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식집의 일반적인 소스 구성

 

최근 30년 동안 우리 바다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지구 온난화에 따른 해수온 상승이 한반도의 해양 생태계를 바꾸어버렸고, 우리 식탁에 오르는 생선 종류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습니다. 생선회 문화도 다변화되었습니다. 70~80년대에 주로 어획된 횟감과 지금의 횟감에서도 차이가 납니다. 전어, 방어, 벵에돔 등 과거에는 잘 먹지 않았거나 인기가 없었던 횟감이 지금은 없어서 못 먹는 횟감이 되었으며, 가격도 크게 올랐습니다. 

 

예전에는 양식하지 않았거나 기술 부족으로 시도조차 하지 못했던 횟감이 이제는 한, 중, 일 양식산으로 유통됩니다. 이렇듯 우리가 즐길 수 있는 횟감 종류가 다양해지고 생선회 문화도 고도화됨에 따라 초고추장 일변도였던 우리의 소스 문화도 궁합에 맞는 다양성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생선회를 드실 때 알아두면 좋을 소스 궁합에 관해 알아봅니다. 

 

 

※ 참고

이 글이 소개하는 소스 궁합은 개인마다 정답이 될 수 없습니다만, 일식 업계와 전문가들이 권장하는 소스 궁합은 분명 있습니다. 이 글 하나로 지금까지 고집해 온 자신의 취향을 바꾸기는 쉽지 않습니다그 취향을 바꾸라는 취지가 아닌, 생선회 종류(성질)에 따른 소스 궁합이 있으니 드실 때 참고하라는 취지로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사진 1> 고추냉이는 간장에 섞지 말고 따로 한 점 올려 먹는 것이 좋다

 

#. 간장과 고추냉이(와사비)

아시다시피 일식에서 가장 기본인 소스는 간장과 고추냉입니다. 간장은 단순히 간을 맞추는 용도가 아닌, 생선회의 풍미를 올리는 역할로써 여기에 알맞은 농도와 염분, 적절한 맛을 가져야 합니다. 때문에 업계에서는 생선회(사시미) 전용 간장을 쓰거나 다시마, 가쯔오부시를 이용해 직접 다려 만듭니다. 간장과 궁합을 맞출 고추냉이는 크게 분말과 생(生)으로 나뉘며, 생(生)은 다시 홀스레디시(서양 겨자무)를 섞은 튜브형 기성품과 강판에 간 100% 천연 고추냉이로 나뉩니다.

 

튜브형 생와사비는 일식 업계에서 많이 쓰는 303, 505, 705 같은 제품인데 품질은 분말보다 낫고, 강판에 간 100% 생와사비보다는 못한 중간 형태의 느낌으로 비교적 저렴하고 범용성이 높아 최근에는 분말에서 튜브형 생와사비로 옮겨지는 추세입니다. 

 

간장, 고추냉이와의 궁합은 거의 모든 생선회가 해당합니다. 특히, 우리 국민이 가장 선호하는 조피볼락(우럭), 넙치(광어), 참돔(도미), 숭어를 비롯해 단단하면서 씹는 맛이 좋은 농어, 도다리감성돔, 돌돔, 줄가자미, 다금바리, 능성어, 쥐노래미, 쥐치, 볼락, 민어 등 거의 모든 흰살생선이 간장과 고추냉이에 잘 어울립니다.

 

흰살생선은 참치와 같은 붉은살생선과 달리 맛이 깔끔하고 담백하며, 섬세합니다. 그 섬세한 맛의 차이를 초고추장이나 된장 같은 진한 소스와 함께 먹으면, 입안에 씹는 식감만 있고 맛을 온전히 느끼지 못한다는 점에서 간장과의 궁합을 권하는 이유입니다. 같은 이유로 숙성되었을 때 오르는 숙성회 특유의 감칠맛을 보다 선명하게 끌어올려 주는 역할도 합니다. 

 

간장과 고추냉이는 감칠맛뿐 아니라 생선 지방의 농후한 맛과 풍미를 느끼는데 도움됩니다. 겨울 대방어, 참치(다랑어류), 고등어, 전갱이회를 간장에 찍어 먹으면, 초고추장과 된장에 찍어 먹기 보다 지방의 고소함이 더욱 도드라지므로 사실상 거의 모든 생선회와 궁합이 맞습니다. 

 

 

※ 간장에 와사비 섞으면 안 되는 이유

고추냉이는 생선회가 가질 수 있는 맛을 가리고 살균 효과도 높이지만, 무엇보다도 특유의 톡쏘는 향이 생선회 풍미를 끌어올리는데 일조합니다. 그런데 간장에 고추냉이를 섞어 휘휘 저으면 고추냉이 특유의 향이 간장에 희석되고 살균효과가 저하됩니다. 다시 말해, 고추냉이의 향과 살균 효과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게 됩니다. 고추냉이는 <사진 1>처럼 한 점 집어다 회에 올려먹기를 권합니다. 


 

<사진 2> 각종 수산물을 날것으로 먹을 때는 초고추장이 어울린다

 

#. 초고추장

이제는 일본의 스시와 사시미가 전 세계적으로 펴져 다양한 인종이 즐기게 되었지만, 초고추장 문화는 한국이 유일무이합니다. 활어회 문화가 있는 일본 규슈 및 일부 섬 지역에도 한국의 식문화 영향을 받아 초고추장을 내는 횟집이 더러 있지만, 일반적이지는 않습니다. 매운데 시큼하기까지 한 맛이 일본을 비롯해 전 세계인의 입맛에는 익숙지 않아서 오징어, 전복 같은 수산물도 간장에 찍어 먹습니다. 

 

반면에 고추장이 발달한 우리나라는 일찌감치 생선회 소스로 자리잡힌 상태입니다. 초고추장에 잘 어울리는 횟감은 오징어, 한치, 멍게 같은 수산물입니다. 여기에 전복과 골뱅이, 소라, 해삼, 개불도 초고추장과 궁합이 맞습니다. 이들 수산물의 공통점은 생선회보다 살이 단단해 오래 씹어야 한다는 점을 꼽을 수 있습니다. 

 

그랬을 때 맛이 강한 초고추장은 씹으면서 금방 씻겨 목으로 넘어갑니다. 오징어나 한치회처럼 여러 번 씹어야 나는 단맛과 뒷맛의 여운, 여기에 멍게와 해삼에서 나는 특유의 향(신티올)도 초고추장과 궁합이 잘 맞는 편입니다. 초고추장은 취향에 따라 고추냉이를 일정 분량 섞어 먹기도 합니다.

 

 

<사진 3> 양념 된장은 지방의 풍미가 농후한 생선회에 잘 어울린다

 

#.  양념 된장
양념 된장(또는 막장)은 맛이 강한 만큼 지방의 느끼함을 잡아줄 수 있어 주로 등푸른생선인 방어, 부시리, 고등어, 전어, 과메기(꽁치 및 청어), 삼치에 잘 어울립니다. 흰살생선 중에서도 지방의 풍미가 좋은 병어 역시 양념 된장과 궁합을 곧잘 맞춥니다. 이 밖에도 성질이 급해 빨리 죽는 생선은 활어 유통이 어려워 주로 선어 횟감으로 이용됩니다.

 

여기에는 병어, 삼치, 민어가 있는데 아무래도 활어 상태에서 포를 뜨고 숙성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선도 저하에 따른 비린 맛이 날 수 있습니다. 그것을 잡아주는 역할로 양념 된장을 쓰면 한결 깔끔한 맛의 선어회를 즐길 수 있습니다.

 

 

 

<사진 4> 어부식 소스인 초된장

 

#. 초된장

초된장은 생소할지도 모릅니다만, 고추가 귀했던 제주도에서는 일찌감치 된장을 이용한 요리가 발달했으며 소스도 예외는 아닙니다. 예전에 가파도에서 벵에돔 낚시를 할 때 현지꾼과 함께 회를 썰어 먹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내온 것이 보리밥과 구운 김, 양파, 고추에 초된장이었습니다. 초된장은 일반적인 초고추장과 비슷하면서도 된장이 들어간 감칠맛에 식초의 신맛이 더욱 강조된 형태입니다. 때문에 초된장을 처음 접한 도시 사람들에게는 익숙지 않을 수도 있지만, 한 번 맛을 들이면 계속 찾게 되는 묘한 매력이 있습니다.

 

 

직접 만들어 먹는 나만의 초된장

 

당시 가파도에서 맛본 초된장은 뒤통수를 한 방 맞은 듯한 강렬함이 있었습니다. 그 맛을 제주도 횟집 몇 군데에서도 비슷하게 느껴보았기에 지금은 저도 저만의 레시피로 다듬어서 만들어 먹곤 합니다.

 

 

벵에돔 토치구이회를 곁들인 쌈밥

 

초된장은 주로 벵에돔과 먹는데 여기에는 구운 김이 반드시 들어가야 궁합이 완성됩니다. 벵에돔은 껍질만 토치로 구워 야들야들한 식감을 살렸고, 껍질과 살 사이에 분포한 지방질을 열로 활성화해 고소함과 불맛이 더한 상태입니다. 향 좋은 완도산 김을 살짝 구워내 밥과 회를 올리고 여기에 초된장과 고추냉이 한 점을 올려서 싸 먹으면, 훌륭한 한 끼 식사가 됩니다.

 

초된장과 합을 맞출 포인트는 구운 김과 함께 토치로 껍질을 구워 고소한 맛과 불맛을 가미할 수 있는 어종인지가 중요합니다. 벵에돔이 여기에 해당하며, 벤자리, 쏨뱅이, 쥐노래미 등 비늘 크기가 작고 껍질이 질기지 않아 토치로 구웠을 때 맛이 나는 어종입니다. 그 밖에 해초를 먹이로 해서 갯내가 날 수 있는 독가시치(따치)와 껍질째 뼈째썰기(세꼬시)로 먹는 자리돔도 어울립니다.

 

 

초간장과 궁합이 잘 맞는 고등어회

 

#. 초간장
초간장은 주로 고등어회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횟집에서 내는 특제 소스입니다. 간장, 고춧가루, 식초, 매실액 등 나름의 비법이 들어간 소스로 비린 맛을 가리면서 구운 김에 밥과 함께 올려 싸먹을 수 있는 생선회라면 대부분 잘 어울립니다. 주로 
방어, 부시리, 고등어, 전갱이, 청어 등의 붉은살생선회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사실 초간장은 비교적 최근에 개발된 소스로 고등어 양식의 성공과 일정 부분 관련이 있습니다. 몇 년 전 고등어 대량 양식의 길이 열리면서 이제는 기절시킨 자연산 고등어뿐 아니라, 일 년 내내 고등어 회를 접할 수 있게 되었고, 최근에는 방어회의 인기가 오르면서 초간장을 사용하는 횟집이 늘었습니다. 아무래도 초간장이 붉은살생선 특유의 기름진 맛과 비린 맛을 잡아주는 일등 공신이라 여긴 탓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 기름장

무한리필 등 저가형 참치집에서 사용하는 기름장은 참기름이 아닌 맛기름으로 맛을 위해 여러 첨가물이 들어가는데 엄밀히 말하면 참치를 즐기는데 썩 좋은 소스는 아닙니다. 저가형 참치집에서 파는 참치도 실제로는 참치가 아닌 새치 종류가 대부분입니다. 단가가 저렴해 업소에서는 자주 이용되지만, 맛과 품질이 떨어지기 때문에 잡맛을 가리면서도 우리 입맛에는 통할 수 있는 맛기름이 참치회에 잘 맞는 대표적인 소스처럼 인식되었을 뿐입니다. 조미 김도 미처 해동이 되지 않아 셔벗처럼 차가운 냉동 참치(새치)회를 감싸 잡맛을 가리는 수단으로 사용됩니다.

 

참치회는 기름지고 풍미가 농후해 된장과 어울릴 법도 하지만, 된장의 강한 맛이 참치 고유의 맛을 억누르기 때문에 간장과 고추냉이로 궁합을 맞추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회를 싸 먹는 건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 회를 쌈채에 싸 먹는 방법

생선회를 쌈채에 싸 먹으면 생선회 고유한 맛을 느끼기 어렵다고 합니다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분명 생선회 자체의 맛을 놓고 본다면, 쌈과 각종 향채, 여기에 소주까지 곁들이는 생선회 문화가 썩 세련되었다고 볼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하는 생선회 맛은 지방의 농후한 맛과 감칠맛에 집중하는 것만이 아닌, 풍부하게 씹는 맛도 다양한 맛의 측면에서는 필요합니다.

 

특히, 우리 국민은 씹힘성이 좋은 흰살생선회를 선호하기에 입에서 금방 녹아없어지는 회가 아닌, 씹어야 맛이 나는 회를 2~3점씩 푸짐히 올리고 여기에 각종 향채와 초고추장까지 듬뿍 올려 한입에 넣고 와작와작 씹어먹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랬을 때 입안 가득 느껴지는 풍성함과 다양한 맛의 충돌 역시 생선회 맛을 느끼는 또 하나의 방법으로써 존중받는 것이 올바르다 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생선회 종류에 어울리는 소스 궁합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한 가지 소스만으로 충분한 맛을 느껴왔다면, 적어도 자신에게는 가장 맞는 방법이겠지만, 좀 더 다양한 맛을 느끼고자 하는 분들에게는 이 글이 도움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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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입질의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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