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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 수사대의 황당한 일처리 방식
※ 이 이야기는 작년 말, 고소장을 제출하기 위해 찾은 경찰서에서 겪은 실제 이야기입니다.
모든 사이버 수사팀이 그러지는 않겠지만, 이 일로 인해 경찰서의 근무 기강이 어떠한지 조금은 알 수 있었던 것 같네요.
이 이야기를 끝으로 저의 고소장 이야기는 끝을 맺겠습니다.
이날은 저작권법을 위반한 아무개 씨를 고소하기 위해 동네 근처 경찰서를 찾았다.
아무개 씨는 12만 명의 팔로워를 거느린 중대형급 페이스북 페이지 운영자로 본인의 창작물(취재에 의한 글과 사진)을 통째로 퍼가 불특정 다수에게 게시,
배포한 혐의를 받을 예정이었다. 그러기 위해 나는 증거를 수집했고 고소장을 작성해 서류를 꾸린 다음 경찰서 민원실을 찾았다.
민원실 직원은 내용을 훑어보더니 나를 사이버수사대(정확히 말하면 사이버수사과)로 안내했다.
통로를 따라 들어가니 맨 구석에 사이버수사과라 적인 팻말이 붙어 있었다. 순간 만감이 교차했다.
이 서류를 넘겨 상대방을 꼭 응징해야 할까 싶기도 하고, 한 편으로는 잘못된 것은 잘못된 것이니 경종을 울릴 수 있는 판결 사례를 기대한 것도 사실이다.
오른손에 들고 있는 이 서류들(증거물과 고소장)은 본인이 사전에 침착하게 꾸린 것으로 거짓이 없고 사실만을 주장하였다.
피고소인의 주민등록번호를 알지 못해 기재하지 못한 것 외에는 거의 완벽에 가까운 고소장이라 확신했다.
문 앞에서 잠시 심호흡을 하고 사이버수사대의 문을 두드렸다.
"똑똑"
반응이 없어 빼꼼히 문을 열고 들어갔다. 출구 쪽에 앉아있는 경관이 "어떤 일로 오셨냐"고 묻는다. 나는 대답하는 대신 고소장을 보여주었다.
대충 훑어보더니 혼잣말로 "저작권법 위반이네"하며 저쪽에 계신 분에게 가라고 하였다. 그래서 갔는데 그분은 나이 지긋한 팀장 같았다.
아마도 이곳 사이버수사과에서는 가장 높은 직급인가 보다. 서류를 넘기니 그의 표정이 탐탁지 않다.
눈이 침침한지 실눈을 뜨며 고소장을 읽어나간다. 굳게 닫힌 그의 표정에서 "또 귀찮은 일이 생겼군."이라 하는 듯했다.
그리고선 내 얼굴을 한 번 훑어보더니 다시 한 번 고소장을 읽는다.
사이버수사대 팀장은 외모로 보아 정년퇴직을 앞둔 사람처럼 보였다. 이 나이 지긋한 사람이 키보드 자판을 두드리며 사이버 수사의 일을 제대로 수행할
지는 사실 의문이 들었다. 물론, 그것은 나만의 편견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려했던 일이 현실이 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주민등록번호는 왜 안 적었어요?"
"네?"
"피고소인 주민등록번호 말예요"
"그걸 제가 어떻게 알고 적어요."
"원래 고소장을 접수할 때는 피고소인의 신상을 다 적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수사 기간도 오래 걸릴 뿐더러 범인을 특정할 수가 없어요."
"특정이라뇨?"
"고소 처음해 보셨죠?"
"네"
"지금 여기 써 놓은 이 아무개 씨가 정말 당신의 글을 퍼간 사람인지 어떻게 확정지을 거요?"
"그래서 증거물을 캡쳐해 왔습니다."
"아니 내 말은 그게 아니고.. 예들 들어 봅시다. A라는 사람이 당신의 글을 무단으로 올렸어요. 당신은 A라는 사람을 고소했어요.
그런데 고소장에 적힌 A는 자신의 실명이 아니에요. 제 3자의 실명을 도용한 거였어요. 그럼 A라는 이름이 실제 범인이 아닐 수도 있는 거잖아요.
고소장에 적인 이름과 실제 범행을 저지른 사람이 일치한다는 객관적인 증명이 안 되는 거예요.
이를 해결하려면 범인의 주민등록번호도 다 적어와야 하는 겁니다."
여기까지 듣고 있자니 그저 말문이 막혔다. 피고소인의 주민번호를 파헤쳐야 하는 일을 사이버수사대가 아닌 고소인이 해야 한다는 거다.
그러려면 포털 사이트에 민원을 접수하여 해당 사이트 운영자의 신상을 알아내는 수밖에 없다. 과정도 복잡한 데다 시일도 적잖이 걸릴 것이다.
또한, 이렇게 한다 해도 객관적인 자료나 명분이 부족하다면 포털 측에서 쉽사리 개인 정보를 알려주지 않는다.
이 사건의 경우는 페이스북 페이지 운영자를 고발한 것이기 때문에 더 복잡하다. 알다시피 페이스북은 외국계 회사다.
내 능력으로는 페이지 운영자의 개인 정보를 알아낼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사실 이런 것 저런 것 따지기 전에 고소자가 피고소자의 신상을 모두 파악하여 고소장에 첨부하는 것은 원천적으로 어렵지 않을까?
하다못해, 길 가다가 '묻지마 폭행'에 당했다고 치자. 어떻게 어떻게 해서 그 사람의 인상착의와 이름, 전화번호까지 알아냈다고 하자.
그래서 고소했더니 주민등록번호도 알아와야 한다는 것과 뭐가 다를까.
사이버 수사대가 하는 일이 뭘까? 그런 거 알아내 수사하는 게 아닌가.
그런 일을 고소인에게 전부 위임하는 것은 한마디로 "귀찮은 일은 하기 싫다."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팀장은 내게 두꺼운 서류철을 가져오더니 "이런 식의 고소장이 하루에도 수십 개가 접수된다. 대부분 특정을 짓지 못해 수사가 보류 중"이라며 난색
아닌 난색을 표명했다. 그놈의 특정은 니들이 해야 할 게 아닌가!
어쨌든 팀장은 고소장에 적인 피고소인의 이름이 도용된 명의일 수도 있다는 확률을 자꾸 제기했다.
그러면서 그 이름은 어떻게 알아냈느냐고 묻는다. 나는 어려울 게 없었다.
당시 나는 페이스북 관리자에게 법으로 대응하겠다는 뉘앙스로 쪽지를 남긴 적이 있었다. 그랬더니 전화로 합의하자며 알아서 이름과 전번을 알려줬다.
그렇게 합의를 보자는 사람이 어떻게 가짜 이름과 가짜 전번을 대겠는가?
자꾸 이름 가지고 명의 도용이니 확정을 짓지 못하니 하는데 정 안 믿긴다면 당장 전화해보면 알 수 있는 일이 아닐까? 전화하는 게 어려운 일도 아닌데.
내가 보기에는 그저 귀찮은 일은 맡기 싫어하는 눈치였다. 팀장은 할 수 없이 전화를 걸어 상대가 정말 저작권법을 위반했는지 확인하려 했다.
상대가 전화를 받지 않자 팀장은 고소장에 기재된 주소는 어떻게 알아냈냐고 묻는다. 그리고 실제 주소가 맞느냐고 한다.
사실 그 주소가 실제 주소인지까지는 나도 모르는 일이다. 다만 해당 페이지 정보를 뒤져보니 관리자의 주소가 적혀 있길래 그것을 적은 거였다,
사이버 수사대 팀장은 일단 그 주소가 실존 주소인지부터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거주지가 명확하다면 그쪽 경찰서를 통해 피고소인을 확인하고 특정지을 수 있기 때문이란다.
여기서부터 이 글의 핵심인 '황당한 일'이 벌어지게 된다. 정말 사이버 수사대라고는 믿기지 않는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팀장은 그 주소의 실존 여부(?)를 파악하기 위해 인터넷 창을 열었다. 마우스를 쥐는데 어찌 마우스를 움직이는 모양새가 매우 더디다.
마치 70~80 어르신들이 인터넷을 배우고자 할 때의 느낌과 유사했다. 계속해서 지켜보는데 'Daum(다음)'을 열더니 검색창에 '지도'를 친다.
여기까지의 과정으로 보아 다음이나 네이버 지도에서 피고소인의 주소가 실제로 있는지 검색하려는 것으로 보였다.
다음에서 지도를 치면 이런 검색 결과가 나온다.
여기까지는 좋은데 지도를 치고 난 검색창에서 한참을 해매더니 그 다음 마우스 클릭에서는 내 눈을 의심하는 일이 벌어졌다.
옥션 지도 특가로 들어간 거였다. 들어가면 곧바로 나오는 게 지도와 관련된 상품이다.
원하던 지도가 보이지 않자 상품 검색창에다 '지도'를 치는 게 아닌가? 나는 이게 뭐하는 건가 싶어 말 없이 지켜만 보고 있었다.
원하는 정보가 나오지 않자 팀장은 그 창을 빠져나와 다시 다음에서 '지도'를 검색했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G마켓 지도를 클릭하는 게 아닌가? 여기 (상품)검색창에 '지도'를 입력하고 검색 버튼을 누른다.
지도 관련 상품이 쭉 나왔고 사이버 수사대 팀장은 관련 상품을 위 아래로 스크롤하면서 한참을 헤매고 있었다.
"지금 뭐하시는 거에요?"
"아니 전에는 이렇게 하면 지도가 나왔는데(....)"
보다 못한 나는 맨 아래 사이트란에 뜬 Daum 지도를 클릭하라고 일렀다.
당황한 이 늙은 경관은 그제야 다음 지도로 들어가더니 독수리 타법으로 주소를 검색을 시작했다.
이런 사람이 앉아 있는 자리가 오늘날 사이버 수사대의 현실인가?
보아하니 정년 퇴직도 얼마 남지 않아 적당히 시간 때울만한 부서에 앉아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럴거면 인터넷 공부라도 하던가.
상황이 이러니 누군가가 서류장 들고 들어오면 쉬고 있는 나를 방해하는 불청객 쯤으로 여길 수밖에.
이건 엄연히 직무유기이자 근무태만에 해당한다. 수사를 안 하겠다면 '청와대 신문고에 이 일을 올려? 마...됐다. 말을 말자.
다행인지 불행인지 내가 작성한 고소장은 피고소인의 주민등록번호를 제외하면 아주 꼼꼼히 꾸린 서류였었나 보다.
그러니 이 양반이 수사를 거부하고 싶어도 거부할 명분이 부족할 것이다. 그러던 중 피고소인과 통화가 연결됐다.
"이 아무개씨죠? 여기 OO 경찰서 사이버수사과 저는 OOO 경찰입니다. 잠시 통화 가능하시죠?"
통화 내용은 사실 확인을 묻는 거였고 상대는 혐의를 인정한 것으로 보였다.
"그러게 왜 쓸데 없이 남의 글을 올려 고소를 당합니까? 어쨌든 이쪽에서 처벌을 원하는 것 같으니 나는 고소장을 그쪽 경찰서로 넘길 수밖에 없어요.
거기서 연락오면 가셔서 성실하게 조사받고 내가 보기에는 아직 학생이고 초범인것 같으니 큰 처벌은 안 받겠지만, 그래도 다음부턴 조심해요 "
이 양반이 내게는 퉁명스러우면서 어찌 피고소인에게는 자상하게 조언까지 해주는지 ^^
이후 진술서를 작성하고 모든 서류가 마무리되자 이 사건은 피고소인이 혐의를 인정하는 바람에 다행히도 수사가 빠를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피고소인의 처벌을 원하느냐고 묻자 나는 그렇다고 답했고 고소장 접수건은 그렇게 마무리 됐다.
(참고로 판결 결과는 여기에 → 블로그 저작권을 침해받았나요? 이렇게 대응하세요.)
사실 이날 있었던 일들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정년 퇴직을 앞두고 편한 부서에 있다 가는 것은 공직자로서 그간 열심히 일해왔던 부분에 대한 경찰서 측의 배려가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적당히 일하다 나가면 될 일이다. 여기서 환갑을 바라보는 분께 전문성을 바라는 것도 무리인 것 같고.
게다가 (사이버 수사과) 부서에는 3~4명의 젊은 경관이 일을 보조하고 있으니 상사로서 그들을 잘 구워 삶으면 되겠지.
그래도 그렇지. 아무리 시간만 때우는 일이라도 인터넷 정도는 좀 하셨으면 좋겠다. SNS까지 바라지는 않는다.
하다 못해 온라인 게임도 좀 즐기면서 사이버 공간에 대한 감은 익혀놓아야 하지 않을까? 명색이 사이버 수사과의 팀장인데.
"아무쪼록 그 부서에 잘 계시다가 원만히 퇴직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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