류도감에서 명시된 표준명과는 완전히 상반돼 혼선을 불렀던 것입니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지역에 따라 잡히는 숭어 종류가 다른 것도 혼란을 가중했습니다.

 

표준명 숭어는 동해와 남해에 주로 어획됩니다. 그래서 이 지역 어민과 낚시인들은 눈이 검은 숭어를 참숭어라 부르는 경향이 있습니다. 한편, 가숭어는 서해와 서남해에 집중적으로 분포한 탓에 이 지역 어민들은 가숭어를 참숭어라 불렀습니다. 서로 자기 지역에서 많이 나는 숭어를 참숭어라 우긴 것입니다. 그러나 참숭어란 명칭은 오늘날 어류도감에서 언급되지 않고 있습니다. 

 

 

#. 방언과 문헌명의 충돌

지금은 숭어를 이렇게 부르고 있습니다.  

 

1) 표준명 숭어 : 보리숭어(전남), 개숭어, 감숭어, 참숭어(동해 및 남해) 등으로 불림.

2) 표준명 가숭어 : 참숭어(대체로 전국), 밀치(경남), 언구 등으로 불림.

 

그런데 서유구의 전어지는 지금 부르는 명칭과 정 반대로 기술돼 있습니다. 

 

1) 표준명 숭어를 서유구는 가숭어라 표현.

2) 표준명 가숭어를 서유구는 참숭어라 표현.

 

어찌 된 일인지 일제강점기 시대를 지나고 만들어진 어류도감에는 문헌명과 반대로 가면서 논쟁을 나았습니다.

 

1) 고문헌에서 가숭어로 묘사한 것을 어류도감에서는 숭어로 명명.

2) 고문헌에서 참숭어로 묘사한 것을 어류도감에서는 가숭어로 명명.

 

누구 탓을 해야 하는지는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의 판단에 맡기겠습니다.

 

 

#. 보리숭어는 알이 없다

해마다 4~5월이면 진도 울돌목을 지나는 보리숭어가 언급됩니다. 보리숭어는 보리싹이 띄는 4~5월에 잡히는 표준명 숭어를 말합니다. 눈이 크고 검으며, 날렵한 제비 꼬리가 인상적인 이 녀석은 해마다 봄이면 진도를 비롯해 우리 연안으로 들어옵니다. 그러면서 빠지지 않은 말이 '보리숭어의 산란'입니다. 즉, 먼바다에서 들어온 숭어가 3~5월에 강 하구로 산란하기 위해 들어오니 이때 잡힌 보리숭어가 가장 맛이 좋다. 라는 취지의 글이 계속해서 인용되면서 봄에 잡히는 보리숭어는 산란기에 접어든 숭어여서 맛이 좋다는 인식이 돌았고, 그 알로 숭어 어란까지 만든다는 식의 잘못된 내용이 전파된 것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보리숭어에 알이 없습니다. <표1>에서 보다시피 숭어는 10~12월경에 산란하는데 그 산란장의 정확한 위치도 학계에서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고 다만, 쿠로시오 난류가 미치는 외양(일본 남부 및 타이완, 동중국해의 공해상) 어딘가로만 추정할 뿐입니다. 거기서 산란을 마친 숭어가 연안으로 들어와 봄에 잡힌 것이 보리숭어입니다. 즉, 봄에 잡히는 보리숭어에는 알이 없습니다.  

 

반면에 3~5월 강 하구에서 알을 낳는 것은 가숭어입니다. 월동을 보낸 가숭어는 알을 낳기 위해 강 하구로 몰려듭니다. 지금은 댐으로 물길이 막혀 가숭어가 들어오지 못하지만, 한때 가숭어의 산란지로 유명했던 전남 영암에서는 4~5월 배가 불룩해진 가숭어를 잡아다 어란을 만들고, 남은 몸덩이는 양옆으로 펼쳐 말린 다음 쪄먹곤 했습니다. 

 

그러므로 봄에 잡히는 보리숭어가 산란철로 맛이 좋다거나 혹은 어란으로 엮는 기사는 팩트가 어긋난 것입니다.

 

 

#. 숭어 어란에 관하여

국내 생산되는 숭어 어란은 대부분 4~5월경에 산란하러 들어온 가숭어의 알입니다. 지리적으로 한반도는 쿠로시오 해류가 직접 미치는 외양(외해)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숭어보다는 가숭어가 알을 낳고 자라는데 더욱 적합한 환경입니다. 해마다 3~5월이면 눈이 노란 가숭어가 무거운 몸을 이끌고 연안 가까이 들어옵니다. 가숭어는 자기 몸집의 1/5에 해당하는 양을 알로 찌웁니다. 알이 크고 비대해 같은 시기 상대적으로 몸집이 작고 알도 없는 숭어와는 취급이 다릅니다. 

 

그런데 어란 문화가 발달한 일본과 대만, 지중해(그리스) 국가에서는 모두 표준명 숭어 알로 어란을 만듭니다. 10월이면 알을 채운 숭어가 산란을 위해 나가는데 이때 잡힌 숭어로 만든 어란을 최고로 칩니다. 여기에는 지리적인 특징도 한몫합니다. 일본과 대만은 외양과 맞닿아 있습니다. 가숭어가 거의 없으며, 대부분 숭어가 잡힙니다. 그만큼 숭어가 전 세계적으로 폭넓게 서식한다는 것입니다.  

 

숭어는 전 세계 온대뿐 아니라 열대 해역에도 서식합니다. 중동,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지중해, 심지어 열대 지방에도 서식하는 것이 숭어입니다. 가숭어는 전 세계에서 서식지가 매우 한정돼 있습니다. 한국의 서해와 서남해, 중국 남부 등 극동아시아 해역에만 서식합니다. 이러한 차이가 나라별 어란의 차이를 만듭니다.

 

 

#. 가숭어는 겨울에만 맛있다

참숭어, 밀치 따위로 불리는 가숭어는 대표적인 양식산 활어 횟감이기도 합니다. 겨울이면 수족관을 가득 채운 눈이 노란 숭어를 보았을 것입니다. 크기가 고만고만하다면 대부분 양식산입니다. 3~5월 산란기를 앞두고 겨울 한 철에만 맛이 오르기 때문에 지금(5월)에는 인기가 없습니다. 가숭어가 산란을 마치면 곧 여름인데 그때는 개도 안 먹는다는 속담이 여기서 나온 것이겠지요.

 

한편, 지역에서 보리숭어, 개숭어 따위로 불리는 숭어는 양식을 하지 않습니다. 외양 어딘가에 산란기점을 두는데 아직은 이 부분에 명확한 연구 결과가 나오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치어나 종묘 생산도 까다로울 것입니다. 또한, 맛에서도 가숭어보다 한 수 아래로 인식된 탓에 상업적으로 대량 양식을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숭어는 가을에 알을 뱁니다. 알을 배면 산란을 위해 먼바다로 떠납니다. 겨울에 지방 눈꺼풀이 발달할 때 즈음이 바로 그때입니다.

 

산란 전 숭어회는 맛이 달달합니다. 겨울 수온을 버텨야 하니 육질은 감성돔 못지않습니다. 4~5월에 올라오는 숭어(보리숭어)는 산란을 마치고 들어오는 숭어로 외양에서 거센 물살을 거슬러 올라온 탓에 육질이 탄탄하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보리숭어가 가진 장점은 그런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이 어떤 이들에게는 어려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내용은 <표1>에서 전부 설명하고 있으니 <표1>을 참고해서 숭어와 가숭어의 차이를 정확히 알리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울러 <표1>의 저작권은 저에게 있습니다. 동의 없이 불특정 다수에게 퍼트리거나 퍼가신다면, 정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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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입질의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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