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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 앞에 놓인 한 접시, 좋은 생선회일까? 좋지 못한 생선회일까?”
이 글은 '이것이 좋은 생선회인지 나쁜 생선회인지 아는 방법은 없을까?'라는 근본적인 물음에 답하고자 합니다. 생선회 맛에 영향을 주요소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만, 출발점이라 할 수 있는 것은 ‘어종’과 ‘크기’입니다.
미식가들에게는 양식산과 자연산의 여부, 또는 고급 어종인지 저렴한 어종인지가 쟁점이 될 수도 있지만, '생선회는 기본적으로 크고 살이 포동포동 찐 것이 맛있다.'라는 진리보다 앞설 수는 없습니다. 제아무리 자연산이고 고급 어종이라도 손바닥만 한 크기에 불과하다면, 그 횟감의 가치는 희석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지요.
생선회에 관심 있는 분들이라면, 대부분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최상의 횟감을 접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시간과 예산에 특별히 공을 들이지 않는 한, 우리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횟감은 대부분 양식산이고 그 종류도 우럭, 광어, 농어, 도미, 숭어 정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이 글은 이러한 범위 내에서 '좋은 생선회’란 어떤 것인지 알아봅니다. 미리 알아둔다면, 언젠가는 가족, 지인과 함께 활어나 생선회 한 접시를 두고 좋은 담론을 펼칠 수 있을 것입니다.
한 눈에 봐도 좋거나 나쁨이 구별될 수도 있지만, 우리가 직접 고르지 않을 경우에는 무엇을 사용했는지 알 수 없다
<사진 1> 지느러미살의 육이 발달한 광어가 좋은 광어다
<사진 2> 살이 빠져 홀쭉한 광어
#. 좋은 활어만 취급한다.
식당에서 좋은 활어만 취급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취급하고 싶어도 늘 들어오는 게 아니고요. 가격도 생각해야 하고, 제시간에 팔아야 하는 문제 등 여러 가지로 고려할 것이 많습니다. 저는 수조 상태나 가져다 놓은 활어야말로 그 가게의 얼굴이자 품격을 나타내는 지표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생선회를 내고 싶어 하는 오너셰프의 의지를 어느 정도 확인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공간이기도 하지요.
좋은 활어의 조건은 생각외로 단순하고 명확합니다. 외관이 상처 없이 깨끗하고 살이 포동포동 찐 것이면 됩니다. 그런데 이 단순한 조건을 만족하는 활어를 일반 동네 횟집이나 수산시장에서 찾기란 꽤 어렵습니다. 좋은 물건은 이미 명망 있는 일식당에서 대부분 사 가기 때문입니다.
활어 품질에서 우선시 되는 것은 길이보다 체고입니다. 낚시에서는 '빵이 좋다.'란 표현을 씁니다. 이는 단순히 살집이 두툼이 나오는 육량의 문제가 아닙니다. 해당 어류의 육량을 포함해 영양 상태에서도 매우 좋음을 말해주며, 그것은 고스란히 맛과 식감으로 나타납니다.
광어의 경우 지느러미살 근육에 볼륨감이 느껴져야 합니다. <사진 1>의 부위에서 볼륨감이 느껴지는 것은 알이 아닙니다. (알이 있을 위치와는 거리가 있지요.) 잘 먹고 잘 커서 지느러미살을 포함해 전반적으로 육이 두터워진 것입니다. 이를 손으로 잡으면 아주 묵직한 두께 감이 느껴집니다. 비록, 양식이더라도 잘 먹고 잘 자란 광어는 웬만한 자연산 부럽지 않으며, 스트레스나 환경 적응력도 자연산보다 낫기 때문에 물 밖으로 꺼내어졌을 때 그리 날뛰지 않습니다.
<사진 2>는 4~5월 산란기에 놓인 자연산 광어로 살이 매우 홀쭉하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위아래 체고도 얕지만, 좌우 너비도 상당히 감량한 모습입니다. 수산시장에 가면, 소위 뜨내기손님에게 이런 광어를 권할 때가 있는데요. 육량이 적다는 문제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살이 물컹하며 맛이 떨어집니다. 좋은 생선회의 조건은 좋은 활어에서 출발한다는 사실,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진 3> 횟감용 (선)전어
<사진 4> 구이용 (선)전어
#. 좋은 선어를 취급한다.
당일 잡힌 좋은 선어는 훌륭한 횟감이 됩니다. 그것을 알아보고 직접 사 가는 것은 전적으로 오너셰프의 몫이 되겠죠. 선어는 말 그대로 죽은 생선이지만, 죽고 나서 시간이 얼마나 경과했는지에 따라 횟감이 될 수도 반찬감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을 가르는 기준은 동공의 투명도에 있습니다.
사진은 전어를 예로 들었지만, 모든 종류의 선어에도 해당합니다. 눈동자가 맑고 깨끗하며 투명도가 좋을수록 죽은 지 수 시간밖에 되지 않은 선어 횟감이며, 동공이 불투명하고 핏기로 차 있을수록 죽은 지 오래된 것이어서 횟감은 적절치 않습니다. 그러나 이를 무시하고 회로 내는 식당도 있습니다. 그랬을 때 소비자는 단지 육감으로만 알아내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아래에 설명하게 될 선도와 연관이 있습니다.
<사진 5> 생선회의 무지개 빛은 깔끔히 잘린 단면적에서 나타나는 일종의 회절 현상이다
#. 선도가 좋아야 한다.
좋은 생선회의 기본 조건에는 역시 ‘선도’가 빠질 수 없습니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지만, 선도가 좋은 회와 그렇지 못한 회는 냄새부터 다릅니다. 맛없는 음식을 후각으로만 알아채기에는 한계가 있지만, 신선도가 떨어진 음식은 후각으로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좋은 생선회는 코를 갖다 대었을 때 무취에 가까워야 하며 후각이 예민한 사람은 옅은 생선 냄새를 맡게 되는 것이 정상입니다. 즉, 생선회에서 비린내가 나면 안 되는 것입니다. 만약, 조금이라도 역한 냄새가 난다면 선도를 의심해 보아야 합니다.
또한, 잘 숙성된 생선회의 단면적에는 무지개 빛이 돕니다. 생선회에 무지개 빛이 돌려면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한데 이 부분은 현재 연구 중이므로 좀 더 정확한 내용을 쓰기 위해 다음 기회로 미루겠습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생선회에 무지개 빛이 없다고 해서 싱싱하지 않은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사진 6> 칼이 안 들면 회가 뭉개지고 조직감을 망친다
#. 좋은 생선회는 예리한 칼날에서 탄생한다.
흔히 생선회를 ‘칼맛’이라고 하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날이 예리하게 선 칼은 회를 단칼에 잘라 매끄럽고 고운 표면을 갖게 합니다. 입에 넣으면 보푸라기에 걸리적 거리지 않으며, 매끄럽게 넘어가게 되죠. 칼날이 제대로 서지 않으면, 회의 조직감을 망칠 수 있습니다. 회를 썰다 보면, 힘줄에 막혀 잘 끊어지지 않을 때가 있는데요.
날로 자르지 못해 힘으로 누르거나 비벼서 끊으면, 가장자리는 거칠며 살은 뭉개져서 전반적인 맛과 식감에 좋지 못한 영향을 줍니다. 마찬가지로 껍질을 탈피할 때 혈합육을 얼마나 잘 살려냈는지(맛과 미관적 측면), 회 단면적이 얼마나 깔끔히 잘렸는지(식감)를 보면, 그 사람의 칼질 숙련도를 알 수 있겠지요. 생선회는 조리사 숙련도에 의해 좋은 횟감을 망칠 수도, 평범한 횟감을 고급스럽게 탈바꿈시킬 수도 있는 마법과도 같은 음식입니다.
<사진 7> 가을에 지방이 풍부한 전어회
#. 오너셰프가 직접 고른 제철 생선이 좋은 생선회다.
우리가 주로 먹는 바닷물고기는 대체로 봄에 산란하므로 겨울이 제철인 어종이 많습니다. 물론, 농어나 고등어 등 예외인 경우도 있습니다. 자연산을 취급하는 횟집이라면, 그 계절에 가장 맛있는 생선이 곧 훌륭한 생선회인데 그러기 위해선 활어차로 공급받는 양식 활어 외에도 오너셰프가 직접 시장에 나가 싱싱한 횟감을 고르는 안목도 필요할 것입니다.
식재료를 직접 공수하는 횟집은 그렇지 않은 횟집보다 훨씬 신뢰가 가는 법입니다. 산란에 참여하지 않은 일부 양식 활어도 셰프가 직접 고르면 다릅니다. 일류 음식점으로의 납품을 염두에 둬서 관리가 잘 된 활어를 가져오는 것. 길이보다 살이 두툼에 중량이 많이 나가는 활어. 그리고 그 계절에만 먹을 수 있는 귀한 횟감을 취급하는 곳이라면, 굳이 수조나 다른 것을 살필 것도 없이 신뢰가 가게 됩니다. 이미 팬덤 층이 확보된 곳인 거죠. 계절별 제철 수산물에 대해서는 관련 글을 참고하세요. (관련 글 : 맛있는 제철 생선 수산물, 계절별 총정리)
<사진 8> 표면에 습기가 찬 것은 냉동이나 생선회 처리 과정에서의 미숙을 의심해 볼 수 있다
<사진 9> 약품 처리 혹은 긴 냉동은 조직을 망가트린다
#. 가공하지 않아야 좋은 생선회다.
생선회를 취급하는 데 있어 각종 편법이 동원되는 세상입니다. 유통 과정에서 변질이 생길 수도 있지만, 선도를 눈가림하거나 유통기한을 늘리기 위해, 또는 색을 선명히 하기 위해 적절하지 못한 행위도 더러 일어납니다. 대표적인 유형을 살펴보면.
- 한번 해동한 생선을 다시 재냉동, 재해동해서 파는 경우
- 역한 냄새를 줄이거나 유통기한을 늘리기 위해 약품 처리하는 경우
지금으로부터 불과 5년 전만 해도 <사진 9>와 같은 생선회가 아무렇지도 않게 우리 주변 곳곳에서 팔리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대부분 사라진 우동, 돈가스 프랜차이즈의 저질 초밥, 그리고 지금도 흔히 보 수 있는 출장 뷔페, 피로연 음식, 초밥 무한리필 등에서 종종 발견되기도 합니다.
물론, 전부가 그런 것은 아니니 이 부분은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국내에서 최근 몇 년 동안 미식의 바람이 불면서 다소 까다롭거나 지각 있는 소비자도 많이 생겨났습니다. 이에 기존에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되었던 편법과 상술이 다소 누그러진 것도 사실입니다.
다만, 가격이 저렴한 무한리필 뷔페의 경우는 이윤을 남겨야 하는 구조로 냉동을 취급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를 잘 해동해서 내면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어떤 이유로 이미 해동한 제품을 재냉동 및 재해동하게 되면, 그때부터는 맛과 위생상의 문제가 생길 수 있어 좋지 못한 냄새가 나고, 살은 무르며 표면에는 습기가 차기 때문에 또 그걸 가리기 위해 소스를 잔뜩 뿌려내기도 합니다.
예전에는 선도와 품질을 눈가림하기 위해 산도가 있는 물질을 뿌려두는 경우도 더러 있었는데 최근에는 잘 발견되지 않아서 그나마 다행입니다. 이 글로 좋은 생선회와 나쁜 생선회를 완벽하게 정의할 수는 없지만, 생선회를 잘 몰랐던 분들도 보는 안목을 높였으리라 기대하면서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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