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 연재하고 있는 네이버 오디오 클립의 내용을 보강해서 올립니다.

 

지금 한창 생선회가 맛있을 때입니다. 양식을 포함해 우리나라에서 잡히는 횟감 중 약 65% 이상이 겨울에 맛이 좋은 제철 생선회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활어회와 숙성회의 정확한 차이를 아시나요? 여기에 '선어회'도 있습니다. "숙성회가 선어회 아닌가?"라고 생각했던 분들, 이 글에 주목해 주시기 바랍니다.

 

 

한국인이 좋아하는 활어회(사진은 참돔회)

 

우리나라는 활어회로 대변되는 생선회 문화를 가집니다. 전 세계에서 그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 만큼 활어회 소비량으로는 최고지요. 시장과 횟집 수조에는 살아있는 생선으로 가득합니다. 이 때문에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이 수산시장을 찾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 활어회와 사후경직

아시다시피 활어회는 산 생선을 즉살해 썰어낸 겁니다. 여기서 즉살은 생선의 고통을 최소화한 방법으로 숨통을 끓는 것이지요. 이 세상 모든 생선과 동물은 죽난 후 빠르면 30분, 늦으면 2~3시간 내에 '사후경직'이 옵니다. (육고기에선 사후강직이란 말을 더 많이 씁니다.)

 

이 사후경직은 말 그대로 죽고 나서 근육이 수축하여 굳어지는 현상입니다. 횟감의 경우 살이 단단해지는 거죠. 이 사후경직은 어종과 크기에 따라 3~4시간에서 7~8시간가량 유지되다가 풀어집니다.

 

근육이 풀어진다는 것은 조직이 느슨해지면서 살이 물러지는 시점이 다가온다는 것입니다. 이 과정을 '해경'이라고 부릅니다. 해경에 이르면 차지고 쫄깃해야 할 식감이 물러서 이때부터는 호불호가 갈리는 생선회가 되겠지요. 때문에 최근에는 해경을 늦추기 위해 '이케시메(척수를 찔러 신경을 마비시키는 전처리)'를 하는 횟집이 늘고 있습니다. 쉽게 말하자면, 오랫동안 숙성해도 살이 덜 물러지게 하는 것이죠.

 

우리가 먹는 활어회는 사후경직이 오기 전 단계로, 아직은 근육이 단단해지기 전 단계입니다. 사람들은 활어회를 먹고 '쫄깃하다.'라고 느낄 수 있는데, 실제로는 조직감이 치밀하고 수축하기 전이라 질깁니다. 그래서 활어회는 되도록 얇게 썰어야 질겅질겅 씹히지 않고 잘 넘어가지요.

 

 

산 생선을 잡아서 3~4시간가량 숙성한 모둠 숙성회

 

#. 숙성회와 해경

그렇다면 숙성회는 뭘까요? 숙성회는 말 그대로 숙성해서 썰어낸 회가 되겠지요. 여기서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은 '숙성회가 죽은 생선을 사용했다.'라는 점인데요.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활어회와 숙성회는 모두 살아있는 생선을 이용합니다.

 

그것을 바로 썰어 내면 활어회가 되고, 일식집이나 스시 전문점처럼 손님 맞이 몇 시간 전에 미리 떠서 몇 시간 가량 냉장 숙성하면, 숙성회가 됩니다. 그러니 숙성회를 죽은 생선으로 뜬 것으로 오해하면 안 돼요. 활어회와 숙성회는 모두 '산 생선을 사용한다.'는 기본 전제가 깔려있으니까요.

 

 

 

서두에 말했듯, 숙성은 사후경직 상태에서 진행됩니다. 사후경직이 유지되는 시간은 어종과 크기에 따라 다르며, 살아있을 때 활력과 전처리 방법 및 숙련도에 따라서도 달라집니다. 

 

이 과정을 넘기면, 근육이 풀어지는 해경에 이르며 그때부터는 과숙성을 염려해야 하기 때문에 살이 물러지기 전에 먹어야 하겠지요.

 

 

선어회(사진은 민어회)

 

#. 선어회

활어회와 숙성회는 알겠는데 '선어회'는 뭘까요?' 여기서 조금 혼란스러울 수 있는 것이 '숙성회나 선어회나 그게 그거지'라고 생각하는 분도 많고요. 선어회도 결국은 숙성한 건데 도대체 무슨 차이냐고 물어보는 분도 많습니다. 그래서 알려드립니다.

 

선어회 말고 선어라는 말이 있습니다. 여기서 ‘선’은 신선 ‘선(鮮)’자를 쓴 겁니다. 비록, 산 생선은 아니지만, 신선한 생선을 의미하죠. 선어도 크게 두 분류로 나누는데요.

 

하나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 먹는 반찬용 선어. 주로 굽거나 튀기거나 조려먹는 생선을 말하며, 여기서 말하는 선어회는 비록, 죽었지만 횟감용 신선도를 가진 것입니다. 그 시간은 죽고 나서 대략 12시간 안팎이며, 공수 되는 동안 저온(얼음 빙장이든 냉장고든)에 보관된 것입니다.

 

 

주로 선어회로 먹는 삼치

 

그렇다면 뭣하러 죽은 생선으로  떠서 선어회를 내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는데요. 우리가 먹는 횟감은 살려서 운송할 수 있는 어종이 있고, 살려서 운송하기가 불가능하거나 아주 까다로운 어종이 있습니다.

 

흔히 ‘성질이 급해서 금방 죽어버리는 생선’이 있는데, 대표적으로 목포, 여수 등에서 어렵지 않게 먹을 수 있는 삼치, 병어, 민어가 선어 횟감으로 유명하지요. 이 어종들은 잡히자마자 여러 가지 이유로 금방 죽습니다. 

 

이에 혹자는 성질이 급해서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부레가 부풀어 산소 호흡량이 떨어지거나, 극심한 스트레스로 활어 유통이 어렵습니다. 여기에 깊은 바다에 사는 어종은 어획 시 수압 차를 못 버티고 죽어버리죠. 이렇듯 산채로는 유통하기 힘든 어종들이 주로 선어 횟감에 쓰입니다. 

 

위 사진은 남해에서 잡혀 그날 바로 올라온 선어 횟감으로 식당 주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삼치는 어획 후 수분 내로 숨을 거두기 때문에 그때부터 따지면 대략 12시간 내외가 되겠지요. 경매를 하고, 낙찰받고 서울로 공수하는 동안에는 저렇게 빙장으로 운송됩니다.

 

이 선어 횟감도 등급이 있는데 흔히 '낚시바리'라고 해서 주낙으로 잡아 몸에 상처 하나 없는 것이 최상급이고, 그물로 잡은 것은 품질이 떨어집니다. 낚싯바늘로 잡은 최상급 중 미리 피까지 빼면 금상첨화인데 그렇게 하는 어부도 있고, 안 하는 어부도 있습니다.

 

내장을 안 빼고 통째로 공수하기 때문에 일각에서는 고래회충을 염려하는데요. 이렇게 선어 횟감으로 공수되는 몇몇 어종은 고래회충의 위험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편입니다. (경험적으로 민어, 삼치, 병어에서 고래회충을 봤다거나 직접 본 적이 없었네요.)

 

 

일본에서 맛본 모둠 선어회

 

그렇게 해서 공수된 선어 횟감을 식당 사장들이 사 갑니다. 주로 선어회 전문 횟집이 되겠지요. 어떤 셰프는 '스끼비끼'라고 하여, 잔 비늘을 가진 어종(방어, 부시리, 대물 돌돔, 대광어)을 칼로 도려내 통째로 숙성하기도 합니다. (이 경우 숙성이 더 잘 먹히며, 더 기름지고 맛있죠.) 보통은 를 뜨고 해체한 다음, 냉장고에 숙성해서 손님상에 내는데 이 과정은 앞서 설명한 숙성회와 같습니다.

 

오늘 내용을 정리하자면, 활어회와 숙성회는 모두 산 생선을 즉살한 것으로 그것을 바로 썰어내면 활어회가 되고, 냉장 보관하면 숙성회가 됩니다.

 

한편, 숙성회와 선어회의 차이라 함은 둘 다 숙성한 것은 맞는데 근본이 다릅니다. 숙성회는 산 생선을, 선어회는 애초에 죽어버렸지만, 횟감용 선도를 가진 선어를 쓴 것이지요.

 

회를 숙성해서 내면 좋은 점. 바로 감칠맛 때문입니다. 활어회는 감칠맛 성분인 이노신산(IMP) 양이 미미합니다. 그러다가 이것이 숙성되면서 오르기 시작하지요. 혀에 착 달라붙는 감칠맛이 좋아져서 최근 숙성회와 선어회가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하지만 회를 숙성한다고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닙니다. 좀 전에 설명했듯 숙성을 오래 하거나 제대로 못하면, 살이 물러집니다.

 

물론, 부드러운 식감을 원하는 사람도 있지만, 우리나라 국민은 회를 먹을 때 이 쫄깃쫄깃하게 씹히는 식감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식감도 잃지 않으면서, 감칠맛도 살리는 최적의 숙성법과 시간이 필요하겠지요. 그리고 그것을 제대로 구현하는 것이야말로 일식을 다루는 셰프들의 오랜 숙원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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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입질의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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