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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죽도시장] 싱싱한 수산물이 가득한 새벽의 경매 현장
포항 죽도시장 근처의 어느 모텔
싱싱한 수산물을 보여주겠다면서 첫 장면에 모텔이 등장하니 어리둥절하지요? 이날 저는 강원도 고성에서 속초를 거쳐 포항까지 장장 300km를 달려왔습니다. 다음날 새벽에는 경매 현장을 둘러봐야 하므로 일찌감치 저녁을 먹고 모텔에 투숙한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모텔, 많이 좋아졌다고 해야 할까요? 모든 시설이 커플에게 맞춰져 있더군요. 경쟁사회에서는 모텔도 다변화되는 소비자의 요구에 맞춰줘야 살아남는 시대인가 봅니다.
커플에 따라 목적이 다를 수도(?) 있겠지만, 여기까지 와서 굳이 PC 앞에 앉아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 말이죠. 게임을 워낙 좋아하는 커플이라면 일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사진에 보이는 PC는 요즘의 것이라고 하기에는 도저히 믿기지 않은 해상도(640x480)에 인터넷 기능만 제공하는 아주 심플함을 과시하였습니다. 그러면서도 휴대폰 충전 코드는 최신형 모델에 맞춰져서 저처럼 아이폰4를 쓰는 사람은 충전도 못 하고 콘센트도 없어 결국은 컴퓨터를 켜 놓고 USB로 충전하게 만드는 센스를 보여주었습니다. 어쨌든 겉만 번지르르한 이곳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단잠뿐이겠지요.
샤워실 부스를 보니 시공을 잘못했군요. 아무리 급하게 지어도 그렇지 샤워실 문짝을 생략할 줄이야. 커플들에게는 어떨지 몰라도 피디님과 한방을 쓰게 된 저는 이런 분위기가 어색해요. ^^;
AM 5:00, 포항 죽도시장
저 골뱅이들 보십시오. 정말 엄청난 양입니다. 아무리 동해가 깊고 넓은 바다여도 매일 새벽마다 저만큼의 골뱅이를 쏟아낸다고 생각하니 자연의 무한 재생 회복력이랄까요. 끝도 없이 돌고 도는 자원력에 경외감이 들 정도입니다. 물론, 사진에 보이는 골뱅이가 전부는 아닐 것입니다. 죽도시장은 동해의 골뱅이가 집결되는 수많은 장소 중 하나에 불과할 테니까요. 저러다 씨가 마르는 것은 아닌지 조금 걱정되기도 합니다.
문어는 크기가 압권입니다. 10kg, 아니 그 이상은 족히 나갈 법한 문어가 많지는 않아도 족족 들어오는데요. 바닷속에 저런 것들이 포식자로 군림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무슨 괴물이나 요괴가 살고있는 판타지 영화의 바닷속을 떠올려지는군요. 저 정도 크기라면 성인 남성이 혼자 들어 올릴 수 있을지도 의문이 듭니다. 다리 한짝으로도 온 가족이 배불리 먹겠는데요. 개인적으로 가격이 궁금합니다. ^^
바쁘게 돌아가는 새벽의 죽도시장, 경북 포항
이때의 시각은 새벽 5:30분. 우리 밥상에 오르는 신토불이 수산물은 그 양이 해마다 줄고 있어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지만, 이렇게 산지에 나가보면 여전히 많은 양에 시선이 압도당하기도 합니다. 저기 보이는 망태기에는 모두 문어가 들어있는데 보기와는 달리 많은 양이라곤 할 수 없을 겁니다.
이곳에서 수년간 경매했던 상인들은 한결같이 "예전 같지 않다."라고 하며 실제로도 어획량은 줄었습니다. 그래도 이 시간에 삶의 투쟁을 벌이는 어부와 상인이 있으니 많든 적든 우리 수산물을 맛볼 수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번에는 건물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앞에 보이는 해물 3종 세트가 서해의 그것들과는 확연히 다르지요. 개우렁과 피뿔고둥(참소라)이 많이 나는 서해와 달리 동해는 골뱅이가 여러 종류로 나고 있습니다. 문어를 보십시오. 서해의 주꾸미를 떠올리게 합니다. 씨알이 너무 잔데 이렇게 잡힌 것을 보니 한편으로는 걱정도 되는군요. 서해에서는 꽃게가 많이 나지만, 이곳 동해는 방게가 많이 납니다.
보구치(백조기)
생물 코너를 돌아봅니다. 동해에서는 잘 나지 않은 조기다 보니 목포에서 먼 길을 왔군요. 죽도시장이라고 해서 꼭 앞바다에서 잡힌 것만 파는 것은 아니니까요. 수입산도 꽤 많이 들어온답니다.
그래도 고등어만큼은 노르웨이 고등어가 발붙일 틈이 없을 것 같습니다. 국내 해역에서 조업된 (참)고등어가 겨우내 살을 찌워 살이 아주 통통하게 올랐는데요. 이 고등어가 어느 해역에서 잡힌 것인지는 확인하지 못했지만, 적잖은 물량이 부산 공동어시장을 통해 들어오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부산 공동어시장으로 들어오는 고등어의 70~80%는 제주도 해역에서 조업 되는데 문제는 해마다 물불 안 가리는 남획에 고등어 씨알이 하향 평준화되어 300~400g짜리 고등어가 판을 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씨알 좋은 고등어가 가뭄에 콩 나듯 잡히니 작은 고등어로 물량을 채우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었던 거죠. 그래서 요즘 600g 이상 나가는 大고등어 보기가 쉽지 않은데 그래도 죽도시장은 죽도시장인가 봅니다.
이곳에는 많지는 않아도 45cm 이상의 大고등어가 제법 입하되었습니다. 크기를 가늠하기 위해 동전을 올리는데 이 정도면 800g 정도 나가는 매우 큰 사이즈라 할 수 있습니다. 고등어도 참치와 마찬가지로 크면 클수록 맛과 풍미가 고소한 생선이니 가격은 조금 비싸도 큰 것으로 구워야 살도 많고 맛도 뛰어나겠지요.
꽁치
요즘 수산물 가격이 거의 폭등 수준입니다. 이곳 포항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제가 사는 서울은 얼마 전 마트에 갔더니 35cm 양식 도미 한 마리(선어)가 35,000원이나 하더군요. 낚시하다 보면 심심찮게 걸려드는 그 참돔이 말입니다. 그것도 여기서는 양식이고 죽어버린 선어인데 그렇게 비쌀 수 있다니 혀를 내둘렀죠.
민어는 작은 것으로 한 마리가 8,000원, 황돔(벵꼬돔, 잉꼬돔)은 15,000원, 그리고 병어는 요즘 물량이 달리는지 손바닥보다 조금 큰 거 한 마리가 16,000원. 한때 서민 생선으로 칭송받았던 임연수어마저도 많이 올라 이제 기댈 수 있는 저렴한 생선은 청어와 꽁치만이 남은 것 같습니다. 즉, 배춧잎 한 장으로 두 자릿수를 비닐에 담아올 수 있는 유일한 생선이지요.
각양각색의 골뱅이가 모두 모였다.
이 골뱅이들은 모두 경매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대부분 '무슨 물레고둥'이라는 저마다의 표준명을 갖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상인들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명칭은 골뱅이가 되겠지요. 여기서는 백골뱅이, 청골뱅이, 털골뱅이 등으로 불리곤 하는데요. 이들 골뱅이 중 일부는 타액선에 독이 있어 먹으면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이런 것까지 신경 쓰면서 먹을 일은 평소에 없습니다. 골뱅이를 다루는 식당이라면 기본으로 알고 있을 것이며 만약, 직접 사서 손질해야 한다면 반드시 알아야 할 것입니다.
기름가자미
동해에서 가장 많이 나는 수산물을 꼽으라면 단연 기름가자미를 들 수 있습니다. 여기서는 모두 '물가자미' 혹은 '미주구리'라 불리는데요. 어째서 표준명과 상인들이 부르는 명칭이 서로 다른지는 다음 기회에 설명하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지역 사투리 중에 보전해야 할 명칭이 있는가 하면, 잘못 와전되어 혼선을 일으키는 명칭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서 물가자미나 미주구리는 후자에 속하므로 어부와 상인들은 될 수 있는 한 '기름가자미'로 불려야 할 텐데요. 제 생각에는 10~20년 이내에는 안 고쳐질 것 같습니다. ^^;
어쨌든 이 가자미는 동해에서 가장 많이 나는 수산물 중 하나입니다. 너무 흔해서 저렴하지만, 회로 먹으면 감칠맛이 뛰어나고 구이는 고소합니다. 이때 구이는 건어물이 적당합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지방이 제법 많아 생물로 굽거나 튀기면 잘 으스러지기 때문입니다. 이곳 죽도시장에서는 멸치 다음으로 많이 말리는 생선이 바로 기름가자미일 정도이니 그만큼 기름기나 수분기가 많은 생선임을 방증하는 것이겠지요. 그 외에도 이 가자미는 물회와 회무침 재료로 많이 사용됩니다. 싼 맛에 먹는 생선치고는 이 계절에 아주 차지고 고소한 맛을 내죠.
용가자미
용가자미는 주로 구이와 조림용으로 알맞은 가자미이며 싱싱한 것은 회로 많이 먹습니다. 지역에 따라 불리는 이름이 제각각인데요. 강원도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전국적으로 이 어종을 '참가자미'로 잘못 취급되고 있습니다. 맛은 좋은 어종. ^^
참가자미
앞서 소개한 용가자미와 배 색깔이 다르지요. 노란색 띠가 선명한 이 가자미의 정식명은 참가자미. 하지만 이곳 포항 일대에서는 용가자미의 득세에 밀려 본명을 잃은 지 오래입니다. 이들 지역에서는 이 참가자미를 '노랑가자미'로 불립니다. 그런데 노랑가자미라는 표준명을 가진 가자미는 따로 있으므로 이 명칭도 문제의 소지가 있겠지요.
용도는 뼈재썰기(세꼬시) 횟감으로 아주 그만이고 구이, 조림 등인데 사실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임에도 불구하고 가자미로 할 수 있는 음식 종류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날생선 음식으로는 회, 물회, 회무침이고 가열로 가면 구이, 튀김, 조림, 찌개(혹은 탕) 정도입니다. 한 마리의 생선을 요리하더라도 그 가짓수가 매우 다양한 중국과 프랑스는 조리법과 소스(양념)에서 압도적인 차이를 보이며 지역색도 뚜렷하죠.
사시사철 다양한 수산물이 쏟아져 나오는 우리나라지만, 그 자원에 비해 만들어내는 요리는 매우 제한되어 있어 앞으로는 좀 더 다양한 조리법과 개성 뚜렷한 요리 개발의 필요성을 이 가자미를 통해 생각해 보게 됩니다.
돌가자미
반대편을 둘러보니 씨알 좋은 돌가자미가 몇 마리 나왔군요. 가자미 종류 중 덩치가 큰 편에 속하고 입도 커서 광어로 종종 오인하기도 합니다.
돌가자미는 우리나라에서 잡히는 가자미과 어종 중 비교적 고급 어종에 속하는데요. 무늬가 꼭 돌판이나 대리석 같기도 합니다. 대부분 횟감으로 나가지만, 횟감으로 사용할 선도를 넘기면 개인적으로 찜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가자미를 굽거나 튀겨 먹기에는 너무 아깝지요. 찜은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한번 만들어보겠습니다.
대구
길이 80cm에 달하는 대형 대구 몇 마리가 입하되었습니다. 서울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큰 대구. 마음 같아서는 한 마리 업어가고 싶네요. ^^; 저 머리통 크기 좀 보세요. 대구뽈찜은 저런 걸로 해야 제맛인데 한때 저희 큰어머니가 부산에서 대구뽈찜과 대구탕으로 장사했기에 그 맛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어릴 때는 좀처럼 입맛을 못 붙였던 대구뽈찜이 지금에 와서 왜 그렇게 그리운지 모르겠습니다.
빨간횟대
횟대도 몇 종류가 있습니다만, 시장 상인들은 이들 횟대를 묶어서 횟대기, 홋대기 등으로 부릅니다. 강원도 일부 지역의 어부들은 이것을 '오줌싸개'라 불렀고, 낚시꾼들은 가시망둑과 함께 '좃쟁이'라 부르기도 하는데요. 여기에는 어떤 연유가 있으리라 생각하면서도 이러한 이름이 무식하다고 생각되는 건 저만의 생각일까요?
빨간횟대의 제철은 가을에서 겨울까지로 봄이 되면 산란을 위해 먼바다로 나가므로 이제는 끝물에 다다랐습니다. 포항에서는 이를 잡어회로 취급하며 선어는 탕감이나 밥식해 재료로 쓰입니다.
시마 연어
귀한 바다 송어가 올라왔는데 사진은 암컷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저는 왜 연어나 송어를 볼 때마다 몸속에 기생충이 얼마나 들었는지가 궁금할까요? ^^; 횟감용 송어는 산란기 직전에 바다에서 잡힌 것을 최고로 꼽습니다. 연어가 산란을 위해 강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시기가 대략 10~11월쯤 되니 제철은 8~10월 정도가 되겠지요.
장갱이
장어처럼 생긴 장갱이는 동해에서 주로 나는 특산종입니다.
제 발 앞에는 산 장갱이가 꿈틀거리는데요. 이렇게 보니 바다 미꾸라지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벌레문치
장갱이와 헷갈리는 어종이 바로 벌레문치인데 어떤 상인들은 이를 구분하지 않고 '장치'로 취급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두 어종은 엄연히 다르지요. 앞서 장갱이의 모양을 보면 꼭 미꾸라지를 키워놓은 모양이고 최대 크기는 60~70cm 수준인데 비해 벌레문치(장치)는 최대 1m가 넘는 대형 어류로 생태학적으로나 생김새에서 적잖은 차이를 보입니다. (특히 머리와 꼬리 모양이 많이 다르죠.) 장갱이는 주로 탕으로 쓰이고 장치라 불리는 벌레문치는 찜용으로 현지에서 모두 소진되니 도시 사람들에게는 무척 낯선 어종일 것입니다.
경매를 기다리는 문어
AM 6:30, 드디어 경매 시작
이때는 2월 중순이라 전반적으로 어획량이 떨어져 있으니 문어가 경매의 주인공을 차지했습니다. 이제 꽃피는 3월 중순을 넘기면, 봄에 제철 맞은 수산물이 모습을 드러내겠지요.
가자미 경매 현장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새벽 시장의 경매 현장은 활기가 넘치다 못해 뜨거운 열기마저 느껴졌습니다. 경매의 흥을 돋우기 위해 쉴새 없이 떠드는 이 생소한 풍경도 자주 접하다 보니 흥겨운 음률로 들리기도 하네요. 정신없이 움직이는 손가락 사인과 경매인들의 눈치작전. 그 생동감 넘치는 현장감 모두를 사진에 담기에는 역부족이지만, 당시 피부로 느낀 새벽의 찬 공기, 활기 넘치는 상인들, 코끝에서 전해지는 진한 바다 향은 아직도 선명하게 뇌리에 남아있습니다.
그렇게 긴박하게 돌아가던 경매는 어느덧 먼동이 틀 즈음에서 마무리되었고 분주했던 시장 분위기는 아침의 평온과 함께 차분히 가라앉았습니다. 꼭두새벽부터 치열한 삶의 현장에 있었던 상인들은 각자의 생계를 위해 뿔뿔이 흩어져 그곳에서 또 다른 삶의 투쟁을 이어나가겠지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새벽의 수산시장은 "내가 열심히 살아가야 하는 이유"에 대해 정확히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저도 제가 해야 할 일을 위해 시장을 떠날 차례입니다. 저는 한동대학으로 향했습니다. 그곳에 가면 포항의 명물 '원조 밥식해'의 장인을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원조 밥식해는 어떤 과정으로 만들어질까요? 다음 편은 장인의 손길을 거친 밥식해의 제조 과정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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