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도의 2.5만원짜리 회정식, 횟집이 걱정된다


 

 

울릉도의 어느 횟집입니다. 주문한 메뉴는 1인 25,000원짜리 회 정식으로 총 4인분. 일식집, 참치집에서 속칭 '두당'으로 파는 정식이나 코스는 음식의 구성도 중요하지만, 양도 눈여겨보아야 합니다. 겉보기에는 한 상 가득 차려져 보이지만, 실제로는 단체 손님의 것일 수도 있고, 2~3인분만 주문했을 때와 전혀 다르게 나올 수도 있으니 한 상 차려진 사진이 그럴싸해 보여도 이게 몇 인분인지 밝히지 않는 글은 방문자를 기만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일부 상업 맛집 블로그와 그들을 이용하는 바이럴 마케팅의 음식 리뷰가 그러합니다. 심지어 사진에서 본 것과 달리 부실하게 나오는 경우도 많죠. 그러면서 문장마다 제목(키워드)을 남발해 검색 노출 최적화에만 혈안이 되어 정보의 바다에서 심각한 공해가 되고 있습니다.

 

여기선 4인분을 주문했으니 25,000 X 4 = 10만원입니다. 요즘 같은 고물가 시대에 섬 여행지에서 먹는 회 정식치고 비싸지 않습니다. 잠시 기다리는데 이런저런 찬들이 한 상 가득 깔리기 시작합니다. 위 사진을 보면 푸짐해 보이시나요? 울릉도라 그런지 육지에선 보기 힘든 반찬(?)이 깔리는가 봅니다. 

 

 

문어 숙회입니다. 울릉도산 혹은 동해산으로 보이는 문어로 질기지도 않고 맛있습니다. 우리가 총 네 사람이니 1~2점씩 먹으면 되는 양입니다.

 

 

일명 사라다와 옥수수 콘입니다. 콘버터를 낼 수도 있지만, 이 집은 통조림 옥수수 본연의 맛을 위해 있는 그대로 담아냈습니다. 장사 참 쉽죠?

 

 

이건 오징어무침입니다.

 

 

다음은 샐러드입니다.

 

 

초밥도 나오네요. 새우는 횟집과 뷔페에서 흔히 쓰이는 동남아산 냉동 자숙 초새우입니다. 네 사람이니까 한 점씩 먹으면 됩니다.

 

 

물기를 꼭 짠 백김치도 나옵니다.

 

 

그래도 울릉도라고 성게알이 나와주니 감개무량합니다. 양쪽에는 우리가 잘 아는 멍게와 소라(뿔소라)회입니다.

 

 

수조에서 갓 꺼낸 보라성게의 알(생식소)입니다. 수조에서 건질 때 가시를 현란하게 움직이는 것이 싱싱해 보입니다. 그런데 성게는 살았다고 다 싱싱한 것은 아닙니다. 성게는 채취 후 최대한 빨리 작업해서 냉동 혹은 냉장 보관을 하거나 가공 처리를 해야 합니다. 이렇게 수조에 오랫동안 두면 비록, 숨은 쉬고 있어도 안이 곪아 성게 특유의 비린내가 날 수 있습니다. 때는 4월 말로 울릉도 여행 성수기는 아닙니다. 지역도 도동항에서 약간 벗어난 곳이라 오가는 손님이 없었기에 한번 들여놓은 성게가 며칠이고 방치된 것으로 보입니다. 내 입이 이상한가 싶어 제 차 젓가락질을 해보지만, 시궁창 냄새가 나서 먹기가 어렵습니다.


 

문어만큼은 잘 삶았네요.

 

 

서두에 말했듯이 몇 인분인지 밝혀야 하는 이유는 메인으로 나온 생선회 한 접시가 몇 인분인지 가늠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건 4인분입니다. 울릉도에서 먹는 생선회라고 자연산을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물론, 저동항 활어 난전에서는 자연산 활어회도 팔지만, 우럭과 광어는 대부분 양식입니다. 울릉도 근해에는 참우럭(표준명 띠볼락)이 나기는 하지만, 일반 우리가 먹는 우럭(표준명 조피볼락)과 광어는 이 해역에 흔히 서식하지 않습니다. 그런 이유로 수조에 풀어둔 시커먼 우럭과 광어는 동네 횟집에서 파는 것과 같은 양식입니다.

 

 

양식 광어

 

양식 광어 중에서도 1kg 미만의 어린 광어를 뜬 것으로 보입니다. 잘려나간 살점을 퍼즐 맞추듯 연상하면 이 광어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고, 한 마리를 전부 올리지 않았다는 사실도 알 수 있습니다. 엷은 갈색 혈합육도 이것이 어린 광어임을 말해줍니다. 뭐 그렇단 이야기입니다. 사실 양식이니 자연산이니 그리 중요하진 않습니다. 어차피 무엇을 내더라도 맛의 차이를 알고 먹을 손님 또한 많지 않을 테니까요. 

 

구색 맞추기에는 작고 저렴한 양식산 활어만 한 것도 없습니다. 가뜩이나 손님도 없는데 하루 일당이라도 벌어야 하는 횟집의 몸부림이 이 회 한 접시에서 느껴지는 듯해 조금은 마음이 미어집니다.  

 

 

양식 우럭

 

회를 칠 때 껍질을 바짝 깎아서 벗겨내면, 껍질과 혈합육 사이에 붙은 껍질 막이 잘 붙어 나옵니다. 이 껍질 막은 어종에 따라 모양과 색이 다르며, 미관상으로 지대한 영향을 줍니다. 이것이 많이 붙어 나올수록 껍질 벗기는 실력이 좋은 것이죠. 사진의 거무스름한 껍질 막은 양식 우럭의 특징입니다. 살에 검은 실핏줄이 없는 것으로 보아 육상이 아닌 해상 가두리에 길러진 것으로 보이지만, 이 역시 중요한 내용은 아닙니다. 그냥 제 입에는 맛없습니다. ^^; (우럭이라서 맛이 없는 것은 아니니 오해 금지)

 

 

구이나 튀김 종류가 더 나올 줄 알았는데 곧바로 매운탕이 등장하면서 25,000원짜리 회 정식은 마무리되었습니다. 햐~ 뭔가 말입니다. 그리 비싼 음식은 아니지만 그래도 25,000원짜리 회 정식이면 먹고 배는 좀 불러야 할 텐데 말입니다. 먹어도 먹은 것 같지 않은 허한 느낌. 공깃밥(공깃밥 하나에 2천원)을 시켜 밥으로 배를 채우긴 했습니다만, 그래도 허전함은 지울 수 없었습니다. 공깃밥과 함께 나온 밑반찬은 왜 그리 맛있었던지 반찬만 두어 번 리필해 먹었다는 ^^; 이쯤에서 25,000원짜리 회 정식에 나온 구성으로 1인이 먹을 수 있는 양을 떠올려봅니다.

 

- 동남아산 냉동 초새우로 만든 초밥과 김밥 1조각씩

- 양배추 샐러드 1~2젓가락

- 오징어 무침 1~2 젓가락

- 사라다와 통조림 옥수수 1~2 젓가락

- 삶은 문어 무침 몇 점 2 조각

- 문어 숙회 몇 점(위 매뉴와 식재료 중복) 1.5조각

- 멍게 몇 점, 소라 몇 점, 냄새나는 성게알 몇 점 각각 2~3점씩

- 양식 우럭 1마리, 양식 광어 1마리(것도 다 쓰지 않은) 총 30~35점이니 인 당 5~6점씩

- 서덜로 끓인 매운탕 한 그릇

 

다 먹고 나니 라면이 당깁니다. ^^; 울릉도는 이제 곧 성수기를 맞이합니다. 어차피 뜨내기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장사라 단골도 필요 없고, 요즘 한끼 식사비로 25,000원이 결코 비싸지는 않지만, 그래도 입소문이란 건 무섭습니다. 이런 식이면 횟집의 미래가 걱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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