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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먼턴 공항 앞 숙소 근처에는 먹을만한 곳이 없었기 때문에 시내를 통과하면서 이 지역에서 인지도 높은 레스토랑을 조사했습니다.
그리고 찾아간 곳은 에드먼턴 현지인들에게 신뢰와 인기를 얻고 있는 'RGE RD'라는 레스토랑.
농장 음식 전문점이라는 컨셉을 가진 이곳은 에드먼턴 주변에서 나는 제철 식재료를 활용해 완성도 높은 요리를 선보이는 곳이었습니다.
식재료의 생산부터 요리하기까지 그 거리가 짧으면 짧을수록 신선하고 맛있을 수밖에 없기에 그 지역의 로컬 음식을 맛본다는 것은 여행에 있어
신선한 자극이 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곳 스테이크는 제가 맛본 스테이크 중 단연 최고였고 지금까지 맛본 스테이크와는 현저한 레벨 차이를
느낀 계기가 되었습니다.
에드먼턴의 유명 맛집, 레인지 로드(RGE RD)
이곳은 에드먼턴 시내 중심이 아닌 서쪽 변두리의 작은 동네입니다.
주유소가 드문드문 있고 물류 창고가 보이며 화물차들이 자주 다니는 곳. 그 속에 단독주택 몇 채와 임대 빌라 몇 채가 이 동네의 분위기를 말해 주고
있었습니다. 레스토랑 밖에 차를 대고 들어설 때까지만 해도 안에 손님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한산한 풍경이었죠.
그런데 문을 열고 들어서자 저는 제 눈을 의심했습니다. 위 사진과 같은 레스토랑 풍경은 좀 전의 조용한 마을과도 크게 비교되었기 때문입니다.
다들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지만, 우리처럼 여행객으로 보이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죠.
시장터만큼 시끌벅적하지는 않았지만, 적당히 파티 분위기가 나는 이곳 풍경이 제게는 되려 중압감으로 다가왔습니다.
동양인이라고는 우리밖에 없었던 이 생소한 공간에 자리도 없으니 이제는 어떡할까? 도로 나가야 하나?
라고 생각하려던 찰나 레스토랑 매니저가 오며 우리를 반깁니다. 그의 시선은 얼굴 한 번, 그리고 등 뒤에 맨 여행용 배낭 한 번.
이제 대충 파악했으리라 믿고 눈치껏 행동해 주길 바라는 저에게 들렸던 첫 마디는 "예약을 하고 왔느냐"였습니다.
미처 하지 못했다고 답하자 바에 자리가 있기는 한데 괜찮으냐고 묻습니다. 그가 가리키는 곳을 보니 위 사진의 빈 의자였습니다.
여기까지 왔는데 도로 나갈 수도 없고 해서 흔쾌히 앉겠다고 하였습니다.
놀랍네요. 이런 변두리 동네에 이런 맛집이 있을 줄이야.
사이트를 통해 어느 정도 짐작했지만, 실제로 와보니 이번 캐나다 여행의 레스토랑 기행 중 가장 걸작이 탄생할 듯한 예감이 들었습니다.
지역의 농장 음식을 컨셉으로 하는 RGE RD(레인지 로드)
메뉴판
마음 같아서는 전부 맛보고 싶었지만, 저의 위장과 카드 잔액은 한정되어 있으니 이 집에서 가장 대표가 될 만한 음식을 두 개 주문하였습니다.
메뉴판은 단순하고 명료해 알아보기 쉬웠으나 사실 직접 맞닥트리지 않는 한 정확히 어떤 요리인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바텐더에게 물었죠. 이 집에서 가장 추천할 만한 요리가 무엇이 있느냐고.
그녀는 이 집의 시그니처인 'Grilled Beef'와 'Kitchen Board'를 권하였습니다.
그릴드 비프의 가격을 보니 Market Price라 되어 있군요. 우리나라 말로 하면 '시가'인데 얼마냐 물었더니 오늘은 35불이라고 하더군요.
35불이면 우리나라 패밀리 레스토랑과 비슷한 수준인데 과연 맛은 어떠할지 자못 기대됩니다.
테이블 기본 세팅
바에 앉았기 때문에 바로 앞에 보이는 풍경은 이러했습니다.
오른쪽은 주방인데요. 좁은 창 사이로 바삐 움직이는 셰프들의 모습도 감상할 수 있으니 차라리 이 자리가 생동감 넘치네요.
음료나 칵테일을 제조하는 모습도 눈앞에서 구경할 수 있고. ^^
하지만!
하지만 시커먼 남정네 둘이 나란히 앉아 이러고 있는 건 이번 여행에서 좀 아쉬운 부분입니다. (미안하네 친구, 그런데 너도 비슷한 생각이었을 듯 ^^)
설마 직원이 우리를 게이로 보는 건 아니겠지요?
레몬과 라즈베리 소다수
정말 아니라고요. (그냥 콜라나 시킬 걸 그랬나?)
Kitchen Board $24
일명 주방장이 추천하는 요리로 고기와 치즈, 빵으로 구성되어 나옵니다.
메인 요리지만, 다양한 식재료를 조금씩 떼어내 보드 위에 올린 모습이 꼭 캐나다 버전 안티파스토 같아 보이네요.
물론, 고기류가 들어 있어 식전 애피타이저로 보기에는 무겁습니다만, 제게는 구성된 음식 하나하나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였습니다.
빵은 두 종류인데 뒤에 것은 마치 '난'처럼 바삭합니다.
이 바삭한 빵을 적당히 떼어내 위에 고기와 채소, 치즈 등을 얹어 먹으면 여러 가지 맛이 입안에서 부딪히는 맛의 경험이 색다릅니다.
제가 선택한 메뉴는 아니라 자세한 맛 평은 생략할게요.
적당히 썰어 먹으라고 나온 쇠고기
돼지고기와 홀그레인 머스타드
그런데 돼지고기는 입에 넣자마자 매우 익숙한 맛이 났습니다.
소금에 충분히 절인 상태라 간이 평균 이상 강했는데요. 어쩌면 소금이 아니라 새우젓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새우젓이 우리나라에서 맛보던 것과 똑같을 수는 없지만, 보쌈에 새우젓을 올려 먹은 맛과 거의 흡사한 걸 보아 한국의 보쌈을 모토로 만든
음식인가 싶었습니다. 이러한 추측은 앞으로 나올 요리를 맛보며 더욱 강하게 들었지요.
Grilled Beef, $시가(이 날은 35불)
설명에는 붓쳐스 컷, 메쉬 포테이토, 그리고 비프와 머쉬룸 라구로 되어 있네요.
붓쳐스컷에서 붓쳐스는 '푸줏간'을 의미합니다. 그러니 푸줏간, 정육점에서 지정한 부위 정도로 해석할 수 있는데요.
엄밀히 말하자면, 부위가 따로 있으며 이는 푸줏간(정육점)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습니다.
서양에서는 이를 '행어 스테이크(Hanger Steak)라 부르기도 하는데요. 소의 횡경막에 매달려 있어 한 마리당 500g 안팎의 덩어리 밖에 나오지 않아
푸주간 사람들은 이를 팔지 않고 숨겨뒀다 먹은 부위였다 합니다. 우리나라 말로는 '뒷고기' 정도인 셈이지요.
소 횡경막에 딸린 부위는 토시살, 안창살, 본갈비살 등 다양합니다. 횡경막에 딸린 부위는 아니지만, 그 안쪽에 깊숙이 있는 안심도 행어 스테이크의
범주에 들어가고요. 제 앞에 놓인 부위는 모양새를 보아 안심을 토막내 구운 것으로 보입니다.
그나저나 접시에 꽤 흥미로운 가니쉬가 있네요. 일반적으로 캐나다에서 스테이크를 주문하면 감자(메쉬 포테이토)가 제공되는 건 비슷한데 여기서
야생 버섯이 나오느냐 아스파라거스가 나오느냐 혹은 둘 다 나오느냐로 갈립니다. 그런데 여기는 무려 인삼이 나왔습니다.
캐나다 스테이크에서 웬 인삼? 혹시 도라지는 아닌가? 싶어 맛을 봤는데 이건 확실히 인삼 종류에 가까웠습니다.
어떻게 인삼을 가져다 가니쉬로 쓰게 된 건지 자초지종을 물으려 했지만, 언어를 어떻게 구사해야 할지 한참을 고민해야 했고 웨이트리스나 매니져가
워낙 바삐 움직이니 그냥 관두기로 하였습니다. ^^;
익힘은 미디엄 레어로 주문했는데 정확히 맞춰서 나왔습니다.
무엇보다도 시어링(크러스트한 껍질감을 주기 위해 표면을 센 불에 굽는 작업) 스타일이 우직해 보이네요.
거칠게 구운 껍질감 속에는 부들부들한 살이 미오글로빈을 뿜으며 촉촉히 반겼습니다.
깍두기 모양으로 썰어 한입에 베어 물자 따듯한 육즙이 짝하며 터져 나왔는데 입안이 흥건히 젖을 정도였습니다.
씹으면 씹을수록 딱딱하고 거친 표면이 속살의 부드러움과 함께 뒤엉켜 충돌하고 진한 쇠고기 육향은 목넘김 이후에도 애잔히 남으며 다음 조각을
재촉하네요. 이 육향, 지방(마블링)에서 오는 느끼함은 아니었습니다.
어차피 이곳에서 사용하는 쇠고기는 마블링이 많지 않아 충분한 숙성으로 끌어낸 육향일 것입니다.
맛이 풍부하다 못해 넘치는 스테이크였네요.
결과적으로 이 집 스테이크는 스테이크가 갖춰야 할 여러 요소를 만족시켰고 그것을 판단할 미각의 기준을 한층 끌어올렸더 스테이크였습니다.
35불로 이런 스테이크를 먹을 수 있었다는 것. 캐나다라서 누릴 수 있는 작은 행복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이런 질감, 이런 맛은 가정에서 내기가 어려울 듯합니다. 개인적으로 스테이크를 자주 구우며 여러 가지 테스트를 하였는데요.
가장 큰 걸림돌은 시어링에 있었습니다. 거친 시어링의 구현에 가정집 가스불의 화력은 늘 아쉬웠었죠.
코팅 팬이 가지는 온도의 한계도 비슷한 맥락입니다. 만약, 열 전도율이 높은 20~30만 원대의 무쇠 팬을 구입한다면, 이와 비슷하게 흉내낼 수 있을
듯합니다. 그런데 그러기에는 비용의 부담이 크지요.
이 집 스테이크는 다 좋은데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양이에요.
겉보기에는 120g 정도밖에 안 될 것 같습니다. 누구 코에 붙이라고!! 쩝 ^^; (딱 아내가 먹기 적당한 양인데 이날 따라 아내 생각 많이 했네요.)
스테이크와 함께 제공된 Beef & Mushroom Ragout
이 레스토랑에서 한국적인 맛을 발견한 것은 보쌈과 인삼 외에 또 있었습니다.
스테이크 사이드 음식으로 제공된 쇠고기 버섯 스튜가 그러합니다. 라구(Ragout)라 하는 이 음식은 원래 서양식 스튜인데요.
육류나 가금류(칠면조, 닭) 등을 잘게 토막 내 색깔을 낸 후 물이나 와인을 넣어 약한 불에서 걸쭉하게 끓인 음식입니다.
라구(Ragout)는 프랑스어로 '식욕을 촉진하다.'에서 파생된 말이라고 네이버 백과사전에서는 쓰여 있군요.
한 마디로 진하게 졸인 조림 요리인데 맛은 한국의 '쇠고기 장조림'과 95% 이상 일치하였습니다.
이 맛은 어떤 종류의 간장이든 간장 소스가 들어가야만 낼 수 있는 맛이었죠. 내온 모양새는 서양 음식 같았지만, 저 음식을 락앤락 반찬 용기에 따라
붓고 밥 한 공기와 함께 식탁에 내면, 어르신들 감쪽같이 쇠고기 장조림인 줄 알고 드셨을지도 모릅니다.
정말 완벽한 쇠고기 장조림이네요. 음식을 먹으며 주방을 계속 지켜봤는데 한국인으로 보이는 셰프는 없었습니다.
"새우젓에 절인 맛이 나는 돼지고기(보쌈), 인삼을 이용한 가니쉬, 그리고 쇠고기 장조림까지"
이건 우연이 일치라 보기에는 확연히 드러나는 한국 색이었습니다.
이들 셰프 중 누군가가 한국 음식에 영감을 받아 요리를 구성했을 확률이 있어 보입니다.
먼 이국 땅, 생소한 음식에서 한국적인 맛을 찾을 수 있었다는 것. 식사하면서 꽤 흥미로운 경험이었습니다.
바삭한 빵에 장조림을 얹어 먹는 것도 각별한 맛이네요. ^^
에드먼턴 맛집, RGE RD
이 레스토랑을 수월하게 이용하기 위해서는 예약하는 게 좋습니다.
이날은 운이 좋아 빈자리에 앉을 수 있었지만, 우리가 착석하고 나서 곧바로 자리는 풀 만석이 되었으니까요.
아래 정보를 적어 놓을 테니 에드먼턴에 사는 한인 교포나 혹은 에드먼턴을 방문할 계획이 있는 분들은 참고하기 바랍니다.
#. 에드먼턴의 농장 음식 전문점, RGE RD
사이트 : http://www.rgerd.ca
주소 : 10643-123 거리 Edmonton, AB (좌표 : 에드먼턴, AB T5N 1P3 T5N 1P3)
연락처 : 780-447-4577
영업시간 : 오후 5시부터 늦은 밤까지, 일요일 휴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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