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직송한 생참치

어느 날 생참치와 선어를 전문으로 취급하는 지인으로부터 한 통의 택배가 도착하였습니다. 멕시코에서 축양한 참다랑어를 받자마자 곧바로 해체해 부위별로 작업해 보내주셨는데요. 둘이서 실컷 먹을 수 있는 양이라고 하셨지만, 이 정도면 4~5명까지도 적당히 음주가무하며 즐길 수 있는 양으로 보였습니다.


이번에 받은 생참치는 품질에 자신은 있지만, 이렇게 먼 곳으로 배송하다 보면 아무래도 포장 상태에 따라서 맛의 변질을 불러올 수도 있으므로 그에 대한 부분을 살피고 맛을 평가해 달라는 개인적인 부탁이 있었습니다. 그러니 이렇게 받아볼 경우 가격이 어떻게 되는지 모르고 아직 상품화하기 전이므로 판매처에 대한 정보는 알려드릴 수 없음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선 스티로폼 뚜껑을 열자 진공 포장한 게 눈에 띄었습니다. 총 여섯 가지 부위를 포장했고 각각의 진공 포장에는 흡수지를 깔아 잔혈을 흡수를 도운 상태입니다. 아이스팩도 충분히 들어 있어 1박 2일간의 운송 여정 동안 반만 녹아있는 등 여전히 냉기 보존이 잘 된 상태였습니다. 횟감을 뜯어 봐야 알겠지만, 일단 포장 상태가 정말 훌륭하네요. 오늘은 멕시코산 생참치 회, 시식기로 이어 나가보겠습니다.



도마 위에 모두 올려 보았습니다. 총 여섯 가지 부위지만, 이를 세분화 하면 더 나눌 수도 있을 겁니다. 상단 맨 왼쪽에 블록을 주목하십시오. 그중 삼각형 모양으로 볼록 나온 것이 한 점 당 5만 원씩 받는 가마살입니다. 부위 설명은 나중에 하고요. 일단은 부위별로 재단하여 썰어보겠습니다. 그전에 한 번도 얼리지 않은 생참치가 어떻게 온전한 상태로 배송될 수 있었는지에 관해 간단히 알아보겠습니다. 


#. 생참치가 어떻게 가능한가?
최근 멕시코산 축양 참치가 시중에 많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이에 생참치 전문점이 따로 생겼을 정도로 참치회 마니아들 사이에서 주목받고 있는데요. 한 번도 얼리지 않은 생(生)참치다 보니 유통기한이 매우 짧아 관리가 까다롭다는 단점은 있지만, 일반적인 냉동 참치에서는 보기 어려운 천상의 맛을 선사하므로 생참치를 이용한 고가 전략이 잘 먹혀드는 추세에 있습니다.

생(生)이라는 자체만으로 프리미엄이 붙는 참다랑어. 이러한 생참치를 전문 횟집에서 먹으려면, 생참치 코스로 1인당 12만 원 전후의 가격대가 형성되고 호텔이나 고급 일식당에서 선보이는 가마살 등의 특수 부위는 한 점당 5만 원을 호가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놓고 보니 그냥 동네 정육점에서 돼지고기 사다 올려놓은 거 같네요. ^^; 생참치다 보니 그대로 썰면 굉장히 무릅니다. 아마 그렇게 했다면 살이 찢어지고 난리가 났을 거예요. 그래서 '냉'을 받혀 썰어냅니다. 냉동실에서 약 두 시간가량 보관해 냉을 받히게 한 다음 썰어내는 과정은 요즘 유행하는 근고기집과 다를 게 없습니다.


참다랑어 배꼽살 블록

참다랑어 대뱃살의 아름다운 마블링

#. 축양 참치가 자연산 참치보다 마블링이 많은 이유
참치는 커야 맛이 좋다는 건 다들 아는 사실입니다. 30kg보다는 60kg가, 60kg보다는 100kg이 넘는 참다랑어가 맛있는 이유는 마블링, 즉 지방 함유량이 많아서겠지요. 그에 따라 참다랑어의 시세도 수십 배로 뜁니다. 참치 품질에 목숨을 거는 상인은 크기와 비육 상태는 물론, 지방 함유량을 따지게 됩니다.

그런데 축양 참다랑어는 60~70kg짜리 중형급이 가장 맛있습니다. 오히려 150kg짜리 대형급은 맛이 떨어진다고 합니다. 그 이유를 설명하겠습니다. 우선 참치 중에 진미로 꼽히는 대뱃살(오토로) 블럭을 확대하여 찍어보았습니다. 원래 대뱃살은 마블링이 많은 부위지만, 이 정도로 지방(마블링)이 퍼져 있는 건 특상품에 해당합니다. 자연산 참다랑어라면 150kg급 대형은 돼야 이러한 마블링 상태를 보입니다.
그런데 멕시코산 축양 참다랑어는 70kg짜리에서도 이 정도 마블링이 가능합니다.

참고로 축양이란 양식을 의미하지만, 환경이 조금 다릅니다. 참다랑어를 비롯한 거의 모든 참치 종류는 어마어마한 회유성을 가집니다.
삼치와 마찬가지로 부레가 없으므로 평생 동안 쉬지 않고 헤엄쳐야 하지요. 그 말은 즉, 다른 물고기처럼 바닥에 배를 깔거나 혹은 부유하면서 잠을 잘 수 없다는 뜻입니다. 태어나서 죽기 전까지는 쉬지 않고 헤엄쳐야 하는 참치이기에 이를 양식하려면 해상에 대형 가두리를 띄워야만 합니다. 그런데 현재 인간의 기술력으로 띄울 수 있는 대형 가두리는 고작 몇백에서 몇 킬로미터 이내입니다.

수천 킬로미터를 횡단하는 참치에게는 더없이 좁은 공간입니다. 하지만 이를 원형으로 만들면 빙글빙글 돌면서 헤엄치게 할 수 있습니다. 그 운동량은 자연산 참치에 못 미치지만, 해상 가두리를 돌며 정기적으로 주는 사료를 받아먹으니 자연산 참치보다 지방이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참치를 맛볼 때 적당히 기름지고 고소하다는 느낌을 받으려면 60~70kg짜리 생참치가 적당하다는 게 업계의 설명입니다. 150kg짜리로 축양한 참다랑어가 있기는 합니다만, 뭐든지 '과유불급'이라고 너무 기름기가 많으면 몇 점 먹지 못하고 금새 질리겠죠?
위 사진을 보면 아시겠지만, 저 정도 마블링이면 기름진 맛을 느끼기에 충분한 양이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사료는 정어리, 고등어를 주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료라는 말이 붙었지만, 자연산 참치의 먹잇감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배꼽살을 썰어보겠습니다. 위 블록은 참다랑어 뱃살 중에서도 가장 선두에 있는 부위입니다. 내장을 감싸는 지방 근막과 근육이 적당히 형성된 부위로 이를 배꼽살이라고 부릅니다. 두께를 보면 아시겠지만, 저 정도 두께가 나오려면 참치가 상당히 커야 합니다. 이번에 받은 참다랑어는 약 60kg 정도라고 합니다. 이 부위는 내장을 감싸는 갈비뼈에 붙은 살점이므로 굳이 소나 돼지로 비유하자면 횡격막 부근에 자리한 안창살쯤 될 것입니다.


이를 한입에 먹기 좋게 토막 냅니다. 노란 점선을 따라 자른 뒤 블록을 세워서 세로로 썰면 배꼽살 특유의 모양을 살릴 수 있습니다. 이때 냉기가 있어야 잘 썰어집니다. 저는 이 부위를 맨 마지막에 써는 바람에 냉기가 좀 빠졌습니다. 냉을 받친 상태에서 썰어야 살이 허물어지지 않는데 다른 부위를 작업하는 동안 그새 냉기가 빠져나가 버려 생각처럼 모양이 잡히지가 않았습니다. 다음에 참치를 작업할 때는 쉬이 물러지는 배꼽살부터 먼저 썰어야 할 것 같습니다. 


대뱃살(오토로)도 결을 살려 그대로 썰어냅니다. 아우 저 기름기 좀 보세요. 60~70kg급 참치가 저 정도니 150kg급 참치는 아예 기름 덩어리겠습니다. (물론, 축양에 한정해서)


오랜만에 꺼내 든 회전용 받침대. (회사라로 쓰면 분명 테클 거는 사람이 있을 듯하여 어울리지 않게 받침대로 썼습니다.)


멕시코산 축양 참다랑어 회 완성

한꺼번에 너무 많이 올리면 볼품이 없어 적당히 올렸습니다. 이날 시식할 식구가 총 다섯 명이라 다섯 점씩 올리고 나중에 리필할 생각입니다. 왼쪽 하단은 배꼽살인데요. 좀 전에 썼지만, 냉이 빠져나간 뒤에 써는 바람에 모양이 잘 잡히지 않았습니다.


부위 설명 나갑니다.

1. 뽈살 : 참다랑어 대가리 양쪽에서 각각 한 뭉치씩 적출할 수 있는 특수 부위입니다.
2. 정수리살 : 참다랑어 대가리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부위입니다.
3. 등지살 : 참치 단면도를 보면 척추뼈를 기준으로 위쪽에 해당하는 가장 큰 블록인데 이를 속살(아카미)와 따로 구분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등에 붙었다 하여 등지살 혹은 세도로라 합니다. 담백한 부위 중 하나죠.
4. 배꼽살 : 내장을 감싸는 지방막으로 대뱃살 블록 중 최전방에 있어 마리 당 좌우 한 덩어리밖에 안 나오는 고급 부위입니다.
5. 대뱃살 : 참치의 넓은 배지살 블록 중 꼬리와는 멀고 대가리와는 가장 가까운 고급 부위입니다. 대뱃살은 오도로, 오토로 등으로 불립니다.
6. 중뱃살 : 참치 단면을 보면 등지살과 배지살로 나뉘는데 그 중간에 자리한 부위로 주도로라 불립니다. 일반적으로 주도로는 뱃살보다 마블링이 덜하고 등살보다는 많은데 이날 받은 참치에서는 일반 참치의 뱃살만큼이나 마블링이 많았습니다.


배꼽살

나뭇가지처럼 뻗은 하얀 지방 막은 꼬득꼬득한 식감을 주는 근간이 됩니다만, 사이사이로 붙은 살은 사르르 녹아 없어져 버립니다.
그러니 근막이 최종적으로 입안에 남아 마저 씹히게 되며 식감과 녹는 맛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참다랑어의 최고 부위이기도 하지요.


대뱃살(오토로)

참치 중에서도 참다랑어(혼마구로). 그중에서도 얼리지 않은 생참치의 대뱃살을 맛보는 순간인데요. 거짓말을 조금 보태자면, 제 혓바닥과 함께 녹아 버리는 줄 알았습니다. ^^ 밖에서 사 먹으려면 꽤 많은 출혈을 감수해야 할 이 부위를 집에서 마음껏 즐길 수 있다니 세상 많이 좋아졌네요.


많이 먹으면 느끼하겠지만, 처음 두세 점은 정말 눈이 스르륵 감겼던 맛. 생선회에 입맛이 길들이지 않았던 초등 6학년 조카 애가 한점 집어 먹더니 사르르 녹는 맛을 알아버리고 말았습니다. 연신 젓가락이 가는 걸 보고 생각난 것은 생선회가 무슨 맛인지도 모르고 살아왔을 아이도 생참치 회는 맛을 알아보는구나 싶었지요.


뽈살

모름지기 생선 먹을 줄 아는 이들은 뽈살부터 젓가락이 가는 법. 그런데 참다랑어 뽈살은 비주얼부터 남달랐습니다. 지금까지 참치 뽈살을 수차례 먹어보며 쇠고기 육회를 연상했지만, 이번에 받은 생참치는 얼리지 않은 생고기를 그대로 썰어 먹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싱싱한 건 말할 것도 없고요. 씹히는 질감 뒤에 오는 담백한 맛이 일품입니다. 이 참치가 지방이 얼마나 많은지 어지간해서는 보이지 않을 뽈살에도 마블링이 서려 있네요. 개인적으로 애착이 갔던 부위.


정수리살

이날 받은 부위 중 임펙트는 가장 떨어졌지만, 워낙 기름진 부위들로 구성되다 보니 상대적으로 담백한 맛을 내는 이것이 오히려 인기가 좋았습니다. 그런 정수리살 자체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섬세한 지방이 그물처럼 퍼져있는 게 보일 겁니다. 다른 원산지는 모르겠지만, 멕시코산 축양 참다랑어는 전반적으로 지방이 풍부하다는 걸 느꼈습니다.


2차로 생참치 리필

리필은 격식을 갖추지 않고 대충 썰어 던지듯 놓았습니다. 가운데 대뱃살이 넘쳐나는 것 좀 보세요. 호텔이나 고급 일식집에서 생참치로 저 부위를 먹으려면 생각만 해도 그 금액이 아우. 하지만 여기서는 뭐든 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이곳은 '입질의 추억이 사는 집'이니까요. ^^;


생참치를 작업한 칼입니다. 기름기가 얼마나 많은지 썰면서 계속 닦아내야 했습니다. 참고로 쇠고기의 지방과 참치의 지방은 성분이 많이 다르다는 걸 아실 겁니다. 참치 지방에는 아이와 산모에게 이로운 불포화지방산을 비롯하여 오메가3, 비타민 D, 양질의 단백질이 많이 들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칼로리는 아주 낮은 식품입니다. 참치에 함유된 셀레니움은 노화방지와 면역기능을 높여주므로 잔병치레에 걸릴 확률을 줄여준다고 해요.

다만, 참치가 아무리 축양이라고 해도 수은, 카드뮴과 같은 중금속으로부터는 자유롭지 못할 것입니다. 축양에서 주는 사료 또한, 자연계에 존재하는 고등어, 정어리다 보니 상위 포식자로서 먹이를 섭취하는 건 축양이나 자연산이나 별반 다르지 않고요. 그러므로 참치회를 너무 자주 먹는 것은 권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날만큼은 실컷 먹었습니다. 언제 또 이런 생참치를 맛볼 수 있을지 모르고요.



한 점당 수만 원을 호가하는 가마살

두 번째 리필에서는 가마살을 썰어 올렸습니다. 이 부위가 이날 생참치회의 하이라이트였습니다. 그렇다고는 하나 딱 다섯 점밖에 안 나오더군요. 두께를 얇게 하면 좀 더 낼 수 있었지만, 우리 인원이 다섯 명이라 구태여 두께를 줄여 수를 늘리고 맛의 감흥을 줄이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가마살은 생선 대가리에서 뱃살로 가는 길목에 있는 '가슴살'을 말합니다. 이 근육에는 평생 헤엄치며 방향타 역할을 했던 옆 지느러미가 붙어 있기도 하죠. 한 마디로 활동량이 가장 많은 근육이라 식감과 지방 감이 모두 흡족합니다. 마리당 몇 그램 안 나오므로 이 비싼 부위를 모두 제게 부칠 수는 없었을 겁니다.

비록, 딱 한 점씩만 맛보는 가마살이지만, 한 점으로 맛의 감흥을 느끼기에는 충분하였습니다. 가격을 조사해보니 이러한 생참치 가마살은 한 점에 5만 원 이상 팔리기도 한다는군요. 그곳이 호텔 일식이거나 더 나아가 긴자의 명인이 운영하는 초밥집이라면 더 나갈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 집에서는 모두 무료입니다. 저는 명인도 아니고 횟집을 운영하는 사람은 더더욱 아니니까요. 그저 낚시를 취미로 하고 생선회 분야에 빠져 제 블로그를 찾는 방문자에게 정보를 공유하는 이유만으로 이러한 생참치 맛을 볼 수 있다는 건 저로서는 행운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이 맛을 톡톡히 보게 해주신 부산의 지인께도 감사의 말을 올립니다.

이번에 맛본 생참치 회를 개인 배송으로 상품화할 수 있을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정도 참치회라면 누구에게도 권할만해 상품 홍보에 보탬이 되게 하고 싶었지만, 그쪽에서는 '완벽히 준비되지 않았다.'면서 밝히는 걸 원치 않았습니다. 그러니 가격과 상품 문의는 일절 받지 않겠습니다. 참치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는 아래 <<더보기>>를 참조해 주세요.

<<더보기>>
[참치상식] 미식가들도 잘 모르는 참치회의 비밀
참치 부위와 종류, 알고 먹자
[은평구 참치횟집] 참치요리점 오참치
희귀한 참치부위, 붉은 황새치 뱃살(일명 홍메까로도)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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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입질의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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